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bility from Parallel Dimensions RAW novel - Chapter 164
164. 은신처
인기 배우 강서준이 오동철 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오 사장님. 디멘션은 제 노래를 언제 만들어준대요?”
“서준 씨는 중증 음치입니다. 기계로 튜닝을 해도 된다면 혹시 모르겠지만, 원하는 건 라이브가 가능한 맞춤형 히트곡이잖아요. 그런 노래는 사람의 힘으로는 못 만든다고 몇 번이나 말했는데.”
“하지만 디멘션이 만들면 다르겠죠!”
“디멘션도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니까!”
강서준은 희망을 버리지 않았다.
“수정이가 방금 그 노래를 만든 것처럼, 디멘션도 어느 날 갑자기 저를 위한 곡이 딱 떠오르지 않을까요?”
오동철이 멈칫했다가 바로 활짝 웃으며 말했다.
“그럴지도 모르지요. 그러니까 일단 계약부터 합시다. 서준 씨까지 오면 우리가 배우 전담팀을 만들 여력이 된다니까요. 올 때 매니저든 코디든 다 데려와요. 다 받아줄 테니까.”
강서준도 마음은 이미 ES 엔터테인먼트로 넘어간 상태다.
이 계약은 1년짜리 단기 계약에 조건도 좋고 제약도 거의 없다. 이미 새로 들어가기로 한 영화도 있다. 그 영화를 찍고 좀 쉬다가, 일 년 뒤에 마음에 들면 재계약하고 안 들면 다른 곳으로 옮기면 그만이다.
이건 잠시 쉬어가는 느낌의 계약이다.
그는 그래서 이렇게 자주 찾아와서 곡을 달라고 졸랐다.
“오 사장님. 그러니까 곡 하나만 받으면 바로 도장 찍는다니까요.”
어차피 이 협상은 지금 결론 날 상황이 아니다. 이미 몇 번이나 비슷한 상황을 반복했다.
오동철이 말을 돌리려고 일부러 남수정에게 물었다.
“이 곡 네가 완성할 거야?”
남수정이 눈을 동그랗게 떴다.
“제가요? 어떻게요? 작곡에 관해 뭘 알아야 하죠. 그쪽으론 일자무식인데.”
“그럼 다른 작곡가와 공동작업 형태로 가는 건 어때?”
“당연히 그래야죠. 그러려고 가져온 건데요.”
“그럼 이거 디멘션에게 부탁해볼까?”
남수정은 깜짝 놀랐다.
“진짜요? 디멘션 님이 진짜 해줄까요?”
강서준이 옆에서 툴툴댔다.
“그렇게 대단한 작곡가가, 남이 만든 멜로디로 노래를 만들어줄 것 같지는 않은데요. 뭐가 아쉬워서.”
남수정도 그렇게 생각했다.
“하긴. 디멘션과 공동작업을 하는 건 너무 큰 욕심이죠?”
디멘션의 정체를 아는 오동철은 생각이 달랐다.
‘서 형사님이 다른 사람 것은 다 안 해줘도 수정이 거는 해줄지도 모르지.’
“내가 디멘션에게 말이나 해볼게.”
남수정은 걱정했다.
“그러다 디멘션 님이 기분 나빠 하면….”
“안 나빠할 거야.”
강서준이 말했다.
“그럼 제 부탁도 한 번 더 이야기를….”
“그건 기분 나빠할 겁니다.”
“아니, 디멘션이 도대체 누군데 사람을 이렇게 차별하는데요? 수정이는 되는데 왜 나는!”
* * *
서정우가 오동철의 전화를 받았다. 오동철이 상황을 간단히 이야기했다.
– 그래서 수정이가 녹음한 파일을 이메일에 첨부해서 보냈습니다. 악보를 따서 보내는 것보다, 목소리 그대로를 듣는 게 더 느낌 전달이 좋을 것 같아서요.
“네. 나중에 확인하겠습니다.”
– 그리고 강서준 씨가 라이브로 불러도 히트할 수 있는 곡 하나만 주면 당장 계약하겠다고….
“그건 사람의 능력으로는 불가능합니다.”
– 역시 그렇지요? 저도 그렇게 말했습니다.
“그런데 제가 지금 회의 중이라서요.”
– 아, 네. 살인마라도 잡는 회의 중일 수도 있는데 제가 방해를 했군요. 하하하.
“어떻게 아셨습니까?”
– 네? 설마 진짜 살인마….
서정우가 전화를 끊었다.
백성민이 물었다.
“누구야?”
“동생 소속사 사장님.”
“오오! 서소라! 포캣츠! 야. 그러고 보니까 너 연예인들하고 꽤 친하다? 이선화 씨하고도 자주 만나고, 장현성 감독 영화에도 참여한다며?”
“그 영화에 참여하는 게 아니라, 아는 배우들이 출연하는 거라서 말이나 몇 마디 해준 거야. 커피 한 잔 얻어 마시기로 하고.”
그 말 몇 마디 때문에 장현성은 액션 장면 시나리오를 다 뜯어고치고 있다.
“정우야. 나도 그 영화에서 뭐 할 거 없냐? 대사 없는 단역이라도 좋은데.”
“형. 그러다 얼굴 팔려.”
“그럼 잠복도 안 하고 좋지 뭐. 너도 얼굴이 좀 팔려서 잠복 빠지는 거잖아.”
“노리는 게 그거였네?”
“흐흐. 최종목표는 너하고 같이 올림픽이나 사각의 링, 아니면 옥타곤에 가는 거지. 난 매니저로.”
“되지도 않는 소리는 관두고 회의나 하자.”
지금은 회의 중간에 잠깐 생긴 쉬는 시간이다. 그들이 회의실로 돌아갔다.
회의가 다시 시작되었다.
마약계 형사 구민호가 말했다.
“급한 연락 때문에 잠시 회의를 중단시켰습니다만, 그럴 가치가 있는 소식이 들어왔습니다.”
그가 화이트 보드에 이름을 하나 썼다.
“김인식. 골동품상 이연철과 손을 잡고 마약을 밀거래하던 조직의 핵심 간부입니다. 지금까지 우리 쪽에 단 한 번도 노출되지 않았지만, 이번에 체포한 놈들을 쥐어짰더니 이 이름이 나왔습니다.”
백성민이 물었다.
“이번에 잡은 놈 중에 있습니까?”
“아니요. 김인식은 없습니다. 그런데.”
구민호가 스크린에 문서 한 장을 띄웠다. 그 중간을 레이저포인터로 가리켰다.
“삼 년 전, 권세창이 사망하기 전에 접촉한 사람 중에 김인식이 있습니다. 동명이인? 그런 우연이 있을 리가 없잖습니까?”
백성민이 손을 비볐다.
“그럼 그놈을 잡아야겠네요. 그놈 지금 어디 있습니까?”
“두목과 나머지 조직원들은 잠수를 탔습니다. 일단 오늘 잡은 놈들이 털어놓은 도피처를 모두 공격할 계획입니다.”
서정우가 말했다.
“김인식에 대한 자료와, 지금까지 파악된 도피처 목록을 주십시오. 저도 따로 좀 조사해볼 테니까요.”
* * *
서정우는 몬스터와 싸우는 세계로 넘어갔다.
그는 그곳에서 각성자 수사대 2과장 권병철을 만났다.
권병철이 인상을 찌푸렸다.
“서정우 씨와 이렇게 자주 만날 줄은 몰랐는데?”
“전화만 걸어서 뭘 좀 알아봐 달라고 하는 건 아니다 싶어서요.”
“또 뭘 알아봐 달라고 온 겁니까?”
“아. 어제 드린 술은 드셨나요?”
“진짜 양주가 좋긴 좋더군요.”
“전창수 같은 나쁜 놈들 말고 우리 과장님처럼 열심히 일하는 분들이 그런 술을 자주 드셔야 하는데.”
“본론이나 꺼내시죠.”
“김인식이라는 놈을 찾고 있습니다.”
“김인식?”
서정우가 서류를 내밀었다. 김인식의 주민등록번호와 20세기 때의 간단한 정보가 들어있었다.
권병철이 서류를 확인하고 입맛을 다셨다.
“옛날 자료긴 하지만 맞네. 약쟁이 김인식.”
“역시 약쟁이군요. 어떤 약을 파는데요?”
“환각 라플레시아로 만든 마약으로 크게 해먹는 놈입니다. 그걸로 돈을 워낙 많이 벌고, 여기저기 뇌물을 많이도 뿌린 데다가, 증거가 잡힐만한 일은 직접 움직이지 않고 하수인을 시킵니다. 그래서 잡기가 만만치 않습니다. 굉장히 조심성이 많은 놈이지요.”
몬스터를 잡아 특정 물질을 추출한 후에 인류의 제약기술로 만든 약과 섞으면, 강력한 상처 치료제가 된다. 저레벨 상처 회복 물약이나 레드 포션도 모두 그런 식으로 만든다.
그런데 몬스터에서 추출한 물질은 약만 만들 수 있는 게 아니다. 어떤 몬스터의 추출물은 기존의 마약과 섞으면 더 강력한 마약이 된다. 그 재료가 되는 몬스터 중 하나가 환각 라플레시아다.
서정우가 슬쩍 웃으며 물었다.
“그놈 마음에 안 드시겠네요?”
권병철도 서정우를 만나고 나서 처음으로 씩 웃었다.
“안 들지요. 진작 이런 놈을 조사해 달라고 하셔야지. 이래야 나도 정보를 제공하는 보람이 있지.”
서정우가 서류를 한 장 더 내밀었다.
“이놈 아지트도 파악하고 계실 텐데, 여기 없는 곳 좀 적어주시죠.”
권병철이 두 번째 서류를 보고 고개를 갸웃거렸다.
“음? 이 주소는 다 뭡니까? 폐허가 된 지역도 여럿 있는데?”
“아. 그건 신경 쓰지 마시고요.”
“내가 그걸 다 외우고 다니지는 않으니까, 들어가서 확인하고 보내주겠습니다. 대신에.”
“김인식을 잡아달라는 거면, 일이 좀 큰데요?”
“그건 우리가 알아서 할 테니까, 건물 하나만 날려주시지?”
“건물이요?”
“거기서 김인식의 부하들이 약을 만드는데, 영장도 안 나오고 우리가 치면 뒤탈이 커서 보고만 있습니다. 거기가 날아가면 김인식에게 타격이 꽤 크게 갈 거고, 그러다 빈틈이라도 보이면 더 좋고.”
“딜.”
“오케이.”
* * *
그날 밤에 각성자 수사대 2과장 권병철은 활활 불타는 건물을 보면서 조금 당황했다.
“아니. 몇 시간이나 지났다고 벌써….”
부하 형사가 다가와 보고했다.
“과장님. 소방서 이야기로는 누가 건물 내부에 소이탄을 던진 것 같다는데요. 한두 개도 아니고 여러 개를요.”
“여기 경비 서던 놈들 있지 않았나? 누구 짓인지 본 놈은?”
“아무도 못 봤답니다.”
“허. 침투 능력이 장난 아니구나.”
“그러게 말입니다. 경비원은 물론이고 CCTV 카메라도 많았는데 그걸 어떻게 다 피했을까요?”
3차원 공간 분석 스킬은 현장을 빠져나올 때만 쓰는 게 아니다. 침입할 때도 유용하다.
권병철은 서정우와 거래한 결과를 눈으로 확인했다. 이제 주기로 한 걸 줘야 한다.
“김인식 소유의 집이나, 차명으로 확보한 곳, 비상시에 숨을 곳. 예전 것까지 다 정리했어?”
“예. 여기 불이 나기 조금 전에 정리 끝냈습니다. 그런데….”
부하 형사가 목소리를 낮췄다.
“오늘 그 자료를 조사하라고 하셨는데 같은 날 여기에 불이….”
“우연이야. 나도 당황한 거 봤잖아.”
“아, 네.”
“그 자료를 조사한 흔적은 다 없애. 괜히 오해받으면 안 좋잖아.”
“여기 불났다는 소리를 듣자마자 없앨 수 있는 건 다 없앴습니다. 보고서 한 장만 남기고요.”
* * *
서정우는 한밤중에 헌터 작곡가 박철우를 만났다.
박철우가 불평했다.
“난 이제 밤에는 꼬박꼬박 잘 거다. 이렇게 늦은 시간에 불러내면 어쩌…. 어디서 탄내가 나네? 너 불장난 했냐?”
“그냥 쓰레기를 좀 태웠어.”
“불 안 나게 조심해라. 어쨌든 이렇게 늦은 시간에는 불러내지 마라. 나 꿈꿔야 해.”
“이렇게 비협조적으로 나오면 그 칼 도로 가져간다?”
박철우는 성물 단검을 가지고 다닌 후로 가족과 만나는 꿈을 더 잘 꾸게 됐다. 이제는 꿈에서 아내도 만날 수 있다.
“차라리 날 쏴라. 내 칼은 안돼.”
“그거 빌려준 거라니까.”
“앞으로도 쭉 빌려줘.”
서정우가 피식 웃으며 휴대폰을 열었다.
“이거 좀 듣고 이야기하자.”
박철우가 이어폰을 휴대폰에 꽂고 남수정이 짧게 흥얼거린 노래를 들었다.
“빨간약? 가사가 레드 포션 이야기네?”
“가사는 좀 바꿀 거니까 참고만 해.”
“이 노래 가사에 나오는 아저씨는 누구야?”
“나.”
“가사대로면 네가 레드 포션을 썼다는 건데, 그럼 이 아가씨는 죽다 살아났겠다. 얘 찌른 놈들은? 다 쏴버렸냐?”
“살려는 놨어.”
노래를 다 들은 박철우가 말했다.
“좋네. 누가 만든 거야?”
“저번에 그 노래 부른 걔.”
“나한테 원하는 건?”
“걔가 작곡을 전혀 몰라. 이건 그냥 갑자기 느낌이 와서 짧게 부른 거래. 이걸 바탕으로 완전한 노래를 만들어줘.”
“난 원래 공동작업은 안 하지만, 네 부탁은 예외로 해야지. 핵심 파트는 이미 나와 있으니까 오래 걸리진 않을 거다.”
“공동작업이라서 싫다고 하는 건 아닌가 했는데.”
“싫다고 하면 네가 나한테서 칼을 빼앗을 테니까. 내가 꾸는 꿈도 빼앗고, 우리 가족도….”
“그렇게 날 악당 보듯이 보지 말지? 진짜 칼 빼앗고 싶어지니까.”
박철우가 얼른 말을 돌렸다.
“그런데 이 노래, 수정이가 불러도 좋겠는데? 이 아가씨 목소리와 창법이 수정이하고 똑같잖아.”
“아. 그거 좋은 생각이네.”
‘이쪽 세계에서도 수정이에게 발표하게 해야겠다. 여기서도 동생 치료비에 보태게.’
* * *
서정우는 형사로 생활하는 세계로 돌아왔다.
그는 저쪽 2과장 권병철이 조사한 자료와 서정우가 가진 마약 조직 도피처 목록 중에서 중복되는 건 모두 제거했다. 저쪽에만 존재하는 주소도 제외했다.
그러고 나니 주소가 몇 개밖에 남지 않았다.
그중 하나가 서정우의 눈길을 끌었다. 2과장 권병철의 부하가 그 주소에 설명을 달아놓았다.
[1998년에 김인식이 차명으로 구매. 김인식이 부하들에게도 알리지 않은 곳. 7년 전 인근에 출현한 게이트로 인해 김인식의 비밀 은신처라는 것이 밝혀짐.]“이쪽 세계에선 게이트가 안 열렸으니까, 아직도 여기를 비밀 은신처로 쓰고 있겠네. 김인식이 여기 숨었구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