A Wizard’s Restaurant RAW novel - Chapter (82)
# 82
Chapter.20 한국에서의 일주일
“빵빵빵!”
거칠게 차가 지나간다. 거리를 가득 메운 자동차들.
이게 대체 무슨 일인가 싶어서 주위를 두리번거렸다.
매우 흐린 하늘. 먹구름이 가득한 하늘은 금방이라도 비가 올 것 같은 분위기였다.
거리에는 빌딩이 빼곡하다.
그 빌딩을 지나다니는 수많은 사람. 나는 내 눈을 믿을 수가 없었다.
저쪽 세계의 언어가 아니다. 분명히 한글이었다. 한글로 적혀 있는 간판이 내 눈에 들어온다. 그러니 이곳은 아무리 봐도 내 고향 대한민국.
“뭐, 뭐야.”
이해할 수 없는 상황에 놀라서 마나를 끌어 올렸다. 마나는 느껴진다. 그렇다는 건 내 몸은 정상이라는 뜻이다.
하지만 대체 루린은 어디가고 나는 현대에 있는 건가.
이해할 수 없는 상황에 그저 걷기 시작했다. 사람들과 부딪힌다. 욕이 들려오고, 삿대질이 들려온다.
현실감이 굉장했다.
하지만 루린이 내 옆에 없다는 사실이 마음에 걸린다. 도무지 지금 눈앞에 일어나고 있는 상황이 이해가 가지 않았다.
다시 주위를 둘러봤다.
아무리 봐도 내가 살던 거리이며. 나는 분명히 그 거리를 걷고 있는 것이다.
“사, 살려줘!”
“시끄럽네요, 아저씨.”
그때 골목길에서 심상치 않은 목소리가 들려왔다. 어딘지 낯익은 목소리에 나는 끌려가듯 골목으로 들어갔다.
그곳에는 교복을 입은 여고생 한 명이 서 있었다.
“아저씨 주제에 나를 건드렸으니 사형인 건 당연하잖아?”
그 여고생은 정장을 입은 회사원으로 추정되는 40대의 아저씨 한 명의 얼굴을 짓밟고는 품에서 지갑을 꺼내 들었다. 표정이 매우 당당하고 도도하다.
“별로 돈도 없으면서 나를 건드려? 웃기지도 않네. 에라이.”
지갑을 다시 내던지자 쓰러져 있는 남자의 얼굴에 직격한다.
퍼어억.
“너, 너… 루린!”
하지만 나는 지갑을 던진 행위가 아니라 그 여고생의 얼굴을 보고 기겁을 했다.
눈앞에 있는 여고생의 얼굴은 분명히 루린이었으니까. 검은색 머리가 너무나도 잘 어울리는 우리 루린말이다.
나는 매우 놀라서 여고생에게 접근했다. 그러자 여고생 루린은 내 목덜미를 잡더니 인상을 찌푸린다.
“아저씨는 또 뭔데?”
“루린!”
“루린은 뭐야? 신종 작업이야?”
자신의 이름을 듣고 신종 작업이라니. 적어도 자기 이름에 자부심이 있는 루린이 내뱉을 단어는 아니다.
순간적으로 혼돈이 왔다.
루린이 아니란 말인가?
그 상황에서 여고생 루린은 잠시 나를 올려보더니 풉 웃으면서 나를 밀쳐버렸다.
“뭘 그렇게 세상이 무너진 것 같은 얼굴을 하고 있어? 이상한 아저씨네. 뭐 오늘은 충분히 벌었으니까 용서해줄게. 아저씨 얼굴이 왠지 건드리기가 싫게 생겼고.”
말투는 전혀 다르지만, 그 웃는 얼굴은 분명히 루린이었다. 꿈에서도 착각할 리가 없는 루린의 얼굴. 하지만 성격도 다르고 말투도 다르다.
눈을 떴더니 현대로 돌아왔고 게다가, 루린은 여고생이라니.
도무지 뭐가 어떻게 돌아가는지 전혀 알 수가 없었다.
하지만 혼란에 빠져 있는 나와 다르게 여고생 루린은 손을 툭툭 털더니 떨어져 있는 가방을 집어 들곤 나에게서 시선을 돌렸다.
그리곤 가방을 메며 골목을 걸어서 빠져나갔다.
“저년이다. 저년! 드디어 찾았어!”
“뭐어?”
바로 그 순간 골목 안으로 덩치 큰 남자들이 우르르 몰려 들어왔다. 딱 봐도 한 어깨 하시는 분들. 누가 봐도 조폭이었다.
“네년이 감히 지갑만 털고 도망을 쳐?”
“흐응, 그거야 나, 아저씨같이 여고생이면 무조건 침만 흘리는 변태랑은 엮이고 싶지 않으니까. 게다가 나한테 털리고 꼴사납게 따라오다가 한 방 먹더니 기절해놓고는?”
“이년이? 어디 한 번 죽어봐라. 형님들! 아까 말씀드렸던 대로 부탁드립니다.”
“저 정도 얼굴이면 뭐 얼마든지 부탁을 들어주고말고. 흐흐.”
몰려든 남자들은 다짜고짜 루린을 공격하기 시작했다. 말 그대로 막싸움. 주먹이 루린을 향해서 날아간다.
여고생을 상대로도 인정사정이 없었다.
하지만 여고생 루린은 그 주먹을 매끄럽게 피했다. 그러더니 발차기를 날려 남자 한 명을 쓰러뜨린다.
싸움에 상당히 능숙해 보였다. 이런 경우가 매우 많이 있었던 듯.
하지만 남자 중 하나가 모래를 끼얹어 시야를 방해했고 그대로 배에 정권이 꽂혀버렸다.
“잠깐! 그만들 하지?”
더는 두고 볼 수가 없어서 목소리를 높였다. 바로 그 순간 발차기를 얼굴에 맞은 여고생 루린의 코에서 코피가 쏟아져 나왔다. 루린은 코를 잡고는 휘청거리며 쓰러진다.
남자들은 소리를 지른 나는 거들떠도 안보고 루린의 머리채를 잡아 쥔다.
아무리 싸움에 능숙하고 자신이 있다고 해도 현실적으로 5명이 넘는 건달들을 여자 혼자서 상대하는 건 무리다.
그녀가 드래곤이 아니고서는.
하지만 여고생 루린은 조금의 마나도 사용하지 않았다. 사용한 것은 그저 격투기다.
더 맞게 둘 수는 없다.
지금도 머리끝까지 화가 치민다.
“하아….”
어쩔 수 없이 마나를 끌어올려 남자들을 모조리 기절시켰다. 건달들은 무슨 일이 일어난 건지도 모르게 쓰려져 버렸다. 마치 스턴건에 맞은 것 같은 효과를 낼 수 있는 전격계 마법 덕분이다.
“루린!”
나는 건달들을 해치우고 여고생 루린에게 다가가 몸을 부축했다. 그러자 루린이 내 손을 쳐낸다.
“만지지 마! 어떻게 한 건지 모르겠지만, 도움은 필요 없으니까. 어쨌든 아저씨도 내 몸이 목적이지?”
루린은 가방을 뒤적거리더니 휴지를 꺼내들어 코를 막았다. 하지만 방금 소리는 어처구니가 없다. 노리긴 뭘 노린단 말인가.
“아닌데? 억울한 소리하지 마시지. 원래는 네가 내 몸을 노렸었으니까.”
“뭐어? 아저씨 정신병자야? 무슨 헛소리를 하고 있어. 내가 아저씨를? 요즘 들었던 코미디 중에 제일 웃긴 코미디네.”
루린은 푸하핫! 웃더니 자리에서 일어나 절룩거리며 걸어 나가려고 했다. 하지만 곧 넘어져 버렸다. 다리가 풀린 모양이었다.
배에 맞은 주먹이 상당히 큰 충격을 준 것 같았다.
“거참 위험하게도 사는구만.”
“이제는 충고까지 하려는 거야? 아저씨가 무슨 경찰이야 선생이야? 아저씨, 얼굴이 왠지 낯이 익어서 그냥 뒀더니…자, 잠깐 뭐하는 거야!”
내가 다가가자 다리가 풀려 주저앉은 루린은 경계심을 잔뜩 보이면서 물러났다. 주저앉은 채 말이다.
“아니 충고를 할 생각은 아니고. 이렇게 위험하게 살아갈 거면 좀 더 강해야 하는 거 아니야? 이 정도 실력으로 험난한 세상을 헤쳐 나가겠다고? 실제로 지금도 위험했잖아?”
나는 그렇게 말하며 여고생 루린을 업어들었다. 힘이 안 들어가는지 저항을 하지 못한다.
“평소에는 당하지 않아. 저딴 놈들에게… 근데 오늘은… 그… 그….”
“그 뭐?”
“그보다 당장 내려놔! 아저씨, 소리 지른다? 대낮에 성범죄자가 되고 싶어?”
“대답하면 내려놓고.”
“…아저씨 완전 최저네 최저. 그런 말을 직접 들으려고 하다니. 그…!”
“그 뭐?”
여고생 루린은 뭔가 마음에 안 드는지 내 머리를 쥐어뜯기 시작했다. 힘이 풀린 것은 다리뿐, 손은 멀쩡한 모양이다.
“아파 임마!”
“그러니까 내려놔!”
“아니아니, 그보다 말하면 내려놓는다니까?”
“아우! 그… 그날이라고… 이 변태 자식아….”
그리고 또다시 들려온 대사.
아우! 까지는 매우 컸지만 그 이후의 대사는 매우 조그맣게 들려서 도무지 알아듣기조차 힘들었다. 물론 천천히 그 말을 곱씹은 후 뜻을 이해한 후에는 물은 걸 후회했지만.
“아, 그, 그래?”
“말했으니 내려놔!”
“아니 그보다 지금 상태면, 길을 가다가도 습격당한다? 일단 업혀서 가자.”
“어딜 가?”
“너네 집. 데려다 줄 게.”
“아저씨. 너무 노골적인 거 아냐? 차라리 원하는 짓이나 하자고 그래. 집에 가자니 웃기지도 않아.”
“아니 됐고. 집에 데려다준다니까? 무서워? 아까는 무슨 남자는 다 하찮게 이야기하더니.”
“…이상한 아저씨네. 당연히 안 무섭지. 오히려 다리에 잠깐 힘이 없을 때 뭔가 하려고 했으면 했었어야 할 걸? 회복되면 아저씨는 그냥 죽은 목숨이라구.”
“그럼 그러지 뭐. 그래서 집이 어디야? 집까지 가는 길에 회복하면 그만이잖아?”
여고생 루린은 갑자기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야?”
되물었으나, 등 뒤에서 숨소리가 들려온다. 그리고 침이라도 흘렸는지 등 뒤가 축축했다. 아무래도 잠든 모양이었다.
어이가 없다.
확실히 루린이다. 이 여고생의 탈을 쓴 건 분명히 루린이었다.
업은 감촉도. 모든 것이 똑같다.
심지어 여고생 나이라는 것도.
성체가 되기 1달 전이었던 루린과 판박이라고 할 정도로 똑같았다.
게다가 이렇게 내 등 뒤에서 쉽게 잠드는 건 루린 말고는 없다.
그렇다면 이 여고생 루린을 절대로 놓을 수 없다. 지금 내가 놓인 상황은 전혀 이해할 수 없지만, 이 여고생 루린이 루린 그 자체인 이상 놓으면 모든 게 끝날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나저나 그렇게 경계심을 보이더니만 이렇게 갑자기 잠드는 건 대체 뭔데? 우리 루린이라면 너무나도 당연한 일이긴 하지만.
나는 어쩔 수 없이 주위를 맴돌다가 한적해 보이는 공원의 벤치에 루린을 내려놓았다.
쏴아아아아!
얼마 있으려니 설상가상으로 비가 쏟아져 내렸다. 하늘에 먹구름이 가득했던 건 원래부터 그랬으니 놀랍지도 않지만, 왜 하필 지금일까.
그 비를 맞으면서도 여고생 루린은 잘 자고 있었다. 너무나도 평화로운 얼굴이다. 그래, 내가 너무나도 잘 아는 얼굴.
일어나기 싫어하며 침대에서 뒹굴었던 그녀의 얼굴.
나는 그냥 가만히 그녀를 바라봤다. 가끔 식당에서 하는 것처럼.
요리하다가 테이블에 늘어져 있는 루린을 보는 건 일종의 행복이다. 인정하기 싫지만 분명히 내 행복의 커다란 부분을 차지한다.
비는 계속 내렸다.
그리고 곧 그 순간은 끝이 났다.
여고생 루린이 갑자기 눈을 뜨더니 나를 올려봤기 때문에. 그러더니 벌떡 일어나서 벤치에서 뒷걸음질 쳤다.
“이, 이게 무슨….”
“응?”
“내, 내가 다른 남자 등에 업힌 채 잠들다니, 있을 수도 없는 일인걸! 말도 안 돼. 아저씨, 뭔가 수면제 같은 걸 먹인 거지!”
“그랬으면 여기다 눕혀놓고 지켜보고 있었겠냐? 어딘가 끌고 갔겠지.”
“어…?”
급하게 쫓아가 루린의 머리 위에 우산을 씌웠더니 여고생 루린은 혼란스러운 얼굴을 했다.
내말은 확실히 정론이었으니까.
“이… 이상해. 아저씨, 대체 뭘 하고 싶은 건데?”
“말했잖아. 나에게 있어서 가장 소중했던 존재와 네가 너무나도 닮아서 그래. 우리 루린하고….”
“소중한 존재? 루린? 무슨 이름이 왜 그 모양이야? 풉….”
니 이름이다. 이것아.
이 장면을 녹화해두고 싶은 욕구가 치밀어 오른다. 자기 이름을 비웃는 루린이라니.
“내가 잠들었는데도 아무 짓도 안하다니 뭔가 신기한 사람이네. 이상해.”
“뭐가 그리 이상해? 사실 그건 당연한 거 아냐? 대체 이곳 사람들한테 무슨 짓을 당하고 다닌 거야.”
“흐웅, 원래라면 개 패듯 패고 내 갈 길을 가야 할 상황 인데 진짜 이상하네. 이상하게 아저씨를 때리기가 싫다? 막무가내로 날 업었는데도… 싫어지지가 않고, 심지어 등에 업혀서 잠들다니….”
그건 듣던 중 반가운 소리다. 여고생 루린의 몸 안에 나의 정보가 기억되어 있다는 거니까.
역시나 이 여고생 루린을 절대로 놓쳐서는 안 된다.
“그러니까 일단 니네 집에 가면 안 될까?”
여고생 루린은 말없이 나를 계속해서 바라보더니 내 우산 밖으로 걸어가 뛰기 시작했다. 내가 같이 뛰자 이번엔 갑자기 걷기 시작한다.
뭔가 스토커 같은 상황이다. 하지만, 눈앞에 있는 것이 루린이라는 것을 확신한 이상 나는 도무지 포기할 수가 없었다.
스토커가 됐든 뭐가 됐든 말이다.
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