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bility from Parallel Dimensions RAW novel - Chapter 189
189. 기적
서정우는 몬스터가 나오는 세계로 넘어갔다. 아무 정보 없이 이수현의 아버지에게 약을 팔 수는 없다. 약만 판다고 되는 것도 아니다. 레드 포션은 이미 상처가 아문 곳까지 회복시키지는 못한다.
그는 우선 각성자 수사대 권병철 과장을 만났다.
서정우가 반갑게 인사했다.
“과장님. 우리 요즘 되게 자주 보네요.”
권병철은 하나도 반갑지 않았다. 그는 서정우가 왜 친하게 구는지 도무지 알 수가 없었다.
“어. 그러게 말입니다. 김수철에 대한 건 아직….”
“오늘은 다른 사람에 대해 물어보려고요.”
“각성자 수사대가 사람 뒷조사해주는 곳은 아닙니다만?”
“에이. 우리 사이에 왜 이러시나. 여기 선물도 가져왔는데.”
서정우가 술병을 탁자 위에 올려놓았다.
“어? 이건?”
“위스키입니다. 블랙 라벨. 다음에는 블루를 찾아볼게요.”
권병철이 자기도 모르게 입맛을 다시다 정신을 차렸다.
“이런 걸 준다고 해서….”
“다음에 과장님이 위험한 상황에 빠지면 연락하시고요.”
“누구를 찾아주면 됩니까?”
권병철은 각성자의 범죄를 수사한다. 일반 경찰도 종종 각성자와 싸우지만, 권병철은 매번 각성자와 싸운다. 당연히 위험하다.
‘이 구출 카드를 내 부하를 구할 때도 쓸 수 있을까?’
서정우가 간단한 신상 정보를 내밀었다.
“이병훈. 53세. 이번엔 주민등록번호도 있습니다.”
“알고 싶은 건?”
“평판.”
살아있는지는 묻지 않았다. 그건 평판을 조사할 때 자연스럽게 알게 된다.
권병철이 부하에게 전화를 걸었다. 생존 여부는 바로 파악됐다.
“찾았습니다. 어떤 사람인지 조사해서 이메일로 보내겠습니다.”
* * *
서정우는 권병철과 헤어진 후에 각성자 특수부대 중령 윤현식을 만났다.
윤현식은 엄청 반가워했다.
“정우야! 다음 작전 같이 뛰게? 다들 진짜 너만 기다리고 있다.”
서정우가 술을 한 병 쓱 내밀었다. 이미 상표를 떼고 날짜도 지웠다.
“형. 이거 진짜 위스키야.”
윤현식이 활짝 웃으며 술을 받았다.
“우리 사이에 이런 걸 주면 나야 좋지. 하하하.”
“술값으로 장비 하나만 빌려줘.”
“뭔데? 뭐가 필요하냐? 총 필요해? 조준기? 자이로 위치 표시기? 말만 해.”
“야전 긴급 척추 회복 장치.”
윤현식은 술병을 든 채로 멈칫했다.
“어? 뭐?”
“레드 포션을 쓰는 버전으로.”
윤현식이 술병을 도로 내려놓았다.
“야. 내가 이해가 안 가서 그러는데, 서울에 사는 민간인이 그게 왜 필요해? 다친 사람이 있으면 병원에 데려가면 되잖아.”
“무기도 아닌데 용도는 묻지 말고.”
서정우가 요구한 건 척추가 손상된 사람을 치료할 때 쓰는 장비다. 그 장비와 레드 포션만 있으면 전쟁터 한복판에서도 손상된 곳을 회복시킬 수 있다.
그런데 그 장비가 실제로 쓰이는 경우는 거의 없다.
레드 포션이 기적의 치료제이기는 하지만, 상처가 어느 정도 아문 사람에게는 효과가 없다. 이미 엇나간 방향으로 회복된 것을 그 이전 상태로 돌려놓는 효능은 없기 때문이다.
그런 환자는 병원에 데려가야 한다. 그러면 의사가 회복된 부분을 다시 손상시키고, 그곳에 레드 포션을 사용해 도로 회복시킨다.
레드 포션은 구하기가 워낙 어려워서 병원에도 재고가 잘 없지만, 일단 약만 구하면 부상에 의한 척추 손상은 그런 방법으로 어렵지 않게 치료할 수 있다.
당연히 민간에서는 야전 긴급 척추 회복 장치가 필요 없다. 병원에 가는 게 훨씬 안전하고 치료도 확실히 된다. 전쟁터라 해도 야전 병원으로 후송해서 치료하는 게 낫다.
그런데 몬스터 점령지에 고립된 사람이 척추를 다쳤고 레드 포션도 없다면, 병원은커녕 탈출도 어렵다.
그렇다고 다친 사람을 죽게 내버려둘 수는 없다. 보통은 다른 상처 치료제를 이용해 일단 목숨은 붙여놓는다.
그런 특수한 경우에 그 사람을 구출하러 들어갈 때 가져가는 장비가 야전 긴급 척추 회복 장치다.
윤현식은 이해가 가지 않았다.
“야. 그건 진짜 특수한 경우에 구출팀이 가지고 들어가는 장비잖아. 전쟁터에서도 어지간하면 그 위험한 장비는 안 쓴다고. 그거 실패율도 높은데.”
“난 많이 써서 익숙해.”
“하긴. 넌 자주 썼지. 너 혼자 구출하러 들어가면 부상자를 업고 나올 수는 없으니까. 요즘은 너처럼 그 장비를 잘 쓰는 녀석이 없다.”
“그거 좀 빌리자.”
“야. 도대체 누구를 구출하러 어디로 가는 거냐?”
“남의 영업 비밀을 너무 묻지 말고.”
윤현식이 술병을 보았다. 진짜 위스키는 비싸다.
“나도 확 제대해서 너하고 같이 일할까?”
“군대에서 형을 잘도 놔주겠네.”
“그치? 너 그만둘 때 나도 같이 그만뒀어야 하는데.”
윤현식이 한숨을 내쉬었다.
“옛날이 좋았는데 말이야. 너 있을 때만 해도 침투나 장거리 정찰 작전 성공률이 되게 높았잖아. 애들도 용감했고. 살아만 있으면 네가 구하러 올 거라고 믿고 다들….”
서정우가 그의 말을 끊었다.
“이 형이 왜 말을 돌리지?”
윤현식이 어색하게 웃었다.
“표 나냐?”
“뭐가 문제인데?”
“그건 우리도 하나밖에 없는 장비야. 술 한 병으로는 좀….”
“어차피 안 쓰잖아. 하루만 빌릴게.”
윤현식이 입맛을 다시며 본론을 꺼냈다.
“정우야. 다음 양방향 게이트 조사 작전 말이야.”
“저번 같은 방식으로 공략작전을 짜면 이번엔 전멸당할 거야. 거긴 화력으로 밀 곳이 아니야.”
“저번 작전은 다섯 나라 특수전 담당자들이 모여서 머리를 싸매고 만든 거였다.”
“근데 망했잖아.”
“망할 뻔했지. 그때 네가 없었으면 반 이상 죽을 뻔했으니까.”
“거긴 최정예 팀을 짜서 조용히 침투해야 해. 길잡이가 제일 중요해. 최고로 뽑아.”
“네가 최고잖아. 넌 그 게이트 바로 앞까지 진입에 성공한 유일한 사람이기도 하고.”
“길잡이는 다른 부대 뒤져봐. 다른 나라 부대까지.”
“지난번 작전에서 네가 그 활약을 했는데, 다른 부대에서 누가 너하고 경쟁하려고 하겠냐?”
“가서 ‘네가 이겼다.’
라고 말하고 꼬셔. 내가 진 거로 칠게.”
“그때 작전에 참가했던 사람들이 다음에도 너를 꼭 데려오라고 부탁하더라. 그리고 그 작전은 꼭 필요해. 너도 알다시피 인류의 반격을 위한 중요한 연구….”
“그 방법이 싫으면.”
윤현식이 침을 꼴깍 삼켰다.
“싫으면?”
“우리끼리 따로 들어가든지.”
서정우도 다시 그곳에 가서 지난번에 싸우다 만 트롤을 잡고 싶다. 그 연구가 얼마나 중요한지도 안다. 게이트 너머에 대한 정보는 그도 알고 싶다.
윤현식이 긴장했다.
“진짜 소수 병력만?”
“진입만 소수가 하는 거고, 다국적 특수부대 연합군도 그대로 필요해. 양동작전을 할 사람들이 있어야 하는데 일반 보병부대를 보내면 몰살당해.”
“양동작전? 그러니까 몬스터들을 한쪽으로 쭉 유인하고….”
“우리는 다른 방향으로 침투하는 거지. 침투 경로는 저번에 좀 찾아놨어.”
“솔깃한데?”
“우리 팀에 견습 성녀는 꼭 데려가야 해.”
“당연하지. 그 연구의 핵심이 그 여자인데.”
“그래서 야전 긴급 척추 회복 장치는?”
윤현식이 활짝 웃었다.
“당연히 빌려줘야지. 야. 원래 빌려주려고 했어. 나 믿지?”
서정우가 술병을 향해 손을 뻗었다.
“그럼 이 술은 도로 가져갈게.”
윤현식이 술병을 덥석 잡았다.
“이거 왜 이러냐? 우리 사이에.”
“이거 원래 그 장비 대여료였어.”
“우리 와이프가 이런 술을 참 좋아한다. 나 오늘 집에 가서 큰소리 좀 치자.”
“알았어.”
“야. 고맙….”
“형수님한테 이 술 내가 줬다고 해.”
“어?”
“나중에 전화해서 확인할 거야.”
“야. 그건….”
서정우가 피식 웃었다.
“농담이야.”
윤현식은 가슴을 쓸어내렸다.
“어휴. 진짜 확인하는 줄 알고 깜짝 놀랐다.”
서정우가 가방에서 술을 한 병 더 꺼냈다.
“형수님 건 따로 있어. 애들 것도. 아. 애들은 술이 아니라 과자야.”
* * *
영화 제작사 이사 이수현이 그녀의 아버지인 BH 테크 사장 겸 회장 이병훈에게 말했다.
“그래서 서정우 형사를 찾아갔는데 제 스카우트 제안을 딱 거절하지 뭐예요. 연봉을 계속 올려도 꿈쩍도 안 해요.”
이병훈은 휠체어에 앉아 있었다.
“마음에 들었나 보구나.”
“실제로 위기를 해결하는 거 옆에서 보면 진짜 어마어마해요. 이 세상 사람 같지가 않다니까요. 아빠도 보면 놀랄 걸요”“나도 서정우 형사 기사는 많이 봤다. 그런 사람이면 원하는 곳이 많겠지.”
이수현이 아쉬워했다.
“네. 많아요. 대기업에서도 찾아왔는데 다 거절했대요. 돈으로 데려오는 건 불가능해요.”
이병훈은 잘 알지도 못하는 서정우보다는 딸의 건강이 더 걱정됐다.
“다친 건 좀 어떠니?”
“응급조치가 너무 잘 돼서 건강에는 아무 이상이 없을 거래요. 그래도 흉터는 남을 거라니까 비키니는 이제 다 입었죠. 뭐.”
이수현은 서정우와 만난 이야기를 한참 하고 갔다.
이병훈은 전동 휠체어를 조작해 서재로 이동했다. 그곳에서 화상회의 시스템을 켰다.
모니터에 이사 몇 명이 나타났다. 이병훈은 사고를 당한 후부터 회사에 출근하지 않았다. 전자 결재 시스템과 화상회의로 업무를 처리했다.
회의 도중에 이사들이 서로 싸웠다. 박광천 이사가 강하게 주장했다.
– 이 프로젝트만 성공하면 대박이라니까!
다른 이사가 반대했다.
– 개발비가 너무 많이 들어가잖아! 위험하기는 또 더럽게 위험하고!
– 이거 미국 정부가 제안한 프로젝트잖아! 이것만 성공하면 다음에는 더 큰 프로젝트를 딸 수 있다고!
이병훈은 이번 프로젝트는 이메일과 영상으로 보고받은 것만으로는 감이 오지 않았다.
게다가 그는 요즘 기운이 나지 않았다. 전에는 회의 시간에 이사들보다 더 소리를 질렀는데, 지금은 아무런 의욕이 없었다.
그가 손을 들었다.
“다들 진정하고, 이 문제는 조금 더 생각해봅시다.”
그날 밤에 이병훈은 휠체어를 운전해 방으로 들어갔다.
“후우. 이건 뭐 감옥이 따로 없군.”
그의 휠체어는 손가락만 까닥여도 조작할 수 있는 제품이다. 만들 때부터 그의 체형에 맞춰 특별히 제작되었고, 각종 첨단 보조장치들도 붙어 있다. 집안에 엘리베이터를 설치해 이곳에 있을 때는 어디든지 갈 수 있다.
하지만 집 밖으로 나가지는 못했다. 일 년 전에 사고를 당한 후부터 그는 병원에 갈 때 외에는 집 밖으로 나가지 않았다.
그 병원도 가지 않게 된 지 꽤 오래됐다.
“이대로 난 이곳에 스스로를 가둬놓고…. 음?”
방안에 사람이 있었다. 이병훈은 살짝 긴장했다.
“누구?”
서정우가 철가면을 쓰고 모습을 드러냈다.
“이병훈 회장님.”
이병훈이 인상을 썼다.
“사업을 하면서 날 미워하는 사람이 많이 생기긴 했지만, 암살자를 보낼 정도로 원한을 맺은 기억은 없는데….”
“너무 넘겨짚으시는군요.”
“그 가면, 철가면 아닌가? 철가면은 위험한 인물이라고 들었으니까.”
“초면에 말도 까시고.”
“가면밖에 못 봤으니 우린 아직 진짜 면을 본 건 아니지.”
“이러시면 나중에 후회하실 텐데.”
“불청객을 상대로 반말 좀 했다고 후회할 리가 있나.”
“정말 좋은 제안을 하러 왔습니다만?”
“나한테 그런 말을 하며 다가온 사람이 많았는데, 모두 사기꾼이었지.”
서정우는 이병훈이 왜 이렇게 아무것도 두려워하지 않고 말을 함부로 하는지 안다.
‘의욕을 완전히 잃었군. 희망도 잃고.’
왜 잃었는지도 안다.
서정우가 질문을 던졌다.
“다시 예전처럼 걸을 방법이 있다면, 얼마나 내시겠습니까?”
이병훈이 낮게 웃었다.
“철가면이 위험하다는 기사는 많이 봤지만, 설마 사기꾼일 줄이야. 다시 걸을 수 있다면? 십억, 아니, 백억이라도 내지.”
서정우가 얼른 말했다.
“딜.”
“음? 딜?”
그건 서정우가 저쪽 세계에서 협상할 때 습관적으로 쓰던 말이다.
그는 좀 더 구체적으로 설명했다.
“한숨 자고 일어나면 신세계가 열릴 겁니다. 잔금 이야기는 결과를 보고 이야기하죠.”
“잠이라면 낮에 많이 자서 요즘은 밤잠이 없….”
서정우가 이병훈의 팔에 주사기를 꽂았다.
“어?”
“거 좀 주무시라고.”
수면제의 약효가 이병훈의 몸에 빠르게 퍼졌다.
“이런다고 해서….”
이병훈의 고개가 젖혀졌다. 그는 그대로 잠들었다.
서정우가 불평했다.
“이 아저씨 진짜 쌓인 게 많았나 보네. 왜 싸우려고 들어? 도와주러 왔는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