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bility from Parallel Dimensions RAW novel - Chapter 129
129. 유도
서정우가 테러리스트를 빤히 쳐다보았다. 한국인처럼 보였지만, 사건의 성격을 보면 아닐 가능성도 있다.
‘외국에 나갔다가 테러조직에 가담했거나, 아니면 외국에서 돈이 되면 뭐든지 하던 청부업자이거나, 한국말을 잘하는 동양인이거나.’
문제는 다른 쪽에 있다.
‘이놈이 나를 안다.’
“너 나 아냐?”
“얼굴은 알아! 너 서정우 맞잖아!”
서정우는 상대의 말에서 정보를 얻었다.
‘나를 아는 게 아니야. 내 얼굴만 알아. 내 얼굴이 제대로 나온 건 인터뷰 영상 하나밖에 없지만, 그 영상을 찾아서 얼굴을 확인했겠지. 그런데 왜?’
테러리스트는 절망에 빠져 중얼거렸다.
“초대받은 사람 명단에 넌 분명히 없었는데.”
서정우는 일이 어떻게 된 건지 눈치챘다.
‘오늘 습격을 준비할 때 명단을 보고 경호원 수가 몇 명이나 될지 추측했겠지. 강력한 힘을 가진 내가 오면 곤란하니까 나까지 확인한 거고.’
의문은 풀렸다. 그가 떡밥을 던졌다.
“너희 조직은 이미 노출됐다. 너희들은 다 끝났어.”
“제기랄. 역시 그런 거였어. 정보가 샜어.”
서정우가 또 정보를 얻었다.
‘그냥 청부업자를 끌어모은 게 아니야. 이놈들은 제대로 된 팀이야.’
그래서 거슬렸다.
‘이것들도 다 쓸어버려야 깔끔하겠네.’
천천히 정보를 더 캐고 싶지만, 지금은 이홍국이 더 급하다. 게다가 지금 조직의 정체를 물어본다고 순순히 대답할 리도 없다.
‘잡아놓으면 수사 결과가 나오겠지.’
서정우가 적을 향해 다가갔다.
적이 자세를 낮추며 멀쩡한 오른팔로 칼을 휘둘렀다. 칼날이 노린 건 급소가 아니라 서정우의 다리다. 그는 서정우를 이기려는 게 아니라 기동력만 빼앗고 도망칠 생각이다.
서정우가 뒤로 휙 물러났다. 칼날이 간발의 차이로 빗나갔다. 그는 앞으로 튀어나가며 손으로 적의 얼굴을 잡고 그대로 벽에 찍었다.
“켁!”
기절한 적이 벽에 등을 기댄 채로 바닥에 미끄러졌다.
서정우가 이홍국이 도망친 방향으로 걸어갔다.
“이제 홍국이 잡으러 가자.”
* * *
이홍국은 국회의원에 네 번이나 당선됐다.
그는 젊었을 때 집안의 돈과 인맥을 이용해 깃발만 꽂으면 당선되는 지역에 출마했다.
그 후부터는 일단 공천만 받으면 세상이 어떻게 변해도 당선되는 건 어렵지 않았다.
두 번째 공천은 정당 내부 정치판에서 줄을 잘 잡고 돈도 좀 뿌리면서 쉽게 받아냈다. 세 번째 공천은 더 쉬웠다. 그걸 세 번이나 하고 나니, 네 번째부터는 이홍국이 바로 그 줄 중 하나가 되었다. 그는 이제 돈을 바치는 쪽이 아니라 받는 쪽이다.
그는 세상이 자기 마음대로 된다고 생각했다. 실제로 어지간한 일은 그의 마음대로 되었다. 그는 언제나 대우받기를 원했고, 접대도 많이 받았다.
남들은 그를 대선후보로 보지 않았지만, 그는 이렇게 힘을 키워나가다 십 년이나 이십 년 후에는 대권을 잡겠다는 꿈도 꾸었다.
그래서 그는 지금 화가 많이 났다.
“씨발. 내가 국회의원에게도 경호팀 붙여주는 법 만들고야 만다.”
삼백 명이나 되는 국회의원 모두에게 경호팀을 붙일 수는 없다. 그런 건 이홍국도 원하지 않았다. 국회의원 중에서도 권력이 더 강한 일부만 그 혜택을 받아야 서열 구분을 하기 좋다.
“4선. 그래. 4선부터 전담 무장 경호팀을 붙여주는 법을 만들겠….”
그가 숨어 있는 곳으로 테러리스트 한 명이 뛰어왔다. 그 테러리스트는 서정우에게 쫓겨서 이곳으로 왔다.
이홍국은 즉시 뒤로 돌아 도망쳤다. 앞에 비상구가 보였다. 그는 비상구를 열고 뛰어들었다.
너무 급하게 도망치느라 계단을 제대로 밟지 못했다. 이홍국이 계단에서 앞으로 굴렀다.
“으아악!”
테러리스트는 이홍국이 비명을 지르자마자 옆으로 날아가 벽에 충돌했다.
“케엑!”
서정우는 이쪽으로 몰아붙인 테러리스트를 걷어차 기절시킨 후에, 비상구 너머를 확인했다. 이홍국은 계단 중간에 엎어져 신음을 흘리고 있었다.
“끄으으으.”
‘딱 좋은 상태군.’
서정우가 안으로 들어가 이홍국의 엉덩이에 자백제가 든 주사기를 꽂았다.
그 주사기는 저쪽 세계의 물건이라 꽤 튼튼한데, 버튼을 눌러야 바늘이 튀어나오는 방식이다.
약물이 이홍국의 몸속에 퍼졌다.
저쪽 세계에는 환상을 일으키거나 사람이 맛이 가게 만드는 정신 공격 계열 몬스터가 있다. 그 몬스터를 잡으면 특정 물질을 소량 추출할 수 있다.
그 물질을 섞어 만든 자백제는 정신 저항력이 높은 사람에게는 통하지 않지만, 자기 자신만 소중하고 신념이 없는 놈에게는 꽤 잘 통한다.
이홍국은 방금 파티장에서 혼자 살겠다고 옆에 있던 사람을 테러리스트 쪽으로 밀어버렸다. 그런 놈에게는 더 잘 통한다.
자백제 제조 방법은 간단했다. 몬스터 추출물 이외의 약물은 구하는 것도 간단했다.
다만, 정신 공격 계열 몬스터가 워낙 드물다 보니 그 특정 물질을 구하는 것 자체가 어려웠다. 게다가 그 물질을 함부로 구하다 들키면 마약 범죄보다 더 크게 처벌받는다.
그런데도 서정우는 이 자백제를 가지고 있다.
그는 애당초 그 물질을 브로커에게 산 것이 아니다. 예전에 정신 공격 계열 몬스터를 직접 잡았을 때, 정신에 간섭하는 특정 물질을 뽑아내 만들어둔 것이다. 제조법이 워낙 간단해서 만들기도 쉬웠다.
‘이거 만든 지 워낙 오래돼서 보존 기한이 몇 년은 지났을 텐데…. 죽지는 않겠지.’
이홍국은 이미 자백제 때문에 몽롱한 상태였다. 엎어진 자세 그대로 눈이 풀렸다.
서정우는 그의 앞이 아니라 뒤에 섰다.
질문할 시간은 많지 않다. 서정우가 본론부터 꺼냈다.
“칼치파를 잘 알지?”
이홍국은 순순히 대답했다.
“잘 알지.”
“언제부터 칼치파를 이용했지?”
“1998년.”
“어떻게 알게 됐지?”
“옛날엔 내가 그 새끼에게 용돈을 주면서 머슴처럼 썼지. 그러던 새끼가 많이 컸지. 그래 봐야 내 앞에서는 여전히 머슴이지만. 아. 그 머슴 새끼는 죽어버렸지. 아직 쓸모가 많았는데 아깝게.”
서정우가 원하던 정보가 바로 이것이다.
‘저쪽 세계에 백상어 클랜이 줄을 댄 정치인은 역시 이홍국이군.’
필요한 정보는 얻었다.
이쪽 세계의 이홍국이 지금 그의 질문과 대답을 기억한다면 문제가 되지만, 그건 걱정할 필요가 없다.
그가 굳이 이 자백제를 쓴 건, 기억 삭제 효과가 있기 때문이다.
이 자백제에 당하면 마치 수면 마취제를 맞거나 술에 취해 필름이 끊겼을 때처럼 단기 기억이 사라진다. 물론 정신 저항력이 강한 사람은 기억을 잃지 않지만, 그런 사람에게는 처음부터 이 자백제가 통하지 않는다.
‘이홍국이 이 상황을 기억할 정도로 강한 정신력을 가진 것 같지는 않으니까.’
자백제의 지속시간은 짧다. 서정우는 이홍국을 버려두고 그곳을 나가려 했다.
그런데 이홍국이 이야기를 계속했다.
“그 머슴 새끼. 배에 기름이 끼더니 게을러져서 직접 안 움직이고 사거리파나 시키고 말이야.”
서정우가 밖으로 나가려던 걸음을 멈췄다.
‘어?’
사거리파는 예전에 사람을 몇 명 납치했다. 옆 팀 형사 김정호가 그걸 눈치채고 수사하다가 납치됐다. 다행히 서정우가 피해자를 모두 구출하는 데 성공했다.
그러고 나서 서정우는 그 배후에 있던 칼치파를 쓸어버렸다.
그런데 칼치파가 사거리파를 시켜서 왜 그런 일을 저질렀는지는 알아내지 못했다. 진실을 아는 두목이 죽어버렸기 때문이다.
서정우는 시간이 없는 걸 알면서도 질문했다. 이 정보는 필요하다.
“왜 칼치파 두목은 사거리파를 시켜서 그 사람들을 납치한 거냐?”
“브로커가 그렇게 해달라고 했으니까. 난 그냥 그 머슴 새끼를 소개만 해준 거야.”
“왜 소개해줬지?”
“당연히 돈이지. 스위스 계좌에 20억 꽂아준다고 했으니까. 소개만 해주면 20억인데 당연히 해야지. 그것도 그냥 돈이 아니라 안전한 해외 비자금 20억인데.”
“납치 대상은?”
“내가 그런 것까지 알아야 해? 브로커 새끼는 아무 말도 안 했어.”
서정우는 아쉬웠다.
‘그 정보도 필요한데.’
이홍국이 약에 취해 실실 웃었다.
“그런데 머슴 새끼가 나한테 보고했지. 새끼가 그런 건 왜 보고하고 지랄이야. 난 아무것도 몰라야 하는데.”
서정우의 눈이 반짝였다.
“뭐라고 보고했지?”
“무슨 이상한 체질을 가진 사람들을 납치하라고 했다더라.”
“그런 체질을 가진 사람들은 어떻게 찾았지?”
“병원 전산망을 해킹할 수 있는 전문가를 소개해달라고 해서 내가 머슴 새끼에게 알려줬다.”
“그 새끼 이름은?”
“김수철.”
“브로커의 정체는?”
“씨발. 내 비자금 20억.”
질문과 대답이 달랐다. 자백제의 약효가 떨어져 간다는 뜻이다. 게다가 근처에서 소란스러운 소리가 들렸다.
서정우가 그곳을 빠져나가기 위해 비상구 계단 위쪽으로 올라갔다.
‘해커 김수철. 그놈을 잡으면 알아낼 게 많겠네.’
지금 당장은 저쪽 세계에서 백상어 클랜과 싸우는 일이 더 급하다.
‘김수철은 백상어 다음에 잡자.’
그가 그 장소를 빠져나가자마자 호텔 보안 요원들이 비상구 문을 벌컥 열었다.
“여기도 있다!”
“옷이 달라. 손님 같아!”
“혹시 모르니까 조심해!”
이홍국은 그때서야 정신을 차렸다.
“으으….”
그가 마지막으로 기억하는 건 도망치다가 계단에서 넘어진 것이다. 그 후에는 어떻게 됐는지 기억이 나지 않았다.
그래도 지금이 어떤 상황인지는 눈치챘다. 고개를 돌려보니 호텔 보안팀 직원들이 삼단봉을 쥔 채로 계산 위에서 그를 내려다보고 있었다.
이홍국이 화를 벌컥 냈다.
“이 새끼들! 나 국회의원 이홍국이야! 당장 와서 나부터 일으켜! 구급차도 불러! 사장도 나오라고 해! 이 호텔 사장 당장 튀어와!”
* * *
호텔 지배인이 파티장에 들어갔다. 여기저기 부서진 탁자가 보였다.
테러리스트는 이미 모두 제압되어 있었다. 그놈들은 묶이는 과정에서 추가로 두들겨 맞아서 상태가 엉망이었다.
안으로 들어가던 지배인이 멈칫했다. 서정우가 던진 칼에 손을 맞은 놈이 뿌린 핏자국이 보였다.
호텔 보안팀 직원들은 물론이고, 일반 직원들도 파티장 안으로 들어와 사람들을 도왔다.
손님들의 상태는 다양했다. 흥분한 사람, 겁에 질린 사람, 기자에게 전화를 걸어 지금 상황을 설명하는 사람까지 있었다.
손님 중 한 명이 휴대폰으로 통화하며 말한 소리가 지배인의 귀에 들렸다.
“여기 지금 난장판이야.”
지배인의 얼굴은 이미 창백했다.
“내가 이럴 줄 알았어.”
그를 따라온 직원이 물었다.
“예?”
“역시 서정우 형사가 그냥 온 게 아니야. 저놈들을 잡으러 온 거야.”
“설마 그러겠습니까?”
“그냥 일일 경호원으로 왔다는 말을 믿지 말았어야 했어. 파티 자체를 취소했어야 했어.”
말은 그렇게 했지만, 이 파티는 지배인이 함부로 취소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취소를 못 하면, 서정우를 보자마자 보안팀이라도 추가 배치할걸.”
경찰이 도착했다. 처음에는 근처 지구대 경찰들이 오고, 잠시 후에는 경찰특공대까지 나타났다.
서정우는 경찰이 도착하기 직전에 파티장으로 돌아왔다. 이선화는 출입구 쪽을 힐끗거리다가 그를 발견하자마자 손을 흔들었다.
“정우 씨! 여기예요!”
서정우가 이선화에게 다가가 물었다.
“괜찮아요?”
“당연하죠. 누구한테 배웠는데.”
“예?”
이선화가 묶여 있는 놈 중 하나를 가리켰다. 물병이 깨질 때 물을 뒤집어써서 푹 젖은 상태였다.
“저놈은 정우 씨가 오기 전에 제가 혼자 잡았어요.”
서정우가 주변을 확인했다. 의자와 테이블에 그녀의 구두 자국이 보였다.
“아아. 제대로 했나 보군요.”
그녀가 방긋 웃었다.
“정우 씨. 이제 저 훈련 그만 받아도 돼요.”
“음?”
“멋지게 성공했잖아요. 진짜 완벽했어요. 그러니까 이제 훈련 그만 받아도 된다고요.”
서정우가 고개를 끄덕였다.
“확실히.”
이선화가 주먹을 쥐었다.
“됐다!”
“첫 동작은 괜찮게 했군요.”
“네? 첫 동작이라니요?”
서정우가 부드러운 미소를 지으며 설명했다.
“두 번째 동작은 이것처럼 쉽진 않을 겁니다.”
이선화는 어이가 없었다. 지난 며칠 동안 훈련받으면서 한 생각은 이러다 죽을 수도 있다는 거였다.
그녀가 항의했다.
“하나도 안 쉬웠거든요! 그리고 그것보다 더 어려우면, 진짜 올림픽에라도 내보내려는 거예요?”
“올림픽에는 마땅한 종목이 없을 텐데요?”
“그 말이 아니잖아요!”
강서준이 옆에서 끼어들었다.
“서 형사님. 저는 열심히 배울게요.”
“뭘 말입니까?”
“선화가 배우는 그 훈련이요. 저도 배우고 싶어요.”
“그걸 왜….”
“저도 그 영화 하려고요. 서 형사님에게 배우면 그 감독님이 요구하는 액션을 충분히 할 수 있잖아요.”
“누굴 더 가르치기에는, 남는 시간이 없어서.”
강서준이 얼른 협상을 걸었다.
“제가 ES 엔터와 계약할게요. 거기랑 친하시잖아요. 네?”
“가수로요?”
“네!”
저쪽 세계의 박철우는 음치 강서준을 가수로 만드는 건 불가능하다고 선언했다.
“그냥 전문 시설에서 배우세요.”
“이런 무술을 어디서 배워요? 그것도 며칠 만에. 네? 아예 같이 합숙을 할까요? 우리 집 넓은데.”
이선화가 강서준을 불렀다.
“야!”
“왜?”
“꺼져! 내 거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