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 Wizard’s Restaurant RAW novel - Chapter (87)
# 87
Chapter.20 한국에서의 일주일
검은색 춘장과 함께 도드라진 먹음직스러운 냄새. 피어오르는 김. 그 위에 절묘하게 뿌려져 있는 완두콩. 그리고 옆에는 단무지.
젓가락을 들었다. 짜장면은 면을 비빌 때가 가장 즐겁다. 그런 의미에서 비벼서 나오는 쟁반짜장보다는 그냥 짜장면을 좋아한다. 개인적으로 말이지.
“그대, 이건 왜 까맣냐?”
“까매서 맛있는 음식 중에 하나야. 네 입맛에 맞을지는 모르겠지만 내가 좋아하는 거야. 먹어봐.”
“오! 그러냐? 그대가 좋아하는 거냐? 그럼 맛이 없다고 해도 나도 좋다.”
루린이 훈훈한 대사를 남기면서 나를 따라 젓가락을 짜장면에 쾅하고 꼽았다. 호쾌하기 그지없다.
“그건 이렇게….”
모락모락 김이 피어오르는 짜장면을 보면서 설명을 하려는 순간. 식당 안으로 사람들이 들이닥쳤다.
“잠시 협조 부탁합니다!”
우당탕탕! 갑자기 들이닥친 건 경찰. 동시에 가게안의 사람들 몇몇이 급하게 도망치기 시작했다. 손님 중에서도 일부분이.
경찰 신분증을 보자마자 저런다는 건 찔리는 게 많다는 거고 뭔가 범죄에 관련되어 있다는 소리다.
“저것들 잡아!”
다짜고짜 공무집행 방해를 저지르며 경찰을 공격하고 도망치기 시작한 무리 때문에 가게는 난장판이 되었고 경찰들 또한 그들을 잡기 위해 가게를 난장판으로 만들고 있었다.
그중 도망자 한 명이 경찰과 엎치락뒤치락하기 시작했고 이쪽 테이블로도 그 여파가 쏟아졌다.
그 결과 식탁은 난장판. 아니, 난장판이 아니더라도 이미 먹을 수 있는 분위기가 아니었다.
골라도 하필이면.
“죄송합니다, 잠시만 협조해 주시기 바랍니다!”
이 식당 자체가 범죄와 연관이 있었는지 경찰은 손님 한 사람 한 사람에게 신분증 확인과 간단한 사정청취를 시작했다.
이건 곤란하다. 먹을 걸 못 먹는 것도 욕 나오지만 일단 루린과 나는 무국적자다.
나는 실종 신고가 되어있고 회복을 하지 않았다. 어차피 떠날 거 의미가 없으니까.
그리고 루린은 이 세상에 있어서는 안 되는 존재다.
그런 관계로 협조는 불가능하다. 그럴 바에야 아예 도망치는 게 낫지. 부득이한 경우라면 루린의 정신 마법을 써도 되지만, 어차피 이런 소란이 벌어진 이상 이 식당에서 요리를 먹는 건 불가능하다.
그렇다면 그냥 떠나는 게 최선.
“루린, 텔레포트를 할 마나는 남아 있어?”
“남아있는데?”
“그럼 호텔로 돌아가자.”
“그럴 필요 있냐? 이 몸의 밥을 바닥으로 떨구다니 저 놈들 짜증난다. 모조리…!”
“참아, 참아, 여긴 우리가 사는 곳이 아니니 소란피울 필요 없어.”
“흐음, 알겠다!”
루린은 고개를 끄덕이며 나에게 안겨들었다. 동시에 시야가 어두워진다.
도망치는 건 문제없었다. 하지만 무려 두 번이나 짜장면을 먹는 데 실패 한 건 문제가 많았다.
이렇게 되면 뭔가 짜장면을 먹지 못하는 저주에라도 걸린 게 아닌가 싶을 정도다. 가는 가게마다 보통은 겪기 힘든 일이 일어나다니 말이다.
약간 어이가 없어져서 일단 침대에 드러누웠다. 침대만큼은 저쪽 세계랑 비교도 안 되게 푹신하다.
그러자 루린도 따라 점프한다. 침대로 점프해서 잠드는 게 루린의 최근 일상이다.
“그대그대. 돌아갈 때 이 침대 가지고 가면 안 되냐? 드워프가 만든 것보다 좋은 것 같다.”
“흐음, 이거보다 더 좋은 침대도 있을 걸?”
“오오! 그러냐? 그럼 그걸 가지고 가자!”
“으음, 나중에 사 가지 뭐.”
“찬성이다!”
뭐 그 정도야 충분히 약속할 수 있지. 나도 이쪽 세계 침대를 쓰는 게 더 좋다고 생각하니까.
소환으로 불러낼 수 있는 크기가 아니라서 예전엔 사용할 수 없었지만, 직접 이쪽 세계에서 가져가는 건 또 이야기가 다르다.
게다가 담을 수 있는 마나의 양이 대폭 증가해서 소환마법으로 소환할 수 있는 물품의 크기도 증가한 것 같고.
루린은 기분이 좋은지 침대에서 이리 뒹굴 저리 뒹굴 난리블루스를 떨기 시작했다. 하지만 배는 여전히 고프다. 시간은 해질 무렵이 돼가고 있고.
“다시 나가자.”
호텔에서 짜장면을 시켜 먹을 수는 없다. 그래서 다른 방법을 생각해 냈다. 이번에는 배달에 도전하기로 마음먹고 루린과 함께 한강시민공원으로 향했다.
서쪽 하늘로 빨갛게 노을이 지는 시각. 분주하게 움직이는 사람들. 평일의 도시 풍경 속에서 나는 루린과 함께 여유로움을 만끽하며 공원으로 들어섰다.
시민공원 역 앞에는 중국집 광고지가 넘쳐났고 적당히 한군데 골라서 공원으로 들어와 앉으려다가 일단 편의점으로 향해서 돗자리를 구매했다. 음료수도 사고 전화도 편의점에서 이용했다.
편의점에 배달을 받아달라고 부탁한 후 돈까지 맡기고 수고비도 줬다. 아르바이트생은 친절했고 여기까지 별 문제는 일어나지 않았다.
정말로 저주라도 걸렸다면 또 뭔가 문제가 발생할 테니 주의를 기울인다. 배달이 올 때까지 기다릴 심산으로 자리를 잡고 돗자리를 펼쳐 앉았다.
어느새 루린은 돗자리에 올라가 졸기 시작했고 나는 짜장면을 기다렸다.
철가방은 빠르게 도착했다. 나는 루린의 머리를 돗자리에 올려두고 편의점으로 향했다.
편의점 알바의 도움을 받아 짜장면과 탕수육을 받아들고 돗자리로 돌아온다. 핸드폰이라도 있으면 편의점을 거칠 것도 없지만, 핸드폰이 없으니 위치를 특정할 수 없는 장소에서 음식을 시키는 게 어렵다.
그 덕분에 수고비가 들었다. 물론 그런 건 사소하다. 지금 이 순간 중요한 것은 내 손에 드디어 짜장면과 탕수육이 안착했다는 것이다.
하루 종일 먹는데 실패했던 짜장면. 이제는 먹을 수 있다.
변수 따위는 없다.
갑자기 한강에 괴물이라도 나타나지 않는 한.
아니 괴물이 나타나도 마법으로 태워 죽인 후 먹는다.
“루린, 일어나. 밥 왔어.”
“으응, 드디어 밥이냐? 뱃가죽이 거덜 나겠다. 근데 그대, 그건 아까 본 거 아니냐?”
“그렇지? 짜장면이란 다 이렇게 생겼어.”
“이상한 녀석이군.”
“너한텐 그렇겠지.”
나는 건성으로 대답하면서 짜장면에 주목했다. 벌써 두 번이나 눈앞에서 못 먹었더니 엄청나게 귀한 음식이라도 된 느낌이다.
포장을 벗기니 김이 모락모락 올라왔다. 배달시스템 굉장하구만. 나무젓가락을 꺼내고, 조심스럽게 경배하듯이 젓거락을 두 쪽으로 갈랐다.
“나무젓가락은 이렇게 두 쪽으로 나눠서 사용하는 거야. 젓가락은 사용해봤으니 알지?”
“이게 그거냐? 붙어 있어서 몰랐다.”
“응.”
쪼개서 써야 하는 나무젓가락을 처음 맞이한 루린. 곧바로 힘을 줘서 젓가락을 쪼개기 시작한다.
물론 섬세함은 없다. 있는 힘을 다해 젓가락을 잡아먹을 기세로 힘을 주는 그녀. 덕분에 젓가락은 처참하게 박살이 났다. 앞부분만 부러져 나가버렸다고 할까.
처참한 실패다.
“왜 이러냐 이놈.”
“너야말로 왜 그러십니까!”
짜장면이 분다. 불어터지겠네. 그렇다고 손으로 먹게 할 수는 없다. 어쩔 수 없이 편의점으로 달려가 나무젓가락을 구매했다. 힘들어 죽겠다.
“헉헉.”
“푸하하하하하하. 그대, 혓바닥 내미는 거 귀엽다.”
잠시 후 거친 숨을 내쉬며 돌아오자 루린이 사람을 개 취급하면서 꺄르르 웃기 시작한다. 장난하나. 이게 누구 때문인데.
“됐고, 젓가락은 내가 쪼개줄게. 배고파 죽겠네.”
“나도 너무 고프다. 그래서 이거 먹고 있었다.”
루린은 탕수육을 꺼내서 이미 드시고 계셨던 것이다. 그것도 손으로.
“어쭈? 이런 배신자 중에 배신자가 어딨냐. 진짜 너무한다. 나는 네 젓가락 구하려고….”
“모른다! 이거 먹어라. 맛있다. 좀 싱겁지만.”
주절거리는 내 입에 루린이 탕수육을 집어넣는다. 닥치라는 건가.
못산다. 못살아. 그래도 입안으로 들어온 탕수육은 맛있었다. 이게 오늘의 첫 끼다.
“그래, 말을 말자. 아무튼 이렇게 짜장면을 섞는 거야. 골고루 섞으면 완전한 검은색은 아니고 윤기 나는 좋은 색깔로 변하지. 오오, 좋은 냄새!”
내가 짜장면의 냄새에 감탄하자 루린이 고개를 끄덕이며 내 행동을 똑같이 따라했다. 그래 문제없다. 노을도 절정이다. 젓가락으로 면을 들어올린다.
그러다가도 잠시 주위를 두리번거렸다. 아무 일 없다. 이 상황에서의 최악은 갑자기 비가 오는 거다. 비가 엄청나게 내려서 짜장면과 탕수육을 적시는 것.
설마 그런 최악의 시나리오가….
무심코 하늘을 봤다. 하지만 하늘은 맑았다.
“후루루룩.”
안심하고는 입안에 들어온 면발을 씹었다.
약간 불기 시작한 짜장면이 내 입안 가득하다. 불기 시작한 건 불기 시작한대로 맛있다. 춘장 특유의 감칠맛. 그리고 약간의 느끼함이 중화요리의 특징이고.
이게 대체 얼마 만에 먹어보는 짜장면이라는 말인가.
쩝쩝.
자동으로 계속해서 짜장면이 입안으로 들어간다. 슬쩍 루린을 봤더니 별 탈 없이 흡입 중이다.
“그애, 이어 으음, 마이는데 조음….”
“그래, 그럴 때는 그 앞에 노란거, 노란거랑 같이 먹어. 이거는 그거랑 같이 먹어야 하는 음식이야.”
느끼한 맛은 단무지가 싹 잡아주면서 감칠맛을 돋운다.
짜면서도 단 것 같은 특유의 춘장 맛이 입안에 퍼져나갈 때 아삭한 단무지가 씹히면 맛이 한 단계 파워 업을 한다는 거지.
“오오!”
반신반의한 얼굴로 단무지를 집어서 잠시 망설이다 씹기 시작한 루린은 매우 마음에 든 얼굴이었다.
나는 적당히 짜장면을 남긴 후에 따로 주문한 계란프라이를 집어 들었다. 좀 더 느끼해지기 시작할 때는 이게 최고지.
그리고 남은 짜장 소스에는 탕수육 일부분을 부었다. 짜장 소스 탕수육. 그리고 탕수육 소스로 먹는 탕수육. 그리고 편의점에서 샀던 소금으로만 찍어먹는 탕수육. 무려 세 종류를 준비한다.
각각 맛의 특징이 있다.
일단 소금에 찍어먹으면 탕수육 자체의 맛이 제일 잘 살아난다. 겉은 바삭하고 안은 부드럽게 잘 튀길수록 이 맛에 근접하지만, 내가 시킨 곳은 그 정도로 정성들여 탕수육을 만들지는 않은 것 같았다.
하지만 탕수육은 기본적으로 맛있다.
뭘 어떻게 해도 기본은 한다.
소금을 살짝 찍으면 그 약간의 짠맛이 탕수육의 담백함과 조화를 이뤄서 입에서 절로 씹힌다.
물론 탕수육 소스는 그 걸쭉한 소스 자체의 상큼한 맛 때문에 나름대로의 조화가 있다. 또한 짜장 소스는 짜장면처럼 단무지와 같이 먹으면 역시나 맛있지.
두 번이나 실패한 보람이 있다고 생각될 정도로 와구와구 식사를 마쳤다. 루린도 만족한 얼굴이었다. 만족한 얼굴로 짜장 그릇을 타앙 내려놓고는 나를 향해 외친다.
“그대가 만든 거에 비하면 별로지만 배가 고파서 잘 먹었다!”
“그러냐?”
결과적으로 내 요리를 칭찬한다. 고맙기는 하다. 목이 말랐으므로 봉투를 바스락 거리다 음료수를 꺼냈다. 페트병 두 개. 처음 보는 음료수들이다. 맛은 모른다. 뚜껑을 따고 목을 축인다. 짜장으로 찬 뱃속에 시원한 레몬향이 퍼져 들어가자 기분이 새롭다.
그렇게 목을 축인 후 돗자리에 누웠다. 루린에게 음료수를 넘긴다.
루린도 페트병을 받아들더니 꿀꺽꿀꺽 마신다. 하지만 금방 입에서 페트병을 떼고는 놀란 얼굴로 고개를 갸웃거린다. 당연히 물인 줄 알았는데 왜 다른 맛이 나냐는 표정이다. 하지만 곧 맛있으니 상관없다는 듯 다시 마시기 시작한다.
“야, 흐르잖아.”
음료수가 입술을 타고 턱밑으로 흘러내려서 닦아줬다.
“흐르면 그대가 닦아주면 된다.”
당연한 듯이 얼굴을 더 내민다.
할 말이 없다. 그걸 또 정성스럽게 소매로 닦아주고 있는 나도 나지만.
어쨌든 그렇게 목을 축인 후 돗자리에 드러누웠다. 루린도 곧바로 붙어와 누운 상태로 나를 쳐다본다.
그리고 한강 너머를 가리키며 눈을 반짝인다. 뭔가 신기하다는 눈빛이다.
“그대, 밤인데도 반짝반짝하는 게 너무 많다. 여기저기서 빛이 난다. 대체 뭐냐 저것들은?”
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