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bility from Parallel Dimensions RAW novel - Chapter 176
176. 경쟁자
서정우가 계속 궁리했다.
‘수제품 브랜드라도 하나 만들어서 저쪽 세계의 가방을 갖다 팔까? 돈 많은 연예인들이 저렇게 원하는 걸 보면 좀 비싸게 받아도 되겠다.’
가방 생산은 얼마든지 할 수 있지만, 운송이 문제다. 저쪽 세계에서 가방을 대량으로 가져올 방법이 없다.
어차피 물량이 소량이라면, 소문 듣고 찾아온 사람에게만 조금씩 팔아도 된다.
그런데 문제가 하나 있다.
‘내가 직접 팔아도 되나?’
이선화가 물었다.
“정우 씨. 무슨 고민 있어요? 뭘 그렇게 생각해요?”
가방 문제로 싸우던 다른 사람들도 서정우를 쳐다보았다.
서정우가 말했다.
“그 가방을 좀 팔아볼까 하고….”
배우 강서준이 얼른 말했다.
“저부터 살게요! 저부터!”
“그런데 그 가방을 만드는 사람은 신분이 노출될 수 없어서, 내가 대신 팔아야 하는데….”
“팔면 되죠! 제가 손님 모아올게요!”
“한두 개라면 모를까, 계속 팔려면 정식으로 등록하고 팔아야죠. 그런데 난 경찰이라서, 대놓고 팔면 걸립니다.”
그냥 경찰도 아니고 유명한 형사다. 그가 돈을 받고 가방을 팔러 다니면 기사가 난다.
강서준이 말했다.
“그럼 경찰을 그만두시고 가방 회사 사장님이 되시…. 아니다. 그건 곤란하죠. 살인마 잡으셔야 하는데.”
권경철이 해결책을 제시했다.
“그럼 대신 팔아줄 사람이 필요하겠군요.”
서정우는 그 말을 듣자마자 서소라를 떠올렸다.
‘소라 그게 쓸모가 다 있네?’
* * *
서소라가 인상을 찡그리며 귀를 후볐다.
“뭐지?”
윤나나가 물었다.
“왜?”
“누가 내 욕하는 것 같아.”
* * *
이선화는 지금 돌아가는 이야기가 어쩐지 익숙했다.
‘응? 이거 디멘션 상황하고 비슷한데? 정우 씨는 곡을 어디서 받아오는 거라고 했는데, 이번엔 가방을 받아오네?’
ES 엔터테인먼트 사장 오동철은 서정우가 작곡을 직접 한다고 믿었다.
그런데 어떤 외부 자료에도 서정우가 디멘션이라는 건 적혀 있지 않다. 그렇게 발표된 적도 없다. 디멘션의 모든 저작권 관련 업무는 ES 엔터테인먼트가 대행한다.
이선화는 오동철과 다르게 알고 있다.
‘정우 씨는 분명히, 신분을 공개할 수 없는 작곡가에게서 곡을 받아온다고 했어.’
오동철은 그 말을 서정우가 둘러대는 거로 생각했지만, 이선화는 들은 그대로 믿었다.
‘그런데 이젠 가방도 다른 사람에게서 받아온다고? 신분을 공개할 수 없는 사람?’
그것 때문에 서정우를 의심하는 건 아니다. 그녀는 오히려 다른 곳에 꽂혔다.
‘정우 씨가 받아오는 곡은 동철 오빠가 맡으니까, 그럼 이건 내가 맡을까?’
그녀는 생각이 거기까지 닿자마자 얼른 손을 들어 열심히 흔들었다.
“가방 그거 제가 팔게요!”
서정우는 서소라를 바지사장으로 내세울 생각을 하고 있다가 고개를 돌렸다.
“이선화 씨가요?”
“네! 정우 씨가 팔면 입장이 곤란하지만 제가 팔면 괜찮으니까요. 제 건물에 마침 빈 가게가 하나 있으니까 거기 매장 내고 사업자 등록도 할게요.”
그녀는 여기에 있는 사람들이 들으라고 일부러 말을 추가했다.
“정우 씨는 그 가방 만드는 사람 소개만 해줘요.”
‘공식적으로는 정우 씨가 소개만 해준 거로 하고, 실제로는 내가 정우 씨한테 물건을 받고. 그러면 ES 엔터하고 비슷한 구조가 되겠지? 이렇게 정우 씨하고 더 가까워지나?’
“그럼 이선화 씨에게 소개해주는 거로.”
“아싸!”
서정우가 단서를 달았다.
“공급량은 일주일에 한두 개 정도?”
저쪽 세계 가죽 장인 차연숙은 관련 스킬이 있어 가방을 빨리 만든다. 그녀의 공방에서 직원으로 일하는 사람도 몇 명 있다.
차연숙 외에도 가죽 가공 스킬로 가방을 만들어 파는 사람은 여럿 있다. 저쪽에서 좋은 가방을 구하는 건 문제가 아니다.
그걸 이쪽 세계로 가져오는 게 문제지만, 일주일에 한두 개 정도는 쉽다. 집에서 평행차원을 넘나들 때 가져오면 된다.
이선화에게는 공급량이 중요한 게 아니다. 가방 사업에 큰 뜻을 품은 것도 아니다. 그녀는 그저 서정우와 더 가까워지고 싶었다.
“생산량이 그렇게 적어요? 그럼 돈 많이 번 연예인들만 골라서 비싸게 팔아야겠다.”
강서준이 얼른 이선화에게 말했다.
“내가 너무너무 좋아하는 내 친구 선화야!”
“갑자기 왜 이럴까?”
“연예인 협찬 하나 안 해주나?”
“누구셔? 우리 아는 사이인가? 그리고 네 여친도 연예인이냐?”
“어…. 그럼 나한테는 싸게 팔 거지?”
“그러엄. 당연하지.”
“얼마에?”
“오천.”
강서준은 당황했다가 바로 큰 목소리로 따졌다.
“어? 야. 미쳤어?”
“이 가방이 유명 브랜드 제품이면 경매 들어가서 오천이 아니라 억대로 받았을 거야. 브랜드 없는 수제품이라 싸게 파는 거야.”
“말이 되는 소리를 해야지. 브랜드 없는 수제품은 아무리 품질이 좋아도 오백 받기도 힘들잖아.”
“넌 이 예쁜 가방을 보고도 오백 소리가 나오니?”
“내가 오백 꽉 채워서 줄게!”
“꺼져!”
강서준과 권경철은 결국 가방 구입을 포기했다. 둘 다 돈 잘 버는 인기 연예인이고 이 가방이 보통 물건이 아니라는 것도 알지만, 여자친구 선물용으로 오천만 원이나 쓰는 건 너무 부담스러웠다.
* * *
모임을 마치고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 서정우가 물었다.
“내가 가방 가격에 대해 잘 모르긴 하지만, 그걸 오천이나 받고 팔 수는 없을 것 같은데.”
이선화가 설명했다.
“사실 서준이 말이 맞아요. 아무리 이 가방이 대단해도 이대로는 오천은커녕 오백 받기도 어렵죠.”
“그런데 왜….”
“그래서 내가 이 가방의 가치를 높이려고요.”
“어떻게요?”
그녀는 자신만만했다.
“나 이선화예요. 다 방법이 있어요.”
이번에는 그녀가 물었다.
“가방 만드는 분 말이에요. 소개 못 해주죠?”
“눈치가 많이 빨라졌네요.”
“그럴 줄 알았어요. 곡도 그런 식이니까. 그럼 전 정우 씨한테 가방을 직접 받으면 되겠네. 공급량은 일주일에 한두 개라고 했죠?”
“정해진 건 아니고 대충 그쯤인데, 지갑이나 작은 핸드백이라면 더 가져올 수도 있어요.”
이선화가 손가락을 흔들었다.
“품목을 늘리는 건 아직 일러요. 일단은 가방부터 띄워야 하니까요. 나중에는 서준이나 경철 오빠가 제발 팔아달라고 부탁하게 만들 테니까 구경이나 해요.”
서정우는 몬스터 가죽 가방 판매를 부업으로 생각했다.
그래서 이선화가 오천만 원을 불렀을 때는 깜짝 놀랐지만, 인기 배우 강서준과 권경철이 포기하는 걸 보고 욕심을 버렸다.
“알아서 해요. 맡겨둘 테니까.”
이선화가 활짝 웃었다.
“나 믿는구나? 잘하고 있어요. 그렇게 계속 나만 믿어요.”
서정우가 옆자리에 앉은 이선화를 만난 지는 얼마 되지 않았지만, 그래도 하나는 안다.
‘믿을 수 있는 사람이지.’
그는 양쪽 세계를 오가며 다양한 사람을 만났다. 하는 일이 달라진 사람은 많아도, 성격은 다들 비슷했다.
‘그런데 소라만 성격 차이가 너무 많이 난단 말이야. 저쪽에서 고생을 해서 그런가? 아니면 여기서 너무 배 째고 편하게 살아서 그런가.’
서정우는 가방 판매는 이선화에게 완전히 맡기기로 했다.
그가 다른 용건을 말했다.
“나 부탁이 하나 있는데.”
“어머. 얼마든지 해요. 부탁.”
그녀가 조수석에서 몸을 살짝 비틀었다. 대리석으로 깎은 것 같은 늘씬한 다리, 잘록한 허리, 아름다운 가슴과 사슴 같은 목선까지 모두 고개만 돌리면 바로 옆에서 볼 수 있었다.
그녀가 콧소리를 살짝 냈다.
“뭐든 다 들어줄 테니까.”
“차연숙 디자이너를 좀 만나고 싶은데.”
“네?”
“왜요? 잘 아는 사이인 줄 알았는데?”
“알죠. 쳇. 그게 다예요?”
“다인데요.”
“알았어요. 내일 같이 가요.”
* * *
이튿날 서정우는 차연숙을 만났다.
그녀는 호들갑을 떨었다.
“어머. 진짜 서정우 형사네? 반가워요. 차연숙이에요.”
서정우도 반가웠다. 어제 저쪽에서 가죽 장인 차연숙을 보고 왔을 때와는 느낌이 달랐다.
‘이 아줌마. 여기선 이렇게 사는구나.’
매장은 이쪽이 훨씬 고급스러웠다. 여기서는 쓰레기통까지도 고급 제품을 썼다.
파는 상품도 달랐다. 저쪽에서는 가방을 파는데 이쪽에서는 옷을 팔았다. 저쪽에서도 옷을 팔긴 하지만 그건 가죽이 덧대어져 방어구 겸용으로 쓰는 것들이다.
이쪽 차연숙이 입은 옷도 훨씬 더 고급 제품이다. 그런데 옷의 기본 스타일이 비슷했다.
‘감각도 비슷한 걸까? 저쪽에서도 옷을 팔아보라고 할까?’
서정우가 상념을 끝내고 인사했다.
“서정우입니다.”
“알아요. 내가 준 옷 입고 왔네? 잘 어울린다. 딱 이런 느낌이 들 줄 알았지.”
“주다니요? 샘플로 빌려주신 건 줄 알았는데요?”
“연예인 협찬이긴 한데, 그냥 쭉 입어요.”
“연예인이 아닙니다만.”
“연예인보다 더 유명한 형사잖아요. 얼굴은 안 찍히지만, 범인 잡는 모습은 동영상으로 곧잘 뜨던데.”
“그건 뭐 어쩌다 보니까.”
차연숙이 제안했다.
“그럼 그 옷을 입고 살인마를 잡게 되면, 그때 옷만 반납해요. 내가 따로 전시하게.”
“아니, 그게 뭐라고 전시를….”
“내가 좋아서 하는 일인데 어때요. 호호. 아참. 내가 망토 하나 만들었는데 쓸래요?”
“망토요?”
“히어로는 역시 망토가 있어야 의상이 완성되죠.”
서정우가 두 팔을 교차시켰다.
“아뇨. 절대로.”
“아쉽네요. 이미 망토를 세 개나 만들어놨는데.”
“하나라더니요?”
“호, 호호.”
서정우가 여기 찾아온 이유를 말했다.
“전 그냥 옷을 한 벌 사려고 온 겁니다.”
“어떤 용도로 입을 건가요? 범인 잡을 때? 아니면 인터뷰… 는 안 하니까 행사장에서 입게요? 그것도 아니면….”
“제 옷이 아니라 여자 옷이요.”
“어머. 그렇구나. 어떤 스타일을 원하는데요?”
서정우가 한쪽에 걸린 옷을 가리켰다.
“이미 골랐습니다. 저 옷으로 주시죠.”
옆에서 듣고 있던 이선화의 표정이 대놓고 밝아졌다.
‘저건 내가 좀 전에 마음에 들어서 자세히 본 옷이잖아. 내가 살까 했는데, 사주려고 그러나? 가방 사업 같이하는 기념으로?’
차연숙이 망설였다.
“그 옷은 공무원 월급으로 사기는 좀….”
서정우가 통 크게 나갔다.
“얼마입니까?”
“이백만 원.”
그는 살짝 당황했다.
‘이 매장에 옷이 이렇게 많은데 한 벌에 이백? 이 아줌마 여기서 돈을 아주 삽으로 퍼담나 보다.’
이선화도 머리를 굴렸다.
‘정우 씨 월급이 얼마지? 한 달 월급 다 부어야 하는 거 아냐? 아무리 곡 저작권료를 따로 받는다 해도 이건 좀….’
그녀가 슬쩍 끼어들었다.
“연예인 DC 없어요?”
차연숙이 대답했다.
“응. 없어. 서 형사가 입을 거 아니라잖아.”
“그래도요.”
‘딱 봐도 내가 입을 거 같은데.’
서정우가 봉투를 꺼냈다.
“사겠습니다.”
그는 카드가 아니라 현금으로 옷을 샀다. 이건 악당들을 잡고 챙긴 돈이라서 은행에 입금하지 않고 현금으로 가지고 있었다.
차연숙은 살짝 놀랐다.
“어머. 현금? 아아. 알겠다. 말단 공무원이, 그것도 그냥 공무원도 아니고 서정우 형사가 내 옷을 턱턱 사면 기사가 날지도 모르겠다.”
“그냥 시끄러워지는 게 싫어서요.”
차연숙이 씩 웃었다.
“서 형사에게 팔았다는 건 비밀로 할게요.”
“그래 주시면 저야 고맙죠.”
차연숙이 직원을 시켜서 옷을 포장하게 했다.
서정우가 말했다.
“그리고 옷감을 좀 구입하고 싶은데, 어디 가서 사면 됩니까?”
“옷감?”
저쪽 세계의 차연숙이 옷감을 사다 달라고 부탁했다.
“이런 옷에 쓰는 옷감은 어디서 사는지 몰라서요.”
“개인 주문은 안 되는 게 좀 있는데…. 필요한 게 있으면 나한테 말해요. 내가 주문 넣어줄 테니까, 나중에 찾아가요.”
“그래 주시면 저야 고맙죠.”
직원이 옷을 포장하는 동안 서정우는 다른 옷들을 구경했다.
‘확실히 옷은 이쪽이 낫단 말이야.’
이선화는 포장되는 옷을 보며 눈을 반짝였다.
‘저거 내 거다. 저거 분명히 내 거다.’
차연숙이 그녀에게 작게 말했다.
“선화야. 서 형사하고 너 말이야. 열애설이 종종 터지더라?”
그녀가 살짝 미소를 지었다.
“그쵸? 남들 눈에는 그렇게 보이나 봐요. 하긴. 이렇게 같이 옷도 사러 오고 하니까.”
“그런데 말이야. 혹시 너하고는 열애설만 터지고 실제로는 다른 여자가 있는 거 아냐?”
“어머. 차 선생님. 왜 막 그런 저주를 하고 그러실까?”
“네가 걱정돼서 그러지. 저 옷을 누구 주려고 형사 월급에 이백이나 주고 사.”
이선화가 웃었다.
“에이. 아니에요. 저 옷은요.”
이선화는 예전에 목걸이를 골랐을 때가 생각났다. 서정우는 그녀에게 가장 마음에 드는 목걸이가 무엇인지 물어본 후에, 그걸 샀다.
오늘도 마찬가지다. 그녀에게 의견을 묻지는 않았지만, 그녀가 마음에 들어서 유심히 보던 옷을 샀다.
‘남 주려고 의견을 묻는 것치고는 너무 대놓고 내 취향에 맞추잖아. 저 옷도 딱 내 사이즈고. 당연히 내 거겠지.’
그녀가 믿는 건 그게 다가 아니다.
“제가 소라한테 다 알아봤어요. 포캣츠 서소라 아시죠? 걔가 정우 씨 친동생이거든요. 정우 씨는 여친이 있었던 적이 한 번도 없대요.”
“오빠가 동생한테 연애하는 거 보고하면서 하겠어? 몰래 했겠지.”
“전에는 초능력이나 초자연현상 같은 것에 관심이 많았지 여자는 쳐다보지도 않았대요. 요즘은 그런 취미는 다 졸업했다지만, 어쨌든 이전에 여자친구가 없었다는 건 확실해요. 있었던 흔적 자체가 없어요.”
그녀가 손으로 머리카락을 휙 넘겼다.
“그리고 이젠 새로 경쟁자가 달라붙는다고 해도 상관없어요. 어차피 제가 제일 예쁘잖아요.”
차연숙도 그건 동의했다.
“하긴. 그 얼굴과 몸매에 성격까지 좋은 네가 남자를 빼앗긴다는 건 말이 안 되지.”
“내가 이미 정우 씨 옆에 자리 딱 잡고 있는데, 다른 것들이 뒤늦게 찔러봤자 나한테 상대도 안 되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