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bility from Parallel Dimensions RAW novel - Chapter 100
100. 눈물
서정우는 정신을 잃은 남수정을 바닥에 조심스럽게 눕혔다. 부엌이 좁아서 눕힐 공간이 조금 부족했다. 그는 구석에 쌓여 있는 조폭 세 놈을 발로 콱 밀어서 공간을 더 만들었다.
그가 가느다란 금속 원통에서 꺼낸 작은 유리병 속에는 레드 포션이 들어 있다. 용량은 3cc에 불과하지만, 그 효과는 경이적이다.
레드 포션은 기적의 상처 치료제다. 설사 심장을 찔렸다 해도 즉시 사용하면 살릴 수 있고, 팔이 잘려도 그 자리에서 사용하면 도로 붙일 수 있다. 그래서 헌터나 군인들은 레드 포션을 여분의 목숨이라고 생각한다.
다만, 생산량은 소량이고 중상자는 넘쳐나기 때문에 대부분 빠르게 소모되어 구하기가 어렵다. 최근에는 물량이 특히 더 부족하다. 그래서 서정우도 레드 포션은 딱 한 병만 가지고 있다.
서정우가 작은 유리병의 뚜껑을 열었다.
레드 포션의 사용법은 간단하다. 그냥 상처에 부으면 된다. 만약 내출혈만 일으키고 겉에는 상처가 없다면, 일부러 상처를 내야 한다.
어차피 몸속에 흡수시키면 신체 전체의 상처에 효과를 발휘하기 때문에, 상처가 어느 부위에 있는지는 상관이 없다.
서정우가 남수정의 상처에 레드 포션을 부었다. 겨우 3cc밖에 안 되는 소량의 레드 포션이 상처를 통해 흡수됐다.
서정우는 유리병이 완전히 빈 걸 확인하고 뚜껑을 닫았다.
“후우.”
레드 포션에 담긴 특별한 힘이 그녀의 상처와 반응했다.
칼에 의해 손상된 신체 장기와 혈관이 빠른 속도로 회복되었다. 현대 의학으로는 불가능한 회복 속도였다.
남수정의 배에는 칼에 찔린 상처가 깊게 나 있었다. 그 상처도 점점 아물어갔다.
모든 상처가 완전히 사라지고, 뱃속에 고인 피가 도로 흡수되는 데까지 1분도 걸리지 않았다.
서정우가 말했다.
“안 죽는다고, 산다고 했잖아.”
부상 치료는 완벽하게 끝냈지만, 아직 모든 문제가 해결된 건 아니다. 바닥에 흘린 피가 문제다.
레드 포션으로 치료하면 이 정도 상처는 흉터조차 남지 않는다. 그렇게 되면 이 피가 다 어디서 나왔는지 설명할 방법이 없다.
“수정아. 미안.”
그는 조폭이 가지고 있다가 떨어뜨린 칼을 주웠다. 지문이 남지 않게 하려고 장갑을 끼고 잡았다.
“배에 다시 상처 생기게 해서 미안해.”
서정우가 그 칼로, 남수정의 배를 살짝 찔렀다. 몸속은 다치지 않게, 피만 나게, 기술적으로 그었다.
“나중에 흉터 없애는 약 갖다 줄게. 저쪽에 좋은 약 있어.”
서정우가 방문을 열었다. 남수정의 동생 남수호가 울면서 앉아있었다. 남수호는 초등학생이다.
“아저씨. 우리 누나는요?”
“괜찮아. 자고 있어.”
“진짜예요?”
남수정이 작은 소리를 내며 눈을 떴다.
“으으으. 배가 쓰라려.”
“봐. 괜찮지?”
“누나아아아!”
119 구급차가 제일 먼저 달려왔다.
구급대원들은 바닥에 흥건한 피를 보고 기겁했다.
“이, 이런 출혈이면 부상자는….”
서정우가 얼른 말했다.
“아. 피를 꽤 흘리긴 했는데, 다행히 배를 깊게 찔리진 않았습니다. 이제 지혈도 됐으니까 바로 병원으로 데려가 치료하면 괜찮을 겁니다.”
“아! 의사이십니까?”
“아니요. 형사입니다.”
“예? 그런데 그걸 어떻게 확신….”
“뭐. 이런 상황을 많이 보다 보니까요.”
구급대원들이 남수정의 상태를 확인했다. 몸에 피가 많이 묻어 있고 배에 상처도 있지만, 위급해 보이지는 않았다.
“그럼 저쪽에 있는 부상자들부터 데려가겠습니다. 저쪽은 셋 다 중상 같으니까요.”
“저놈들은 안 죽으니까 수정이부터 데려가시죠?”
“예?”
“저놈들은 수갑 채우기 전까진 못 데려갑니다.”
“아. 예.”
구급대원들이 남수정을 구급차용 들것에 눕혔다.
그녀는 들것 위에서 서정우에게 물었다.
“아저씨. 진짜 저 안 죽어요?”
서정우가 들것을 따라가면서 대답했다.
“어. 원래 내 눈앞에서는 우리 편은 아무도 안 죽어. 나쁜 놈들만 죽어.”
“저놈들이 저 죽을 거라고 했는데요?”
“저놈들이 의사냐? 무식한 깡패들이 뭘 알겠냐? 피만 보고 착각한 거야.”
“아. 다행이다. 아야. 배 아파요.”
“칼에 찔렸으니 아픈 게 당연하지.”
흉터조차 없어진 배를 서정우가 다시 기술적으로 찔렀다. 겉보기엔 꽤 큰 상처처럼 보이지만 몸속은 전혀 다치지 않았다.
남수정이 걱정했다.
“흉터 남으면 연예인 할 때 안 좋은데.”
“배꼽티만 안 입으면 돼.”
흉터가 약간 남아도, 이번 일이 마무리되고 나서 조용히 없애주면 된다. 저쪽 세계에는 약한 흉터를 지우는 약이 있다. 몬스터의 특정 성분을 추출해 만든 그 연고의 효과는 탁월하다.
서정우가 물었다.
“그런데 이 고생을 했으면서 연예인 아직도 하게?”
“ES 엔터 가서 오디션 봐야죠. 돈 벌어야 해요. 이천만 원.”
서정우가 피식 웃었다.
“그래. 꼭 봐라. 그 오디션. 잘 될 거다.”
“아. 제 동생은요?”
“다음 구급차로 같은 병원으로 보낼 테니까 걱정하지 마.”
“병원비 없는데.”
“나한테 있다.”
남수정이 웃었다.
“히히. 고맙습니다. 일어나서 인사드려야 하는데, 하는데, 하는….”
웃던 그녀의 얼굴이 점점 울상이 되었다. 입은 웃으려 하는데 눈이 울었다.
그러다 갑자기 왈칵 울음을 터트렸다.
“아저씨. 저요. 진짜 무섭고, 진짜 아프고.”
“알아.”
그녀가 서럽게 울었다.
“그동안 되게 힘들고.”
“그것도 알아.”
사람이 쉽게 죽어 나가는 저쪽 세계의 전쟁터에는, 그 상황이 너무 힘들어서 일부러 밝게 행동하는 사람이 종종 있다. 그래야 견딜 수 있어서다.
‘너에게는 현실이 전쟁터였겠지.’
그녀가 너무 서럽게 울어서, 구급대원들은 조금 떨어진 곳에서 다른 곳을 보며 기다렸다. 서정우가 막고 있어서 무리해서 태울 수도 없었다.
한참을 펑펑 운 남수정이 겨우 정신을 차렸다.
“아. 배 아파서 더 못 울겠다. 그런데요. 그놈들이 경찰 아저씨를 고소하면 어떻게 해요? 되게 세게 팼잖아요.”
“그놈들 조직에는 아무도 없게 될 테니까 신경 쓰지 마. 아무도 없으면 고소도 못 해.”
“그게 무슨 말이에요?”
“있어. 그런 게.”
구급차가 한 대 더 도착했다. 서정우는 두 대의 차에 남수정과 남수호를 각각 태워 보냈다.
“여기 일 마무리하고 문병 갈 테니까 먼저 가서 쉬고 있어.”
“네.”
서정우는 멀어지는 구급차를 보며 말했다.
“이 세계가 저쪽 세계보다 풍요로운 줄 알았는데, 환자가 돈이 없어서 약을 못 쓰고 죽으면, 돈이 없어서 굶어 죽는 것하고 도대체 뭐가 다르지?”
서정우는 그동안은 서두르지 않았다. 천천히 이쪽 세계에 적응하면서 느긋하게 일을 진행하려고 했다.
그런데 오늘 남수정이 겪은 일을 보고 나서 생각이 좀 바뀌었다.
‘이쪽 세상이 너무 편해서, 내가 그동안 너무 느긋하게 살았네.’
이쪽 세계에 처음 왔을 때 그가 세운 계획이 하나 있다.
“역시 제약회사를 먹어야겠어.”
그러려면 돈이 필요하다. ES 엔터테인먼트와 손을 잡으면 커다란 제약회사를 살 만큼은 아니라도 초기 자본 정도는 벌 수 있다.
“작은 회사는 얼마면 사지?”
서정우가 손을 주머니에 넣었다. 레드 포션을 사용하고 남은 빈 케이스가 잡혔다.
레드 포션을 이쪽으로 가져올 수는 있는데, 그 효과를 복제하는 건 기대할 수 없다. 그 성분을 복제하고 합성하는 연구는 저쪽 세계에서 이미 수없이 했지만, 모두 실패했다.
학자들은 레드 포션에는 주술이나 성력처럼 특별한 치료의 힘이 담겨 있다고 주장했다. 관련 논문도 쏟아졌다. 다만, 그 특별한 힘을 따로 검출하는 데는 실패했다.
저쪽에서 전 세계가 자금을 쏟아부어 연구해도 안 되는 걸, 이쪽의 작은 실험실에서 샘플 하나만 분석했는데 성공할 리 없다.
“딱 하나 있던 레드 포션인데, 정말 잘 썼지.”
서정우는 서소라와 이선화에게도 레드 포션을 하나씩 주었지만, 그걸 도로 달라고 할 수는 없다. 그 두 사람이 다쳤을 때 스스로 회복하려면, 최소한 하나씩은 가지고 있어야 한다.
“정부 보유분에서 사들이기로 한 건 원래 철우 아저씨에게 넘기려고 했는데, 안 되겠다. 그 아저씨 건 다른 데서 다시 구해야겠어. 이번엔 현식이 형을 괴롭혀야지.”
윤현식 중령은 각성자 특수부대에 있다.
근처 지구대 경찰들도 그곳에 도착했다. 그중에는 얼굴을 아는 사람도 있었다.
“어이구. 서 형사. 또 한 건 했군. 상황은 끝난 건가?”
“예.”
“어? 그냥 한 말인데 진짜 끝났어? 와. 역시 서 형사네. 그런데 저 사람들 상태가…. 안 죽었겠지?”
“살려는 놨습니다.”
백성민도 곧바로 도착했다. 그는 서정우를 보자마자 물었다.
“정우야. 어떻게 된 거냐?”
“미성년자 노예 계약.”
“와. 이런 나쁜 놈들.”
“그리고 초등학생과 고등학생 남매 살인 미수.”
“뭐?”
먼저 온 경찰들은 움찔했다. 간단한 사건이 아닌 건 알았지만, 요약된 말을 듣고 보니 상황이 예상보다 더 심각했다.
백성민이 화를 벌컥 냈다.
“와. 미치겠네. 저 개새끼들 정체가 뭐야?”
“도부장파.”
“어? 벌써 저놈들이 누구인지 알아낸 거야?”
“셋 중에 얼굴을 아는 놈이 있어.”
서정우가 기절시킨 세 놈 중 하나는 레몬플라워가 지하주차장에서 협박당할 때 그곳에 있던 놈이다.
‘내가 요즘 이쪽 세계에 너무 적응했어. 너무 물러졌어. 도부장파를 처리하는 걸 망설이다니. 역시 그놈들은 다 쓸어버려야겠다.’
백성민은 움찔했다.
“정우야. 너 방금 눈빛 되게 무서웠어.”
“열심히 사는 애가 이런 꼴을 당하는 현실이 짜증 나서 그래.”
서정우가 인상을 팍팍 쓰는 걸 보고, 백성민이 위로 삼아 말했다.
“야. 그래도 도부장파 새끼들은 이제 끝났어. 감히 여고생을 찌르고 초등학생을 유괴하려고 해? 그쪽 담당 팀에서 저번 사건 때문에 도부장파를 체포할 명분만 찾고 있던데, 이번 건까지 엮으면 왕창 잡아들일 수 있을 거야.”
서정우가 진지하게 물었다.
“다 잡지는 못하겠지? 몇 놈이라도 남겠지?”
* * *
서정우는 유명하다. 연예인은 아니지만, 살인마 잘 잡는 형사로 유명하다.
24시간 연쇄 살인마를 잡았을 때만 해도 그의 이름은 거의 알려지지 않았다. 그 후에 대형 사건을 연달아 해결하면서 어지간한 사람은 이름 정도는 들어볼 정도로 유명해졌다.
그런데 그동안 워낙 큰 사건들을 많이 해결했기 때문에, 이제 그가 자잘한 사건을 해결한 것으로 기사를 쓰면 독자가 반응하지 않는다. 이전에 그가 해결한 대형 사건과 비교되기 때문이다.
그래서 기자 몇 명은 그가 근무하는 경찰서에 연줄을 만들었다. 서정우가 큰 사건을 해결했을 때 연락을 주면, 기자도 그 경찰에게 호의적인 기사를 단 몇 줄이라도 써주기로 했다.
그 기자들은 사건의 개요를 전달받자마자 확신했다.
‘이거 분명히 뜬다!’
‘아픈 동생과 단둘이 사는 여고생이 조폭의 칼에 찔린 사건이야!’
‘서정우가 나타나 악당들을 물리치고 그 남매를 구했다? 이건 특종이 안 될 수가 없어!’
그 기자들은 경찰서로 달려갔다.
정작 범인들은 경찰서가 아니라 병원에 있었다. 코뼈가 부러지고 이빨이 나가고 다리와 손목이 부러진 놈들을 첫날부터 유치장에 가둘 순 없어서였다.
서정우가 소속된 팀은 그놈들을 처음에는 따로따로 조사하다가, 나중에는 병실 한 곳에 몰아넣었다.
범인 셋 다 변명과 거짓말로 상황을 벗어나려 했다.
“아. 진짜. 죽이려고 그런 거 아닙니다! 그년이, 아니, 그 여자애가 먼저 식칼을 휘둘러서 말리다가 생긴 사고입니다. 그리고 제가 그런 거 아닙니다.”
“우린 그냥 잘 있나 보러 간 겁니다.”
“이거 다 오해입니다. 오해!”
팀장 권병철이 화를 냈다.
“이 새끼들이 지금 상황이 어떻게 돌아가는지 감이 안 잡히지? 오늘 마시는 병원 공기가 마지막 바깥 공기가 되고 싶어?”
세 놈이 눈치를 살살 보았지만, 자백하는 놈은 없었다.
서정우는 병실 창가에서 스마트폰으로 TV 뉴스를 계속 확인했다. 드디어 그가 원하던 뉴스가 나왔다.
그 병실에는 동전을 넣으면 켜지는 TV가 한 대 있었다. 서정우가 TV에 동전을 넣었다.
세 놈은 그가 왜 TV를 켜나 싶어 그쪽을 보았다.
케이블 TV의 뉴스 채널에서 남수정에 관한 이야기가 나왔다. 아나운서가 심각한 얼굴로 말했다.
– 피해 여학생은 생명이 위독하다고 알려져….
마침 딱 좋은 부분이 나왔다. 서정우가 거기까지만 보여주고 TV를 끄며 말했다.
“미성년자인 피해자가 너희들 칼에 찔려 죽어가. 좀 전에 의사를 만났는데 살릴 방법이 없다더라. 그리고 그게 뉴스에 났어. 이게 지금 어떤 상황인지 너희들도 알지?”
서정우가 도착했을 때만 해도 남수정은 구급차가 올 때까지 버틸 수 없는 위험한 상태였다.
그런데 지금은 레드 포션 덕분에 무척 건강해졌다.
세 놈이 서로를 보며 눈알을 굴렸다. 그들이 마지막으로 본 남수정의 상태는 뉴스에 나온 것과 비슷했다.
“그, 그게….”
서정우가 말했다.
“먼저 자백한 놈은 사형은 면하겠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