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bility from Parallel Dimensions RAW novel - Chapter 253
254. 초기 버전 II
견습 성녀 윤지민이 설명했다.
“아시아 태평양 게이트 제약은 전쟁 초기에 전투용 신체 강화 포션을 개발했어요. 물론 부작용 때문에 함부로 쓰긴 어려웠죠. 그런데 특정체질에 대해 알려지면서 상황이 변했어요.”
“내가 준 문서에 있는 그런 체질?”
“네. 그 체질을 가진 사람들은 그 부작용에 대한 저항력이 강해요. 그걸 알게 된 몇 나라가, 그 체질인 사람들만 따로 징집해 병사로 만들었어요.”
그때 서정우는 아직 어려서 전쟁터에서 구르지는 않았다.
“게이트 전쟁 초기에는 총을 들 수만 있으면 징병했다던데.”
“징병한 거로 끝내지 않고, 그 사람들에게 약을 계속 투약하면서 전투에 내몰았어요. 당연히 위험한 전투에 집중적으로 투입했죠.”
서정우도 군대에 있을 때는 위험한 구출 임무를 많이 맡았다.
그래도 그는 강제로 약을 주입 당하고 등이 떠밀려 전쟁터로 투입되지는 않았다.
윤지민이 말했다.
“그 사람들은 약을 받아들일 수 있는 한계가 큰 거지, 면역 상태는 아니에요. 결국 반복된 투약으로 몸이 버틸 수 있는 한계를 넘으니까….”
“죽었습니까?”
“돌아버렸죠. 유사 아드레날린 같은 게 그렇게 대량으로, 그렇게 반복해서 몸속을 돌아다니는데 안 미 치면 이상하죠. 전부 다 미쳐버렸어요.”
“그 약을 많이 쓰면 결국 미친다는 겁니까?”
“네. 기록을 보면 참 다양하게도 미쳤어요.”
“그래서 어떻게 됐습니까?”
“아. 그러고 보니 공통점도 있네요. 대부분 반란군이 됐거든요.”
“내전?”
“바로 그거죠. 몬스터만 막기도 버거운데 내전까지 일어났으니 그 나라들이 어떻게 버티겠어요? 그 나라 들은 결국 다 망했어요.”
나라가 몬스터 때문에 망했다고 해서 그 나라 국민이 다 죽은 건 아니다. 국가는 망했지만, 국민 중 일부는 어떻게든 살아남아서 버티고 있다.
“그 약을 과도 하게 쓰면 반란군이나 테러리스트가 된다는 소리군요.”
“그쵸”
그녀가 모니터를 가리켰다.
“그래서 이런 방식의 약은 이제 아무도 안 만드는 줄 알았어요. 이런 것보다 몬스터 추출물을 섞어 만든 강화 포션이 효과가 훨씬 더 좋으니까요. 그런데 이거 어디서 만든 거 예요?”
“미친놈들이 있습니다.”
“과다투약으로 미쳤어요?”
“아니, 이걸 만드는 미친놈들이 있다고요.”
“아. 그 말이구나. 근데 그 미친놈들은 이런 쓰레기를 왜 만든대요?”
“그게 궁금합니다. 세계정복이라도 하려고 그러나.”
윤지민이 웃었다.
“풋. 이런 거 쓰면 나라가 망한다니까요.”
* * *
서정우는 형사로 사는 세계로 돌아왔다.
백성민이 서정우에게 사진을 전송 해 주었다.
“어제 창고 화재현장에 온 사람 중에서 경찰만 따로 뽑았다. 그중에 정보를 팔아먹은 범인이 있을지 몰라.”
“땡큐.”
백성민이 물었다.
“그런데 넌 왜 그렇게 심각한 표정이야? 우리 쪽은 크게 다친 사람도 없잖아.”
“로봇 말이야.”
“네가 박살 낸 그 사이비 교단 로봇들? 그게 왜?”
“그 로봇들은 왜 만든 걸까?”
“원래는 BH 테크에서 재난 구조용으로 만든 테스트 버전이라며. 그걸 교주 놈이 전투용으로 불법 개조한 거지.”
“그 로봇에다, 병사의 전투력을 잠깐 높여주는 약도 있다면? 부작용은 심하지만.”
“그게 뭐냐? 스팀팩이냐?”
“비슷하지. 즉시 치료하지 않으면 신체 손상이 영구적으로 남는다는 것만 다르고.”
“세계정복이라도 하고 싶었나? 에이. 아니지. 핵이 있는 세상인데.”
핵무기는 강력한 전쟁 억지력을 가지고 있다. 일단 터지지 시작하면 다 죽기 때문이다.
예전에는 전쟁을 일으킨 놈들은 어지간하면 안 죽었다. 죽는 건 언제나 전쟁터에서 싸우는 병사들과 거 기 휘말린 민간인들이다.
과거에 전쟁을 일으킨 놈들이 몰살 당하는 경우는, 한쪽이 완전히 패배 했을 때뿐이다.
전쟁이 어중간하게 끝나면 그놈들은 오히려 권력을 더 강하게 쥐고 부귀영화를 누렸다.
그런데 현대 핵무기는 전쟁을 일으킨 권력자도 죽인다. 바로 그 특징 때문에 핵은 전쟁 억지력을 가진다. 다만, 또라이가 권력을 쥐면 이야기가 달라진다. 핵의 전쟁 억지력은 양날의 검이라, 또라이한 놈 때문에 인류가 멸망할 수 있다.
서정우가 말했다.
“국지전에서는 무인 로봇이나 스팀팩이 쓸모가 있겠지.”
21세기는 그리 평화로운 시대가 아니다. 지금도 세계 곳곳에서 전쟁은 계속되고 있다. 핵이 막아주는 건 강대국 간의 세계대전뿐이다. 백성민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건 그러네. 로봇이 총 쏘고 병사가 스팀팩 맞고 그러면, 국지전에서는 일방적으로 이기겠네.”
“그런데 그 사이비네 로봇은 칼과 방패를 들었단 말이야.”
“그거야 교주가 개조했으니까 그렇지. 칼과 방패를 들게 할 수 있으면 총도 쏠 수 있다.”
“확실해?”
“당연하지. 전자공학을 전공한 내 말을 믿어라.”
서정우는 당황했다.
“어? 뭐?”
“왜?”
“형 대학 나왔어?”
“어쭈? 너 나 지금 무시하냐?”
“농담이야.”
“농담인데 왜 눈을 동그랗게 떠?”
“근데 진짜 전자공학을 전공했어?”
“무시한 거 맞네. 그렇다니까.”
서정우가 옆자리의 조민석에게 물었다.
“그럼 민석이 형도 혹시….”
“난 화학과.”
“와. 진짜 놀랍네.”
저쪽 세계도 고등학생의 1차 목표는 대학 진학이다. 하지만 진학률은 그리 높지 않았다.
지방 외진 곳에 있는 대학은 이미 모두 문을 닫았다. 도시 안에 있는 대학들만 그나마 유지되고 있다.
도시 안 빌딩도 다 무너지는 세계에서 대학 건물이라고 괜찮을 리는 없다. 강의동이 부서질 때마다, 전쟁에 도움이 안 되는 학과부터 줄어들었다. 당연히 대학 정원도 줄었다.
이제 저쪽 세계에서 공부로 대학에 가려면, 수능 점수가 꽤 높아야 한다. 아니면 특정 스킬을 각성해 특화 학과에 지원해야 한다.
그래서 저쪽 세계의 젊은 경찰 중에는 대졸자가 별로 없다. 경찰이라서 적은 게 아니라, 원래 대졸자 비율이 낮다.
서정우가 물었다.
“공부는 잘했어?”
백성민이 당당하게 대답했다.
“아니.”
* * *
서정우가 화재 전문가 고대성 교수를 다시 만났다.
고대성이 찍어온 사진을 보여주며 설명했다.
“소이탄이 터지면 모든 것이 완벽하게 타버리도록 설계했더군요. 굉장한 전문가의 솜씨입니다.”
“누가 그렇게 할 수 있을까요?”
“국내에는 가능한 사람이 딱 다섯 명 있습니다. 그런데 이건 국내 전문가의 방식이 아닙니다.”
“외국인의 짓이란 말이군요.”
* * *
서정우는 교수와 헤어진 후에 마약계 구민호 형사를 만났다.
구민호를 습격한 놈들은 서정우가 잡았다. 그렇다고 서정우가 그 사건을 맡은 건 아니다. 그는 그놈들만 잡아서 넘겼다.
구민호가 수사 상황을 설명했다.
“마약계 소속 조 형사가 돈을 받고 제 정보를 판 데다가, 승진까지 했습니다. 윗선에도 누가 더 있다는 소리지요.”
“대가는 치르게 했습니까?”
구민호가 씁쓸하게 웃었다.
“덮지 못하면 아래부터 쳐내는 게 권력기관의 속성 아닙니까?”
서정우가 활약하면 기사가 뜬다. 그 기사가 크게 나면 덮기 어렵다.
“조 형사는 체포됐고, 그놈이 승진하게 손을 쓴 윗선도 조사를 받고 있습니다. 거기가 끝일수도, 더 위가 있을 수도 있는데, 딱 거기까지만 조사하더군요.”
“돈을 준 놈은요?”
“요즘 공무원들은 모르는 사람의 돈은 받지 않습니다. 조 형사에게 돈을 준 놈은 바로 찾아내서 체포했습니다. 문제는.”
“그 돈을 준 놈도 다른 놈에게서 돈을 받았겠군요.”
“예. 심지어 반은 자기가 떼먹었습니다.”
“그 다른 놈에 대한 단서는요?”
“몽타주 한 장이 다입니다.”
“볼 수 있습니까?”
구민호가 몽타주 이미지를 서정우의 스마트폰으로 전송하며 말했다.
“우리 쪽 전문가의 말로는, 변장한 얼굴 같답니다. 원래 얼굴을 알아내려고 분석했지만 실패했습니다.”
수염을 붙이는 수준이 아니라 얼굴에 뭘 덧붙이는 변장을 하면, 그것만 보고 원래 모습을 알아내기는 어렵다.
그런데 원래 얼굴을 이미 알고 있는 상태에서 보면, 아무리 그런 변장을 해도 특징이 눈에 들어온다. 서정우는 이 얼굴을 저쪽 세계에서 본 적이 있다.
‘정보 브로커 이주호의 부하. 그럴 줄 알았다.’
안 그래도 이주호가 이번 일에 개 입되어 있는지 조사하려고 했다. 그래서 넘어올 때 그 브로커 조직 놈들에 대한 기본 자료를 챙겨왔다. 그중 한 놈의 얼굴 특징 몇 개가 이 몽타주에서 보였다.
‘이놈이 이주호의 밑에서 정보수집을 담당했지. 오래전부터 알던 사이라니까 여기서도 같이 일하겠지.’
서정우가 모르는 척하며 물었다.
“창고에선 나온 게 있습니까?”
“현장 주변에서 약물이 묻은 주사기 조각을 좀 찾아냈습니다. 햇빛을 받아 반짝거려서 쉽게 찾았습니다.”
서정우가 그 주사기 조각을 일부러 밝은 곳에 옮겨놓았다.
“국과수에서 분석 중인데, 일단 메스암페타민 성분이 나왔습니다.”
“히로뽕이군요.”
“예. 그냥 히로뽕도 아니고 다른 마약과 칵테일을 한 것 같습니다. 여러 약 성분이 더 나왔거든요. 신종 마약을 만들었나 봅니다.”
서정우는 그 약의 본질이 뭔지 안다.
‘마약을 섞은 신체 강화 포션. 그것도 초기 버전.’
구민호가 말했다.
“그런데 그 약 말입니다. 부작용이 큰 것 같습니다.”
서정우는 살짝 놀랐다.
“부작용에 대한 걸 어떻게 알았습니까?”
“절 습격한 두목 놈이 그 약을 썼습니다. 그래서 그런지 그놈 몸 상태가 엉망진창이더군요. 게다가 금 단증상도 호되게 겪고 있습니다.”
서정우가 그 두목과 싸울 때를 생각했다.
‘그놈은 내가 던진 돌을 처음 한 번은 피했지. 보통 놈이 아니라고 생각했는데, 신체 강화 포션 덕분에 피한 거구나.’
그렇게 완벽하게 증거를 불태워버린 곳에서, 왜 그 주사기 조각이 발견됐는지도 짐작이 갔다.
서정우가 말했다.
“그 두목이 그 약을 빼돌려서 주사를 맞았군요. 거기가 터질 때 빼돌린 주사기가 폭발에 휘말려 날아갔을 겁니다.”
“저도 그렇게 생각합니다.”
서정우는 정보를 조금 더 주었다.
“두목의 반사신경이 보통 사람보다 빠르더군요. 그 약에 그런 효과가 있을 겁니다.”
“예? 서 형사에게 간단히 잡혔잖습니까?”
“전 더 빠르니까요.”
“아. 당연히 그렇겠지요. 국과수에 그렇게 전하겠습니다.”
구민호는 사건 이야기만 하려고 서정우를 만난 게 아니다. 그가 제안 했다.
“경찰이 습격당해 죽을 뻔했는데 위에서 가만히 있겠습니까? 이번 사건을 조사하기 위해 특별수사팀이 만들어졌습니다.”
구민호가 허리를 문질렀다.
“저도 거기 참여하려고 당장 퇴원했습니다. 허리에 파스만 몇 장 붙이고요. 하하하.”
“그러다 덧나면 말하세요. 약 좀 드릴 테니까.”
“고맙습니다. 그런데 약이 아니라서 형사가 팀에 들어온다면 도움이 많이 될 겁니다.”
서정우가 피식 웃었다.
“그러면 우리 서장님 쓰러지십니다.”
구민호도 어차피 큰 기대는 하지 않았다.
“역시 어렵겠지요?”
“대신에 제가 따로 좀 알아보겠습니다. 아. 그 두목 놈 신체검사 데이터 좀 볼 수 있습니까? 체질 같은 것도 나오는 자세한 거로요.”
“바로 보내겠습니다.”
* * *
서정우가 해커 김수철에게 브로커 이주호의 부하인 박두철의 주민등록 번호를 보냈다.
-이놈을 조사해라.
박두철의 개인 정보나 전과 이력 정도는 경찰 정보망을 이용해도 알아 낼 수 있다. 서정우는 그것과는 다른 정보가 필요했다.
바로 답장이 돌아왔다.
-시간과 예산이 필요합니다.
-두 시간 주겠다.
-예산은….
-너한테 준 그 진통제, 굉장히 비싸고 구하기 어려운 물건이다.
그 약은 전투용 진통제 할인행사 때 넉넉하게 사뒀다. 그건 지금 저 쪽 세계의 집 선반에 쌓여있다.
김수철은 군소리 없이 작업했다. 그는 그 진통제의 놀라운 효과를 경험해보고, 비싸다는 말을 그대로 믿었다.
두 시간 후에 간단한 정보가 들어 왔다.
“주민등록상 주소에 실제로 살지는 않는다? 그 정도는 예상했는데….”
박두철의 주변 인물 몇 명의 정보도 나왔다. 그중에 이주호의 이름도 있었다.
“그럴 줄 알았지. 역시 이주호. 이 쪽에서도 박두철과 같이 일하는구나.”
서정우가 다시 메시지를 보냈다.
-보고한 인물 중에서 이주호를 조사해라.
-다섯 명중에 왜 하필 그 사람 입니까?
-네가 보낸 자료를 분석해서 결정했다. 두 시간 준다.
김수철은 예전에 해킹으로 수집한 자료를 뒤져 기초 정보를 찾아내고, 그 정보와 연결된 이메일 계정 몇 개를 추가로 뒤져 정보를 모았다.
두 시간 후에 이주호에 대한 자료가 서정우에게 넘어왔다.
박두철이나 브로커 이주호를 겨우 두 시간 동안 조사해서 알아낼 수 있는 건 그리 많지 않았다.
그래도 두 명의 정보를 더하니 겹치는 게 있었다. 그들이 자주 가는 룸살롱의 이름이 나왔다.
‘강남이네.’
서정우가 그 주소를 지도에서 검색 했다.
동네가 좀 익숙했다.
“이선화 씨 집에서 멀지 않네. 잘하면 보이겠는데?”
* * *
서정우가 이선화의 집으로 이동했다.
그녀가 문을 활짝 열고 웃으며 반겼다.
“어서 와요.”
그녀의 집안에는 은은한 음악이 흐르고 있었다. 조명은 부드러운 빛을 뿌렸다.
이선화의 옷은 편안해 보이면서도 기품이 있었다. 테이블에는 와인이 놓여 있었다.
그녀가 방긋 웃으며 물었다.
“오늘 무슨 날이에요? 정우 씨가 우리 집에 오고 싶다고 할 줄은 몰랐는데.”
‘라면 먹는 날인가?’
서정우가 대답했다.
“범인 잡는 날이요.
“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