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 Wizard’s Restaurant RAW novel - Chapter (83)
# 83
Chapter.20 한국에서의 일주일
여고생 루린은 한참을 걷더니 아파트로 들어갔다. 그리곤 2층으로 올라가더니 도어락을 연다. 그리고 그대로 들어가 버렸다.
아니, 들어갔다고 생각했더니 문을 잡고 나를 쳐다본다. 아무래도 들어오라는 뜻인 것 같아서 안으로 들어가니 루린은 콰앙! 소리를 내면서 문을 닫고 화장실로 들어가 버렸다.
물소리가 들린다.
나는 방안으로 들어왔다. 루린의 향기가 난다. 아. 정말로 뭔가 변태가 된 기분이라 고개를 가로젓고는 주방으로 향했다.
냉장고에는 요리재료들이 들어있다. 먹고 살기는 하는 모양이다. 자취니까 당연하다면 당연하지만.
그럼 뭐 요리는 매우 손쉽다. 나는 냉장고에 있는 식재료로 몇 가지 요리를 만들었다. 김치가 있으니 김치찌개를 끓이고 달걀이 있으니 계란말이를 만든다.
가정식이란 나에게 있어서는 뚝딱 해낼 수 있는 쉬운 난이도의 도전이다.
“아저씨, 지금 뭐하는 건데?”
그러자 여고생 루린이 몸을 씻고 나온다.
“어?”
이 부분이 매우 이질적이었다. 루린이 몸을 씻고 제대로 몸을 닦고 옷까지 입고 나오다니.
원래의 루린도 이래 줬으면 내가 얼마나 편했을까.
“뭘 그러게 보고 그래? 음흉해.”
“음흉하다면서 집 안으로 들였어?”
“몰라. 나 뭔가 오늘 이상해.”
여고생 루린은 고개를 홱 돌려버리더니 소파로 가서 앉았다. 그리고 나를 본다.
아, 역시나 루린은 루린이다. 머리에서 물기가 뚝뚝 떨어진다. 그러면 그렇지.
“아니 그러니까, 항상 머리 좀 제대로 닦고 다니라고 했지. 머릿결 상한다고.”
나는 여고생 루린의 머리에 수건을 가져가서 매우 조심스럽게 닦아주기 시작했다.
“아….”
아니, 그러다 정신을 차리고 뒤로 물러났다. 나도 모르게 자연스럽게 평소의 버릇이 나온 모양으로. 여고생 루린조차 크게 놀랐는지 입을 쩍 벌렸다.
“아저씨….”
“으응?”
“뭐가 그리 자연스러워? 너무 자연스러워서 몸을 맡길 뻔 했네. 아저씨 무슨 선수나 그런 거야?”
“아니 그럴 리가 없지….”
나는 일단 물러나 만들어 놓은 요리들을 그녀 앞에 놓았다. 여고생 루린은 그걸 보더니 고개를 갸웃거린다.
“이거 아저씨가 한 거야? 시킨 것 같은 비주얼이 아닌데?”
“응. 내가 한 거지.”
“집에 있는 재료로?”
“응”
“말도 안 돼!”
루린이 고개를 갸웃거린다.
나는 보란 듯이 요리를 집어 먹었다. 경계심을 조금 풀어주려고. 으음, 내가 만들었지만, 맛있다.
역시 요리재능은 어딜 가도 사라지지 않는구만.
“먹어. 배 안 고파? 평소에는 뭘 먹고 사는 건데?”
“사실 배고파.”
여고생 루린은 못 참겠다는 얼굴을 하더니 결국 요리를 집어 들었다. 쩝쩝 맛을 보더니 이내 게걸스럽게 먹어치우기 시작했다.
“아저씨, 이거 뭐야. 왜 이렇게 맛있어? 내가 하는 거 하곤 비교도 안 되잖아!”
말꼬리에 음성을 높이는 것은 루린 특유의 말투다.
나는 고개를 저었다.
정신을 차려야 한다.
지금 내 앞에 나타난 여고생 루린과 내가 처한 상황을 파악할 필요가 있었다. 언제까지 이런 비정상적인 상황에 안주할 수는 없는 법이다.
“그나저나 혼자 살아? 부모님은?”
“…없어. 혼자야.”
“뭐?”
“어릴 때 재산 나부랭이만 남겨두고 죽어버렸어.”
“아, 그래…?”
이 녀석은 여기서도 혼자인 모양이었다.
방안에는 그 흔한 사진하나 없다.
이곳에서도 저곳에서도 왜 루린은 내가 없으면 혼자인 건지.
“아저씨, 지금 동정하는 거야?”
“아니. 그보다, 정말 아무것도 생각 안 나? 나에 대한 거?”
“무슨 사람을 기억상실증 취급하고 있어? 난 빵구 난 기억 같은 거 없다고. 아저씨 진짜 이상해. 미친 거 같아.”
여고생 루린은 고개를 가로저었다. 그러더니 마저 요리를 집어먹기 시작했다.
나는 조바심이 났다. 어떻게 해야 이 상황이 종료되는 걸까.
이건 너무 악몽이다.
루린이 나를 못 알아보는 현실이라니.
“루린, 너 이것도 기억 안 나?”
“응?”
나는 루린이 차는 걸 까먹고 놔둔 귀걸이를 몰래 습득해서 나중에 골려주려는 계획을 세웠었다.
그래서 루린의 귀걸이는 내가 보관하고 있는 중이다. 나는 바로 그 귀걸이를 꺼내들어 그녀에게 보여줬다.
마법의 조명이 아닌 형광등 불빛에 빛나서 귀걸이가 반짝거린다.
여고생 루린이 고개를 가로저으며 그 귀걸이를 집었다.
“나, 귀 안 뚫었는데.”
“뭐?”
나는 놀라서 그녀의 귀를 보았다. 귓불에 구멍이 없었다. 멀쩡한 귀다.
루린은 귀걸이를 하느라고 귓불에다가 구멍을 냈다. 그녀가 말했다. 자기 몸에 의도적으로 뚫은 구멍은 평생 남는다고. 하지만 눈앞의 루린은 구멍이 없다.
이건 대체?
바로 그 순간. 세상이 반전한다.
빠아아아아아아앙!
이라는 소리에 갑자기 눈이 떠졌다. 시끄러운 자동차의 경적음이 사방에서 울린다.
응? 눈이?
눈이 떠졌다는 사실을 인지하고 다시 주위를 둘러봤다.
하지만 식당이 아니었다. 아까랑 똑같은 세계다.
현대였다.
식당이 아닌 현대.
지구이자, 그 지구 속에서도 한국이라는 나라. 내가 살던 바로 그 땅.
방금 전까지 같이 있던 루린을 꼭 빼닮은 여고생은 없었다. 그녀의 집이 아니다.
처음 한국 땅을 인식했던 때처럼 대로변에 앉아 있었다.
역시나 대체 이게 어찌 된 건지 영문을 알 수가 없다.
다시 한 번 주위를 둘러봤다.
어디까지가 현실이고 어디까지가 환상이지? 설마 꿈이라도 꾼 건가?
하지만 지금 내 눈앞에 있는 것도 현대다. 15년간이나 마법사로 살았던 그 세계가 아니고 내가 태어났던 지구 말이다.
눈앞에 있는 현대문물.
시끄러운 자동차. 그리고 신호등. 높디높은 건물.
약간 흐린 하늘.
아무리 봐도 한국이다. 아까 꿈과 비슷하다. 어디부터 어디까지나 현실인지 파악이 안 된다.
아니다.
식당에서의 일은 분명히 기억났다. 그러니까 분명….
***
그날 아침은 평범했다. 세레이나에게 다녀온 후 평소처럼 식당을 열었다. 그리고 점심나절 소주가 떨어졌다는 걸 깨닫고 평소처럼 소환마법을 사용했다. 그래, 바로 그 소환마법이 문제였다.
맥주를 까먹고 있는 루린의 옆에서 소환마법을 사용했을 때. 평소랑은 다르게 사람 몸통 크기의 블랙홀이 나타났다.
소주 한 박스는 그 블랙홀을 통해서 소환됐지만, 그런 후 블랙홀이 닫히지를 않는다. 이런 블랙홀이 나타난 것은 처음이다.
“이게 뭐녀?”
“뭐녀가 아니고 뭐냐겠지. 왜 가끔가다 뭐녀거리냐 너는.”
“모른다. 그냥 놀라면 그렇게 말이 꼬인다. 흥… 근데 이건 진짜 뭐냐!”
“그러게 나도 모르겠어.”
마나의 영향인가?
그날, 드래곤의 구슬을 흡수한 뒤로 첫 소환마법이다. 소주가 소환됐으니 별다른 특이점은 없다. 그럼 대체 이건 언제 사라지는 걸까.
소환마법 자체도 더 강해진 건가?
여러 가지 의문이 들었다. 소환마법을 사용할 수 있는 횟수라든지, 크기라든지 그렇게 강화됐으면 나쁠 건 없으니까 말이다.
사라지지 않는 블랙홀을 관찰하고 있으려니 루린이 갑자기 손뼉을 치며 호들갑을 떨었다.
“오! 그러고 보니 이거 텔레포트를 할 때의 어둠과 비슷한 것 같다. 히히.”
루린이 그런 소리와 함께 나타난 블랙홀에 손을 뻗는다. 그리고 바로 그 순간.
“그대! 빨려 들어간다! 이거 진짜 뭐냐아아아!”
“루린!”
루린이 순식간에 블랙홀에 흡수당해버렸다. 놀라서 급하게 루린의 발에 손을 뻗었다. 잡은 건 좋다. 하지만 나 또한 그 어둠에 빨려 들어가 버렸다.
.
.
.
그래, 분명히 소환마법을 사용했다가 생긴 블랙홀에 빠져서 정신을 잃었었다. 그 정신을 잃은 와중에 허무맹랑한 꿈을 꾼 거고.
빠아아아아앙!
경적은 계속해서 시끄럽게 울렸다. 그 경적이 울리는 도로의 끝으로 시선을 돌린다.
그리고 내 시선의 끝에 너무나도 익숙한 여자가 들어왔다. 교복을 입은 루린이 아닌 내가 너무나도 잘 아는 루린. 익숙한 복장을 한 루린이었다.
루린이 서 있는 곳은 무려 도로 한 복판. 시끄러운 경적의 원인은 루린이었다.
빠아아아아아아앙!
게다가 바로 그때.
콰아아아아아앙!
과속을 하고 있던 자동차가 뭐가 뭔지 모르겠다는 표정으로 서 있는 루린의 몸과 충돌해버렸다.
커다란 소리와 함께 교통사고가 발생한다. 자동차의 보닛에서 연기가 치솟고 범퍼가 박살났다.
사람과 충돌했는데 부서진 것은 자동차였고, 루린은 너무나도 멀쩡하게 서 있었다.
때문에 가까이서 경적를 울려대던 자동차들은 일제히 정지했고, 뒤쪽에서는 다른 차들이 다시 경적을 울려대며 아수라장이 펼쳐진 상황.
나는 깜짝 놀라서 루린에게 달려갔다. 그러자 루린이 아무렇지도 않은 표정으로 나를 바라본다.
“루린!”
“그대! 여긴 대체 뭐냐? 이 몬스터는 또 뭐고. 이상하게 생겼다.”
힐끗 보니 보닛이 우그러졌으나 운전자는 무사해 보인다. 조금의 부상이야 있겠지만, 목숨에는 지장이 없어 보였다.
그걸 확인하고 루린을 이끌었다.
중요한 건 눈앞의 루린이 나를 그대라고 불렀다는 점. 진짜 루린이라는 소리다. 현대를 살아가는 꿈속의 루린이 아니라 드래곤이기도 한 너무나도 잘 아는 루린 말이다.
그래도 혹시 모르는 것. 찝찝한 마음을 풀기 위해 루린의 귀를 살폈다. 내가 준 귀걸이를 한답시고 뚫었던 귓불구멍이 선명하게 남아있다. 아까 그건 역시나 악몽이었구나.
허탈한 웃음이 나온다.
“그대? 귀는 왜 만지냐?”
“아, 아냐. 일단 여기서 빠져나간 뒤에 이야기 하자.”
일단은 기뻤다. 엉뚱한 얼굴로 반문하는 루린이 너무나도 반갑다.
하지만 장소가 좋지 않다. 자동차와 부딪혔는데 그대로 서 있는 루린을 괴물 보듯 하는 사람들.
그 소동의 한복판에서 나는 대충 눈앞에 보이는 건물 옥상을 가리켰다. 여기서 사라지는 게 최고인 상황이니까.
“루린, 일단 여기서 떠나자. 저기로 텔레포트 해 봐. 알았지?”
“저기 말이냐?”
루린은 뭔가 불편한 얼굴로 눈살을 찌푸렸지만, 어쨌든 내 말에 따라 텔레포트를 사용했다. 곧 어둠이 시야를 덮친다. 우리는 시끄러운 사고 현장에서 사라져 멀리 보이던 건물 옥상으로 순식간에 이동했다.
아까 꿨던 꿈은 반은 진실이다. 즉 한국으로 전이된 건 사실이라는 소리다. 꿈속의 꿈이 아니다. 한국으로 돌아왔다. 그것만큼은 틀림없는 사실로 보였다.
그레이크시와는 달리 시끄럽게 돌아가는 풍경. 자동차가 빽빽하며 수많은 사람들이 거리를 걷는다.
어찌 보면 바람이 이루어진 상황이기도 했다. 소환마법을 연구한 것 자체가 현대로 돌아가고 싶다는 생각 때문이었으니까.
물론 그쪽에서의 생활에 만족했기 때문에 언젠가부터 돌아오고 싶다는 마음이 옅어진 건 사실이다.
하지만 어쨌든 돌아왔다.
확인해보니 현재 이 땅의 시간은 2017년. 그 말인즉, 내가 소환 당했던 2002년에서 15년이 흘렀다는 것이다.
이쪽 세상도 15년이 흘렀다. 그리고 내가 저쪽에서 보낸 시간도 15년이다. 동일하게 흘러간 시간.
보통 다른 우주에 다녀오면 이쪽 세계는 시간이 조금밖에 흐르지 않았다든지, 아니면 100년, 200년이 흘렀다든지 하는 일이 발생할 수 있다.
하지만 똑같았다.
내가 여기서 사라져서, 이세계에서 15년이라는 세월을 보낸 것만큼 이 땅의 시간도 15년이 흘러가 있었다.
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