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bility from Parallel Dimensions RAW novel - Chapter 217
217. 차동식
2선 의원 김진석의 보좌관이 머뭇 거렸다.
“그거야 그렇습니다만, 서정우를 제낄 수 있는 능력자가 설사 있다 해도 우리가 의뢰를 못하면 어차피 의미가 없으니까….”
김진석이 짜증을 냈다.
“젠장.”
보좌관이 김진석을 달랬다.
“의원님. 상대가 너무 유명인입니다. 설사 습격이 운 좋게 성공한다 해도 뒷감당을 못 합니다.”
“의심을 받아도 내가 받진 않을 거야.”
‘이홍국은 의심받을지 몰라도.’
김진석이 다른 방법을 떠올렸다.
“가족을 협박하는 건?”
보과관이 진심을 담아 말렸다.
“의원님. 서정우는 연쇄살인마나 테러리스트도 그날 안에 찾아내서 체포하는 괴물입니다. 가족에게 손을 대는 순간 그 사건이 서정우의 수사 리스트 첫 줄에 올라갈 겁니다. 그럼 우린 다 끝장입니다.”
김진석은 짜증이 치밀었다. 그가 탁자 위의 술병을 쓸어버리며 소리를 질렀다.
“씨발. 겨우 순경 하나 못 자르면 그게 국회의원이야? 이러려고 내가 국회의원이 됐어? 겨우 이것밖에 안되면 선거 때마다 그 많은 돈을 뭐 하러 뿌리냐고!”
그 룸살통의 문은 방음처리가 잘 되어 있어서 목소리가 새어나가진 않았다.
“야. 방법 찾아. 어떻게든 찾으라고! 아니면 사표를 쓰던지!”
보좌관이 망설이다가 말했다.
“서정우는 워낙 유명하니까 물리적으로 칠 수는 없습니다. 그러다 우리가 시켰다는 게 들키면 큰일 납니다. 그런데 직접 치는 게 아니라면, 방법이 하나 있긴 있습니다. 다만, 돈이 꽤 들고 성공할지도 확실하지 않아서….”
“뭔데?”
“해킹입니다.”
“응?”
“서정우의 휴대폰이나 컴퓨터, 아니면서정우가 이용하는 시설의 컴퓨터를 해킹해서 약점을 찾아내는 겁니다. 닥치는 대로 털다 보면 뭐 하나 걸리지 않겠습니까?”
김진석의 표정이 풀렸다.
“그거 괜찮네. 뭐가 나오냐에 따라 당장 날려버릴 수도 있고 아니면 약점으로 쥐고 부려먹을 수도 있으니까. 그런데, 탈 안 나게 시킬 놈은 있고?”
“돈만 주면 의뢰인의 신분은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일해주는 해커가 있다고 들었습니다.”
“어떤 놈인데?”
“그 해커가 누구인지는 아무도 모릅니다. 그 누구도 본 적이 없습니다. 마치 유령 같은 놈이지요.”
* * *
서정우가 몬스터와 싸우는 세계로 넘어갔다.
그는 각성자 수사대 2과장 권병철을 만났다.
“김수철을 찾는 건 진전은 좀 있나요?”
권병철이 인상을 찌푸렸다.
“흔한 이름하고 해커일 수도 있다는 것 말고는 아무것도 안 알려줬으면서 어떻게 찾으라는 겁니까?”
“해커이거나, 아니더라도 최소한 컴퓨터와 관련된 일을 할 것 같은데요.”
“그것조차 확실하지 않다고 했잖습니까?”
“그러게요. 그게 문제죠.”
권병철이 진지하게 말했다.
“경찰이 파악한 해커 중에 김수철 이라는 사람은 없습니다. 그 말은 체포된 적도 없고 유력한 용의자가 됐던 적도 없다는 뜻인데, 각성자 수사대가 해커 전담반도 아니고 그런 놈을 어떻게 찾겠습니까? 그래서.”
권병철이 문서를 하나 내밀었다.
“해커를 한 명 알려줄 테니까, 이놈에게 그 해커를 찾으라고 하는 게 어떻겠습니까? 아무래도 자기들끼리는 아는 게 좀 있겠죠. 내가 그걸 직접시키기는 좀 그렇지만, 서정우 씨라면야.”
서정우가 문서를 받았다.
“차동식? 이해커를 선정한 기준은요?”
“해킹 실력은 평범하지만, 그 바닥 소문에 밝습니다.”
“그런 해커는 많을 텐데요.”
“최근에 증거가 하나 나왔는데, 체포하려다가 넘겨주는 겁니다.”
“딱 한 명만 골라준 거 보면 선정 이유가 그게 다가 아닐 것 같은데….”
권병철이 말을 돌렸다.
“잔챙이니까 총으로 쏴버리지는 마시고.”
서정우가 간 후에 권병철이 고개를 흔들었다.
“이게 모래사장에서 바늘 찾으라는 소리는 그만하겠지.”
그가 굳이 차동식에 관한 자료를 넘겨준 건 다른 이유도 있어서다.
“끼리끼리 해먹고, 난 좀 그만 괴롭혔으면. 근데 오늘은 술은 안 주고 가네.”
* * *
서정우가 차동식을 찾아갔다.
이쪽 세계는 저쪽 세계보다 반도체 집적회로 기술의 발전이 더디다. 그냥 더딘 정도가 아니라 20세기에 비해 큰 발전이 없다.
우수한 성능의 반도체 칩을 대량으로 생산하려면 큰 공장이 필요하다. 반도체 칩 공장은 크기도 커야 하지만 안정적인 환경이 반드시 유지되어야 한다. 공장에 정전사고 한 번만 일어나도 피해가 크고, 근처에서 지진이라도 나면 상황은 더 심각해 진다.
만약 공장 부지 안에 소형 하급 게이트가 열린다면 난리가 난다. 일반 공장도 게이트 때문에 박살 나는 경우가 부지기수다. 반도체 칩 공장이 입는 피해는 훨씬 더 크다.
그런 세계에서 저쪽처럼 어마어마 한 크기의 대규모 반도체 공장을 만드는 건 어렵다. 무리하면 만들 수는 있지만, 게이트가 그 공장 한복판에 열리면 회사가 같이 망한다. 게다가 공장의 생산 공정에 신기술을 적용하는 것도 쉬운 일은 아니다.
그렇다고 컴퓨터를 안 만들 수는 없다. 공장이 부서지면 다시 짓더라도 CPU와 메모리는 생산해야 한다. 결국 반도체의 성능은 20세기 수준에서 멈췄다.
대신에 공장이 부서지면 똑같은 것을 금방 새로 지었다. 공장의 크기는 점점 작아졌고 신기술도 적용되지 않았지만, 필요한 수요는 그럭저럭 맞출 수 있었다.
그렇게 생산된 CPU는 20세기 말에 만든 것과 성능이 비슷했다.
이쪽 세계의 군사무기를 만드는데는 그 정도 성능으로도 충분했다. 사람들이 인터넷을 사용하고 기본 업무를 처리하는데도 불편한 건 없었다.
서정우가 차동식을 찾아갔다.
차동식은 작은 전파상을 운영하고 있었다. 그는 모니터에 집중하느라 가게에 들어온 서정우를 보지도 않았다.
서정우가 그의 이름을 불렀다.
“차동식?”
차동식이 그때서야 모니터 옆으로 고개를 내밀며 물었다.
“뭐 사시려고요?”
“아니, 살건 아니고.”
차동식의 표정이 살짝 굳었다.
“누구?”
차동식의 발이 슬그미니 컴퓨터의 전원 스위치로 향했다.
서정우가 옷자락을 펄럭이며 말했다.
“동작 그만.”
옷 아래에 권총이 보였다. 권총은 이쪽 세계 사람이라면 다들 차고 다닌다.
차동식은 가게에 있을 때는 총을 차고 있지 않았다. 무게와 크기 때문에 불편해서다. 대신에 책상 위에 권총이 놓여 있었다.
그는 그 총을 잡지 않았다. 오히려 두 손을 위로 조금 들었다.
“이 손님이 무섭게 왜 이러실까? 무슨 일이신데?”
“사람 하나 찾으러 왔다.”
“잘못 찾아오셨습니다. 저는 전파상 하는 사람인데요? 흥신소는 저 사거리로 가시면….”
“너 사흘 전에 남의 회사 컴퓨터를 해킹하려고 했지?”
그 이야기는 권병철이 준 자료에 적혀 있었다.
“네?”
“너 그거 걸렸다고.”
차동식은 당황했다.
“그거 실패했는데?”
그는 실패한 해킹 때문에 설마 누가 찾아올 줄은 몰랐다.
“그런다고 죄가 안 되냐?”
“요즘 세상에 뭘 그정도 가지고….”
“합성 콩밥 안 먹어봤지? 감옥에 가서 매일 먹으면 몬스터 고기가 그리워질 거다.”
서정우가 소파에 앉으며 말했다.
“여긴 뭐 손님이 왔는데 대접이 이래? 뜨거운 물이나 가져와.”
차동식은 인상을 찌푸리며 서정우를 보다가, 뜨거운 물을 물컵에 담아 서정우의 앞 탁자에 내려놓았다. 바로 옆 책상 위의 권총은 손이 닿는 거리에 있었다.
“손님이라니까 물은 드리지.”
서정우가 주머니에서 커피믹스를 꺼내 그 뜨거운 물에 탔다.
커피 향을 맡은 차동식이 코를 벌름거렸다.
“어? 그거 혹시….”
“왜? 너도 마실래?”
차동식이 얼른다른 물컵에 뜨거운 물을 담아왔다.
“준다면야 뭐.”
서정우가 그 컵에도 커피믹스를 부어주었다.
차동식이 찻숟가락으로 커피를 정성을 다해 저은 후에, 한 모금 마셨다.
저절로 감탄이 나왔다.
“이야아. 이 달달하면서도 쌉싸름 하고 그윽한 맛. 역시 진짜 커피는 달라. 무슨 경찰이 이렇게 비싼 걸 다 마시지? 비리 경찰인가?”
“경찰이 아니겠지.”
차동식은 멈칫했다.
“어? 감옥 이야기는?”
“각성자 수사대에서 널 감옥에 보내려는 걸 내가 잘 타이르겠다고 하고 보류시켰다.”
차동식이 실실 웃으며 커피를 홀짝였다.
“흐흐. 그건 좀 고마운데?”
“넌 원거리 감시 스킬을 가진 놈이 왜 해커 짓을 하냐? 다른 일도 많을 텐데.”
서정우의 동생 서소라도 원거리 감시 스킬을 각성했다. 그녀는 어릴 때부터 그 스킬을 갈고 닦아 저격수가 되었다.
차동식이 말했다.
“나에 대해 잘 모르고 왔나 보다?”
“차동식. 해커. 실력은 고만고만하지만, 해커 사이의 인맥은 넓음. 며칠 전에 민간 기업을 해킹하려다 실패하고 역추적당했지. 뭘 더 알아야 하냐?”
차동식이 손가락으로 책상 위의 권총을 슬쩍 가리키며 말했다.
“내가 원래 각성자 특수부대출신이다.”
“어?”
차동식이 이를 드러내고 웃었다.
“내가 진심으로 싸우면 너 큰일 난다.”
“진짜냐?”
“거기까진 못 알아봤나 보다? 하긴. 원래 각성자 특수부대 정보는 비밀이 많으니까.”
서정우가 차동식을 가만히 보았다.
‘본 적 없는 얼굴인데?’
군 복무기간이 다르면 봤을 리가 없고, 겹쳐도 못 봤을 수는 있다. 각성자 특수부대의 규모는 대대급이다. 다른 대대와 달리 여단장급인준장이 부대장이고, 부대 구성도 중대나 소대단위가 아니라 팀 단위로 편제되어 있다.
각성자 특수부대는 계급보다는 능력에 따라 각자 팀을 지휘한다. 윤현식 중령처럼 능력과 전적, 경력, 계급이 다 되는 사람은 그 팀의 규모가 상대적으로 크다.
서정우는 현역에 있을 때도 그 부대 모든 대원의 얼굴을 다 알지는 못했다. 같이 작전을 뛰거나 서정우가 직접 구출하러 들어간 경우가 아니면, 임무 특성상 얼굴을 모르는 경우가 많았다.
서정우가 차동식의 옆쪽 책상 위를 힐끗 보았다. 대부분의 각성자 특수부대원은, 서정우가 권총을 보여주는 순간 저 총부터 잡는다.
그런데 차동식은 그때 오히려 손을 슬쩍 들었다. 실력에 진짜 자신이 있어서 그럴 수도 있지만, 서정우의 눈에는 다른 쪽으로 보였다.
“그렇게 보기엔 겁이 좀 많아 보이는데?”
이쪽 세계 군대에는 여러 특수부대가 있다.
다른 특수부대는 보통 각성자와 일반 병사가 섞여 있다. 강한 특수부 대일수록 각성자가 더 많이 배치되어 있다.
그런데 각성자 특수부대에는 일반 병사가 아예 없다. 전원이 각성자다.
그것도 일반 스킬이 아니라 전투 관련 스킬 각성자다.
그 부대가 투입되는 곳은 가장 위험한 전장이다. 겁이 많으면 버틸 수 있는 곳이 아니다.
차동식이 피식 웃으며 지갑을 펼쳐 신분증을 보여주었다.
각성자 특수부대 소속일 때 사용하는 신분증은 제대할 때 가져간다. 대신에 정상적으로 전역하면 제대했다는 표시가 추가로 박힌다. 차동식의 신분증에도 그 표시가 있었다.
“이런 거 본 적 있으려나. 이게 내 전역증 겸 영광의 증거지.”
서정우는 권병철이 왜 차동식을 소개해줬는지 깨달았다.
‘내 출신 부대를 알고 연결해준 거네. 자잘한 해킹 건으로 잡아넣기에는 출신 부대가 걸리니까 나한테 넘긴 건가? 하긴. 과장님이 그냥 넘겨 줄 리 없지.’
서정우가 말했다.
“그렇게 보면 맞는 것 같기는 한데….”
차동식이 실실 웃었다.
“현역에 있을 때는 내가 진짜 어마어마했다. 지금은 사정이 있어서 전파상을 하면서 조용히 지내고 있지만, 내가 다시 활동하면 큰일 나. 세상이 들썩인다고.”
“예비역 병장이 활동해봤자 뭘 큰 일까지야.”
“뭘 모르는 사람들은 꼭 이런다니까. 여의도 방어전투 알지? 내가 그 때도 진짜 어마어마하게 활약했단 말이야. 그때 여의도가 어떤 지옥이었는지 알아? 상상도 못 할 거다.”
“아. 그러냐?”
상황이 조금 변했다.
그는 같은 부대원의 얼굴을 다 알지는 못하지만, 여의도 방어전투에서 같이 싸운 부대원은 다 안다. 그런데 그때 여의도에서 차동식을 본 기억이 없다. 확인이 필요했다. 서정우가 전화를 걸었다.
각성자 특수부대 윤현식 중령이 전화를 받았다.
-정우야. 마침 연락 잘했다. 작전회의가 내일….
“난 안 가니까 거기다 내가 전에 한 말이나 전해.”
-오케이.
“형. 차동식이라고 알아?”
-응? 누구?
“각성자 특수부대출신으로 여의도 방어전투에 참전했다는데?”
윤현식의 목소리가 사나워졌다.
-어떤 새끼가 감히 그때 생존자들을 팔아? 그 새끼 어디 있어? 내가 가서 확 쏴버리….
화내던 윤현식의 목소리가 조금 변했다.
‘어? 잠깐. 차동식?’
서정우가 고개를 살짝 기울였다.
‘진짜인가?’
“아나 봐?”
-똥싸개?
“응? 똥싸개라니?”
차동식은 그 말을 듣자마자 하얗게 질렸다. 질린 거로 모자라 소파 뒤로 후다닥 넘어가 벽에 찰싹 붙었다.
차동식의 목소리가 덜덜 떨렸다.
“누, 누, 누구세요? 그, 그걸 어떻게….”
“넌 좀 닥치고. 형. 설명이 필요한 데.”
윤현식이 이야기했다.
-여의도 방어전투는 아니고, 나중에 여의도 수복 작전 때 막판에 뽑은 신병이야.
“왜 내가 모르지?”
서정우는 입대한 날 여의도 방어전투에 투입됐다.
여의도가 몬스터에게 점령된 기간은 꽤 길었다. 그때 군대는 여의도에서 몬스터가 빠져나오지 못하게 막는 게 한계였다. 그나마도 제대로 막지 못한 경우가 수두룩했다.
여의도에서 몬스터를 물리치고 그 땅을 수복한 건 서정우가 병장일 때다.
– 넌 수복 작전 디데이 전에 여의도에 먼저 침투해서 상륙 포인트 조사하러 다녔잖아. 원거리 감시 스킬이 꽤 우수한 놈이 훈련소에 있길래, 강 건너에서 널 지원하는데 쓸 수 있을까 싶어서 뽑았지.
“그런데?”
-그놈에게 시킨 일은 마포 벙커에서 한강 건너 여의도를 감시하다가, 너에게 위험이 될만한 돌발상황이 생기면 보고하는 거였어.
“그때 그런 지원은 받아본 적이 없는데?”
-그날 실전에 투입해 보고 바로 잘랐으니까. 차동식 그놈 말이야. 그 때 마포에서 강 건너 여의도에 있는 몬스터를 보더니 겁에 질려서 바지에 똥을 싸더라.
“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