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bility from Parallel Dimensions RAW novel - Chapter 30
30. 사거리파
ES 엔터테인먼트 사장 오동철이 벌떡 일어났다.
“소라야! 지금 새로운 곡이라고 했냐!”
“어머. 우리 사장님 살아나셨네?”
“그 USB에 들어 있냐? 들어볼 수 있냐?”
“그럼요. 저번처럼 악보 파일을 통째로 받아왔어요. 파트도 우리한테 딱 맞춰서 나눠놨는데, 제 파트를 불러보니까, 흐응. 역시 좋아요.”
“들어보자!”
오동철이 컴퓨터에 USB 메모리스틱을 꽂고 악보 파일을 열었다.
“오오! 이번에도 모든 게 다 들어 있는 완전한 악보야!”
윤나나가 손으로 모니터를 가리켰다.
“설명 쪽지도 되게 많아요!”
악보에는 이 노래를 어떻게 불러야 하는지 설명한 쪽지가 지난번보다 많이 붙어 있었다.
“일단 들어보자. 일단.”
오동철이 마우스를 눌렀다. 스피커에서 음악이 흘러나왔다.
다들 모여서 모니터를 보며 음악을 들었다. 각자 자기 파트가 되면 모니터에 뜬 가사를 보며 어설프게나마 따라불렀다.
4분쯤 지나 노래가 끝났다.
쌍둥이가 눈을 반짝이며 말했다.
“진짜 좋다.”
“부를 때 되게 신나!”
윤나나도 맞장구를 쳤다.
“저번엔 신나면서도 아련한 느낌이었는데, 이번엔 그냥 대놓고 신나. 막 에너지를 쏟아내는 느낌이야.”
서소라가 말했다.
“제목이 ‘부숴버려’잖아. 신나게 부수는 건가 봐.”
“가사 보니까 뭘 부수라는 건지 알겠다. 세상의 편견이라는 괴물을 부수라는 거야.”
“아! 이게 그 뜻이구나!”
“역시 디멘션 님이야. 가사에 깊은 메시지를 담고 있어.”
박철우가 이 노래를 만든 때는 가족이 실종되기 전이다. 그런데 그때도 저쪽 세계는 몬스터와 전쟁 중이었다.
박철우는 게이트에서 나온 몬스터를 때려 부수라는 의미를 담아 제목을 지었다.
그런데 이쪽 세계에는 몬스터가 없다. 그래서 윤나나는 가사의 의미를 자기 멋대로 해석했다.
사장 오동철이 갑자기 의자를 뒤로 젖히고 다리를 책상 위에 턱 얹더니 휴대폰으로 전화를 걸었다.
상대가 전화를 받자 오동철이 거만한 목소리로 말했다.
“어. 이 기자. 오후에 인터뷰 하나 하자. 우리 애들 스케줄이 바쁜데 내가 그래도 이 기자 생각나서 전화한 거야.”
상대의 목소리는 들리지 않았지만, 오동철이 하는 말만 들어도 무슨 대화가 오가는지 알 수 있었다.
“우리가 곡이 딱 하나밖에 없다니? 기자가 그런 거짓말에 속으면 쓰나. 그거 다 악성 루머야. 루머. 우리가 치고 나가는 게 무서우니까 방해하려고 퍼트린 헛소문이라니까?”
서소라가 눈치 빠르게 집에서 연습해본 그녀의 파트를 조금 노래했다. 그녀는 전화기에 노랫소리가 잘 들어가라고 일부러 입을 그쪽으로 향하고 노래했다.
오동철이 손가락으로 동그라미를 그려 보인 후에 다시 거만하게 말했다.
“어? 이 노래? 아. 우리 애들이 연습하는 거 보면서 전화해서 그래. 노래? 당연히 이거 말고도 많아. 우리 진짜 크게 한 방 준비하고 있다니까? 응? 자세한 건 와서 듣겠다고? 어디 보자. 우리 애들 스케줄이 오늘 두 시에서 세 시까지만 비네? 그때 올 수 있어? 그럼 그때 보자.”
오동철은 전화를 끊고 나서 다리를 책상에서 내렸다. 등받이도 도로 세웠다.
“크흐흐흐. 우리를 잡아먹으려고 괜히 헛수작 부리던 놈들 이제 엄청 당황할 거다. 크하하하!”
서소라가 물었다.
“사장님. 기자 한 명 불러서 그게 돼요?”
“돼. 이 기자가 이 바닥에 소문 잘 퍼트리기로 유명하거든.”
“그런데 우리한테 신곡이 많아요? 다른 데서 곡을 더 사오셨어요? 전 이거 하나도 졸라서 겨우 받아왔는데요?”
서소라는 이거 하나 받겠다고 서정우에게 엎드려 절까지 했다.
오동철이 머뭇거렸다.
“어……. 인터뷰할 때 그 질문 나오면 내가 알아서 끊을게. 하, 하하하.”
윤나나가 서소라에게 물었다.
“그런데 소라야. 너 디멘션 님을 오빠라고 불러?”
“어?”
서소라는 살짝 당황했다. 그렇다고 이미 한 실수를 되돌릴 방법은 없다. 둘러대야 한다.
“응. 아는 사이라고 했잖아.”
서소라의 소개로 ‘다시 만날 수 있다면’을 받았다는 건 윤나나와 쌍둥이도 안다.
윤나나가 말했다.
“그럼 디멘션 님은 남자구나. 나이 차이는 몇 살?”
“차이 좀 나는데?”
“혹시 너랑 사귀…….”
오동철도 전에 그렇게 질문했다가 욕을 먹었다. 서소라가 그때와 똑같은 반응을 보였다.
그녀가 얼굴을 확 일그러뜨렸다.
“아니거든? 미쳤어?”
“진짜 아닌가 보다. 너 지금 똥 씹은 표정 지었어.”
“우리 나나가 껌만 씹은 게 아니라 똥도 씹어봤구나? 그런 표정도 알고.”
“똥은 안 씹어봤는데?”
* * *
서정우는 이튿날 아침에 경찰서로 출근했다. 이쪽 세계의 경찰 일은 막상 해보니까 적성에 잘 맞았다.
서정우가 출근해서 가장 기다리는 시간은 점심시간이다.
그는 주걱을 들고 닭갈비를 정성을 다해 볶았다. 정성을 다해 볶는 그 모습을 다른 사람들은 젓가락만 든 채로 구경했다.
백성민이 볶는 모습을 구경하면서 물었다.
“옆 팀에서 김 형사가 너 안 찾아왔냐?”
“김 형사가 누군데요?”
“김정호 형사.”
“아니요.”
백성민이 고개를 갸웃거렸다.
“이상하네. 오늘 너한테 부탁할 게 있다고 했는데.”
“뭔데요?”
“골치 아픈 사건이 있는데, 네 조언을 좀 얻고 싶다더라.”
조민석이 웃었다.
“이야아. 벌써 옆 팀에서 도와달라고 찾아오기도 하고. 정우가 완전히 형사과 에이스네. 에이스.”
서정우가 주걱을 내려놓았다.
“물어보면 조언 정도야 뭐. 도움이 될진 모르겠지만.”
백성민이 얼른 떡을 하나 집어 먹었다. 고소한 맛과 기름진 맛, 매콤한 맛이 잘 조화를 이루고 있었다.
“와. 무슨 닭갈비 사리 떡에서 이런 고급진 맛이 나냐. 너 진짜 직업 잘못 선택한 거 아니냐?”
“뭐가요?”
“올림픽을 나가든지, 요리사가 되든지. 뭘 해도 형사보다는 돈 많이 벌 것 같다.”
서정우가 피식 웃었다.
‘그러고 보니 노래는 얼마나 팔리나 모르겠네. 순위는 높던데.’
* * *
포캣츠는 어제 ES 엔터테인먼트를 찾아온 기자를 만났다.
기자는 디멘션의 정체나 또 다른 곡에 대해 궁금해했지만, 그런 질문이 나올 때마다 오동철이 끼어들어 말을 돌렸다.
그래도 기자는 만족했다. 기사로 쓸만한 이야기도 많았고, 서소라가 몇 마디 들려준 새 노래도 굉장히 듣기 좋았다.
‘이 노래는 분명히 뜬다. 뜨고 나면 이 노래를 제일 먼저 알아보고 인터뷰한 기자가 나라고 자랑해야지. 다른 기사에 그 자랑을 여러 번 써먹을 수 있겠어.’
그 기사는 어젯밤에 인터넷판으로 올라갔다.
게임기나 PC 게임 등을 다루는 대형 인터넷 커뮤니티 사이트의 게시판에 그 기사에 대한 글이 올라왔다.
그 글은 곧바로 이용자들은 관심을 끌었다.
포캣츠에 멤버인 쌍둥이 박하연과 박다연이 박철우의 딸이라는 것이 기사를 통해 알려졌기 때문이다.
그 글에 댓글이 줄줄이 붙었다.
– 와! 아이언캅 박철우. 오랜만에 듣는다.
– 그리운 이름이네요.
– 저는 처음 듣는데 어떤 분인가요?
– 형사가 퇴근 후 남는 시간에 취미로 스타를 했는데, 최상위권 랭커가 됐습니다.
– 와우!
– 대회도 몇 번 출전했는데, 한 번은 4강까지 올랐습니다.
– 취미로 했는데 4강입니다.
– 아!
– 예전에 순직하셨다는 기사를 보고 깜짝 놀랐는데, 그때 사진에 나온 그 쌍둥이가 저렇게 컸네요.
– 진짜 잘 컸네.
– 인정.
모든 사람이 좋은 반응을 보인 건 아니다. 부정적인 댓글도 붙었다.
– 겨우 한 곡 운 좋게 떴다고 며칠도 안 지나서 바로 곡 하나 더 발표라니. 너무 급하게 내는 느낌이 듭니다. 윤나나가 납치됐다 구출된 걸 너무 우려먹는 것 같습니다.
– 물 들어올 때 노 저어야죠.
– 제가 저기 사정을 좀 아는데, 망해가는 회사입니다. 두 번째 곡까지 좋을 수는 없어요.
– 아무리 망해가는 회사라 해도 거기 사장이 오동철입니다. 좋은 곡을 겨우 하나만 받았겠습니까?
– 아무리 잘 아는 사이라도 작곡가가 ‘다시 만날 수 있다면’처럼 좋은 노래를 계속 주진 않습니다. 기사에 나온 새 노래는 행사 구색 맞추기 용으로 내는 거라는 데 손목을 걸어봅니다.
– 오동철 요즘 왜 신곡 안 나와요? 정말 좋아한 가수인데.
– 정말 좋아한 거 맞습니까? 몇 년 전에 사고로 목을 다쳐서 노래 못 하게 됐는데.
– 네? 얼마 전에 방송에서 봤는데요?
– 평소에 말하는 건 상관없으니까 일상생활에는 문제가 없는데, 노래는 예전 그 목소리가 안 나온다더군요.
– 와. 아깝네. 오동철 노래 진짜 쩔었는데.
– 오동철이 목을 다치고 나서 가수는 접고 기획사를 차렸는데, 잘 안 풀려서 그동안 모아놓은 돈을 다 까먹었다더군요.
– 불쌍하니까 이해해 줍시다.
오동철이 회사의 유일한 직원인 매니저 김형진에게 말했다.
“야. 아무리 그래도 내가 불쌍하다고 쓰면 어떻게 하냐? 자존심 상하게.”
김형진이 새 댓글을 달면서 말했다.
“지금 우리가 자존심 챙길 때입니까? 괜히 초반에 안 좋게 찍히면 안티만 늘어납니다. 불쌍한 척이라도 해야지.”
“그래도…….”
“게시판은 저한테 맡겨두고 사장님은 ‘부숴버려’ 발표나 서둘러 주세요. 그것만 제대로 터지면 사장님을 불쌍해하던 사람들이 죄다 포캣츠의 팬이 될 겁니다.”
오동철이 큰소리쳤다.
“그건 걱정하지 마라. 이번 노래도 우리 애들한테 딱 맞춰서 나와서 다들 금방 적응했어. 음악 프로에서 나오라고 해도 두 곡 중에서 골라서 부를 수 있을 정도야.”
김형진의 표정이 살짝 굳었다.
“음악프로요? TV요?”
“어. 대단하지?”
“춤은요?”
“춤? 우리 애들이 예전부터 춤 연습 많이 했잖아.”
“그거야 기본 동작 연습이나, 다른 가수들 춤을 흉내 내서 춘 거고요. 이 노래에 맞춘 춤은 만든 적도 없는데요?”
“어?”
오동철은 그때서야 상황을 깨달았다.
“이대로 음악 프로 내보내면, 우리 애들은 말뚝처럼 서서 불러야 하는구나. 그렇게 약점을 보이면 여기저기서 또 견제 들어올 텐데. 와. 이거 어떡하지?”
“사장님이 어떡하냐고 하면 어떻게 합니까?”
“진짜 어떡하지?”
김형진이 제안했다.
“일단 라디오 프로만 하죠? 거긴 춤이 없어도 나갈 수 있으니까요.”
“지금부터 안무를 짜서 빡세게 연습하면 안 될까?”
“연습실 월세를 못 내서 기본 안무 연습조차 그만둔 지 오래입니다. 애들 몸이 다 굳었을 겁니다. 그리고 지금은 노래 연습해서 녹음하는 게 더 급한데, 안무에 쓸 시간이 어디 있습니까?”
“그렇지? 난 원래 라디오부터 해야 한다고 생각했어. 노래만 계속 연습시키자.”
* * *
2팀이 점심을 먹고 돌아왔다.
그런데 옆 팀의 분위기가 심상치 않았다.
백성민이 옆 팀에 가서 물었다.
“무슨 일이야?”
옆 팀 형사가 초조한 얼굴로 대답했다.
“김 형사님이 연락이 안 됩니다.”
“전화기 일부러 꺼놓은 거 아냐? 전에도 그랬잖아.”
“아닙니다. 댁에 연락했더니 김 형사님이 어젯밤부터 안 들어왔다고 합니다. 댁에서는 또 야근인 줄 알았다는데…….”
“그러면 어디 다른 곳으로 빠진 거 아냐?”
“오늘 아침에 팀장님에게 보고할 게 있다고 했는데 빠지긴 어딜 빠집니까?”
백성민의 표정이 굳었다.
“그 보고, 무슨 보고인지는 알아?”
“아니요. 중요한 보고라고만 했다던데요.”
“난 알 것 같다.”
백성민이 김 형사의 자리로 가 서류를 뒤졌다.
옆 팀 형사가 물었다.
“지금 뭐 하는 겁니까?”
“어제 김 형사가 날 찾아와서 요즘 수사 중인 사건 이야기를 했는데, 그때 서류철을 하나 가지고 있었어. 아! 이거다!”
백성민이 서류철을 펼쳤다.
옆 팀은 물론이고 2팀 형사들도 모여서 그 서류를 확인했다.
옆 팀 팀장이 말했다.
“이건 김 형사가 맡고 있던 실종 사건인데?”
“어제 김 형사가 저한테 사거리파가 수상하다고 했습니다. 오늘 정우한테 가서 의견 좀 물어보겠다고 했는데…….”
옆 팀 팀장이 서류를 급히 넘겨보았다.
“무슨 소리야? 이 서류 어디에도 사거리파 이야기는 없잖아.”
백성민의 표정이 딱딱하게 굳었다.
“아. 이런 제기랄.”
“왜? 뭔데?”
“어제 제가 김 형사의 그 말을 못 들었으면, 김 형사가 사거리파를 의심한다는 정보는 보고조차 안 됐겠네요?”
옆 팀 팀장도 상황을 깨달았다.
“김 형사가 사거리파에 대해 뭔가 눈치챘는데, 그놈들 쪽에서도 들켰다는 걸 눈치챘다면?”
“그게 사거리파 놈들을 다 처넣을 수 있는 큰 건이면?”
“입을 막으려고? 이 새끼들이 감히 형사를!”
옆 팀 팀장이 형사들에게 외쳤다.
“일단 사거리파 새끼들부터 싹 다 조져!”
“예!”
“이 새끼들 뒤에는 누가 있어?”
옆 팀 형사가 보고했다.
“신생 조직이라 아직 거기까진 알아내지 못했습니다. 몇 군데 의심 가는 곳은 있습니다.”
“그것도 알아봐!”
“예!”
2팀 팀장 권병철이 제안했다.
“사거리파 조지는 것만 해도 손이 모자랄 테니까, 뒤를 확인하는 건 우리가 도와주지.”
“오케이!”
권병철이 2팀 형사들에게 지시했다.
“다들 이 사건에 집중해! 김 형사가 사라졌다. 납치됐을 가능성이 있으니까, 정신 바짝 차리고 뛰어! 아직 확실한 건 아니니까 다른 놈들, 특히 기자들 귀에 안 들어가게 조심하고!”
사거리파를 분석한 자료가 형사들에게 배부됐다. 원래 사건 조사 파일의 복사본도 첨부됐다.
서정우도 한 부를 받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