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bility from Parallel Dimensions RAW novel - Chapter 191
191. 기적 III
이병훈이 어색하게 웃었다.
“제가 어제는 다시 걷는 건 불가능하다고 착각하고 말을 함부로 했습니다. 백억은 너무 크니까 좀 깎아주시면….”
서정우가 말했다.
“초면에 왜 이러실까?”
“어제도 봤는데 초면은 아니….”
“‘가면밖에 못 봤으니 우린 아직 진짜 면을 본 건 아니지.’ 어제 그렇게 말했잖습니까? 그래서 후회할 거라니까. 그러고 보니 초면조차도 아니네. 누구세요?”
“아니, 그게 아니라….”
“잔금이 아까우면 안 내놔도 됩니다. 몸을 원상태로 돌려놓으면 되니까.”
이병훈은 화들짝 놀랐다.
“뭐, 뭐라고요?”
“하룻밤 사이에 걷게 만들었는데, 원래대로 돌려놓는 거라고 못할 것 같습니까?”
못한다. 허리를 접어버릴 수는 있지만, 원래 상태 그대로 돌려놓는 건 불가능하다.
서정우는 그렇게 할 생각으로 한 말이 아니다. 상대가 딴소리 못 하게 압박하려고 한 말이다.
이병훈이 침을 꼴깍 삼켰다.
그는 이전으로 돌아가고 싶은 생각이 손톱만큼도 없다. 다만 백억 원이 너무 커서 좀 깎아보려고 한 것뿐이다.
그 돈을 만들 방법이 없는 것도 아니다. 그가 즉시 두 손을 들었다.
“드리겠습니다. 원래 드리려고 했습니다.”
“비밀도 꼭 지키셔야 합니다. 비밀이 여기서 새어나가면.”
서정우가 협박했다.
“본인이나 가족이 이런 사고를 당했을 때 그 어떤 대가를 내놓아도 이런 치료는 다시는 없습니다.”
“헉!”
이병훈에게 지난 일 년은 지옥이었다. 그는 자신은 물론이고 자식들에게도 그런 걸 겪게 하고 싶지 않다.
사고가 안 일어나면 된다는 안일한 생각도 하지 않았다.
그의 아내는 예전에 사고로 죽었다. 그도 사고를 당해 일 년을 하반신이 마비된 상태로 살았다. 그의 딸도 바로 며칠 전에 배에서 폭발에 휘말려 죽을뻔하다가 서정우에게 구출됐다.
이병훈에게 그런 사고는 언제든 다시 찾아올 수 있는 현실이다.
그가 진심을 담아 말했다.
“확실히 지키겠습니다.”
“그럼 이제 잔금 이야기를 마저 하지요.”
이병훈의 표정이 어두워졌다.
“제가 현금으로 백억을 갖고 있지는 않습니다. 자산을 현금화하려면 시간이 좀 필요한데….”
“현금이라니요? 백억을 어떻게 들고 가라고 현금으로 줍니까?”
“예? 설마 은행 이체를 받으실 겁니까?”
“설마요.”
“그럼….”
“그 돈으로 제약회사 지분을 사시죠. 제 대신.”
이병훈의 눈이 번뜩였다.
“혹시 이 기적의 약을 대량생산….”
“사람 말을 진짜 대충 들으시네. 그건 현대 기술로는 못 만든다니까. 당연히 대량생산도 불가능합니다. 오직 나만 만들 수 있습니다.”
이병훈은 하룻밤 사이에 그를 낫게 하는 약이나 치료법을 들어본 적도 없다.
그렇다고 불가능하다고 생각하지는 않았다. 이렇게 몸으로 직접 경험했기 때문이다.
‘페니실린이 처음 나왔을 때는 폐렴으로 죽어가던 사람이 하룻밤 사이에 상태가 좋아지는 기적이 일어나긴 했지. 21세기에 내가 그런 기적을 경험할 줄은 몰랐지만.’
그래도 이병훈은 이 대화로 꽤 많은 정보를 얻었다.
‘무슨 약일까? 어쩌면 약과 기적의 중간에 있는 어떤 신비한 것이 아닐까?’
그게 뭔지는 알 수 없지만, 그 약과 제약회사 지분 사이에 어떤 관계가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 정도면 충분하다. 사업가의 감이 이건 대박이라고 소리쳤다.
“알겠습니다. 어느 회사의 지분을 살까요?”
‘특정 회사를 지목한다면, 그 회사에 기적의 약이 있을 확률이 높아.’
서정우가 이쪽 세계 제약회사의 내부 사정까지 조사하는 건 어렵다.
그는 적당한 회사를 찾는 일까지 이병훈에게 맡겼다.
“인수하기 좋고 규모도 적당히 큰 회사. 현재 시중에서 팔리는 여러 치료제를 골고루 만들거나 수입해서 팔고, 생산력도 커야 합니다.”
생산력이 커야 과잉 생산된 약이 창고에 쌓이게 만들 수 있다. 그 창고에서 약을 빼돌리면 저쪽 세계로 가져갈 수 있다.
서정우가 제약회사를 손에 넣으려는 이유는, 저쪽 세계에 병 치료제를 가져가거나 저쪽에서도 쓸 수 있는 제조 방법을 알아내기 위해서다.
이병훈의 머리가 팽팽 돌았다.
‘회사를 특정 짓지 않았어. 이 기적의 약은 철가면이 기존 제약회사에서 빼돌린 게 아니야. 철가면의 오리지널이야. 이건 대량생산이 불가능하다고 했으니 제약회사를 사서 다른 약을 만들려는 거겠지. 그것도 아주 효과가 좋은 약을.’
그런데 그 계획에는 문제가 있다.
“인수라고 하셨는데, 말씀하신 회사는 백억 원으로는 못 삽니다. 본격적인 제약회사들은 덩치가 굉장히 큽니다.”
“일단 백억 원어치 주식을 사서 가지고 있으시죠. 그 주식이 필요할 때가 되면 이야기할 테니까.”
이병훈이 고개를 크게 끄덕였다.
“알겠습니다. 철가면의 지분, 백억 원어치의 주식을 잠시 맡아두겠습니다. 급한 일은 아니신 것 같으니 천천히 매집하겠습니다. 서두르면 가격이 올라서 손에 넣을 수 있는 양이 줄어듭니다.”
이병훈은 계열사를 몇 개나 가진 기업가다. 지분 문제에 밝다. 그가 설명했다.
“백억으로 인수는 못 하지만, 영향력은 행사할 수 있을 겁니다.”
“첫술에 배부를 순 없지요. 돈이 부족하니까 손님을 더 찾아야겠습니다.”
이병훈의 눈이 번뜩였다.
“제가 고객을 알아볼까요?”
“그러다 이 비밀이 세상에 유출되면 책임지셔야 하는데?”
“어, 그, 그건….”
“대상자만 조용히 알아보시죠. 남 시키지 말고, 당사자에게도 말하지 말고, 그냥 누가 적당한지만.”
“다시 활동을 시작하면 가만히 있어도 그런 소식이 들릴 겁니다. 어디서 치료받았는지 물어볼 사람이 많을 테니까요. 치료가 가능한 상태였다는 식으로 적당히 둘러댄 후에, 그중에서 선별하겠습니다.”
“회장님이라 그런가? 일을 잘하시네.”
“그거 말고도 필요한 게 있으면 얼마든지 말하십시오. 적극적으로 도와드리겠습니다.”
“일단은 그거면 됩니다.”
“아. 대상을 물색한 후에 연락을 드리려면 전화번호가….”
“알려줄 리가요.”
이병훈이 서랍을 뒤져 휴대폰을 하나 꺼내 켰다. 그는 그 휴대폰의 주소록에서 번호 두 개만 남기고 나머지는 모두 삭제한 후에, 서정우에게 내밀었다.
“제 명의의 휴대폰 중 하나인데 일 년쯤 안 쓴 겁니다. 연락은 이걸로 하시죠. 저와 제 딸의 전화번호만 남겨놨습니다.”
그가 내민 건 배터리 분리형 스마트폰이다. 서정우는 배터리를 빼고 주머니에 넣었다.
서정우가 말했다.
“좋은 거래였습니다. 잔금으로 지분 매입은 알아서 잘 해주시리라 믿겠습니다. 그럼 전 이만.”
이병훈이 급히 서정우를 불러세웠다.
“저, 잠깐만!”
“할 말이 더 남았습니까?”
이병훈이 머뭇거리다 물었다.
“저기…. 혹시 흉터 없애는 약은 없습니까? 제 딸이 배에 흉터가 크게 남아서….”
서정우는 여기 오기 전부터 이병훈이 그 부탁을 할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이수현의 배에 어떤 상처가 났는지는 서정우도 잘 안다. 그가 직접 응급조치를 했기 때문이다.
서정우가 약을 네 병 꺼내서 책상 위에 올려놓았다.
“이쪽 약 세 병은 하루에 한 병씩 마시고, 이쪽 약은 솜에 적셔서 상처에 바르면 됩니다. 의사가 의심 안 하게 잘 처리하셔야 합니다.”
이병훈이 큰소리쳤다.
“제가 오래전부터 후원하는 의사가 제 딸 치료를 전담하고 있습니다. 그 친구는 아무 소리 안 할 겁니다.”
서정우는 창문을 열고 사라졌다.
이병훈은 그가 사라진 방향을 보다가 책상 위로 시선을 돌렸다.
“역시 날 낫게 만든 기적의 약 외에 다른 약도 있구나.”
머릿속에 여러 가지 아이디어가 떠올랐다.
“철가면이 백억을 투자하는 회사에 나도 발을 담가야겠어. 인수할 때 백기사 역할도 할 수 있고, 좋은 약 몇 개만 내놓으면 주가가 폭등할 테니까 돈도 벌 수 있고, 저런 신비한 능력자와 친하게 지낼 수도 있으니까. 이건 진짜 꼭 사야 해.”
* * *
이수현은 철가면이 왔다 갔다는 말을 듣고 깜짝 놀랐다.
“네? 언제요?”
“조금 전에.”
그녀가 얼른 현관을 나가 주변을 둘러보았다.
아무도 보이지 않았다. 개 두 마리만 그녀가 놀아주려는 줄 알고 달려와서 헥헥댔다.
“너네들! 모르는 사람 보면 짖을 줄 몰라?”
“멍?”
“확 굶길까 보다.”
“끼이잉.”
그녀가 집안으로 돌아왔다. 이병훈이 약병 네 개를 내밀었다.
“이 약은 하루에 한 병씩 마시고, 이 약은 솜에 적셔서 바르라더라. 그러면 네 배의 흉터를 없앨 수 있….”
이수현이 얼른 병 하나를 열고 단숨에 마셨다. 그녀가 얼굴을 찡그렸다.
“으. 약에서 물파스 맛이 나요.”
“아니. 왜 설명도 다 안 듣고….”
“아빠를 다시 걷게 해준 사람이 준 약이잖아요. 당연히 효과가 좋겠죠. 이젠 비키니 못 입는 줄 알았단 말이에요.”
* * *
이튿날 백성민이 서정우에게 말했다.
“야. 재미있는 일이 생겼다.”
“뭔데?”
“그저께 찾아온 이수현 씨네 아버지 말이야.”
서정우는 조금 놀랐다.
“형 정보력은 진짜 놀라운데?”
이병훈은 어제 대문 밖으로 나가지 않았다. 상황을 정리하고 앞으로의 일을 준비할 시간이 필요해서였다.
‘어떻게 그걸 벌써 알아냈지? 우리 관할도 아닌데?’
백성민이 감탄했다.
“어? 너도 알았냐? 야. 역시 우린 열심히 일한다니까. 우린 진짜 열혈 형사 브라더스 아니냐?”
조민석이 옆에서 말했다.
“삼총사로 해줘요. 나도 존재감 좀 가지게.”
“세 명도 브라더스잖아.”
서정우는 다른 이유로 당황했다.
“응? 일?”
“어? 넌 뭐 이야기한 건데?”
서정우가 둘러댔다.
“그 집에 대해 뭔가 새로운 내부 정보를 알아냈나 했지.”
“내가 왜 그걸 알아보겠냐? 그저께야 궁금해서 연락 좀 돌려본 거지. 하여간 우리 관할에서 도둑놈을 하나 잡았는데, 직장이 BH 테크네? 거기 이수현 씨 아버지가 회장으로 있는 곳이잖아.”
이병훈은 BH 테크와 몇 개 계열사의 회장이다. 본사인 BH 테크는 사장을 겸하고 있다.
“그러네. 우연이네.”
“그런데 이 도둑놈이 회사에서도 뭘 훔쳐서 팔아먹었을 것 같은 예감이 들어. 그거 확인하려면 우리가 거기 방문을 해야지.”
“우리?”
“자기네 직원 일인데 내가 영장도 없이 가면 잘도 협조해주겠다. 네가 가서 이수현 씨 빽으로….”
“빽 아니라고. 그날 이야기하는 거 봤으면서 그래?”
“그만하면 빽 맞는 것 같던데. 하여간 빽 안 써도 좋으니까 같이 가자. 유명인인 네가 가면 쉽게 협조하겠지.”
* * *
서정우는 차를 몰고 BH 테크의 주차장으로 들어갔다.
차에서 내린 두 사람이 엘리베이터 쪽으로 걸어가다가, 다른 차에서 내린 사람과 백성민이 툭 부딪혔다.
백성민이 사과했다.
“아. 죄송합니다.”
상대편 비서가 부딪힌 사람에게 말했다.
“이사님. 괜찮으십니까?”
박광천이 옷에 더러운 거라도 묻은 것처럼 툭툭 턴 후에 백성민을 위아래로 훑어보았다.
“이건 뭐야?”
“예?”
“말 한마디로 사과가 되냐?”
백성민도 안에서는 실실 웃고 다니지만 밖에서는 성깔을 부릴 줄 안다.
“아니, 이 아저씨 왜 이러실까? 서로 부딪혔는데도 내가 먼저 사과했으면, 괜찮습니다. 하는 게 보통인데 시비부터 거네?”
“뭐? 아저씨? 야. 김 비서.”
“예. 이사님.”
“이 두 놈이 우리 회사 소속이면 날 모를 리 없으니까 협력업체 중 하나겠지. 어딘지 알아내서 거기 사장 당장 튀어오라고 해. 이 두 놈 당장 데려가게 할 테니까.”
“바로 전화하겠습니다.”
박광천이 옷을 한 번 툭 털었다.
“이제 내가 누군지 알겠냐?”
그는 그 말만 남기고 가버렸다.
백성민은 어이가 없었다.
“와. 뭐 저런 게 다 있지?”
비서가 화를 냈다.
“이봐! 지금 우리 이사님한테 저런 거라니!”
“당신네 이사지 우리 이사냐?”
“뭐? 너 어디 소속이야! 우리 이사님 말씀 못 들었어? 거기 아예 날려버릴까?”
“정부를 날려버리게? 와. 쿠데타라도 하게?”
“네? 정부라니요?”
백성민이 경찰 신분증을 내밀며 과장되게 말했다.
“아이고. 안녕하십니까? 민중의 지팡이입니다. 어디 국가를 한 번 날려보시지. 아니면, 같이 가서 설렁탕이라도 한 뚝배기 하시든가?”
“아, 아니, 경찰이 왜 여길….”
“범인 잡으러 왔지요. 범인. 가만있자. 범인이 일당 중에 비서도 있다고 했는데….”
박광천의 비서는 겁먹은 얼굴로 주춤주춤 물러났다.
“오, 오해가 있었나 봅니다. 저, 전 바쁜 일이 있어서 이만.”
비서가 도망치듯이 사라졌다.
백성민이 서정우에게 말했다.
“저놈 분명히 비리 저지른 거 있다. 도망치는 꼴이 딱 그래.”
서정우가 말했다.
“형 오늘따라 세게 나가네?”
“흐흐. 난 이제 옛날의 내가 아니지. 내가 그동안 너한테 얹은 숟가락이 몇 개냐? 그 숟가락 무게가 있으니까 압력 좀 들어온다고 해서 한직으로 밀려나진 않겠지.”
“올라가서 조사나 빨리 끝내고 이 근처에서 점심이나 먹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