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bility from Parallel Dimensions RAW novel - Chapter 13
13. 첫 악보
서정우는 몬스터와 전쟁 중인 세계와 몬스터가 없는 세계를 왕복한 후에, 두 차원의 연결이 고정됐다는 걸 확인했다. 이제 그는 양쪽 차원을 매일 오갈 수 있다.
그런데 다른 문제가 하나 생각났다.
“가만. 난 돌아올 땐 떠난 시점의 시간 좌표로 돌아오는데.”
한쪽 세계에서만 서정우의 평행차원 이동을 관찰하면, 사라지자마자 다시 나타나는 것처럼 보인다. 저쪽 세계에서 다른 장소로 이동한 후에 돌아오면 3차원 좌표가 바뀌어 텔레포트 같은 이동 효과가 생긴다.
“이쪽 세계에 있던 서정우는 왜 안 돌아오는 거지?”
똑같은 규칙이 적용된다면, 이쪽 세계의 서정우도 다른 차원으로 떠나자마자 돌아온 것처럼 보여야 한다.
“일단 내가 있던 차원으로 간 건 아니야. 나와 똑같은 스킬이라면 시간대가 겹쳐.”
저쪽 세계의 천체물리학 이론에 의하면, 두 사람이 서로의 세계를 시간대가 겹친 상태로 오갈 수는 없다.
두 세계가 마지막으로 연결된 시간 좌표보다 과거 좌표로 이동하는 건 불가능한데, 시간대가 겹친다는 건 바로 그 과거와 연결된다는 의미이기 때문이다.
“내가 온 곳과는 다른 평행세계나, 아니면 아예 다른 차원으로 넘어갔겠지.”
아직도 돌아오지 않는 이유는 몇 가지 꼽을 수 있다. 가장 나쁜 건 사고를 당해서 못 돌아온다는 것이지만, 더 나은 가정도 있다.
“나처럼 출발 시점의 시간축 좌표를 쓰는 게 아니라, 좀 떨어진 좌표를 쓰나?”
차원 텔레포트 스킬을 쓰는 그조차도 3차원 공간 좌표 이외의 좌표는 인지하지 못한다. 이쪽 세계의 서정우는 자기도 모르게 더 멀리 떨어진 시간축 좌표를 쓸 수도 있다.
“그런 거겠지.”
진짜 그게 이유인지는 알 수 없다. 그래도 그렇게 생각하기로 했다. 사고가 나서 못 돌아온다는 것보다는, 나중에라도 돌아온다고 생각하는 게 훨씬 낫기 때문이다.
문제는 돌아올 때 얼마나 멀리 떨어진 시간 좌표를 사용하냐이다. 몇백 년이나 몇천 년 뒤에 돌아올 수도 있다.
아니면 스킬의 재사용 대기 시간이 하루가 아니라 몇백 년짜리라서 못 돌아올 수도 있다.
서정우가 진심으로 기원했다.
“알아서 잘하겠지. 전에도 기원했지만, 어디 평화로운 엘프 마을 한복판에라도 떨어져서 잘 먹고 잘살고 있기를. 몬스터가 득실거리는 숲 속에 떨어져서 고생하지 않기를. 행운을 빈다. 다른 차원으로 넘어간 서정우.”
평행차원 이동 스킬에 대해서는 아직 모르는 게 많다. 하지만 지금 궁리해봤자 답을 찾아내기는 어렵다.
그는 그 고민에 시간을 쓰는 대신에, 이 세계의 정보를 더 알아내는 쪽을 택했다.
“이쪽 세계에 더 잘 적응할 궁리나 하자. 내 행동이 어색해 보이면 간첩으로 의심받을라.”
그는 일단 무기가 가득 든 캐리어를 건설이 중단된 건물 구석에 잘 숨겨두었다.
* * *
서소라는 윤나나를 만나러 병원으로 찾아갔다.
병원 앞은 기자들로 북적거렸다.
“저 많은 기자가 다 나나 때문에 온 건가?”
그녀는 저 앞에서 자기가 윤나나의 친구라고 말할 생각은 없다. 그래서 다른 사람을 문병 온 척하며 안으로 들어갔다.
병실을 찾는 건 쉬웠지만, 정복 경찰이 병실 문을 지키고 있었다.
그녀가 경찰에게 말했다.
“저기요. 저 나나 친구인데요. 문병 왔는데요.”
경찰이 그녀를 쓱 보다니 고개를 가로저었다.
“오늘 윤나나 씨와 친구라고 주장한 기자를 몇 명이나 본 줄 압니까? 안 됩니다.”
“진짜 친구인데…….”
뒤에서 윤나나의 어머니가 그녀를 불렀다.
“어머. 소라야?”
“아줌마!”
경찰은 그녀가 진짜 친구라는 걸 확인하고 옆으로 비켜섰다.
서소라가 병실 문을 열며 걱정했다.
‘나나를 어떻게 위로해 주지? 그 나쁜 놈한테 납치됐었으니까 되게 겁 많이 먹었…….’
그녀가 멈칫했다.
윤나나는 창가에 앉아서 병원 밖에 있는 기자들을 구경하며 아이스크림을 통으로 퍼먹고 있었다.
윤나나가 서소라를 보고 활짝 웃으며 손을 흔들었다.
“소라야!”
서소라는 그녀의 환한 웃음을 보고 깨달았다.
“아. 맞다. 우리 집에만 똘끼가 있는 게 아니지. 쟤도 똘끼 하나는 남부럽지 않지.”
윤나나에게 트라우마의 흔적은 적어도 겉으로는 보이지 않았다. 오히려 그녀는 자기가 본 신기한 경험을 자랑하기 바빴다.
물론 납치 자체를 자랑한 건 아니다.
“사람 머리 뒤로 후광이 비치는 거 나 진짜 처음 봤어.”
“우리 나나가 다른 덴 다 괜찮은데 머리가 아프구나. 괜찮아. 금방 나을 거야. 약 먹으면 돼.”
“진짜야. 어둠 속에 빛이 확 들어오는데, 형사님이 ‘경찰입니다.’ 하는 거야. 그분 뒤로 빛이 진짜 눈부시게 빛났어.”
“약 많이 먹어야겠다.”
“그 형사님이 ‘우리가 왔으니까, 이제 안전합니다.’라고 말하는데, 정말 마음이 탁 놓이는 거 있지.”
“그거 다른 경찰도 다들 하는 말 아닐까?”
“아닌데. 진짜 목소리까지도 고귀한 느낌이었는데.”
“그 고귀하신 형사님 얼굴은 봤고?”
“아니. 그분 후광이 너무 강해서.”
“그거 후광 아니라 햇빛이라니까.”
윤나나가 아이스크림을 푹 떠서 입에 넣으며 말했다.
“웅. 진짠데.”
의사가 안으로 들어오다가 아이스크림을 먹는 윤나나를 보고 당황했다.
“아니. 곧 검사 들어가야 하는데 왜 아이스크림을……. 그거 도대체 어디서 났습니까!”
서소라가 쫓겨났다.
서소라는 집으로 털레털레 돌아왔다. 어차피 갈 곳도 없었다.
“아. 배고파. 너무 빨리 쫓겨나서 주스 한 잔 못 얻어먹었네. 밥이나 먹어야겠다.”
그녀가 냉장고를 열었다.
“응?”
그녀가 눈을 껌뻑이고 다시 안을 보았다. 냉장고 안이 텅 비어 있었다.
“반찬 다 어디 갔어!”
반찬만 없어진 게 아니다. 두 근은 남아 있어야 할 소고기도 없어졌다.
“누구 짓이야!”
누구 짓인지는 뻔했다.
서소라가 씩씩댔지만 그런다고 사라진 반찬이 돌아오진 않는다.
“에이. 간장에 밥이라도 비벼 먹어야겠다.”
그녀가 찬장을 열었다.
“어라?”
찬장이 휑했다. 잔뜩 쌓여 있어야 하는 즉석밥, 참치통조림, 스팸 등이 싹 다 사라졌다.
“도둑이…… 들었을 리가 없지. 무슨 도둑이 냉장고 반찬하고 즉석밥을 훔쳐가?”
당장 먹을 것이 없었다.
“우이씨. 나가서 사와야겠다.”
그녀가 나가기 전에 방문을 열었다.
뭔가 이상했다. 방안의 모습이 평소와 달랐다.
“침대 그대로고, 옷장 그대로고, 화장…….”
그녀가 소리를 빽 질렀다.
“내 화장품 다 어디 갔어!”
화장대 위가 텅텅 비어 있었다. 거울 위에 붙은 메모지가 보였다.
그녀가 식식대며 화장대 거울에 붙어 있는 메모지를 뗐다.
거기에는 딱 한 줄이 적혀 있었다.
– 넌 새로 사.
음식을 다 털어간 범인이 누군지 짐작은 하고 있었지만, 이제 물증도 나왔다.
그녀가 소리를 질렀다.
“오빠 새끼가 드디어 미쳤구나아아!”
그녀는 서정우의 방으로 달려가 방문을 벌컥 열었다.
당연히 서정우는 보이지 않았다.
“튀었어! 내 손에 잡히면 죽을 걸 아니까 밥이랑 반찬도 다 가지고 튀었겠지!”
그녀가 식식거리며 서정우에게 전화를 걸었다.
서정우의 휴대폰은 저쪽 세계의 것이다.
이쪽 세계의 휴대폰도 통화가 되려면 먼저 단말기 고유 번호가 통신사에 등록되어 있어야 한다. 저쪽 세계에서 만들어진 휴대폰이 등록되어 있을 리 없다.
– 고객님의 전화기가 꺼져 있어…….
그녀가 전화를 끊으며 소파에 털썩 앉았다.
“아오. 언제 또 사고 치나 했다! 내 화장품 그게 다 얼마짜린데!”
ES 엔터테인먼트는 망하기 직전의 기획사라 이젠 연습실도 없다. 작은 사무실 하나밖에 남지 않았다.
그래서 그녀와 윤나나는 그 사무실 근처에 있는 방음 잘 되는 럭셔리 노래방에서 연습했다.
그런 상황에서도 그녀는 꿈을 버리지 않았다. 미래를 위해서 피부 관리에 신경 쓰고, 적어도 화장품만은 고급 제품을 쓴다.
그런데 하나씩 겨우 사 모은 화장품이 싹 다 사라졌다.
“돌아오기만 해. 죽었어!”
소파 앞 탁자 위에 악보가 보였다.
“아. 맞다. 이거. 아까도 오빠가 괜히 말 시켜서 이걸 놓고 가는 바람에, 버스에서 가사도 못 외웠네.”
그녀가 악보가 프린트된 종이를 들었다. 그런데 종이에 뭔가가 비쳐 보였다.
그녀가 종이를 뒤집었다.
악보가 볼펜으로 무성의하게 찍찍 그려져 있었다.
이 집에 외부인이 들어왔을 리는 없다.
“그 인간이 작곡? 얼씨구? 작사까지? 어디서 보고 베꼈는지 몰라도 이게 내 화장품값이냐!”
원래라면 종이를 구겨버려야 하지만, 이 종이에는 그녀의 데뷔곡도 프린트돼 있다.
그녀가 별생각 없이 서정우가 그린 악보의 앞 몇 마디를 흥얼거려보았다. 가사를 따라 부르지도 않고 그냥 음만 흥얼거렸다.
“나나나나나…….”
그녀의 표정이 조금 변했다. 콧노래로 조금 더 불러보았다.
“나나나, 나나, 나. 와. 멜로디 진짜 좋다.”
그녀가 소파에서 벌떡 일어나 배에 힘을 빡 주고 가사를 제대로 붙이며 똑바로 노래를 불렀다. 처음 불러보는 노래라 박자도 놓치고 실수하는 부분도 많았지만, 그래도 노래가 참 좋았다.
그러다 그 종이에 그려진 악보가 끝났다.
그녀는 아쉬웠다.
“가사만 봐도 이 노래가 이렇게 끝날 리 없는데.”
그녀의 눈에 탁자 위에 놓인 족발집 광고지가 보였다.
그녀는 혹시나 싶어 광고지를 뒤집었다. 하얀 부분에 나머지 곡이 그려져 있었다.
그녀가 숨을 고르고, 뒷부분을 마저 불렀다. 뒷부분은 앞부분과 비슷한 부분이 많아서 좀 더 자연스럽게 노래가 나왔다.
그녀는 노래를 어설프게나마 끝까지 부르고 나서, 감상에 젖어 눈을 감았다.
“좋다. 정말 좋다. 신나면서도 뭔가 아련해.”
잠시 그러고 있다가 눈을 다시 뜨며 고개를 갸웃거렸다.
“이거 뭐야? 어디서 난 거야? 설마 오빠 나부랭이가 이런 걸 작곡했을 리가…….”
종이의 마지막에 적힌 글자가 눈에 들어왔다.
– 음악을 모르는 오빠 나부랭이가 그냥 한 번 긁적거려봤다.
“있네?”
그녀는 그 글 한 줄만 보고 이 곡을 서정우가 썼다고 믿을 만큼 순진하지는 않았다. 그러기엔 서정우가 평소에 신뢰를 너무 많이 잃었다.
그녀가 얼른 서정우에게 다시 전화를 걸었다. 당연히 전화를 받을 리가 없다.
“전화기 꺼놓을 거면 왜 가지고 다니냐고! 이런 좋은 노래를 작곡……. 작곡? 우리 오빠가? 작사까지?”
당연히 의심이 점점 커졌다.
“우리 오빠 따위가 이런 노래를 만들어? 말도 안 돼. 말이 안 되는데. 이 좋은 노래를 난 처음 들어보는데.”
그녀가 급히 스마트폰으로 가사를 검색해보았다.
“이렇게 좋은 노래의 가사라면, 당연히 인터넷에 있을 거야. 당연히 있……. 없네?”
혹시 남이 지은 시를 갖다 쓴 건가 싶어서 좀 더 검색했지만, 가사와 일치하는 건 어디서도 나오지 않았다.
그녀가 급히 악보 위에 적힌 제목을 검색했다.
“다시 만날 수 있다면.”
이번에는 같은 이름의 노래가 나왔다.
그녀는 크게 실망했다.
“에이. 그러면 그렇지. 역시 있네.”
그녀가 링크를 눌렀다. 노래 가사가 나왔다.
“어머?”
가사가 달랐다. 혹시나 하고 그 노래의 앞부분을 들어봤지만, 제목만 같을 뿐 이 악보와는 완전히 다른 노래다.
“진짜 없네? 없어! 이런 노래는 어디에도 없어! 우리 오빠가 이런 명곡을 작곡할 줄 알 리가 없는데, 날 놀리려고 어디서 베낀 거여야 하는데, 왜 없지?”
그녀의 심장이 콩닥콩닥 뛰었다. 머리는 그럴 리 없다고 생각하는데, 가슴은 기대감으로 터질 것 같았다.
“이거 진짜로 진짜면 좋겠다.”
서정우는 전화를 받지 않아 어떻게 된 건지 물어볼 수도 없다. 그녀 혼자 이 노래의 출처를 확인하는 건 무리다.
“사장님! 사장님은 알아볼 방법이 있을 거야!”
그녀가 악보를 챙겨 집 밖으로 뛰어나갔다.
* * *
사장 오동철은 불안했다.
“형진아. 새 노래, 아니, 우리 마지막 승부수인 이 노래, 성공할까?”
매니저 김형진의 얼굴도 밝지는 않았다.
“사장님이 구해오신 이 곡 말입니다. 너무 평범합니다.”
“이것도 사정사정해서 겨우 구해온 거야.”
“인기 가수가 불러도 될까 말까 한데, 연습만 하던 우리 애들이 불러야 합니다. 걔들이 또 그냥 연습생입니까? 학교 다니다 남는 시간에만 연습하는 애들입니다.”
“연습 좀 더 시키면 되잖아. 처음에 걔들을 뽑을 땐 그래도 노래 잘하고 외모도 되니까 뽑은 건데.”
“소라나 나나는 내년이면 졸업반이니까 취업준비 때문에 연습생 때려치울 걸요? 상황이 이렇게 총체적 난국인데 이런 곡으로 도대체 어떻게 뜹니까? 하늘이 도와줘도 될까 말까입니다.”
“하늘은 이미 한 번 도와줬잖아.”
“언제요?”
“나나가 살인마에게 납치됐다가 구출된 뉴스가 하루 종일 나오잖아. 신곡 홍보할 돈도 없는데 하늘이 도운 거지.”
“나나 부모님이 그 말을 들었으면 사장님을 때릴 거 같은데요.”
“너도 아까는 같이 만세 부르면서 좋아했으면서 왜 나만 나쁜 놈 만드냐?”
갑자기 사무실 문이 벌컥 열렸다. 오동철은 방금 말실수한 게 들켰나 싶어서 펄쩍 뛰며 소리쳤다.
“제가 한 말 아닙니다! 저 녀석이 그랬습니다!”
서소라가 사무실 안으로 들어오며 악보를 펄럭펄럭 흔들었다.
“사장님! 이것 좀……. 네? 뭘 그랬는데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