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bility from Parallel Dimensions RAW novel - Chapter 212
212. 입장료
BH 테크 이병훈이 말했다.
“따님을 살릴 수 있다는데 지금 돈이 문제입니까?”
HG 테크 사장 강성훈은 망설였다. 액수가 하도 크기 때문이다.
“그야 그렇지만….”
그는 원래 딸을 살리기 위해서라면 무슨 수든 다 쓸 생각이었다. 치료 전에 치료비를 요구했으면 백억이 아니라 더 많은 돈이라도 약속할 수 있었다.
그런데 딸의 치료는 이미 시작됐다. 뒤늦게 치료비 백억 원에 대해서 들으니 망설임이 좀 생겼다.
“어떻게 반이라도 좀 깎아주시면….”
반으로 깎으면 오십억 원이다. 그 정도는 외곽의 건물 하나만 팔면 마련할 수 있다.
“그러면 후회하실 텐데요?”
“설마 돈을 안 주면 치료를 중단한다는 겁니까?”
“서정우 형사는 그런 사람이 아닙니다. 거 사람을 어떻게 보고.”
“그럼 무슨 말입니까?”
“그 백억 말입니다. 그냥 사라지는 게 아닙니다.”
“예?”
이병훈이 목소리를 낮췄다.
“서정우 형사는 제약회사 인수를 추진하고 있습니다.”
“형사가 제약회사를요?”
“오늘 따님을 치료하는 것만 봐도 서 형사가 평범한 형사는 아니잖습니까?”
“그건 그렇습니다만.”
“간판만 있는 작은 회사가 아니라 제대로 된 연구 생산 시설을 갖춘 곳을 인수할 계획입니다. 서 형사는 살인마나 테러리스트를 잡느라 바쁘니까 제가 그 일을 대신 처리하고 있습니다.”
“그런 회사가 백억으로 인수가 됩니까?”
“부도 날 회사를 인수하는 게 아니라면 당연히 어렵지요. 협력자가 더 필요합니다. 일단 제가 백억, 강 사장님이 백억. 몇 명만 더 찾으면 조건에 맞는 회사를 인수할 수 있습니다.”
강성훈의 머릿속에 돈 되는 생각 하나가 떠올랐다. 그가 딸이 치료받는 방을 휙 돌아보았다.
“설마….”
“그 설마가 맞습니다. 서 형사의 비술로 생산한 약 몇 종류만 팔아도 회사 가치가 얼마나 뛰어오르겠습니까?”
강성훈이 침을 꼴깍 삼켰다.
“다른 병에도 듣는 비술이 있다면, 주가가 폭등할 겁니다.”
“그런 약이 있습니다. 그건 제가 장담합니다. 그래서 저는 개인적으로 그 회사 주식을 더 사려고 합니다. 회사의 주가가 오르면 그것만으로도 이익이고, 주총에서 서 형사의 백기사도 할 수 있고.”
강성훈은 이제 상황을 완전히 이해했다.
치료비로 백억 원은 너무 비싸다 싶지만, 그게 투자비용이라고 생각하면 이야기가 완전히 달라진다.
“알겠습니다. 백억은 그러니까 우리 딸 치료비만이 아니라 입장료까지 포함된 거군요.”
“바로 그겁니다. 입장료. 그리고.”
이병훈은 서정우가 철가면이라는 걸 안다. 그런데 그걸 강성훈에게 알려줄 수는 없다.
오늘 치료의 비밀을 지키려면 다른 방식의 제어장치가 필요하다. 기업가에게 돈은 꽤 좋은 제어 수단이다.
이병훈이 목소리를 낮췄다.
“물론 강 사장님이 딸의 목숨이 걸린 약속을 어길 분은 아니지만, 혹시나 해서 하는 말입니다. 이게 소문나면 우리가 먹을 게 줄어듭니다. 먹어도 서정우 형사하고 우리 협력자들끼리만 먹어야지요.”
강성훈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 백억에 추가 투자금까지 마련하려면 저도 건물과 땅을 부지런히 팔아야겠습니다. 물론 그건.”
그가 걱정스러운 눈으로 딸의 방이 있는 방향을 보았다.
“제 딸이 얼마나 회복되는지 본 후에 결정할 일입니다만.”
“물론 그러셔야지요. 어차피 회사 인수도 하루 이틀에 되는 게 아니니까, 남들이 눈치 못 채게 천천히 준비하시죠. 저도 그러고 있습니다.”
* * *
서정우가 강세영의 방에서 나왔다. 치료 시간은 5분밖에 걸리지 않았다.
강성훈이 급히 물었다.
“치료에 무슨 문제라도 있습니까?”
“아니요.”
“그런데 왜 벌써 나오십니까? 아. 혹시 치료비 문제 때문에? 이 회장님에게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저도 이 회장님과 같은 조건으로 참여하겠습니다.”
“해독이 끝났습니다.”
“네?”
강성훈이 당황한 얼굴로 시계를 확인했다.
“5분도 안 지났는데….”
“병 치료가 아니라 독을 중화시킨 거라서 오래 안 걸립니다.”
“하, 하지만 제 딸 치료는 지난 일 년 동안….”
이병훈이 얼른 바람을 잡았다.
“동양 무술의 신비한 비전이 참 놀랍지 않습니까?”
이병훈은 이 상황을 이상하게 생각하지 않았다.
사람은 원래 자기가 직접 경험한 일은 상식을 벗어나더라도 쉽게 믿는다.
이병훈은 하반신 마비로 일 년을 고생하다가 하룻밤 사이에 걸을 수 있게 됐다. 반면에 강세영은 아픈 건 일 년 전부터지만 걷지 못하게 된 건 한 달밖에 되지 않았다. 이병훈은 여기 오기 전부터 강세영의 치료가 오래 걸리지 않을 거라고 예상했다.
‘역시 대단해.’
서정우가 설명했다.
“독은 제거했고 부작용도 없앴습니다.”
해독제는 구하기 쉬웠다. 부작용을 없애는 데 사용한 레드 포션이 훨씬 더 구하기 어렵다.
“잠깐 들어가 보시는 건 괜찮지만, 깨우지 마시고 내일 아침까지 푹 자게 두시죠.”
강성훈이 얼떨떨한 표정으로 말했다.
“어, 얼굴만 보고 나오겠습니다.”
사실 지금 깨워도 된다. 굳이 하룻밤 자게 놔두라고 한 건, 그래야 레드 포션의 위력을 숨기기 쉽고 상황도 더 그럴듯하게 보일 것 같아서다.
강성훈은 딸의 방에 들어갔다. 강세영은 편안한 표정으로 잠들어 있었다.
그렇게 편안한 모습을 마지막으로 언제 봤는지 기억도 잘 나지 않았다.
그는 소매로 눈물을 닦고 방을 나갔다.
서정우는 보이지 않았다. 이병훈만 거실에서 그를 기다렸다.
강성훈이 물었다.
“서정우 형사는….”
“갔습니다. 내일 아침이 되면 결과를 확실히 알 수 있지만, 어지간하면 괜찮을 거라더군요.”
“우리 딸이 참, 편안하게 자고 있더군요. 몇 달만인지 모르겠습니다.”
“자. 그럼 우리는.”
이병훈이 씩 웃었다.
“사업 이야기나 좀 더 합시다. 제약회사 몇 개를 후보로 올려놨는데, 강 사장님 의견도 듣고 싶군요.”
* * *
이튿날 아침에 강세영이 눈을 떴다.
‘정말 나았을까?’
잠에서 깨자마자 그 생각이 먼저 들었다.
‘컨디션은 되게 좋은데….’
상쾌할 정도로 몸이 개운했다.
그녀가 몸을 움직였다. 일어나는 게 무척 쉬었다.
“아….”
그녀의 표정이 밝아졌다. 희망이 생겼다.
그녀가 침대 밖으로 다리를 조심스럽게 내밀었다. 발끝이 바닥이 닿았다.
몸을 일으켜보았다. 자연스럽게 일어날 수 있었다.
잠시 멍하게 그렇게 서 있다가 몸을 내려다보며 말했다.
“나, 진짜 나았구나.”
어제만 해도 죽을 날만 기다리고 있었는데, 하룻밤 사이에 나았다. 꿈을 꾸는 것 같았다.
“기적이란 게, 실제로 있었어.”
기적을 그토록 바라긴 했지만 믿지는 않았다. 그런데 그녀의 몸에 기적이 일어났다.
그녀가 방문을 열고 거실로 나갔다.
그녀의 아버지 강성훈이 소파에 앉아서 한쪽 다리를 덜덜 떨고 있었다.
그녀가 말했다.
“할아버지가 다리 떨면 복 나간다고 했는데.”
강성훈이 벌떡 일어났다.
“세영아!”
그녀가 방긋 웃으며 물었다.
“아빠. 거기서 밤 샜어?”
“당연하지! 내가 지금 잠이 오겠냐!”
“엄마는? 아셔?”
강성훈이 휴대폰을 급히 잡았다.
“이제 연락해야지! 미리 말했다가 효과가 없으면 네 엄마 쓰러질까 봐 말 못 했다.”
강성훈의 아내는 강세영의 치료법을 찾기 위해 유럽 유명 병원들을 돌아다니고 있다.
강세영이 웃었다.
“엄마가 욕하겠다. 늦게 말했다고.”
“그깟 욕 좀 먹으면 어때!”
그녀가 주변을 두리번거렸다.
“서정우 님은?”
“어? 서 형사는 널 해독하고 바로 갔다. 자기가 할 건 다 했다고….”
“그렇구나. 이해해. 형사니까 밤에 자야 출근하지. 그래서 갔을 거야.”
강성훈이 조심스럽게 물었다.
“그런데 어느 정도나 나은 것 같아? 어디 아픈 덴 없고?”
한때 리듬체조선수였던 강세영이 두 팔을 옆으로 벌리고 제자리에서 빙글빙글 돌았다.
“나 지금 엄청 상쾌해.”
* * *
서정우가 AKX 픽처스 사장 김성준을 만났다.
김성준이 USB 메모리스틱을 내밀었다.
“세창이 아버님이 복사해준 시나리오 최종본입니다.”
“고맙습니다.”
권세창을 살해한 마약조직과 킬러를 얼마 전에 서정우가 잡았다.
“세창이의 가족들이 서 형사님에게 고맙다는 말을 꼭 전해달라고 하더군요.”
* * *
서정우는 몬스터와 싸우는 세계로 넘어가 살아 있는 권세창을 만났다.
“이 시나리오를 우리 상황에 맞게 수정해 주시죠.”
권세창은 살짝 망설였다. 하고는 싶은데 현실이 발목을 잡았다.
“제가 직장이….”
“퇴근 후에 작업하셔도 됩니다. 결과물을 당장 받아야 하는 건 아니니까.”
이쪽 세계는 영화를 빨리 만들고 TV로 바로 소비한다. 그러다 보니 시나리오 수정 작업 단계는 빨리 끝내는 경우가 많았다.
“아. 천천히 해도 됩니까? 알겠습니다. 제가 잘 고치겠습니다. 그런데….”
“시나리오는 권세창 씨 이름으로 나갈 겁니다.”
“예? 그래도 됩니까?”
“원작자가 그걸 원합니다.”
“아니, 왜….”
“그러니까 우리 세상에 맞게 잘 고쳐주십시오. 그거 어차피 그대로는 못 씁니다. 지금은 등장인물 중에 각성자가 하나도 없는데, 영화로 만들 때는 주인공만 비각성자고 나머지 주요 인물은 각성자를 쓸 겁니다.”
서정우도 시나리오를 읽어봤다.
‘나하고 애들이 나오면 딱 맞네. 수정이는 연기 좀 하는 거 확인했으니까, 현수만 악당 역할 잘하면 되겠다.’
* * *
서정우가 형사로 사는 세계로 돌아왔다.
팀장 권병철이 말했다.
“정우야. 너 오늘 어디 좀 가야겠다.”
“그렇게 말 하시는 걸 보니까 우리 일은 아니겠네요?”
“어. 네가 꼭 참석해달라는 행사가 있어서.”
“설마 또 호텔에서 하는 건 아니겠지요?”
“에이. 아니지. 저번 사건 터진 지 며칠 지나지도 않았는데 어느 호텔에서 널 반기겠냐? 네가 간다고 하면 비상이 걸릴걸? 야외 공원에서 하는 자선기금 모금 행사야. 너 좀 보내달라는 압력이 워낙 많이 들어오니까, 조용히 시키려면 숙제 한 번 더 해야겠다.”
“야외 행사로 숙제가 되나요?”
“그 행사에 국회의원이 몇 명 와. 기업체에서도 오고. 그리고 취지가 좋잖아. 자선기금 모금 행사.”
백성민이 옆에서 말했다.
“저번에 배가 침몰할 뻔한 것도 자선 행사였는데.”
권병철이 한소리 했다.
“넌 말을 해도 재수 없게. 이번엔 미리 좀 알아봤는데 평범한 행사니까 안심하고 가서 사인이라도 하고 와.”
서정우는 멈칫했다.
“사인이요?”
“사인회도 한다던데?”
사인회 때문에 앉아 있으면 카메라를 피하기 어렵다.
“아. 범인 잡으러 가야지. 어딘가에 아주 흉악한 살인마가 있을 것 같은 느낌이 듭니다.”
“야. 사인 안 해도 되니까 참석만 해. 참석만.”
* * *
BH 테크 회장 이병훈의 아들 이성우가 영화 제작사 이사인 누나 이수현을 찾아왔다.
“누나. ES 엔터에 인맥 좀 없어?”
“사장하고 몇 번 만난 적 있어. 왜?”
이성우가 짜증을 냈다.
“그 말을 왜 이제 하는데!”
“너 미쳤냐? 죽을래?”
이성우가 당장 어깨를 움츠렸다.
“아니, 누나. 그럼 나 디멘션 곡 하나만 받아주라.”
“그런 부탁 할 만큼 잘 아는 사이는 아니야. 그리고 넌 정신 좀 차려. 음반을 벌써 몇 번을 말아먹었어? 포기하고 아빠 일이라도 도와드려.”
이성우가 손으로 자기 머리를 가리켰다.
“난 이게 회사 일 쪽으로는 안 돌아가서 안 돼. 알잖아.”
“알지. 너 바보인 거.”
“누나는 똑똑해서 참 좋겠네.”
“요즘 안 맞으니까 근질거리지? 죽는다.”
“오늘 자선기금 모금 행사가 하나 있는데 거기 남수정이 노래 부르러 온대.”
“음? 남수정?”
이수현도 남수정을 안다.
“걔한테 관심 있어? 걔 고3 아냐? 너 변태야?”
“지금 누굴 한 방에 보내려고! 찝쩍대려는 거 아니거든?”
“그럼?”
이성우가 설명했다.
“걔가 ES 엔터 소속인 데다가 디멘션 곡도 받고 같이 공동작곡도 했잖아. 걔한테 부탁해서 디멘션을 소개받고 싶은데, 자연스럽게 접근하려면 초대장이 필요해.”
이성우가 두 손을 맞붙여 비는 시늉을 했다.
“혹시 누나한테 들어온 거 없어?”
“그 행사라면 들어본 것 같은데….”
이수현이 버리려고 한쪽에 치워놓은 초대장들을 쓱쓱 넘겨보았다.
“이건가?”
이성우가 활짝 웃었다.
“어! 그거! 이야아. 누나가 도움될 때가 다 있다니!”
그녀가 초대장을 내밀었다.
“옜다. 나 바쁘니까 이거나 먹고 떨어져.”
이성우가 초대장을 받으며 말했다.
“간 김에 서정우 사인도 받…. 어? 누나. 초대장에서 손을 놔야지. 왜 안 놔?”
이수현이 초대장을 꼭 잡은 채로 말했다.
“누구라고?”
“남수정. 요즘 엄청 떴잖아.”
“아니. 걔 말고.”
“서정우?”
“형사가 거기 왜 와?”
“내 친구가 거기 행사에 알바 하러 들어갔는데, 막판에 참석자 이름에 추가됐다는데? 그러니까 이거 좀 놓지?”
이수현이 초대장을 잡아당겼다.
“야. 여기 내가 갈 거야.”
“이제 와서 왜 딴소리야?”
“생각이 바뀌었어. 좀 놓지?”
“누나가 놔!”
“웃기지…. 앗!”
이수현이 소리를 질렀다.
“야! 초대장 찢어졌잖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