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 writer who works two jobs RAW novel - Chapter 17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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투잡 뛰는 작가님 (4)
지훈의 얼굴을 바라보던 백설영이 웃으며 고개를 갸웃했다.
“왜 그런 표정으로 보세요? 제가 뭐 실수라도 했어요?”
“아뇨. 그런 건 아닌데, 뭔가 불길해서요. 일이 하나 생길 것 같은 느낌?”
“대표님의 촉은 대단히 좋으시네요.”
그렇게 너스레를 떤 백설영이 바로 선 뒤 지훈에게 보고했다.
“아까 손님이 하신 말씀을 우연히 들었는데, 좀 더 깊게 생각해 볼 만한 일인 거 같아서요.”
“역시.”
지훈은 그녀가 어떤 제안을 할지 알 것 같았다. 그녀는 신비노블의 유투브 채널을 총괄하고 있다. 그렇다면 그곳에 영상을 올리자는 말을 할 것이다.
박민우 교수가 강의 이야기를 했으니, 아마 강의 관련 콘텐츠 제작 관련 일일 것.
역시나 지훈의 예감은 정확히 들어맞았다.
“기왕 대학에서 강의하시기로 했으니 웹소설 작법 같은 특강 동영상을 시리즈로 제작해서 업로드하는 건 어떨까요? 지망생들 많은 분야잖아요.”
“설영 씨. 제안은 감사하지만 저 한 번만 봐주세요. 강의 영상까지 찍을 시간 내려면 정말 잠도 못 잘 겁니다.”
지훈이 불쌍한 표정으로 어려움을 토로했지만, 백설영은 그저 생글생글 웃을 뿐이었다. 정말 대단한 프로의식이었다.
“강의를 위한 투자라고 생각하세요. 어차피 학부 강의 하실 때도 창작 관련 강의를 하실 텐데, 나중에 강의자료로도 활용할 수 있지 않을까요?”
“아직 어떤 과목인지 확실하지도 않은데.”
“아니면 사이버강의 3학점 짜리 하나 돌려서 강의 영상을 대신 올리면 일석이조겠죠. 내년 개강까지는 시간 아직 남았잖아요? 조금만 투자해 주세요.”
그녀가 끈질기게 설득하자 지훈은 진지하게 생각할 수밖에 없었다.
백설영도 그저 성과를 올리기 위해 하는 말은 아닌 것 같았다. 사이버강의까지 생각했다는 건 대학 교육도 사전에 계획해 두었을 가능성이 크다.
확실히 그녀의 말에도 일리가 있다. 내년 1학기 개강까지는 아직 반년이 넘는 시간이 남아 있었다. 틈틈이 영상을 제작한다면 분명 요긴하게 쓸 날이 올 것이다.
지훈이 고개를 끄덕였다.
“알겠습니다. 그럼 관련 기획서 제출하도록 하세요. 검토해 보고 강의 준비하겠습니다.”
“감사해요. 대표님.”
꾸벅 인사한 백설영이 자신의 자리로 돌아갔다.
신나게 기획서를 쓰는 그녀를 보고 있으니 웃음이 나왔다. 부담스러운 제안이었지만, 착실하게 회사가 성장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 이런 식으로 계속 사업을 확장하다 보면, 회사는 더 커지고 좋아질 거야.’
그렇게 긍정적인 생각으로 마무리하며 지훈도 다시 업무를 시작했다.
**
요즘은 퇴근 후에 버릇이 하나 생겼다. 저녁을 먹고 나서 바로 서재로 들어가 자서전 작업을 하는 것이었다.
오늘도 예외는 아니었다. 윤이슬과 오붓하게 저녁을 먹은 지훈은, 커피 한 잔을 들고 서재에 앉았다.
잠시 후 과일을 들고 윤이슬이 안으로 들어왔다.
“자기야. 요즘 너무 바쁜 거 아냐? 신혼인데 놀아주지도 않고. 너무한 거 아닌가?”
그렇게 말하긴 했지만, 윤이슬은 웃고 있었다. 농담이라는 의미였다.
그래도 아니 땐 굴뚝에 연기 나지 않는 법.
지훈은 미안한 표정을 지으며 그녀가 건네는 과일 그릇을 받았다.
“자서전 끝나면 여유 좀 생기니까, 그때 많이 놀아줄게. 조금만 참아요.”
“작업은 잘되고 있어?”
“뼈대는 다 잡았고 이제 살만 붙이면 돼. 유년 시절, 학창 시절, 그리고 사회인 시절 이렇게 세 파트로 나눠서 쓰려고.”
“괜찮네.”
작업은 당초 예상했던 것보다 수월했다.
소설은 창작이다. 즉 경험하지 못한 이야기를 쓸 일이 많지만, 자서전은 자신이 경험한 것을 문장으로 가공하면 그만이기 때문에 속도가 훨씬 빠를 수밖에 없었다.
“기대된다. 어떤 책이 나올지. 청년 강지훈의 삶을 한 권을 정리한 거잖아. 내가 모르는 내용도 있을 거 같고.”
“나중에 완성본 보여 줄 테니까 대가로 교정 한 번만 해줘.”
“좋지.”
교정은 지훈도 잘하는 편이었다.
하지만 본인의 글을 직접 교정하는 것은 굉장히 힘들다. 사용하는 단어나 문장 구조가 똑같아 틀린 부분을 그냥 넘기는 게 다반사다.
그래서 본인의 글은 다른 사람에게 교정을 맡기는 게 일반적이다.
“참, 전에 남택수 이사님 만났을 때 말이야. 누나 이야기 좀 하던데.”
“무슨?”
사과를 입에 넣은 채로 윤이슬이 눈을 동그랗게 떴다. 지훈이 씨익 웃었다.
“아직 누나 포기 안 했대. 언젠가 꼭 도원사 총괄실장으로 데려갈 거라고 하시더라.”
“오, 흥미진진한데? 어떤 이직 조건을 들고 올지 기대되네.”
순간 지훈은 그녀의 말에서 약간의 진심을 읽을 수 있었다. 오래 함께 어울렸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이직 생각이 아예 없는 건 아니구나?”
“솔직히 말하면 그렇지.”
“왜, 우리 회사가 마음에 안 들어?”
“하하하. 그런 건 아니고.”
윤이슬이 할 말을 고르려 잠시 말을 끊었다. 지훈은 그녀가 어떤 말을 할지 궁금했다.
“회사 매출이 많이 난다고 그 회사가 큰 회사라고는 할 수 없는 거 같아. 회사의 역사와 조직문화, 그런 것들도 배울 게 많다고 생각하거든. 그런 점에서 도원사는 좋은 표본이지.”
확실히 역사와 전통을 생각한다면 국내에서 도원사를 따라갈 출판사는 없다.
“응원할게.”
“서운하네. 안 붙잡아?”
“조건을 보고 가는 게 아니라 누나가 좀 더 성장하고 싶어서 가는 거잖아? 전에 정인 씨 우리 회사로 이직할 때 그러더라고. 연봉을 낮춰서라도 우리 회사로 오고 싶다고.”
“얘기는 들었어.”
“누나도 가서 충분히 배우고 좀 더 성장해서 돌아와. 그럼 우리 회사도 더 발전할 수 있겠지. 멀리 보는 거야. 누나도 그렇고 우리 회사의 미래를 위해서도 그렇고.”
윤이슬이 고개를 끄덕였다. 지훈이 물었다.
“이직은 언제쯤으로 생각하고 있어?”
“출산 후에 몸 좀 추스르고 해야지. 타이밍이 그때가 딱 좋은 거 같아. 어차피 편집장 업무는 나연 씨가 받고 있으니까 자연스럽게 쭉 그 자리 유지하면 될 거 같아.”
“알았어. 내일 최 팀장님하고 이야기 좀 해봐야겠다.”
“천천히 해. 아직 오퍼가 온 것도 아닌데.”
“그런가?”
윤이슬은 지훈의 어깨를 잠시 주물러주고 밖으로 나갔다. 덕분에 지훈은 좀 더 힘을 내서 원고 작업에 임할 수 있었다.
**
치열했던 여름이 지나고 가을이 찾아왔다. 풍성하게 물든 낙엽이 바닥을 수놓고 있었다.
날씨가 서늘해진 만큼 사람들의 옷차림도 점점 두꺼워졌다.
지훈은 왠지 낯설게 느껴지는 풍경을 감상하며 고서점으로 천천히 걸음을 옮겼다.
오늘은 집에서 좀 일찍 나왔다.
2층엔 불이 꺼져 있었고, 안으로 들어가니 1층에는 정아름 혼자 나와 작업을 마무리하고 있었다.
“아름 씨. 좋은 아침이에요.”
“대표님.”
정아름이 일어났다. 지훈은 손을 저으며 다시 앉으라고 말했다.
“그나저나 오늘 완결이죠?”
“네. 이제 딱 한 컷 남았어요.”
정아름이 시원섭섭하다는 표정을 지었다. 지훈의 원작인 의 웹툰이 오늘 완결될 예정이었다.
그린웹 웹툰사업팀에서는 1년 정도만 분량을 늘려서 연재해 줄 수 없냐고 했었다. 하지만 정아름은 장고 끝에 거절했다.
돈을 벌기 위해 분량을 억지로 늘리는 건 작품의 완성도에 문제가 생길 수 있다고 판단한 것이다.
지훈은 그 결정에 별로 놀라지 않았다. 지극히 정아름다운 결정을 했다고 생각했으니까.
겉으로는 순하고 우유부단한 성격일 것 같지만, 천만의 말씀이다. 작품 관련해서 그녀만큼 고집이 있는 사람은 또 없다.
“왠지 어떤 기분인지 알 것 같네요. 소설로 따지면 마지막 장면을 쓰는 느낌이겠어요.”
“비슷해요. 이것저것 구도 잡아서 그려보고 있는데 마음에 드는 컷이 안 나와서, 어제부터 계속 수정하고 있어요.”
“확실한 인상을 줘야 하니까요. 고생 많으시네.”
지훈이 자리에 가방을 내려놓으며 물었다.
“커피 한 잔 드릴까요?”
“감사해요.”
지훈은 탕비실로 가 커피 두 잔을 탔다. 하나는 정아름에게 건넸다.
“완결하고 얼마나 쉬실 거예요?”
“저도 여행 다녀오고 싶어서, 한 달 정도만 쉬려고요. 바로 대표님 작품 들어가면 좋긴 한데······ 재충전이 필요할 거 같아요.”
“당연하죠. 한 달이 아니라 두 달이어도 상관없습니다. 충분하다 싶을 때까지 푹 쉬세요.”
그때 문득 좋은 아이디어가 떠올랐다.
“유럽 한번 다녀올래요? 영감 채우기에는 딱 좋을 거 같은데요.”
“아, 좋긴 한데······.”
“비용은 회사에서 부담할게요. 1년 동안 수고해 주셨는데 포상이라고 생각하고 다녀오세요.”
싱긋 웃은 정아름은 거절하지 않고 꾸벅 인사했다.
“감사해요. 대표님.”
“그건 제가 할 말이죠. 덕분에 제 글도 잘 팔리고 회사에도 좋은 동력이 됐습니다. 마무리까지 잘 부탁드려요.”
“네!”
다시 기운을 되찾은 정아름이 자리에 앉아 작업을 시작했다. 아까 고서점에 들어왔을 때 보다 드로잉이 훨씬 대담해졌다.
그리고 그날 오후, 정아름의 웹툰이 공식적으로 완결되었다.
커뮤니티는 난리가 났다.
크게 반응을 요약해보면 두 가지였다. 이제 완결되어 볼 작품이 없어졌다. 작품의 완결 시점을 적절하게 잡았다는 칭찬이다.
1년이 아니라 3년 이상 끌어도 할 말이 없을 정도로 인기 있는 작품이었다. 다들 정아름의 프로의식에 찬양을 아끼지 않았다.
그리고 유종의 미도 거뒀다. 정아름의 웹툰은 완결일을 기준으로 일간, 주간, 월간 베스트 종합 1위를 차지했다. 제자이자 라이벌인 김승리에게 힘겨운 승리를 얻어내고 물러난 것이다.
그래서 오늘도 회식이 열렸다.
모두가 참석하지는 못했지만, 지훈과 윤이슬, 최정민, 김승리 등 주요 인사들은 모두 참여해 정아름의 완결을 축하해 주었다.
“이제 웹툰 작업 준비하셔야겠네요?”
최정민 팀장이 바쁘게 고기를 구우며 물었고, 정아름이 고개를 끄덕였다.
“네. 휴가 좀 쓰고 와서 본격적으로 준비해 보려고요.”
“전작에 비해 어떻습니까? 재미라든지. 하하하. 대표님은 신경 쓰지 마시고 솔직하게 이야기해 보세요.”
김승리 때문에 술을 시키진 못했지만, 모인 사람들은 축하 분위기에 취해 흥이 잔뜩 올라 있었다.
“이번 작품도 재미있어요. 벌써 다섯 번이나 재독하고 있어요.”
“정 팀장님도 가만 보면 사회 생활 만렙이라니까. 다섯 번은 너무 오버 아닙니까?”
최정민의 한마디에 다들 웃음을 터트렸다. 윤이슬이 말했다.
“이제 디자인팀도 인원 보강이 됐으니 일 좀 맡겨두고 잘 쉬다 와요. 그간 고생 많이 하셨는데.”
“안 그래도 그럴 생각이에요. 유럽은 처음인데 원 없이 놀다 오려고요. 사진도 많이 찍고, 작품 아이디어도 좀 얻어 오고.”
“그러려면 중국 다녀와야 하는 거 아녜요?”
잠시 머뭇거리던 정아름이 조심스레 말했다.
“실은 오리지널 스토리 웹툰 하나 준비해 보고 있어요.”
“정말요?”
다들 깜짝 놀랐다. 그만큼의 호기심도 보였다. 지금까지 정아름은 다른 사람의 작품을 기반으로 웹툰을 그리기만 했으니까.
하지만 당연한 순리이기도 했다.
그녀도 작가다. 작가라면 자신이 하고 싶은 이야기를 작품으로 풀어내고 싶은 본능이 있다.
“기대되네요. 어떤 스토리일지.”
“그러게요. 대표님 작품 마무리하면 바로 오리지널 스토리 들어가는 거예요?”
“일단은 그렇게 생각하고 있어요.”
“우리 대표님 불쌍해서 어쩌나. 차기작은 다른 웹툰 작가 구해야겠네요.”
“하하하!”
즐거운 분위기 속에서 회식은 밤늦게까지 계속되었다.
시간이 빠르게 흘렀다. 바쁜 나날이 계속되었고, 시간이 훌쩍 지나가며 계절이 몇 번이나 바뀌었다.
계절이 바뀌는 것처럼, 신비노블의 풍경도 조금씩 바뀌어 가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