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 Wizard’s Restaurant RAW novel - Chapter (92)
# 92
Chapter.21 그릇 장인
현대에 다녀오자 겨울이 지나갈 무렵이 되었다. 하지만 아직은 추운 날씨.
저녁이 되면 식당에서는 뜨거운 국물 요리가 잘 팔린다. 처음에는 이 국물 요리라는 것에 거부감을 보였던 손님도 많았지만, 최근엔 우리 식당에서는 매우 당연한 풍경이 되었다.
추운 날씨에 이만한 것도 없으니까. 특히 얼큰한 국물은 몸을 따뜻하게 해주니 겨울 날씨에는 중독성까지 생기는 법이지.
“엘레나씨. 채소와 버섯으로 우린 국물이에요. 조금 얼큰하게 만든 거니까 조심해서 먹어요.”
기본 베이스는 다시마와 표고버섯이다. 끓여서 낸 국물이 아니고 그냥 자연적으로 우러나게 숙성시켰다. 여기에 채소와 여러 가지 버섯을 넣고 끓이면 고기 종류가 들어가지 않더라도 국물맛이 꽤나 괜찮다.
그걸 증명하듯 엘레나는 연신 고개를 끄덕인다.
“네, 담백하고 시원한 맛도 나고 진짜 맛있어요. 조금 매운 거 같지만, 이 정도는 괜찮아요!”
“그렇죠? 다행이네요. 후후.”
미소를 짓는 엘레나. 매우 조신하면서도 기품이 있는 웃음이다. 하지만 그 옆에선 전혀 조신하지 않은 붉은색 머리칼의 드래곤이 입을 나불거린다.
“참나, 이런 풀때기만 먹고 어떻게 살아?”
“마, 맛있는데요?”
“이런 게 무슨!”
세레이나는 퉁명스럽게 국물을 떠먹었다. 그리곤 눈이 휘둥그레.
전혀 상상도 못 했다는 얼굴로 소리치기 시작했다.
“어머어머어머어머. 이거 맛있네?”
“그렇지. 풀때기만으로도 맛있는 요리를 하는 게 우리 식당이거든.”
“흥, 내 껀 언제 나와? 나도 돈 주고 사 먹는데 왜 엘레나 께 먼저야!”
“곧 나옵니다. 돈 주고 사 드시는 손님.”
엘레나가 먼저 주문했으니 당연히 먼저지. 그걸 말이라고.
나는 세레이나를 가만히 노려봐서 조용히 시키고 주방으로 돌아왔다.
게다가 오늘은 손님이 꽤 많다. 그러니 해야 할 요리도 많았다.
“야, 루린, 이거 세레이나가 주문한 고기요린데 갖다 주고. 그리고 이것도.”
“뭐 이렇게 바쁘냐! 나 힘들다!”
“고작 그거하고 힘들다고? 목표를 이루고 싶으면 어서어서 서빙 하는 게 좋을걸!”
“흐힝, 밥도 안 주고…. 근데 이거 맛있어 보인다.”
투덜거림은 기본 장착이지만 그래도 일은 제대로 하고 있는 중이다.
지금까지는.
하지만 레드드래곤의 음식이라는 소리를 들어서 그런지 갑자기 배달사고를 일으킨다.
“그대, 다른 손님 건 몰라도 레드한테 이런 맛있는 걸 줄 필요 없다. 오오, 맛있다!”
“야, 블랙! 니가 왜! 왜! 내 요릴 먹어어! 그거 내 돈으로 산 거라고! 죽고 싶냐아아아!”
루린이 요리에 손을 대자 세레이나가 득달같이 튀어나와 접시를 빼앗아들었다.
하지만 이미 갈빗살은 반 토막.
루린은 손끝에 묻은 갈비양념을 빨면서 웃기 시작했다.
“반이나 남겨준 걸 고맙게 여겨라! 히히.”
“우, 우, 웃기고 있네에에에!”
“야 세레이나, 더 만들어 줄 테니까 소란 피우지 말고 가서 앉아 있어. 쫓아낸다?”
“……또 시작이야! 나도 손님인데! 이 불공평한 요리사놈아! 시작은 쟤가 먼저…!”
그래 그건 맞지. 아무리 레드드래곤이라도 돈을 냈으면 손님이다.
꾸욱꾸욱.
그런고로 루린의 관자놀이에 응징이 들어갔다. 레드드래곤은 그제야 흠칫하면서 자리에 앉아 고기를 먹기 시작했다.
“아앙! 이거 싫다고 내가 몇 번이나…! 아프다아!”
“바보 같은 짓 좀 그만해. 어휴.”
루린은 나를 쏘아보며 억울함을 호소한다. 억울할 건 또 뭐야.
“오늘 하루 일 잘하면 어쩐다고 했지?”
“잘 때 꼬옥 해준다고 했다!”
“그런데 지금 이게 잘하는 거냐?”
“잘하고 있었다. 하지만 레드 꺼는 좀 먹어도 된다! 안 그러냐?”
“돈 내면 손님이다. 자 따라 해. 돈 내면 레드드래곤도 손님이다!”
“으읔.”
“루린, 화낸다?”
“왜 레드드래곤편을 드냐! 개선을 요구한다!”
“개선 같은 소리하고 있네.”
눈썹을 치켜뜨는 루린. 항의가 매우 거칠다. 하지만 무시하고 다시 주방으로 돌아와 일을 재개했다.
밀가루로 뽑은 면을 두들겨 패서 엘레나의 버섯전골에 넣을 국수를 만들어 내놓았다. 그리고 또 바로 다음 요리를 해야 한다.
“야! 루린! 거기서 뭐 해! 5초 준다! 5! 이거 좀 엘레나씨의 전골에 넣고 와.”
“악덕식당이다. 개선해라!”
루린은 투쟁을 선언 하면서 국수를 손에 들고 엘레나의 테이블로 걸어갔다.
나는 눈앞의 손님에게 내놓을 요리를 만들기 시작했다. 이번에 만들 요리는 간단한 가정식이다. 눈앞의 바 테이블에 앉아 있는 단골 청년이 시킨 요리다.
이름은 피네르로 도자기를 빚는다고 자신을 소개한 적이 있었다.
그에게 요리를 내놓자 뭔가 탐구하는 듯한 얼굴로 요리를 뒤적여보더니 매우 집중해서 입안에 가져갔다.
“이거 진짜 맛있어요. 간단한 가정식이 이렇게 맛있다니, 대체 뭐로 만든 건가요?”
“그거요? 간단한 요리를 달라고 하셔서 내놓은 건데, 평범한 야채고기볶음입니다. 고기는 흔한 우바고요.”
“우바랑 야채로 이런 깊은 맛이 나다니. 특히 우바고기는 바삭하고 안은 부드럽고, 야채는 아삭하면서도 양념이 잘 배어있네요…!”
“과찬입니다.”
그가 먹고 있는 음식은 배추와 돼지고기를 볶아 만든 말 그대로 간단한 배추돼지고기볶음이다.
호들갑을 떨 만한 정도는 아니지.
“으음, 생긴 건 간단한 요리 같지만, 전혀 간단하게는 안 보이는 데요…? 맛도 그렇고.”
“요리를 파는 장사를 하는데 똑같은 가정요리라고 해도 뭔가 다른 건 있어야죠.”
“그런가요…? 저기 이거 만드는 법 좀 알려주시면 안 될까요! 부탁드립니다. 제발요!”
“레시피요? 뭐 못 가르쳐 줄 건 없지만, 갑자기 왜 또?”
“그게 실은 전에 말씀드린 여자친구 때문입니다. 꼭 제가 만든 요리를 먹여주고 싶은데…. 결혼을 하더라도 저도 요리할 수 있다는 걸 보여주고 싶다고 할까요.”
피네르는 머리를 박박 긁으면서 고개를 숙이며 다시 부탁해왔다.
“그러죠. 간단한 요리니까 알려드릴게요.”
“저, 정말입니까? 감사합니다! 영광입니다!”
“아니 뭐 간단한 요리를 가지고 영광일 것까지는 없어요.”
살짝 호들갑인 청년에게 웃어주고는 레시피를 설명했다. 사실 돼지고기배추볶음의 포인트는 돼지고기를 굽는 법이다.
돼지고기를 간장과 소금을 함께 버무린 후 튀겨주는데 이때 기름의 사용법이 포인트. 겉을 한 번 바삭하게 익혀주는 게 중요하다.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청년은 과할 정도로 감사함을 표시하면서 남은 요리를 거의 마시다시피 하더니 돌아가버렸다. 다른 손님도 다 돌아가고 잠시 후 남은 건 엘레나와 세레이나 뿐.
“그러고 보니 거기서 뭐하냐, 루린?”
국수를 넣어주고 오랬더니 함흥차사인 루린은 아예 세레이나에게 들러붙어서 같이 후루룩거리는 중이었다.
“거봐라! 맛있다고 하지 않았냐! 의심만 많은 레드같으니라고.”
“으으, 분하지만 그러네.”
“히히히, 허여멀건 한 밀가루는 안 먹어? 이딴 게 맛있으면 머리를 검은색으로 바꾼다고 했겠다?”
“그런 적 없는데? 아야! 갑자기 배가 아파졌어. 화장실, 화장실!”
레드드래곤은 쓸데없는 내기에 머리색을 내걸었는지, 갑자기 배 아픔을 호소하며 밖으로 튀어나갔다.
엘레나는 떠나간 세레이나와, 그리고 득의양양한 루린을 매우 곤란한 표정으로 번갈아 봤다.
그렇게 무서워하던 드래곤.
하지만 최근 두 마리의 드래곤에게 둘러싸여 있는 일이 부쩍 늘어난 엘레나는 드래곤공포증에서 조금은 벗어난 것도 같은 모습이었다.
***
반가운 손님이 찾아왔다. 누군고 하니 과수원 주인이었던 베넨씨다. 지금은 결혼을 앞두고 있는 늦깎이 신랑이기도 하다.
“빨리 들어와! 그레이크시 최고의 식당은 바로 여기니까.”
“여기가?”
“밋밋한 표정하고는. 하여간 장인이랍시고 거들먹거리며 다니니까 진정한 맛집을 못 알아보지. 자네 아직도 겉만 보고 판단하는 건가? 쯧쯧쯧.”
“그렇지 않네!”
베넨씨는 나에게 손을 흔들면서 친구로 보이는 동년배의 남자와 같이 식당으로 들어왔다. 상당히 점잖아 보이는 남잔데 손에 있는 자잘한 흉터가 눈에 띈다는 특징이 있었다.
“뭐 자네가 도움을 받았다는 이야기는 귀에 딱지 앉게 들었지만….”
“그럼! 바로 그렇지. 앉게나. 앉아.”
베넨씨는 친구를 테이블에 앉히더니 나를 불렀다. 그리고 친구를 소개해주기 시작했다.
“이놈은 그레이크시의 값비싼 식기부터 서민들의 평범한 식기까지 다양한 그릇을 만드는 가장 큰 공방의 주인인데, 그릇 만드는 기술이 매우 뛰어나서 다른 도시에서까지 배우러 오는 장인일세. 항상 그릇을 구워내는 거에만 빠져 사는 놈이야. 오랜만에 상의할 게 있다고 하길래 곧장 식당으로 왔지. 그러니 맛있는 술 하고 요리 좀 내주게. 하하하하.”
“아, 그렇군요. 그릇장인이시라고요?”
“그래, 이놈 가게에서 나온 그릇들이 그레이크시 뿐 아니라 다른 도시에까지 팔려가거든.”
“허어, 그 정도는 아닙니다. 전 호네라고 하는 사람입니다. 아무튼 반갑습니다. 친구놈을 도와주셨다는 이야기는 들었습니다. 저 또한 고맙다는 인사를 드립니다. 바보같이 짝사랑만 계속하는 건 알고 있었지만….”
“그 이야기는 그만하고!”
두 사람은 즐겁게 이야기를 시작했다. 나도 즐겁게 요리를 시작했다.
내 식당을 최고의 식당이라며 지인을 데려와 주는 건 매우 반가운 일이다.
마침 어제같이 붐비지도 않고 매우 한가한지라, 나는 맘 놓고 베넨씨의 요리에 집중했다.
“이것은? 그릇이….”
드워프의 식기도 많이 있지만, 베넨씨의 이야기를 들어보면 내가 시장에서 사서 쓰는 다른 식기는 바로 눈앞의 남자가 만든 것이라는 소리.
그래서 일부러 그 그릇에 요리를 담았다.
“분명히 제가 만든 그릇인데요…. 여기서도 사용해주고 계셨군요. 이것 참 감사합니다.”
“당연하죠. 맘에 드는 그릇이 많더라고요.”
“게다가 그릇에 담긴 요리가 진짜 아름답습니다. 그릇을 한껏 살려주면서 요리가 가진 색감이 잘 살아나고 있네요. 베넨, 네가 한 말을 이해할 것도 같다. 내 그릇을 쓴 요리 중에 가장 아름다운 것 같지 않은가.”
“그렇지? 그러니 먹기나 해. 요리는 감상하는 게 아니고 먹는 거다. 먹는 거.”
내가 내놓은 요리는 구절판이다. 형형색색의 야채와 고기가 어우러져 그릇에서 빛나는 요리.
그 색깔과 그릇의 조화가 호네씨의 마음에도 든 모양이었다.
뭐 그렇다면 다행이고.
손님도 기분 좋고 나도 기분 좋으면 그거야말로 성공한 서비스지 않은가.
“그나저나, 왜 보자고 했나? 바쁘다고 만나주지도 않던 놈이.”
베넨씨가 호네씨에게 술을 따라주며 질문했다. 호네씨는 잠시 말을 멈추더니 술을 받아 마시며 다시 입을 열었다.
“딸의 혼사 때문이네. 결혼할 때가 돼서 그런지 결혼시켜달라고 조르는 통에….”
“흐음, 날 보고도 몰라? 결혼할 사람이 있으면 얼른 시켜 주면 되지.”
“그게 언감생심 내 제자놈인데, 그 아이가 성실하긴 하지만 가진 게 없다네. 부모도 없는 고아라…. 제자로서는 몰라도 딸의 평생을 맡기기에는 여러 가지로 미덥지가 않아. 게다가 때마침 다른 제자 녀석도 청혼을 해왔어. 그런데 이쪽은 멜크시에 있는 거대한 공방의 장남이네. 부잣집이지. 딸의 혼처로도 알맞고 고생하지 않으려면 그쪽이 나아. 어차피 내 공방은 내 아들 녀석이 물려받아야 하니 말이야.”
“흐음…. 그래도 서로 사랑한다면 갈라놓을 필요까지는 없지 않은가.”
“마음이 맞는 건 좋다고 해도 그 마음이 평생 갈 거라는 보장이 있는가? 마음이 식는 순간 모든 게 다시 보일 걸세. 차라리 그럴 바에야 격이 맞는 상대와 결혼하는 게 더 나은 법이지.”
“그래서 그 공방의 아들에게 보내려고?”
“하지만… 딸이 워낙 완강해서… 머리가 아프구만.”
“허어.”
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