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bility from Parallel Dimensions RAW novel - Chapter 254
255. 브로커
서정우가 거실 창문 앞에 섰다. 룸 살롱 입구가 보이긴 했지만, 거리가 조금 멀었다.
“이선화 씨. 망원 렌즈 달린 디지털카메라 있죠?”
“당연히 있죠. 나중에 내 손으로 영화를 만들 거라고 했잖아요. 그래서 관련 장비가 많아요.”
“그거 좀 빌리죠.”
사격 스킬 각성자의 시력이 좋긴 하지만, 밤중에 이 정도 거리에서 감시하려면 망원경을 쓰는 게 좋다.
이선화가 기다란 망원 렌즈와 디지털카메라를 가져왔다. 그 카메라에는 영상을 노트북 화면으로 출력하는 기능이 있었다.
이선화가 혹시나 해서 물었다.
“정우 씨. 오늘 우리 집에 오고 싶다고 한 거요. 어디를 감시하려고 물어본 거예요?”
“이선화 씨 집에서 보면 저기가 잘 보이겠더라고요. 예상대로 딱 좋네요.”
“아. 네. 그럴 줄 알았어요. 당연히 알았죠.”
이선화가 툴툴대며 장비를 설치했다.
‘이러려고 온 거였어?’
곧바로 룸살롱 입구의 모습이 노트북 모니터에 떴다. 서정우가 그 앞에 앉았다.
이선화가 서정우의 등을 잠시 째려 보다가, 와인을 잔에 콸콸 부어 벌컥 마셨다.
‘아주 성자 나셨네. 아무래도 술을 좀 먹여야 분위기가 바뀔 것 같아.’
그녀가 빈 잔에 와인을 부은 후에, 서정우에게 내밀었다.
“마셔요.”
“지금 잠복 중인데.”
“퇴근 시간 지났잖아요. 우리 집에서 잠복하려면 술도 좀 마시고 해야 돼요. 얼른 마셔요.”
서정우가 와인을 받아마셨다.
“맛있네요.”
“당연하죠. 비싼 거 땄는데.”
그녀가 서정우의 잔에 다시 와인을 부어주었다.
“자. 쭉 더 마셔요. 쭉. 쭉.”
“와인은 마시는 법이 따로 있다던데.”
“무슨 소믈리에세요? 내 돈 내고 사서 내가 마시는데 왜 법을 따져요? 경찰이라 그러나?”
그녀가 자꾸 술을 부어줬다. 서정우도 넙죽넙죽 받아마셨다.
그녀가 속으로 말했다.
‘취해라. 취해라. 얼른 다른 성자가 되어라.’
서정우는 고레벨 각성자다.
저쪽 세계에는 세 개의 스킬을 각성한 사람조차 희귀한데, 그는 네개나 각성했다. 그중에서 옛날에 각성한 사격과 감지 스킬은 레벨이 굉장히 높다.
그쯤 되면 술을 마셔서 기분이 좋아질 순 있어도 어느 수준 이상으로 취하진 않는다. 몸의 해독 능력이 알코올을 빠른 속도로 분해하기 때문이다.
얼굴이 빨개지지도 않는다. 알코올 분해의 산물인 아세트알데하이드도 빨리 분해된다.
와인 한 병이 다 비어도 서정우는 전혀 취하지 않았다.
그중 삼 분을 마신 이선화가 조금 빨개진 얼굴로 항의했다.
“무슨 사람이 그렇게 마셨는데 얼굴색 하나 안 변해요? 왜 안 취해요?”
“술이 세서.”
“에잇. 괜히 와인 꺼냈어. 기다려요. 내가 소주 가져올게요.”
서정우가 손을 들었다.
“아니. 나가야 합니다.”
“어딜 도망치려고!”
“이번에 경기도에서 내가 아는 마약계 형사가 습격 당한 사건 알죠?”
“뉴스에 나왔는데 당연히 알죠. 정우 씨가 구출했잖아요.”
서정우가 손가락으로 모니터를 가리켰다. 망원 렌즈 장착 디지털카메라를 통해 들어온 영상이 모니터에 떠 있었다. 룸살롱 바로 앞은 워낙 조명이 밝아서 거리가 먼데도 얼굴이 잘 보였다.
“여기 이놈 보이죠?”
“이놈이 누구인데요?”
“그 사건 배후에 있는 놈 중 하나요.”
이선화가 손뼉을 쳤다.
“앗. 이놈이 범인이에요?”
“범인 중 하나죠. 정보 브로커의 부하니까. 이놈만 잡으면 줄줄이 엮을 수 있어요.”
이선화가 납득했다.
“기사에 그 사건 특별수사팀을 만든다더니, 정우 씨도 거기 들어간 거군요?”
“아니요.”
“네?”
“그냥 좀 도와주는 겁니다.”
“그럼 내일부터 도와주면… 안 되겠죠?”
“물론.”
“그럼 차리리 빨리 해결하고 다시 마시는 게 낫…. 어?”
이선화가 모니터 화면을 가만히 보다가 말했다.
“그런데 이 사람 말이에요. 박상철 씨 아네요?”
서정우가 아는 이름은 박두철이다.
“어떻게 압니까?”
“예전에 찍은 사극에서 분장 파트 프리랜서 스태프였어요. 실력이 꽤 괜찮았는데….”
해커 김수철은 그런 것까진 알아내지 못했다.
서정우가 씩 웃었다.
“분장 일을 할 때는 가명을 썼나보네요.”
* * *
이주호는 양쪽 세계에서 정보 브로커 일을 한다. 그런데 구체적으로 따져보면 양쪽에서 하는 일에는 차 이가 있다.
저쪽에서는 직접 정보를 수집해 팔아먹는 브로커지만, 여기서는 중개 업자에 더 가깝다.
박두철은 이주호의 밑에서 일한다. 그가 주로 하는 일은 지폐를 직접 배달하는 것이다.
그는 부업으로 영화판에서 분장 일을 한다.
그런데 영화 일을 몇 달 하는 것 보다 이주호의 밑에서 한 건 하는 게 돈이 더 된다. 박두철이 영화판에서 일하는 건, 거기가 분장과 변장 기술을 갈고 닦기 좋은 곳이라서다.
박두철이 술집 앞에서 담배를 피우며 시계를 보았다.
“시간 다 됐는데.”
그가 안으로 들어가지 않고 거기서 있는 건, 이주호가 인사를 받고 들어가는 걸 즐기기 때문이다.
“그래도 손님들보다는 먼저 오겠지.”
서정우가 옆에서 물었다.
“손님도 오냐?”
박두철은 깜짝 놀라 고개를 돌렸다.
“누, 누구냐!”
“손님.”
“우리 손님이 아닌…. 헉! 서정우?”
서정우가 씩 웃었다.
“날 아네?”
서정우는 인터뷰를 하지 않는다. 범인을 잡는 동영상에도 얼굴은 제대로 나오지 않는다. 그래서 그의 이름은 알아도 얼굴은 모르는 사람이 많다.
그런데 꽤 많은 범죄자가 인터넷을 검색해서 그의 얼굴을 찾아본다. 길에서 마주치면 피하기 위해서다.
“다, 당신이 여기 어떻게….”
“널 만나려고.”
박두철이 얼른 손을 흔들었다.
“오, 오해가 있나 봅니다. 난 당신을 만날 일이….”
“야. 두철아. 오해 아니야.”
박두철의 심장이 쿵쿵 뛰었다.
‘내가 누군지 알고 찾아왔어. 어떻게?’
서정우와 이선화가 친한 사이라는데 생각이 미쳤다.
‘혹시 이선화가 날 찔렀나?’
정확한 의심이지만, 거기엔 문제가 하나 있다.
‘아니야. 이선화가 아는 난 분장 스태프이고, 이름도 달라. 그럼 서정우가 어떻게 날 알고 찾아왔지?’
그가 조심스럽게 물었다.
“혹시 뭔가 분장하실 일이….”
“너도 만나고 이주호도 만나러 왔지.”
박두철은 펄쩍 뛰었다.
‘진짜 다 알고 온 거야!’
그가 오늘 이주호를 만나려는 건, 최근에 벌어진 경찰 습격 사건의 대책을 의논하기 위해서다.
‘다 틀렸어. 돈 챙겨서 중국으로 튀자!’
그러려면 일단 이 장소를 빠져나가야 한다.
그가 술집 입구를 향해 뛰며 외쳤다.
“저 새끼 잡아! 천만 원 준다!”
이 술집은 정보 브로커 이주호의 아지트 중 하나다. 그는 술과 함께 뇌물을 전달할 때 이런 아지트를 곧 잘 이용한다.
여기서 일하는 직원은 모두 이주호의 부하다. 지금 술집 앞에 나와 있는 반건달도 마찬가지다.
이주호의 최측근인 박두철이 천만 원이라고 외치자마자, 반건달이 서정우를 향해 달려들었다.
“이 새끼는 내 거다!”
반건달이 서정우를 향해 주먹을 날렸다.
서정우가 슬쩍 피하며 적의 팔을 잡아당기고 발을 툭 걸었다. 반건달의 몸뚱이가 공중에 붕 떴다가 바닥에 내팽개쳐졌다.
“케엑!”
서정우가 말했다.
“일단 넌 청부폭력 현행범.”
서정우가 술집의 정문을 향해 걸어 갔다.
“박두철은 청부폭력 교사 현행범. 그럼 잡으러 가야지.”
안쪽에서 박두철이 외치는 소리가 문틈으로 새어나왔다.
“밖에 있는 새끼 잡는 사람에게 오 천 쏜다! 현상금 오천!”
안에서 환성이 들렸다.
“우와아!”
서정우가 문을 벌컥 열었다. 다섯 명이 안쪽에서 서정우를 돌아보았다. 셋은 술집 종업원이고 둘은 손님이다. 손님 둘은 술에 취해 있었다.
손님 중에 근육질의 남자가 제일 먼저 튀어나왔다.
“오천이다!”
서정우가 그놈을 발로 콱 밀어 차서 술집안쪽으로 날려버렸다.
“케에엑!”
“오늘 잡을 놈이 되게 많네.”
그는 기절한 채 쓰러진 반건달의 발목을 잡고 질질 끌면서 술집안으로 들어갔다.
“두철아. 어디 있냐? 포기하고 나와라. 그래야 덜 맞는다.”
* * *
이선화는 그녀의 거실 창문에서 망원 카메라를 이용해 술집 앞을 보고 있었다. 모니터에 서정우가 반건달을 때려잡고 안으로 들어가는 모습이 보였다.
그녀가 웃었다.
“후후. 역시 정우 씨라니까.”
지금 찍는 영상은 노트북에 녹화되고 있다.
“이번 영상은 공개 안 하고 나만 봐야겠다. 아니지. 경희하고 애들한테는 자랑해야지.”
그녀가 소주를 한 병 따서 술잔에 부었다. 그 잔을 모니터 쪽으로 내 밀었다.
“이 한 잔을 그대에게.”
그녀가 그 소주를 홀짝 마시다가 급히 삼켰다.
“켁. 켁. 콜록. 콜록.”
모니터에 새로운 사람이 나타났다. 그 인상착의가 서정우에게 들은 이주호와 비슷했다.
그녀가 재빨리 서정우에게 스마트 폰으로 메시지를 보냈다.
-정우 씨가 말한 것처럼 생긴 사람이 그 앞을 둘러보고 있어요.
서정우도 바로 답문을 썼다.
-일당이 안 보이니까 의심하나 보네요.
-거긴 상황이 어때요?
-덤비는 놈은 다 잡았습니다.
-밖은 제가 계속 감시할게요!
-땡큐.
-고마우면.
-?
-아니에요.
이선화가 휴대폰을 탁자 위에 툭 던지며 말했다.
“고마우면 뽀뽀라도 해 주든가.”
* * *
바로 어제 마약계 구민호 형사가 창고를 조사하다가 습격당했다. 범인들은 고문살해까지 모의한 데다가, 신종 마약으로 추정되는 약품도 발견됐다. 게다가 마약반 내부에 범죄자와 내통한 사람이 있다.
경찰은 이 사태를 간단히 보지 않고 특별수사팀을 만들었다. 특별수사팀은 곧바로 서정우의 영입을 시도 했지만 그건 실패했다. 구민호가 팀장에게 말했다.
“서 형사가 따로 좀 알아보겠다고 했으니, 도움이 될 겁니다.”
팀장이 혀를 찼다.
“와서 같이 수사하면 더 좋을 텐데.”
“서 형사는 워낙 찾는 곳이 많은데다가, 소속 서에서 절대로 안 내보내려고 합니다.”
“거기다 스타 경찰이잖아. 우리가 억지로 시킬 수는 없지. 알아.”
다른 팀원이 한마디 보랬다.
“억지로 시키다 서 형사가 사표 쓰면 큰일이고요.”
팀장이 손바닥으로 회의실 탁자를 탁탁 쳤다.
“자. 우리 팀은 이제 막 만들어졌으니까 앞으로 어떻게 수사할지 방향부터 정하지. 누구 좋은 아이디어 있는 사람?”
팀원 한 명이 손을 들었다.
“매수하라고 돈을 준 놈의 몽타주를 공개하면 어떨까요?”
“그 몽타주는 어차피 변장한 걸 그린 거라서 큰 도움이 안돼. 다른 아이디어 가진 사람?”
갑자기 전화벨 소리가 들렸다. 구민호가 얼른 휴대폰을 꺼냈다.
“죄송합니다. 진동으로 바꿔놓겠…. 서정우 형사 전화인데요?”
팀장이 얼른 손짓했다.
“스피커폰으로 받아.”
구민호가 스피커폰으로 전화를 받았다.
“네. 서 형사.”
-잡았습니다.
“네? 누굴….”
-아까 몽타주 보여준 그놈이요.
“네? 아니, 그놈은 변장 때문에 신원파악이 안 되는데….”
-이름 박두철. 영화 분장 프리랜서 스태프로 일합니다. 그때 쓰는 가명은 박상철. 그런데 그건 부업이고, 본업은 정보 브로커의 부하입니다.
팀장이 얼른 팀원에게 지시했다.
“박두철 신상정보 파악해!”
-아. 이거 스피커폰이군요.
구민호가 말했다.
“예. 회의 중에 전화를 받는 거라서요. 그런데 정보 브로커요?”
-박두철의 뒤에 이주호라는 정보 브로커가 있습니다. 주로 쓰는 수법은 매수. 마약반의 조 형사가 매수 된 건 이놈이 중간에서 의뢰인과 연결해줬기 때문입니다.
저쪽 이주호는 사람을 납치해서 협박하는 방식도 마다치 않고 정보를 수집하지만, 이쪽 이주호는 주로 돈을 이용한다.
팀장이 부하들에게 소리를 질렀다.
“이주호? 그 새끼도 누군지 알아 내!”
구민호가 회의 테이블 위의 스마트 폰을 향해 말했다.
“서 형사. 박두철과 이주호에 대해 좀 더 알아야 정보를 조회할 수 있습니다. 주민등록번호 같은 거 암니까?”
-직접 물어보시죠.
“네?”
-박두철이야 이미 잡아놨고, 이주 호는 지금 이 술집 앞에서 안 들어 오고 머뭇거리고 있습니다.
” 네?”
-아. 그냥 돌아가는군요. 지금부터 미행하겠습니다. 증거를 인멸하러 가는 거면 대박인데.
통화가 끊어졌다.
회의실에 잠시 정적이 감돌았다.
팀장이 먼저 입을 열었다.
“어…. 그러니까, 몽타주의 그놈을 찾아냈다는 거야?”
구민호가 말했다.
“이미 잡았고, 뭐 하는 놈인지도 알아냈고, 그 뒤에 있는 놈을 미행중이랍니다. 증거 인멸 현장에서 잡으려고요.”
“우린… 이제 막 수사팀 만들었는데?”
“그러게 말입니다.”
“서 형사에게 용의자 몽타주하고 자료 넘겨준 지 얼마나 됐지?”
구민호가 시계를 보았다.
“두 시간쯤 지났습니다.”
“그치? 내가 잘못 알고 있는 거 아니지?”
갑자기 팀장이 회의 테이블 위에 볼펜을 툭 던졌다.
“진짜 못 해먹겠네. 아니, 우린 앞으로 어떻게 수사할지에 대한 회의를 이제 막 시작했는데, 어떻게 혼자서 벌써 저 단계까지 가? 자괴감이 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