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bility from Parallel Dimensions RAW novel - Chapter 47
47. 설계
스토커 최선형이 당황한 얼굴로 권총을 흔들었다.
“뭐? 이 새끼야. 이거 진짜 총이야! 뒈지기 싫으면 당장 무릎 꿇어!”
서정우가 말했다.
“아. 총이다. 아. 무섭다.”
이 모형 권총은 진짜와 거의 똑같이 생겼다. 실제 권총처럼 도색까지 돼서 최선형도 처음에는 진짜로 착각했다. 그래서 이 총으로 서정우를 협박하면 마음대로 다룰 수 있을 줄 알았다.
‘이런 상황에서 총을 보면 진짜인 줄 알고 겁을 먹어야 하는데.’
권총을 겨누었는데도 서정우가 겁을 먹지 않았다.
이선화는 확실히 겁을 먹은 게 보였다. 그런데 그녀만 겁먹으면 의미가 없다.
‘겁먹은 놈의 초라하고 비겁한 꼴을 보여주려고 했는데!’
그러고 난 후의 상황은 어떻게든 수습할 자신이 있었다.
그는 경찰에 신고당해도 집안의 힘으로 감옥에는 가지 않고 넘어갈 자신이 있었다. 이 총은 진짜 총이 아니기 때문이다.
최악의 경우에도 집행유예로 막을 수 있다고 생각했다. 최선형처럼 집에 돈이 많은 사람에게 집행유예 판결은 그냥 풀어주는 것과 별 차이가 없다.
그런데 처음부터 계획이 틀어졌다. 남자친구라고 주장하는 서정우가 겁을 먹기는커녕 오히려 이선화의 앞을 막아 그녀를 보호했다.
그것만 해도 화가 나는데, 서정우는 국어책을 읽는 어색한 느낌으로 무섭다는 말까지 했다.
최선형이 소리를 질렀다.
“이 새끼야! 진짜 쏜다! 쏜다고!”
서정우가 덤덤하게 말했다.
“야. 그러면 큰일 나. 너한테.”
뒤에 숨어 있는 이선화는 겁을 잔뜩 집어먹었다.
“진짜 왜 그래요? 자극하면 안 되는 거 아녜요?”
서정우가 피식 웃었다.
“저놈에겐 해도 됩니다.”
최선형의 얼굴이 시뻘게졌다. 서정우가 피식 웃은 것이 그의 인내의 끈을 끊어버렸다.
최선형이 갑자기 미친놈처럼 웃었다.
“크크크큭! 크하하하! 씨발! 이건 다 너 때문이야!”
“왜? 어쩌게?”
최선형이 가짜 권총을 왼손으로 옮겨 쥐고, 오른손을 주머니에 넣었다.
“그냥 겁먹고 무릎 꿇었으면 됐잖아!”
최선형이 주머니에서 잭나이프를 꺼냈다. 버튼을 누르자 날카로운 칼날이 툭 튀어나왔다.
“왜 버텨서 내가 이렇게까지 하게 만드냐고!”
“아. 칼이다. 아. 무섭……. 아니다. 칼은 안 무섭지.”
서정우는 총보다는 못하지만 그래도 칼이 어디냐 싶었다.
‘이놈 죄목이 추가되는구나. 잘됐다.’
최선형에게서 살기는 감지되지 않았다.
‘그래도 죽이려고 드는 건 아니네.’
상대가 살인을 할 생각으로 덤비면 폐인으로 만들어버리려고 했는데, 그 정도 상황은 아니다.
그래도 상대가 단순히 위협으로 칼을 든 게 아니라는 건 안다.
‘찌르긴 하겠네?’
최선형은 가짜 권총을 겨누며 서정우에게 다가갔다.
“이 새끼. 움직이지 마! 움직이면 쏴 버릴 거야!”
서정우는 상대의 생각을 쉽게 읽었다.
‘가짜 총은 쏠 수가 없으니까, 총으로 위협한 후에 칼로 찌르려는군.’
최선형은 서정우가 총 때문에 못 움직인다고 판단했다.
“그러면 그렇지. 여자 앞이라서 배짱 튕긴 거지 총이 안 무서울 리 없잖아!”
그는 소리를 지르며 서정우의 어깨를 향해 칼을 푹 찔렀다.
“죽어! 이 건방진 새끼야!”
그 순간 서정우가 움직였다.
‘너 그 말 참 잘했다. 날 죽일 생각으로 찔렀다고 덮어씌우면 되겠네.’
그는 손안에 감추고 있던 금도금 볼펜을 빙글 돌려 쥐었다가, 최선형의 권총을 든 손을 그 볼펜으로 콱 찔렀다.
금속으로 만든 볼펜이 단번에 최선형의 손을 관통했다. 그는 볼펜을 꽂아둔 채로 손을 뗐다.
아무 위협이 안 되는 가짜 권총부터 먼저 처리했다. 진짜 권총으로 착각한 것처럼 보이려고 일부러 그렇게 했다.
더 살살 제압할 수도 있었지만, 일부러 볼펜으로 손을 뚫어버렸다. 이러려고 이 볼펜이 진짜 금인지 미리 물어본 것이다.
‘진짜 금이면 볼펜이 좀 아까우니까.’
그는 일부러 최선형이 칼을 찌를 시간을 주었다. 왼손이 볼펜에 뚫리는 동안에도 오른손의 칼은 계속 날아왔다.
서정우가 어깨를 슬쩍 젖혀 칼을 피하며 적의 왼손을 잡았다. 잡자마자 오른 주먹으로 그 손목을 강하게 때렸다.
최선형의 손목이 그 힘을 버티지 못하고 뚝 부러졌다.
그때서야 최선형이 비명을 질렀다.
“으, 으아악!”
서정우는 원래 오발 사고로 위장해 최선형을 고자로 만들려고 했다.
다시는 스토커 비슷한 짓도 할 수 없게 만들려고 했지만, 총도 아니고 칼로 그런 조작질을 하면 사람들이 안 믿어줄 것 같아서 그만두었다.
비명이 시끄러웠다. 서정우는 최선형의 손목을 부러뜨린 주먹으로 턱을 후려쳤다.
“켁!”
최선형이 짧은 비명과 함께 옆으로 철퍼덕 쓰러졌다.
그는 손목이 부러졌는데도 칼은 여전히 손에 쥐고 있었다.
의지가 강해서 그런 게 아니다.
서정우는 일부러 최선형의 칼을 쥔 손을 직접 잡고 손목을 부러뜨렸다. 그 상태로 기절했으니 이제 그 손은 칼을 놓지 못한다.
뒤쪽에서는 캠코더가 이 모든 상황을 찍고 있었다.
서정우가 바닥에 떨어진 권총을 주웠다. 그런 후에 조금 놀란 것처럼 말했다.
“아. 이런. 가볍네. 진짜 총이 아니구나. 난 또 진짜 총인 줄 알았지. 총이 참 진짜같이 생겼네.”
이제 필요한 영상은 모두 촬영했다.
이선화의 얼굴은 하얗게 질려 있었다. 그녀가 뒤에서 소리를 질렀다.
“초, 총에 맞을뻔했잖아요! 칼에 찔릴 뻔했잖아요!”
“안 맞고 안 찔렸으니까 괜찮습니다.”
“그 말이 아니잖아요! 아!”
이선화는 소리를 지르다가 캠코더가 생각났다. 그녀의 당황한 모습까지 계속 찍히게 할 필요는 없다.
그녀가 허둥지둥 캠코더 쪽으로 달려가다가 소파에 걸려 넘어졌다.
“꺅!”
그녀는 엎어지면서도 얼른 손으로 캠코더를 잡고 녹화를 끝냈다.
서정우가 돌아서며 총을 흔들었다.
“그리고 이거 가짜 총입니다. 진짜처럼 정교하게 만들긴 했지만, 총알은 안 나가요.”
“지, 진짜인 줄 알았단 말이에요! 서 형사님도 진짜 총인 줄 알았다면서요!”
“그거야 뭐.”
그때는 캠코더가 동영상을 찍고 있어서 그렇게 말했다.
이선화가 흥분으로 가빠진 숨을 몰아쉬면서 캠코더를 삼각대에서 분리했다. 그걸 통째로 서정우에게 내밀었다.
“여기요.”
서정우가 물었다.
“그걸 왜 날 줘요?”
“네? 증거 영상으로 남기기 위해 찍으라면서요.”
“나한테 필요해서 찍으라고 한 게 아닌데.”
“네?”
서정우가 기절한 최선형을 가리켰다.
“저놈을 확실히 보낼 증거니까 이선화 씨가 가지고 있어요.”
이선화가 눈을 동그랗게 떴다.
“네? 서 형사님이 아니라 제가요?”
“시끄러워지는 게 싫어서 경찰에 신고하지 않고 절 부른 거잖아요. 그런데 일이 너무 커져서, 이젠 조용히 덮을 수가 없어요.”
이선화가 외쳤다.
“당연히 경찰에 신고해야죠! 덮긴 왜 덮어요! 저놈 꼭 감옥에 보낼 거예요!”
“112에 신고하면 당연히 경찰이 올 겁니다.”
그는 스토커의 정체가 최선형이라는 걸 안 순간, 몇 대 패서 쫓아버리는 선택지는 버렸다. 그런다고 포기할 놈이 아니라서다.
그런데 이 상황이 여기서 끝나지 않을 수도 있다.
저쪽 세계에서 최선형의 집안은 자식이 저지른 짓을 사과하지 않았다. 오히려 그들이 가진 작은 권력을 움직여 이선화에게 누명을 씌우려 했다.
그때는 서정우가 그놈들을 직접 찾아가서 입을 닥치게 만들었다.
그런데 여기서도 같은 방법을 쓸 수는 없다. 이쪽 세계에서는 총을 함부로 쏘면 골치 아파진다.
여기서는 총이 아니라 다른 무기가 필요하다. 그래서 이 영상을 준비했다.
“경찰이 오면 비공개를 조건으로 이 영상을 보여줘요. 달라고 하면 복사본을 주고 원본은 잘 챙겨둬요. 백업도 해놓고. 증거 영상이 존재한다는 게 저놈 집에 알려지면 입을 닥칠 겁니다.”
이선화는 바로 알아들었다.
“아. 아! 네! 깝치지 못하게 하라는 거죠?”
서정우가 피식 웃었다. 그녀의 입에서 저쪽 세계의 이선화가 흔히 쓰는 말이 튀어나왔다.
“바로 그거죠.”
저쪽 세계에서는 미리 이런 준비를 해놓지 않아서 상대가 수작을 부릴 여지가 있었다. 그때 경험으로 이 영상을 만들었다.
서정우는 이제 일이 다 정리됐다고 판단했다.
‘선화 생각이 나서 도와준 건데, 이만큼 했으면 됐지 뭐.’
그는 그런 생각으로 이 영상을 이선화에게 넘겼다.
‘이제 난 손 떼도 되겠지.’
그가 잘못 생각한 게 하나 있다.
이쪽 세계의 이선화는 톱스타다.
그녀는 이런 영상이 없어도 최선형의 집안을 입 닥치게 할 수단이 많이 있다. 법을 이용해도 되고 언론을 움직여도 된다.
이선화는 서정우가 증거 영상까지 꼼꼼히 챙겨준 것을 다른 의미로 이해했다.
‘내가 많이 걱정되어서 챙겨주나 보다.’
그녀는 서정우와 둘이서 위험한 상황을 같이 헤치고 나온 후에, 배려하는 마음이 가득 담긴 선물까지 받았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더 고마웠다.
112에 신고는 이선화가 직접 했다.
서정우는 바닥의 핏자국을 보며 말했다.
“이거 아직은 닦으면 안 됩니다. 다 증거니까. 그런데 나중에 청소비 달라고는 안 할 거지요?”
이선화는 순간적으로 갈등했다.
‘청소 도와달라는 핑계로 집에 한 번 더…….’
그 생각은 바로 고쳐먹었다.
‘그랬다간 은혜도 모르는 년이라고 생각하겠지.’
“사람 부르면 돼요.”
잠시 후에 경찰이 도착했다. 경찰들의 뒤로 건물 경비직원도 따라왔다.
엘리베이터에서 내린 경찰이 그녀를 보고 숨을 삼켰다.
“헉! 진짜 이선화다!”
먼저 도착한 경찰은 현장보존을 신경 쓰면서 범인의 상태를 확인했다.
이선화와 서정우는 복도에 나와 있었다.
잠시 후에는 관할 경찰서의 강력팀이 도착했다. 그들도 피해자가 톱스타 이선화라는 건 들어서 알고 있다.
“헉! 진짜 이선화!”
그 팀의 팀장은 즉시 형사들에게 지시했다.
“다시 말하지만 다들 입단속 잘해라. 괜히 기자한테 찌르는 놈 있으면 가만 안 둔다.”
이선화가 강력팀장에게 고개를 꾸벅 숙여 인사했다.
“고맙습니다.”
“하하. 고맙기는요. 아. 팬입니다.”
형사들은 밝은 표정을 한 채 그녀의 집으로 들어갔다. 곧바로 팀장이 놀란 소리로 말했다.
“사람을 어떻게 이 지경으로 만들어? 이건 너무한데?”
“여기 총이 있습니다.”
“그게 무슨 소리야! 총이라니!”
“팀장님. 이 사람 손에 칼을 꽉 쥐고 있는데요?”
“칼까지?”
강력팀장이 밖으로 뛰어나왔다.
“이선화 씨. 이게 도대체 어떻게 된 겁니까?”
이선화가 설명했다.
“아. 그 총은 가짜 총이에요. 저희도 처음에는 진짜 총인 줄 알았어요.”
“아. 가짜 총. 어휴. 깜짝 놀랐습니다.”
“칼은 진짜예요. 저놈이 총을 겨누고 칼로 찌르는데 사정 봐주면서 팰 수가 없었어요.”
“그야 그렇지요. 그런데 이선화 씨가 저렇게 만든 건 아닐 것 같은데…….”
팀장의 시선이 옆에 서 있는 서정우에게 돌아갔다.
“혹시 저거 당신이…….”
“예. 뭐. 어쩌다 보니.”
“매니저나 이 건물 경비직원인 줄 알았는데 아닌가 봅니다? 경호원?”
이선화가 얼른 설명했다.
“서정우 형사님이에요.”
강력팀장은 깜짝 놀랐다.
“어? 당신이 그 서정우 형사?”
“아. 예.”
“여기는 관할도 아닌데 왜…….”
“이선화 씨와 할 이야기가 있어서 잠깐 만났다가, 일이 이 지경이 됐습니다.”
형사들이 최선형을 체포해 일단 병원으로 데려갔다. 병원에서 기본 치료만 하고 나서 경찰서로 끌고 가기로 했다.
서정우와 이선화도 건물 밖으로 나갔다. 서정우는 그 경찰서로 따로 찾아가겠다고 말했다.
서정우는 일단 팀장 권병철에게 전화를 걸어 상황을 설명했다.
– 아니. 다른 사건 해결한 지 얼마나 지났다고 벌써 또…….
“예. 어쩌다 보니 그렇게 됐습니다.”
– 넌 진짜 대단하다. 어쨌든 해결했으니까 됐어. 사건을 우리 쪽으로 가져오겠다고만 하지 않으면 거기서도 좋게 나올 거다.
“해결됐으면 됐지 뭐하러 귀찮게 가져가나요.”
– 그것도 다 실적이잖아.
서정우가 전화를 끊었다.
이선화가 물었다.
“서 형사님도 경찰서에 가야 하는 거죠?”
“이선화 씨는 피해자인 데다가 남들 눈을 피해야 하는 분이니까 형사들이 오늘은 일단 여기로 찾아와서 이것저것 물어보기만 할 겁니다. 아. 집이 저 꼴인데 지낼 곳은?”
“오늘 밤은 이 근처 호텔에 가면 돼요.”
“다행이네요. 어쨌든 이선화 씨는 그 호텔에 있어도 되는데, 저까지 여기서 버티면서 오라 가라 하면 여러 사람 피곤해집니다. 그냥 제가 가서 싹 정리하는 게 편합니다.”
그녀도 상황을 완전히 이해했다.
그녀가 서정우에게 고개를 꾸벅 숙였다.
“고마워요. 오늘 구해주셔서 정말 고마워요.”
“뭘요. 경찰이 할 일을 한 것뿐인데.”
“그래도요.”
그녀는 하고 싶은 말이 더 있지만, 자존심 때문에 망설였다.
‘서 형사님이 먼저 다시 만날 약속을 잡아주면 좋겠는데.’
서정우가 돌아섰다.
이선화는 그가 등을 보이자마자 바로 생각을 고쳐먹었다.
‘자존심이 밥 먹여 주냐? 말하자!’
“서 형사님. 이게 끝이 아니라요.”
“물론 아직 안 끝났습니다.”
그녀의 얼굴이 밝아졌다.
“정말요?”
‘역시 나한테 관심이 있구나!’
그녀는 혼자 신났다.
‘어디 그럼 오늘부터 썸 좀 타볼까!’
서정우는 다른 곳에 볼일이 있었다. 그는 길가에 주차된 차로 걸어갔다.
이선화는 무슨 일인가 싶어서 그 뒤를 따라갔다.
서정우가 차 문을 두드리며 말했다.
“문 열어라.”
문이 열리지 않았다.
“문 부숴버리기 전에 열어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