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 Wizard’s Restaurant RAW novel - Chapter (88)
# 88
Chapter.20 한국에서의 일주일
루린이 가리킨 것은 한강 다리와 그 너머 강남의 빌딩들로 이루어진 야경이었다. 이미 해는 지고 붉은 하늘대신 반짝이는 불빛들이 서울을 수놓아 눈망울 속으로 들어왔다.
여기저기 반짝이는 불빛들은 그레이크시를 비롯해서 저쪽 세계에서는 절대로 볼 수 없는 풍경이니 루린이 신기하게 여기는 것도 당연하다.
“빛이라. 그렇지, 저건 마나가 없는 세상에서 발전한 기술력으로 만들어낸 문명이라고 할 수 있어.”
“그러냐? 뭐 반짝이는 건 좋으니까 상관없다.”
루린은 배를 어루만지며 가리킨 손을 거두고 다시 돗자리를 뒹굴기 시작했다. 돗자리에서만 뒹구면 좋으련만 풀밭으로 몸이 나갔다 들어온다. 그러다가 다시 내 옆으로 자석처럼 돌아와 껴안다가 내가 손을 풀면 다시 뒹군다. 그러다 다시 돌진한다.
한참을 그러다가 결국 내가 거부하지 않자 내 옆에 몸을 포개고 불빛을 바라보기 시작했다.
배는 부르고 야경은 멋있고 옆에 있는 루린도 만족한 모양이고 행복한 한때랄까. 그렇게나 먹고 싶었던 짜장면도 먹었겠다 더 바랄 건 없으니.
우리는 한참을 그렇게 누워있었다.
한참을.
일어난 건 좀 더 밤이 깊은 후다. 어느 정도 소화가 된 상황에서 또다시 졸기 시작한 루린을 업고 공원을 빠져나왔다.
거리는 어느덧 한산했다.
“고로롱, 고로롱.”
그리고 드래곤의 숨소리도 규칙적이다. 한참을 업고 가다가 루린을 대뜸 내려놓았다.
“야, 일어나.”
“고로롱, 고로롱?”
숨소리 끝이 왜 올라가? 아니 이거 전부터도 자는 척을 하고 있다는 건 이미 깨닫고 있었다.
“들켰냐? 쳇이다.”
“쳇은 뭐가 쳇이야?”
“그대에게 업혀 걷는 건 매우 기분 좋으니까!”
웃기는 소리를 하는 루린의 머리를 잡고 흔드는데 맛있는 냄새가 콧속을 간지럽힌다. 그러고 보니 이미 배는 꺼졌다. 그리고 오늘은 한 끼밖에 먹지 못했다. 위장 총량의 법칙이 작용하는 순간이다. 즉, 뭔가를 더 먹어야 힘이 난다고 할까.
그래서 냄새가 나는 진원지를 찾아봤다. 고개를 뒤로 돌리니 24시 기사식당이 자리 잡고 있었다. 냄새의 원인은 백퍼센트 저곳이다.
“여긴 왠지 그레이크시의 다른 식당하고도 비슷하다. 우리 식당보다는 못하지만.”
“그래? 하긴 서민적인 분위기가 그레이크시에 있는 다른 식당과 비슷한 건 맞지.”
그레이크시에 흔히 있는 선술집과 비슷하게 생긴 구조긴 했다. 이런 식당은 완전히 극과 극이다. 음식이 전부 다 맛있거나 맛없거나.
밤이 늦어가니 어차피 배를 채울 곳은 이 정도 뿐이고 루린과 함께 테이블에 앉았다.
늦은 밤인데도 불구하고 여기저기서 식사를 하고 있는 남자가 많다. 기사식당답게 혼자서 밥을 먹는 남자들이 많이 보였다.
사람들이 많다는 건 맛은 보장된다는 게 아닐까. 메뉴는 여러 가지다. 잠시 고민하다가 정말로 저쪽 세계에서는 선보이기 힘든 메뉴에 눈이 고정됐다.
바로 청국장이다. 물론 루린은 싫다고 난리를 칠 것 같으므로 청국장을 두 그릇 시키는 짓은 하지 않았다.
“여기 청국장 하나하고 제육볶음 하나 주시겠어요?”
“그럼요. 잠시만 기다리세요.”
기사식당답게 주문한 요리는 금방 우리 앞에 나왔다. 끓어오르는 청국장은 뚝배기에 담겨있다.
제육볶음은 빨간 양념과 깨가 먹음직스럽게 조화를 이룬다. 맛있겠다는 생각밖에 들지 않는다. 청국장의 냄새가 상당히 구수했다. 이 구수한 냄새를 싫어하는 사람도 많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나는 좋아하는 편이었다. 물론 15년이 넘게 먹어본 기억이 없지만.
제육볶음과 청국장. 두 가지의 음식을 마주하니 정말로 고향에 왔다는 실감이 난다. 두 음식 다 어머니와의 추억이 얽혀 있기도 하고.
“으엑! 그대, 그거 썩었다!”
하지만 루린은 내 청국장을 바라보더니 코를 막고는 얼굴을 찡그렸다. 외국인들이 자주 하는 반응 그대로다.
“썩은 게 아니고 원래 이런 음식이거든요.”
나는 루린에게 보란 듯이 청국장을 떠서 입안에 넣었다. 안에 든 돼지고기와 콩과 두부가 구수한 향과 함께 입안에 퍼진다. 맛있다.
“왜 이상한 걸 먹냐. 나중에 배 아프다고 해도 안 봐준다! 약해진 그대를 괴롭혀 주겠다. 오오! 히히히.”
무슨 상상을 하는지 코를 막은 채로 사악한 미소를 짓는다.
드래곤의 사악한 미소라고 하면 보통은 나라 하나 정도를 불태워버린다는 생각 뒤에 오는 것이 어울리지 않나 싶은데, 어째 루린의 머릿속에는 아픈 나에게 이상한 짓을 하는 망상만 들어있는 것 같은….
아니, 청국장 먹고 배가 아플 리는 없으니 정말로 헛된 망상이지만.
“야! 이상한 소리하지 말고 그거나 먹어.”
“그치만 냄새가 짜증난다!”
생각 외로 격한 반응이다.
“일단 이리 와보시지. 자, 네꺼 먹어봐.”
“내거? 내건 냄새 안 나냐?”
그제야 청국장의 강렬한 냄새에 먹을 생각도 안 하고 있었던 자신의 제육볶음을 쳐다본다.
루린이 좋아하는 베스트 음식 중 하나인 돼지(우바)고기다. 싫어할 리는 없다. 루린은 코를 박고 킁킁거리며 냄새를 맡더니 맛있는 냄새가 나니까 고개를 끄덕이며 숟가락을 손에 들었다.
“이거, 그대가 해주던 요리랑 똑같은 냄새다.”
그렇겠지. 청국장과 달리 제육볶음이야 자주 해먹었던 요리다.
“냄새 안 난다. 평범하게 맛있다. 그대가 해준 게 더 맛있지만. 근데 그건 싫다!”
내가 해준 음식 외의 요리를 먹으면 항상 내가 해준 게 더 맛있다고 주장하는 우리 드래곤에게 누가 돌을 던지랴. 하지만 여전히 청국장에는 증오를 내뿜었다.
뭘 증오까지 내뿜고 있어.
“그럼 이것도 한 번 먹어봐. 냄새는 좀 그렇지만 맛있다?”
이왕 이렇게 된 거 청국장을 한 번 맛보게 하고 말겠다는 욕구가 치솟았다. 그래서 특별 대서비스를 실시했다. 숟가락에 고기와 두부, 그리고 국물을 떠서 루린의 앞에 내민다.
“자, 아아.”
“으윽! 그대, 그거 치사하다!”
그러자 루린이 나와 숟가락을 보면서 갈등하기 시작했다.
그러더니 결심을 했는지 입을 연다.
“싫다! 아무리 그대가 먹여줘도 그런 건 안 먹는다.”
“낮에 짜장면집에서 내가 먹는 건 맛없어도 맛있는 거라고 하지 않았어? 말이 다른데?”
“모른다.”
단호한 부정과 다르게 루린은 아까 자신이 했던 말이 생각났는지 입을 두 손으로 막아버렸다. 그리고 얼굴을 찡그린다.
“정말 몰라?”
“그대, 밥 먹는데 말 걸지 마라. 이거 우바냐? 맛이 똑같다.”
갑자기 진지하게 제육볶음을 시식한다.
“어쭈? 말을 돌려?”
“아까 내가 먹는 건 뭐든지 좋다는 말만 안 했으면 넘어가는데 역시 말 뿐이었어?”
“으으으으.”
루린은 자신이 뱉은 말을 부정하지 못하고 결국 코를 막고 입을 벌렸다. 무슨 사형장에 끌려가는 드래곤 마냥.
“그거, 음식물 쓰레기에서 나는 냄새랑 비슷하다! 맨날 쓰레기 버릴 때 얼마나 싫은데 그대는!”
눈을 질끈 감고 몸을 바들바들 떨었다. 아니, 뭐 그 정도로 혐오할 것까지야. 이것도 엄연히 먹는 음식인데.
“됐어, 그럼.”
“어어?”
“눈 떠. 각자 먹을 걸 먹으면 되지 뭐.”
쿨하게 행동하면서 청국장을 다시 먹기 시작했다. 안에 들어있는 돼지고기와 콩이 어우러져 구수한 맛이 입안을 가득 점령한다. 여기에 밥까지 말아 비벼 먹으면 맛있는 한 끼가 완성된다.
루린에게 신경을 끄고 그렇게 먹고 있으려니, 루린이 가치관이 부서진 것 같은 표정을 하면서 숟가락을 들고 정지한 채 가만히 입을 열었다.
“그렇게 맛있냐?”
“응?”
“그렇지. 맛있다니까. 냄새만 이상한 거야.”
잠시 침묵.
“…모른다!”
결국 다시 눈을 돌리고 돼지고기 볶음을 먹기 시작했다. 뭐 루린의 입맛에 맞을 거라는 확신은 없다.
너무나도 전형적인 한국의 음식이니까. 그렇지만 중국의 취두부나 홍어삼합같이 불호가 엄청나게 갈리는 음식은 아닌데.
“모르면 그거나 먹고 있어. 화장실이나 갔다 올게.”
공원에서 음료수를 퍼부은 영향으로 신호가 왔기에 자리에서 일어났다.
“알겠다.”
고개를 강하게 끄덕이는 그녀를 뒤로하고 화장실에 들러서 소변을 봤다. 그리고 다시 식당으로 돌아오다가 나는 급하게 몸을 숨겼다.
루린이 주위를 두리번거리더니 여전히 코를 막은 채 숟가락으로 청국장을 조심스럽게 퍼 올린 것이다.
그 상태로 청국장을 입안에 가져간다. 그리고 냠냠 먹는다.
“호오?”
감탄사를 잠시 내뱉더니 다시 코를 막고 숟가락을 청국장으로 가져간다. 우리 미식가 드래곤이 구수한 맛까지도 알아주는 건가. 그러더니 입안에 청국장을 넣고 나서야 코를 풀고 얌얌 씹기 시작한다.
그 짓을 계속 반복하고 있었다. 제육볶음은 어느새 다 먹어버리고는 청국장도 다 먹어치울 기세다.
“흠흠.”
웃음이 저절로 튀어 나온다. 그렇게 거부하더니 역시 호기심을 이기지 못했나보다. 냄새는 이상한데 맛은 있었으니, 이제는 아예 신기하다는 얼굴로 청국장을 마구 퍼먹다가 나를 발견하곤 몸을 굳혔다.
그리고 내 얼굴을 향해 먹으려던 청국장을 내뱉는다.
“푸핫!”
“야 임마!”
“아니다. 난 모른다.”
“뭐가 아니고 뭘 몰라. 하여간.”
루린은 시치미를 떼면서 청국장에서 멀어졌다. 하지만 이미 뚝배기는 거의 바닥이었다.
***
그리고 그 다음날. 마나는 50% 정도 회복됐다.
기본적인 공격마법은 얼마든지 사용가능하고 이 땅을 불바다로 만들 정도의 마법도 사용가능하지만, 소환마법은 여전히 불가능하다.
가장 마나가 많이 소모되는 마법이니까.
그 말인즉 오늘도 여전히 여기서 시간을 보내야 한다. 있어봤자 부모님 생각만 나는 이 땅에서 빠르게 떠나고 싶은 마음이 솔직히 굴뚝같았지만, 마법적인 한계가 있으니 방법이 없다.
“어?”
침대에 루린이 없어서 고개를 돌리니 믿을 수 없는 장면이 펼쳐져 있었다.
무려 혼자서 머리를 빗고 있었다. 머리를. 그리고 루린의 앞에는 여성용 잡지가 펼쳐진 채 바닥에 엎어져 있다.
“루린.”
불렀더니 시선만이 돌아온다. 그것도 거울을 통해서. 이제는 거울로 시선을 주는 기술을 터득했나.
“루린님아, 대답을 하시죠. 대답을.”
“이 몸은 지금 바쁘다!”
루린이 혼자서 머리를 빗는 것 자체가 엄청나게 신기한 일이다. 꿈이 아닌가 생각될 정도로.
“너… 뭐 잘못 먹은 거 아니지?”
가까이 다가가 머리에 손을 얹자 루린이 그게 뭔 소리냐는 표정으로 거울을 쳐다본다.
“그대랑 똑같은 거 먹었는데.”
“그래, 그거야 그렇지만.”
“그보다 그대, 여기 거울 마음에 든다. 이것도 가져가자. 그대 고향은 이상한데 침대랑 거울 같은 건 괜찮다!”
머리를 빗다가 일어나서 거울을 쓰다듬기 시작했다. 눈에서 빛이 나올 정도로. 하지만 다행히도 드래곤은 입에서는 불을 뿜어도 눈에서는 빛을 내진 못한다. 거울은 무사했다.
“다 빗은 거야?”
“어떠냐 그대?”
내가 묻자 루린이 오히려 반문하면서 벌떡 일어나 드디어 거울을 통해서가 아닌 맨 얼굴을 보여준다.
머리가 차분하다. 원래라면 일어나서 잔뜩 뻗친 머리카락 그대로 배고프다고 헤매고 있어야 할 녀석인데.
마치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가 된 것 같은 기분이지만, 혼자서 빗질을 한 것 자체는 칭찬할 일이라 뭐라 할 수도 없고, 이유도 안 말해주니 오직 루린 아래 떨어져 있는 잡지와 연관이 있는 게 아닌가하는 추측만이 되는 상황.
루린이 대답을 기다리면서 콧김을 내뿜으니 나는 일단 고개를 끄덕여 줬다.
“글쎄.”
튀어나온 말과 행동이 다르다. 그러자 루린이 입을 부풀린다.
“밥이나 먹으러 가자.”
등을 돌리자 루린이 일단 나를 따라온다.
“그대?”
여전히 입을 부풀린 채 나를 본다. 토라진 고양이 같은 표정이다. 드래곤이 고양이 표정을 짓는 건 조금 반칙 아닌가.
“맘에 안드냐? 하지만 그대 세상의 저 책에서 머리를 꾸미는 법이 써 있었다. 더 예뻐진다고….”
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