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bility from Parallel Dimensions RAW novel - Chapter 201
201. 추격
서정우의 휴대폰으로 오정화의 비명에 가까운 욕설이 들렸다.
그는 지금 어떤 상황인지 눈치챘다.
‘젠장. 늦었나.’
일단 경고는 했다. 이제 휴대폰을 붙잡고 있을 시간은 지났다. 그는 통화를 중단하고 창밖으로 이동했다.
건물 주차장 출구 방향은 이 방의 창문과 같은 쪽으로 나 있다.
‘놈들이 호텔을 빠져나간 경우를 고려해야 해.’
적이 아직 호텔에 남아 있다면 즉시 출구부터 봉쇄해야 한다. 그 후에는 경호팀과 경찰이 알아서 해결할 수 있다.
그가 나서야 하는 상황은 적이 이미 빠져나간 경우다.
‘멀리는 못 갔어.’
그는 창문 밖을 확인했다.
여의도 도로에는 차가 꽤 많았다.
‘저 도로에 있는 차 중 한 대.’
차는 많지만 도로가 꽉 막힐 정도는 아니다. 움직임은 꽤 원활했다.
그래서 더 문제였다.
‘몇 분이면 여의도를 빠져나가겠네.’
그 전에 저 중에 어떤 차에 적이 탔는지 알아내야 한다.
여의도에서 나갈 방법은 많다. 강변북로나 올림픽대교에 올라가면 순식간에 먼 거리를 이동한다. 범인이 마포나 영등포로 넘어가면 서울 전역을 뒤져야 한다.
‘도망치다가 미리 준비된 차로 갈아타면 그때부터는 추격이 어려워. 여의도 안에서 잡아야 해.’
경찰이 저 앞 도로를 통제하려면 최소한 몇 분은 걸린다. 그 시간이면 놈들이 빠져나간다. 신호등을 전부 빨간불로 바꾸면 범인이 상황을 눈치챈다. 그러면 인질들이 위험해진다.
‘어느 차에 있지?’
3차원 공간 분석 스킬의 재사용 대기시간이 다 찼다. 그가 스킬을 다시 사용했다.
이 스킬을 쓰면 그를 향한 눈이나 카메라의 좌표를 인식할 수 있다. 그는 그동안 이 스킬 덕분에 CCTV를 쉽게 피했다.
그를 향한 시선과 카메라 렌즈의 좌표가 주르륵 떴다.
‘카메라 렌즈는 제외.’
좌표 중에서 블랙박스의 카메라와 사람의 시선은 구분할 수 있다. 카메라 좌표는 모두 제외하고 분석했다.
‘곁눈이 아니라 정확히 여기를 올려다보는 시선. 그런 시선이… 두 개!’
두 개를 찾았다. 그런데 그 두 개의 좌표가 한 대의 차에 있었다.
검은색 승합차 한 대가 호텔 앞쪽 도로 위를 달리고 있었다. 겉에는 흔히 보이는 회사 이름이 적혀 있었다.
그 이름은 무시했다. 그런 건 스티커만 붙여도 위장할 수 있다.
서정우가 서 있는 곳은 회의실이 있는 층의 바로 위층이다.
저 차에 탄 사람 두 명이 이 건물의 17층을 같이 보고 있을 이유는 하나밖에 없다.
‘이 방에 대해 알아. 저 차다.’
이 거리에서 차의 번호판을 식별하는 건 어렵다.
서정우의 사격 스킬은 여러 사격 관련 스킬의 집합체나 마찬가지이지만, 그렇다고 모든 감각이 인간의 한계를 넘어선 건 아니다. 먼 거리의 사물을 정확히 알아보는 건 원거리 감시 스킬 각성자가 낫다.
‘마포대교나 서강대교로 가기 전에 잡자.’
호텔 엘리베이터를 타고 내려가면 늦는다. 저기까지의 거리를 건너뛸 방법이 필요하다.
그에게는 마음만 먹으면 지구 반대편이라도 텔레포트로 이동할 수 있는 능력이 있다.
서정우가 스마트폰으로 창밖에 보이는 건물 풍경을 찍었다. 그건 범인들이 탄 차가 아니라 지형과 사물을 파악하기 위한 사진이다.
그는 사진을 찍은 후에 스마트폰을 끄고 평행차원 텔레포트 스킬을 사용했다.
* * *
그의 위치는 순식간에 여의도에서 여의도로 바뀌었다.
여기는 고층빌딩이 즐비하던 곳과는 완전히 다른 여의도다.
여러 해 전에 여의도에 게이트가 열리고 몬스터가 쳐들어왔다. 여의도의 고층건물은 그때 전투에 휘말려 대부분 무너졌다.
그 여의도 방어전투는 인간이 패배했다. 여의도는 한동안 몬스터에게 점령당했다. 그 땅을 수복한 건 한참 후다.
수복 후까지 남아 있는 고층건물이 몇 채 있었지만, 모두 손상이 워낙 심해 부수고 다시 짓는 것이 나았다.
그래서 지금 그가 보는 여의도는 5층이 넘어가는 건물이 없었다.
서정우가 평행차원 텔레포트 스킬을 사용한 건 17층이지만, 도착할 때는 4층 건물 옥상에 나타났다.
텔레포트의 목적지 좌표는 거의 항상 기존 사물과 중첩될 위험이 없는 안전한 곳으로 잡힌다. 학자들은 각성자의 잠재의식이 안전한 곳을 찾아 좌표를 찍는다고 생각했다.
그 안전장치가 제대로 작동하지 않은 건 다른 사람을 데리고 텔레포트를 시도했을 때뿐이다. 그 결과는 매번 참혹했다. 이제는 그런 시도를 하는 텔레포트 스킬 각성자가 아예 없다.
“마포대교냐. 서강대교냐.”
혼자서 다리 두 개를 다 막을 수는 없다. 둘 중 하나를 골라서 막아야 한다.
검은색 밴 차량의 차선을 떠올렸다.
‘우회전 쪽. 최단거리 탈출이 목표라면.’
“마포대교.”
확실한 건 아니지만, 그쪽일 확률이 더 높았다.
그가 하려고만 하면 처음부터 검은색 밴의 바로 앞에 나타날 수도 있다. 그런데 그러면 그 공간을 어떻게 건너뛰었는지 설명할 방법이 없다. 최소한 몇 분은 시간을 두고 잡아야 한다.
그가 건물에서 내려와 마포대교 쪽으로 걸어갔다. 그러면서 17층에서 찍은 사진을 확인했다.
그는 미리 점찍어둔 장소에 도착해 다시 바닥 사진을 찍었다.
“갈 때는 이 장소에서 넘어가서 장비를 확보해야겠다.”
일단 평행차원을 넘어왔으면 하루가 지나야 이전 세계로 돌아갈 수 있다.
서정우는 여의도에 온 김에 방송국으로 갔다.
“오늘 방송이 여기라고 했는데….”
그는 방송국 로비에서 이선화에게 전화를 걸려다가, 이쪽 세계의 휴대폰을 가져오지 않았다는 걸 깨달았다.
“아. 이번 임무 때문에 놔두고 왔…. 선화네?”
방송국 로비에서 이선화를 발견했다. 이선화는 그를 보고 눈을 동그랗게 떴다가 활짝 웃었다.
그녀가 도도한 걸음으로 그를 향해 걸어왔다. 그건 로비에 있는 다른 사람들의 시선을 의식한 행동이다.
그녀가 서정우의 앞에서 실실 웃었다.
“안 온다더니 왔구나? 흐흥.”
“지나가다가 들렀다.”
“그러시겠지.”
경호원으로 붙여준 서소라, 남수정, 정현수가 이선화를 따라다녔다. 다만 원거리 감시 스킬을 가진 서소라 외에는 주변을 특별히 살피지는 않았다.
어차피 남수정과 정현수는 경호 훈련을 받은 적이 없다. 대신에 두 사람은 총격전이 벌어지면 화력을 담당한다.
오늘 예능 방송에는 장현성 감독도 같이 출연한다. 장현성이 웃으며 말했다.
“영화를 방송하기 전에는 방송국에서 주연 배우들만 찾았는데, 영화가 나가고 나서는 그 친구들은 안 부르고 이선화 씨를 부르네요. 하하.”
서정우도 슬쩍 웃었다.
“영화가 대박 나는 데 선화의 역할이 컸지요.”
“하하. 당연합니다.”
그 영화에서 가장 중요한 전투 두 개는 이선화가 실질적인 주인공이다. 백상어 클랜과 싸운 것도 그녀고, 보스 몬스터를 잡은 것도 그녀다.
거기다 그녀의 연기력과 미모는 주연 배우들을 압도했다. 그녀의 전체 출연 시간은 주연보다 훨씬 적지만, 사람들은 이선화가 영화를 끌고 갔다고 생각했다.
장현성이 자랑했다.
“다음 영화도 곧 들어가기로 했습니다. 마침 딱 좋은 시나리오도 있습니다. 서정우 씨가 그때도 도와주시면 진짜 좋겠습니다.”
서정우가 물었다.
“그럼 그 영화에서는 선화가 주인공입니까?”
장현성이 미안한 얼굴로 말했다.
“저야 이선화 씨를 주연으로 쓰고 싶지만, 제작비가 도저히….”
“이렇게 확실한 성과를 보였는데도요?”
“비각성자가 주연을 맡으면 제작비가 몇 배는 더 들어갑니다. 제작 시간도 몇 배는 더 걸리고요. 게다가 특수효과는 실제보다 못합니다.”
이쪽 CG 기술은 저쪽 세계보다 한참 떨어진다. 저쪽에서는 CG를 쓰는 장면을 이쪽에서는 각성자 배우가 몸으로 때우며 찍는다.
장현성이 이쪽 세계의 현실을 말했다.
“그렇게 돈이 많이 드는 영화에 투자할 투자자는 없습니다. 방송국도 마찬가지입니다.”
서정우가 저쪽 세계를 생각했다. 저쪽 이선화는 톱스타다. 그녀가 주연을 맡겠다고 하면 투자자 모으는 건 일도 아니다.
장현성이 말했다.
“대신에 이선화 씨를 이번에도 주연급 조연으로 쓰겠습니다. 그 정도는 투자자를 설득할 수 있습니다.”
서정우가 이선화를 돌아보았다.
“다음 영화 계약은?”
“아직 안 했지. 날 주연으로 쓰겠다는 데가 있을지도 모르잖아.”
말은 그렇게 하지만 큰 기대를 하는 표정은 아니다.
서정우는 권세창이 생각났다. 그는 저쪽 세계에서는 사고사로 위장된 살인 사건의 피해자이지만, 이쪽에서는 멀쩡히 살아 있다.
그런데 이쪽 권세창은 시나리오로 먹고사는 걸 포기하고 몬스터 도축 공장에서 일한다.
‘김성준 씨가 저쪽 세계 권세창 씨가 남긴 시나리오를 받아준다고 했는데.’
그 영화 시나리오의 완전한 원본은 가족만 가지고 있다.
‘역시 그 시나리오를 받아다 이쪽 실정에 맞게 고쳐서 직접 찍는 수밖에 없구나.’
아무리 저예산으로 영화를 만들려고 해도 돈은 많이 들어간다. 장비나 필름 값도 들고 스태프 인건비도 나간다. 영화를 찍으러 다니려면 버스도 한 대 빌려야 한다.
‘저쪽에서 제약회사를 인수하고, 이쪽에도 하나 차리고, 저쪽 창고에서 빼돌린 약을 이쪽에서 팔면 영화 제작비쯤은 마련하고도 남겠지.’
그 일을 이쪽 정부나 이쪽 제약회사와 같이 진행할 생각은 전혀 없다. 그는 이쪽 세계의 권력자들을 믿지 않는다.
‘강현민 같은 사람도 있긴 있지만.’
강현민은 이쪽 세계의 유력한 차기 대권 후보다. 저쪽 세계에서는 언론에서 별로 다루지 않는 국회의원이다.
저쪽 강현민은 힘이 모자라다. 이쪽은 권력이 있지만, 그래도 같이 할 수는 없다.
‘이쪽 강현민의 주변에 있는 정치인들 대부분은 이익을 바라고 모였으니까.’
이쪽은 강현민 혼자만의 힘이나 인기로 차기 대권 후보가 될 수 있는 세계가 아니다. 걸레라도 빨아서 쓸 수 있으면 써야 하는 세계다. 이쪽 세계의 정치판에는 널린 게 걸레이기 때문이다.
서정우는 그 걸레들에게 능력을 공개했다가 뒤통수를 맞는 위험을 감수할 생각이 전혀 없다.
* * *
이튿날 서정우는 이선화와 함께 여의도로 갔다. 오늘은 이선화의 라디오 방송이 있는 날이다.
이선화가 자랑했다.
“나 이러다 스케줄 쏟아져서 엄청 바빠지면 어떻게 하지?”
서정우는 저쪽 이선화가 그런 때에 어떻게 대처하는지 생각해보았다.
“스케줄 많이 받지 마. 가려서 받아. 그렇게 해도 계속 너를 찾을 테니까.”
“이번 영화 인기가 사라지면 나를 안 불러줄 텐데? 기회 있을 때 최대한 알려야 하잖아.”
“앞으로도 네 영화는 계속 뜰 거야. 내가 그렇게 만들 테니까 나만 믿어.”
이선화가 웃었다.
“흐흐. 알았어.”
이선화가 라디오 프로그램에 게스트로 들어갔다. 시간은 충분했다.
서정우는 방송국 밖으로 나와 저쪽 세계에서 점찍은 자리로 이동했다.
“이제 구하러 가야지.”
그는 평행차원 텔레포트 스킬을 사용했다.
낮은 건물들이 갑자기 고층빌딩으로 바뀌었다.
그는 좁은 골목에 나타났다.
CCTV는 없었다.
배달 오토바이에서 막 내린 사람이 건물 안으로 들어갔다.
서정우는 17층에서 찍은 사진을 보고 여기에 오토바이가 있다는 걸 알았다. 그래서 일부러 이곳으로 이동했다.
오토바이에는 시동도 걸려있었다.
그는 그 오토바이를 타고 골목을 질주했다.
골목의 폭이 좁았지만 상관없었다. 오토바이는 저쪽 세계 전쟁터에서 많이 탔다.
오토바이는 자동차보다는 적은 자원으로 만들 수 있지만, 방탄판을 설치할 수 없고 넘어지기만 해도 타격을 크게 입는다는 단점이 있다.
오토바이를 타다 넘어졌을 때 근처에 몬스터가 있으면 높은 확률로 죽는다. 그래서 전쟁터에서 오토바이를 쓰려면, 굉장히 잘 타야 한다.
서정우는 오토바이를 타고 산을 넘어다니던 실력으로 골목 사이를 달렸다.
몇 사람이 그가 오토바이를 타고 달리는 걸 보았다. 워낙 빨리 사라져서 사진을 찍을 틈은 없었다.
“방금 뭐가 지나갔냐?”
“드리프트가 오토바이로도 되는 거였어?”
“그것도 이런 골목에서?”
서정우는 검은색 밴이 마포대교로 간다고 추측했다. 그는 지름길을 이용했다.
골목을 빠져나가자마자 여의도 공원이 나왔다. 그대로 여의도 공원을 달렸다. 그를 본 사람이 몇 명 있었지만 무시하고 달렸다.
“아니! 누가 공원에서 오토바이를 타!”
“미친 거 아냐?”
서정우는 여의도 공원을 관통하며 오토바이의 속도를 계속 높였다.
공원 바로 바깥 넓은 도로 위를 달리는 검은색 밴이 보였다.
‘찾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