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bility from Parallel Dimensions RAW novel - Chapter 25
25. 운이 아니다.
서정우는 골목을 달려서 빠져나오자마자 꽤 큰 조립식 창고를 발견했다.
그런데 창고의 입구는 서정우 쪽에 없었다. 그쪽 벽에는 사람 키보다 훨씬 높은 위치에 창문 하나만 작게 뚫려 있었다.
서정우는 달리는 속도를 줄이지 않았다. 오히려 더 빨리 뛰다가, 땅을 박차 위로 뛰어오르며 창고의 벽을 밟았다. 발끝이 벽이 닿자마자 아래로 밀어 차며 더 높이 올라갔다.
작은 창문을 스쳐 지나갈 때 창고 안쪽을 재빨리 살폈다. 변호사 이천상과 이윤미를 발견했다. 이천상이 칼을 높이 들고 이윤미를 찌르려 하고 있었다.
서정우는 창문을 스치고 올라가 왼손으로 지붕을 잡았다. 동시에 오른손을 옷 속에 넣었다.
습관적으로 한 행동이지만 권총이 잡히지 않았다. 이 위치에서 이천상에게 총알 몇 발 박아주면 긴급 상황은 즉시 해결되는데, 권총이 없다.
놔두고 온 총을 아쉬워하는 건 시간 낭비다.
그는 두 발로 유리창의 창틀을 힘껏 걷어찼다. 조립식 창고의 유리와 창틀이 동시에 부서지며 창고 안쪽으로 떨어졌다.
벽에 구멍이 뻥 뚫렸다.
서정우가 그 구멍으로 몸을 날렸다.
이천상은 창틀이 부서지는 소리를 듣고 깜짝 놀라 뒤로 휙 돌아섰다.
서정우가 그런 이천상을 보며 생각했다.
‘느려. 대응도 어설퍼. 저쪽 세계의 이천상이라면 이런 상황에선 인질부터 잡았겠지.’
서정우는 고양이처럼 사뿐하게 창고 바닥에 착지했다. 몸이 바닥에 착 가라앉았다가, 그대로 앞으로 튀어나갔다. 공격 목표는 이천상이다.
당황한 이천상은 이윤미를 찌르려던 칼을 서정우 쪽으로 크게 휘둘렀다.
“뭐, 뭐야!”
느렸다. 동작도 너무 컸다.
서정우가 몸을 옆으로 슬쩍 젖혀 칼을 피했다. 왼손으로는 적의 오른손 손목을 잡았다. 동시에 오른 주먹을 이천상의 몸통에 콱 꽂았다.
“컥!”
이천상의 몸이 공중에 붕 떴다. 오른팔을 잡힌 상태라서 이윤미 쪽으로 날아가지는 않았다.
서정우가 붙잡은 손목을 콱 꺾으며 이천상을 바닥에 내리꽂았다.
이천상은 공중에서 아래로 떨어지며 얼굴부터 바닥에 처박혔다.
“케엑!”
서정우는 이천상의 팔을 꺾어 아예 부러뜨렸다.
그때서야 이천상의 오른손에서 칼이 떨어졌다.
서정우가 엎어진 이천상의 등을 무릎으로 누르며 머리를 두 손으로 잡았다.
그대로 머리를 한 바퀴 돌려버리려다가, 아차 싶었다.
‘아. 이쪽 세계에선 그냥 죽이면 안 되지.’
그는 일단 이천상의 상태를 확인했다. 이빨이 몇 개 부러지고, 코뼈도 부러져 피를 철철 흘렸다. 눈도 돌아가 있었다.
‘제압 완료.’
그는 기절한 이천상을 버려두고 이윤미에게 달려가 상태를 확인했다.
‘칼에 맞은 상처가 깊다.’
저쪽 세계라면 이 정도 부상자는 어렵지 않게 살릴 수 있다.
그런데 그는 아직 이쪽 세계의 상식이 부족해서, 이쪽 의술로 이런 부상을 치료할 수 있는지는 모른다.
이윤미는 깨어나 있었다. 이천상이 그녀를 깨워서 욕하고 비난한 후에 죽이려 했기 때문이다.
그녀는 조금 전까지만 해도 이천상이 너무 무서웠다. 그런데 갑자기 더 무서운 사람이 나타났다.
그녀가 겁에 질려 서정우에게 사정했다.
“사, 살려주세요!”
서정우는 그녀의 목소리를 듣고 마음을 조금 놓았다.
‘일단 폐는 멀쩡한 것 같네.’
그가 말했다.
“경찰입니다.”
“네?”
이윤미는 겁먹은 와중에도 ‘네?’ 소리가 저절로 나왔다.
갑자기 창문을 부수며 나타나 눈 깜빡할 사이에 이천상을 완전히 박살 낸 무서운 사람이, 자기가 경찰이라고 주장했다.
쉽게 믿어지지 않았다.
서정우가 경찰 신분증을 꺼내 보여주었다.
“경찰 맞습니다. 이제 안전합니다.”
경찰 신분증에 써진 서정우라는 이름이 확실히 보였다.
그녀가 왈칵 울음을 터트렸다.
“저 살고 싶어요. 그런데 너무 아파요. 저 어떻게 돼요?”
서정우가 이윤미의 부상을 다시 확인했다.
‘저쪽 세계라면 확실히 살릴 수 있는데…….’
저쪽 세계는 베이고 찢긴 상처를 치료하는 의술이 발전했다. 몬스터 때문에 부상자가 워낙 많이 생기는 곳이라서, 외과는 물론이고 내과나 안과 의사도 이런 상처를 치료할 줄 안다.
‘김성준은 돈이 많으니까, 저쪽 세상이었다면 레드 포션을 써서 흉터조차 없이 확실히 낫게 하겠지. 이쪽 세계에서는…….’
“당연히 살아야지요. 남자친구가 이윤미 씨를 애타게 찾고 있던데.”
형사 백성민이 창고로 달려갔다.
“방금 저기서 뭔가 부서지는 소리가 났다!”
옆 팀 형사 김정호가 맞은 편에서 달려왔다.
“비명도 들었어!”
백성민이 창고의 문을 잡고 흔들었다. 잠겨 있었다.
“젠장! 문 부숴!”
갑자기 그 문이 벌컥 열렸다.
백성민은 깜짝 놀라 두 주먹을 앞으로 들며 뒤로 물러났다. 김정호는 지급 받아온 총을 뽑으려 했다.
백성민은 문을 연 사람을 보고 당황했다.
“어?”
서정우가 창고 안에서 문을 활짝 열었다.
백성민이 물었다.
“네가 왜 여기서 나와?”
“119 불렀어요?”
“어? 어. 불렀지. 피해자 찾으면 바로 조치해야 하니까 미리 불렀다. 구급차 방금 도착했다.”
“이쪽으로 빨리 오라고 해줘요. 이윤미 씨가 많이 다쳤으니까.”
“어? 어? 뭐? 이윤미 씨?”
백성민이 안으로 뛰어들어갔다.
“이윤미 씨! 경찰입니다! 이제 안심…….”
그는 말을 하다 말고 당황했다. 창고 안에는 피를 철철 흘리는 사람이 한 명 더 있었다.
백성민이 급히 뒤쪽에 있던 김정호에게 외쳤다.
“피해자가 더 있다! 구급차 더 불러! 한 대로 안 돼!”
서정우가 말했다.
“그놈은 피해자가 아니라 범인인데요?”
“어? 뭐? 누구?”
“범인.”
“피를 저렇게 철철 흘리는데?”
“칼을 들고 저항해서요.”
백성민이 이천상의 상태를 다시 확인했다. 얼굴에서 피만 흘리는 게 아니라 오른팔도 부러져서 꺾여 있었다.
“정우야. 너 저번에 그 살인마는 다리를 부러뜨리더니 이번엔 팔을…….”
“칼을 들고 저항하는데, 워낙 위험해서 어쩔 수가 없었어요.”
백성민이 침을 꼴깍 삼키고 물었다.
“정말 어쩔 수 없이 부러뜨린 거 맞냐?”
“겨우 제압했다니까요. 간발의 차이로. 어휴. 하마터면 칼 맞을뻔했네.”
먼저 온 119 구급차는 이윤미부터 데려갔다.
이천상은 나중에 온 구급차에 태웠다. 형사들이 그 구급차에 같이 탔다.
백성민은 창고 주변을 돌며 다른 문제는 없는지 확인했다.
그는 반대편 벽에서 서정우가 진입한 창문을 올려보았다.
“민석아. 정우가 저 높은 데 있는 창문까지 어떻게 올라간 걸까?”
조민석이 벽 중간에 찍힌 발자국을 가리켰다.
“저쪽에서 달려오다가 붕 뛰어서 벽을 발로 찍고 위로 휙 올라갔나 본데요.”
“사람이 그게 되냐?”
“영화에선 되던데요?”
“그건 줄에 매달려서 찍는 거잖아. 여기 줄이 어디 있냐?”
“그러게요.”
백성민이 벽에 찍힌 발자국의 높이를 확인했다. 그의 얼굴 높이였다.
그가 제자리에서 다리를 굽혔다가 위로 힘껏 뛰어보았다.
어림도 없었다.
백성민이 투덜댔다.
“정우 말이야. 이상하지 않냐?”
“또 뭐가요?”
“올림픽에 나가야 할 녀석이 왜 경찰이 됐을까?”
“범인을 엄청 잘 잡잖아요. 며칠 사이에 살인마를 두 놈이나 잡았는데.”
“그건 그렇지.”
* * *
김성준은 경찰서에서 풀려났다.
강력팀장 권병철이 수갑을 풀어주며 사과했다.
“오해가 있었던 듯합니다. 너무 불쾌하게 생각하지 마시고…….”
김성준에게 지금 급한 건 사과를 받는 게 아니다.
“윤미는 어디 있습니까?”
“지금 병원에…….”
“어느 병원입니까!”
이윤미는 병원에 도착하자마자 수술실로 직행했다.
김성준은 수술이 끝날 때까지 수술실 앞에서 기다렸다.
수술이 끝나고 나서, 의사가 보호자를 찾았다.
김성준이 얼른 다가가 물었다.
“윤미는요?”
“수술은 잘 됐으니까 안심하십시오.”
“휴우. 감사합니다.”
“병원에 일찍 도착해서 다행입니다. 한 시간만 늦었어도 과다출혈로…….”
“예?”
“아, 아닙니다.”
의사는 아니라고 말했지만, 김성준은 그가 무슨 말을 하려 했는지 알아들었다.
* * *
형사팀은 현장 조사를 마치고 경찰서로 복귀했다.
강력팀장 권병철이 서정우를 칭찬했다.
“이야아. 우리 막내가 또 한 건 했어. 네가 이윤미 씨를 살렸다. 의사가 그러는데, 한 시간만 늦었어도 못 살렸을 거라더라.”
“다행입니다.”
“수고했다. 뭐 필요한 거 있어? 말만 해.”
“퇴근이요.”
“어? 퇴근?”
권병철이 시계를 보았다. 오후 세 시였다.
“벌써?”
“범인하고 격렬하게 싸웠더니 몸이 좀…….”
“어. 그럼 범인 취조는? 이천상이 워낙 많이 다쳐서 일단 병원에 보내긴 했지만, 저녁때 가서 조사 시작할 건데.”
“굳이 제가 할 필요는 없지만, 한다면 제 방식으로 해도 됩니까?
옆에 있던 백성민은 화들짝 놀랐다.
‘정우는 범인을 잡을 때마다 팔다리를 분질러 놓잖아. 잡은 놈 취조 할 때도 되게 거친데, 저번처럼 또 그렇게 막 저지르면?’
이천상의 직업이 변호사라는 게 걸렸다.
‘그놈이 바로 고소하겠지. 그거 하나 꽉 물고서 우리 진이 빠질 때까지 괴롭힐 게 뻔해.’
백성민이 급히 말했다.
“가야지! 당연히 퇴근해야지! 반장님! 정우 퇴근시키죠?”
강력팀장 권병철이 웃었다.
“오늘은 내가 뭐든 못 들어주겠냐? 휴가를 내도 받아줄 기분이다.”
서정우가 얼른 말했다.
“그럼 내일 하루는 휴가 내겠습니다.
““어? 말이 그렇다는 건데, 그렇다고 정말 내면…….”
백성민이 서정우의 편을 들었다.
“가. 휴가 써! 아니다. 그냥 내일 근무한 척하고 나오지 마. 뒷일은 우리가 싹 다 처리해 놓을 테니까!”
강력팀장 권병철이 백성민의 등을 손바닥으로 때렸다.
“네가 결재하냐?”
“아야! 우리가 열심히 하면 되잖아요!”
“내일 서장님이 쟤 안 찾으실 것 같냐?”
“아. 맞다. 정우야. 내일 출근은 꼭 해라.”
“예.”
서정우가 조기 퇴근한 후에, 옆 팀 형사 김정호가 백성민에게 물었다.
“야. 너희 막내 실력이 좋은 건 아는데, 아무리 그래도 너무 막 나가는 거 아니냐?”
“걔는 처음 온 날부터 막 나갔어.”
“군기라도 좀 잡아야 하는 거 아냐?”
“군기?”
백성민의 머릿속에 팔다리 부러지고 피를 철철 흘리던 범인들의 모습이 떠올랐다.
오늘 서정우가 부수고 들어간 창고 창문은 굉장히 높은 곳에 있었다. 백성민은 아무리 뛰어도 그 창틀에 손끝조차 닿지 않았는데, 서정우는 벽을 타고 올라가 창틀을 부수고 안으로 뛰어들어 범인을 순식간에 작살 냈다.
저번과 이번 사건 모두 범인은 칼을 가지고 있었다. 그런데 그놈들을 박살 낸 서정우는 맨손이었는데도 긁힌 상처 하나 없다.
싸움만 잘하는 게 아니다. 이곳에 와서 겨우 며칠 만에 대형 사건을 두 건이나 해결했다. 그것도 혼자서 해결했다.
백성민이 침을 꼴깍 삼켰다.
“어……. 정우가 막내는 막내인데, 막내 같지 않은 막내라서.”
“그게 무슨 소리냐?”
백성민은 말하다 보니 좀 창피해서 화를 벌컥 냈다.
“군기를 잡으라니! 여기가 군대냐? 법을 수호해야 하는 경찰이 어디서 쌍팔년도 시절 소리나 하고 있어!”
* * *
이윤미는 수술이 끝난 후에 중환자실로 옮겨졌다. 아직은 수술 직후라 면회가 허락되지 않았다.
비서가 김성준을 찾아와 보고했다.
“사장님이 체포됐다는 소문이 퍼져서 투자자들이 난리가 났습니다. 회사로 가셔서 상황을 수습하셔야 합니다.”
AKX 픽처스는 투자자를 모아 영화와 드라마를 만드는 제작사다.
김성준이 떨어지지 않는 발걸음을 옮겼다.
“그래. 가자.”
김성준은 차에 탄 후에 비서에게 지시했다.
“회사로 가기 전에 일단 경찰서부터 들러.”
형사 백성민은 김성준이 나타난 걸 보고 움찔했다.
‘내가 아까 좀 거칠게 굴었나? 잘나가는 영화 제작사 사장이니까 다른 변호사를 써서 날 고소하면 어떻게 하지?’
그의 걱정은 기우였다.
김성준이 형사들을 향해 고개를 꾸벅 숙였다.
“고맙습니다!”
백성민이 활짝 웃었다.
‘그거 따지러 온 거 아닌가 보다!’
“아유. 뭘요. 경찰로서 당연히 할 일을 한 것뿐입니다.”
김성준이 주변을 두리번거리며 물었다.
“그런데 그 형사님은 어디 계십니까?”
“예? 누구요?”
“우리 윤미를 구해준 그 형사님 말입니다.”
“아아. 정우요? 걔가 우리 2팀 막내인데, 제가 가르쳤습니다. 하하하!”
강력팀장 권병철이 물었다.
“서정우 형사는 자리에 없는데 무슨 일로 그러십니까?”
“인사라도 드리려고 들렀습니다만, 못 뵙고 가겠군요.”
* * *
김성준이 회사로 가는 차의 뒷좌석에서 혼잣말을 했다.
“서정우 형사…….”
운전하던 비서가 조금 큰 소리로 말했다.
“아. 서정우!”
김성준이 몸을 앞으로 기울였다.
“아는 사람이냐?”
“아뇨. 이름만 압니다. TV 뉴스에는 이름이 안 나왔지만, 따로 찾아보면 이름이 나온 기사가 있습니다.”
“뉴스라니?”
“서정우 형사가 24시간 연쇄 살인마를 잡은 그 형사입니다. 그러고 보니 연쇄 살인마를 잡은 경찰서가 바로 저 경찰서네요.”
김성준도 그 뉴스는 봤다. 온갖 매체에서 연쇄 살인마를 잡았다는 뉴스가 쏟아져서 못 볼 수가 없었다.
“아아. 피해자가 납치되고 두 시간도 지나기 전에 범인을 잡았다던 그 사건?”
“예. 몇 년 동안 경찰이 단서조차 못 찾은 영악한 연쇄 살인마인데, 서정우 형사가 범행 발생 시점부터 두 시간도 지나지 않아서 피해자를 구출하고 살인마도 잡았다고 합니다.”
“어떻게 잡았는지 아냐?”
“범인이 그 집을 감시하는 걸 그 형사가 우연히 발견했다던데요. 그 형사 진짜 운이 좋았지요.”
김성준이 뒷좌석 의자에 몸을 묻으며 오늘 그와 이윤미에게 일어난 일을 생각했다.
‘윤미가 칼에 찔리고, 납치되고, 경찰이 출동하고, 내가 누명을 써서 체포되고, 진범이 이천상이라는 걸 알아내고, 윤미를 구출하고, 그놈을 체포한 일이…… 두 시간도 안 돼서 모두 일어났다.’
그런데 그 모든 상황을 혼자 해결한 서정우가 며칠 전에 연쇄 살인마도 잡았다. 며칠 전에도 사건 발생부터 해결까지 두 시간도 걸리지 않았다.
AKX 픽처스 사장 김성준은 확신했다.
“운이 아니야.”
“예?”
“내가 직접 경험했는데도 믿기 어려울 정도로 엄청난, 진짜 실력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