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bility from Parallel Dimensions RAW novel - Chapter 56
56. 저주
긴급대응부대가 출동했다. 그 부대의 원래 임무는 게이트를 없애고 몬스터를 소탕하는 것이다.
그런데 그 부대의 임무가 잔적 소탕에서 지역 봉쇄로 바뀌었다. 저주에 오염된 지역에 평범한 병사를 들이밀어 봤자 피해자만 늘리는 꼴이기 때문이다.
광역 저주는 굉장히 드문 현상이다. 그런 지역은 진입을 포기하고 일단 봉쇄하는 것이 정상적인 대응 방식이다.
이선화와 정현수를 저주로 오염된 지역 밖으로 데려갈 수도 없다.
저주에 당한 사람은 다른 사람과 접촉해서는 안 된다. 저주 중에는 다른 사람에게 전염되는 것이 있기 때문이다.
서정우가 게이트 대응센터에 전화를 걸었다.
– 네! 요원님!
“게이트 상태는 어떻습니까?”
– 남산 게이트 감지 레이더가 위치를 파악했습니다. 게이트가 자연 소멸 중입니다.
게이트는 한 번 열리면 그대로 유지되는 경우가 대부분이지만, 안 그런 경우도 있다.
“이 몬스터의 주술에 영향을 받는 게이트군.”
– 저희 쪽에서도 그렇게 분석했습니다. 그 주술로 게이트의 존재를 숨길 수 있는 대신에, 주술이 끊기면 게이트도 소멸하는 타입이라고 판단됩니다.
“저주 전문가는 찾았습니까?”
– 이미 저주에 걸린 지역이라서……. 진입 가능한 전문가를 최선을 다해 찾고 있습니다.
긴급대응부대는 그 지역을 완전히 봉쇄했다.
게이트는 이미 소멸했다.
저주를 없애려면 전문가가 들어와 대응방법을 찾아야 한다.
문제는 이 지역의 저주가 이미 활성화됐다는 데 있다.
아무리 저주에 대한 지식이 많은 전문가라 해도 정신 저항력이 높은 사람이 아니면 이 지역으로는 못 들어온다.
정신 저항력은 정신을 공격하는 몬스터와 많이 싸우고 많이 잡아야 높아지기 때문에, 연구소에서 저주를 연구하는 것만으로는 저항력을 높이기 어렵다.
저주 전문가는 원래 흔치 않은데, 이미 오염된 곳에 들어가 저주를 분석할 수 있는 전문가는 더 적다. 그 소수의 전문가는 전국에 흩어져 산다.
그래도 게이트 대응센터는 이곳에 올 수 있는 저주 전문가를 찾아냈다.
저주 전문가 현승엽이 서정우를 찾아왔다.
“서정우 씨?”
서정우가 물었다.
“혼자입니까?”
“일단 저부터 들어왔습니다. 저주 대응팀과 긴급 치료팀도 경계 외부에서 대기 중입니다. 다들 저주 저항력을 높여주는 장비가 도착하기를 기다리는 중입니다.”
“얼마나 걸립니까?”
“전국에서 장비를 모으고 있습니다. 장비가 도착할 때마다 그만큼의 인원이 들어올 겁니다. 24시간 뒤에는 지원팀이 모두 들어올 수 있습니다.”
“알았으니까 일단 우리 선화 좀 봐주시죠. 아. 현수도.”
“예. 그런데 그 전에.”
현승엽이 조심스럽게 물었다.
“서정우 씨는 괜찮습니까?”
“전 정신 저항력이 높습니다.”
정신 저항력이 높을수록 저주에 잘 걸리지 않지만, 저주술사의 저주 레벨이 높으면 걸릴 수도 있다.
그런데 서정우는 저주술사 몬스터를 근거리에서 잡았다. 그 과정에서 저주술사와 직접 접촉했다.
게이트를 숨길 정도로 강력한 주술을 가지고 있고, 광역 저주까지 쓸 수 있을 정도로 저주술사의 능력이 강했다. 그런 몬스터와 접촉하고 싸우고 직접 잡기까지 했는데 저주에 걸리지 않았다.
“정신 저항력이 도대체 얼마나 높길래…….”
현승엽이 목에 걸고 있는 목걸이를 들어보았다. 뾰족한 이빨을 줄줄이 연결한 목걸이였다.
“저는 이 아이템의 보조를 받아서 겨우 여기로 들어온 건데.”
“저주 저항 아이템입니까?”
“예. 저주 저항력이 있는 몬스터의 이빨을 모아서 만든 겁니다. 수요는 별로 없지만, 막상 구하려면 구하기 어려운 아이템이지요.”
저주술사는 극히 드물게 나타난다. 그래서 보통은 저주까지 대비하지는 않는다. 이런 아이템은 쓸 일도 거의 없고 구하기도 어렵다.
서정우가 손을 내밀었다.
“그 목걸이를 선화에게 걸면 저주를 풀 수 있습니까?”
현승엽이 얼른 두 손으로 목걸이를 가렸다.
“그런 효과를 보려면 이런 저항 목걸이가 아니라 성물이라도 있어야 합니다. 이건 저주에 걸리지 않게 저항력을 좀 높여주는 효과만 있습니다.”
이선화가 파리해진 얼굴로 말했다.
“안 빼앗아가니까 그렇게 꼭 쥐고 있지 마세요.”
“아. 예.”
“그리고 오빠도 표정 좀 풀어.”
“푼 거야.”
현승엽이 조심스럽게 말했다.
“그럼 조사를 시작하겠습니다.”
저주는 현대 기술의 센서로는 감지할 수 없다. 저주 감지 관련 스킬을 가지고 있거나, 이빨 목걸이처럼 저주와 관계가 있는 몬스터를 잡아서 만든 아이템을 사용해서 조사해야 한다.
현승엽은 후자였다. 그는 여러 개의 아이템을 이용해 저주의 종류를 파악했다.
그의 표정이 나빠졌다.
“으. 이건.”
그는 몬스터 가죽으로 만든 장갑을 한 겹 더 끼고 이번에는 정현수의 상태를 확인했다. 결론이 나왔다.
“접촉한 사람에게 옮겨가는 저주입니다. 전염성 저주인 덕분에 시간을 벌었습니다.”
저주에 걸린 사람이 바로 죽어버리면 다른 사람에게 퍼트릴 기회조차 없다. 그래서 전염성 저주는 걸렸다고 해서 바로 생명이 위험해지지는 않는다.
“시간이 얼마나 있습니까?”
“정현수 씨는 전투 스킬 각성자에 정신 저항력도 나쁘지 않아 보이니까 시간이 충분히 지나면 회복할 겁니다.”
그가 미안한 표정으로 이선화를 쳐다보았다.
“하지만 이선화 씨는…….”
서정우가 물었다.
“그래서 여유가 얼마나 있습니까?”
“현재 상태로는 사흘 정도 견딜 수 있습니다. 저주술사의 사체나 저 지팡이를 매개체로 사용해 이 지역의 광역 저주를 신속하게 제거하면 시간을 며칠 더 벌 수 있습니다만, 그러면 저건 팔 수가 없어지는데…….”
“쓰세요. 둘 다. 지팡이에 깃든 힘을 다 소모해도 됩니다.”
“고맙습니다!”
“치료비까지 그걸로 퉁치죠. 그래서 선화에게 걸린 저주를 제거할 방법은요?”
“겉보기에는 비슷해 보이는 저주도 실제로는 다른 부분들이 있어서, 해주 방법은 연구가 필요합니다.”
“서둘러 주십시오.”
저주 저항 장비가 도착하면서 지원팀과 치료팀이 그 지역에 속속 들어왔다.
긴급대응부대도 정신 저항력이 높은 사람 위주로 저주 저항 장비를 착용하고 들어왔다. 그들은 잔존 몬스터를 수색했다.
오염된 지역에 있던 사람 대부분이 저주에 걸렸다. 만약 그들이 광역 저주 구역에 오래 머물러 있었으면 상황이 심각해질 수도 있었다.
다행히 그들은 저주술사와 직접 접촉하지 않았다. 치료팀은 그들을 저주 지역의 경계로 이동시킨 후 일반적인 방법으로 치료했다.
하지만 저주술사와 직접 마주친 이선화에게는 그 치료가 통하지 않았다.
컨테이너를 개조한 이동식 병동이 도착했다. 이선화와 정현수는 그 병동에 입원했다.
서소라가 이선화에게 전화를 걸었다.
– 언니. 괜찮아요?
이선화는 아직 기운이 있었다.
“목이 좀 말라. 눈도 부시고.”
– 버텨요. 오빠가 어떻게든 답을 찾을 거예요.
“당연하지. 항상 그랬으니까.”
이튿날 오후에 서정우가 현승엽에게 물었다.
“저주를 풀 방법은 찾았습니까?”
“흡혈형 저주인 것까지는 알아냈습니다만, 정확한 치료법은 아직 찾는 중입니다.”
서정우도 해결법을 찾는 일이 어렵다는 건 안다.
문제는 시간이다. 안전한 건 사흘뿐이다. 거기서 며칠이 더 지나면 이선화는 죽는다.
서정우가 물었다.
“어느 등급이면 됩니까?”
“예? 등급이라니요?”
“구체적인 해주 방법을 모르는 경우에도, 성물을 이용하면 저주를 풀 수 있잖습니까?”
서정우는 저주 능력을 가진 몬스터를 몇 번 잡아보았다. 저주 방어에 대한 기본 지식도 있다.
현승엽이 안쓰러운 표정을 지으며 대답했다.
“물론 성물을 이용하면 모든 문제가 해결됩니다만, 성물을 쓸 수는 없습니다. 위에서 허가가 안 떨어질 겁니다. 성물의 힘은 사용할수록 소모되니까요.”
“그건 내가 알아서 할 테니까 정보를 주십시오. 어느 등급의 성물이면 선화의 문제가 해결됩니까?”
“글쎄요. 일반 성수는 이미 시험해 봤지만 저주가 너무 강력해서 전혀 통하지 않았습니다. 그걸로 추측해 보면, 희귀 등급의 성물이 필요하리라 생각합니다.”
“희귀 등급이면 됩니까?”
“구할 수만 있다면 충분하지요. 구할 방법이 없어서 그렇지.”
“알고 있습니다.”
“이 저주를 푸는 방법을 꼭 찾겠습니다. 그게 제가 하는 일입니다. 믿고 기다려 주십시오.”
“알겠습니다.”
알겠다는 말은 진심이 아니다.
서정우는 이 일을 남의 손에 맡길 생각이 없다.
* * *
서정우가 평행차원 텔레포트 스킬을 사용했다.
저주 저항 장비는 특정 몬스터를 잡으면 만들 수 있다.
많이 알려진 방법은 저주 저항력을 가진 몬스터의 가죽으로 보호복을 만드는 것이다. 저주 자체가 워낙 희귀한 주술이라 보호복의 수요도 적고 생산량도 조금밖에 없지만, 돈을 주면 살 수는 있다.
성물은 다르다. 그건 몬스터를 잡는다고 나오는 게 아니다.
성물은 성스러운 힘을 가지고 있는 물건을 말한다.
그런데 성물을 구분하는 건 어렵다.
전자공학으로 만든 센서에는 성스러운 힘이 감지되지 않는다. 저주에 걸린 사람에게 써 보는 것이 가장 확실한 성물 구분법이다.
역사책에 신성한 용도로 사용됐다고 기록되어 있는 물건은 성물일 확률이 꽤 높다. 그렇다고 그런 것이 모두 성물인 건 아니다. 성물인 줄 알고 어렵게 손에 넣었더니 꽝인 경우가 부지기수다.
반면에 유래를 모르던 물건이 알고 보니 성물인 경우도 드물게 있다.
그런데 성물은 대부분 비밀로 취급된다. 일반인에게는 어느 것이 성물인지 거의 알려지지 않았다.
성물이 가진 성력은 무한한 것이 아니라 쓸수록 소모된다. 다시 그 힘을 채울 방법이 있긴 하지만 그러려면 엄청난 자원과 노력이 들어간다.
게다가 성물은 저주를 막는 용도로만 쓸 수 있는 게 아니다. 그 성스러운 힘을 원하는 곳은 많다.
그래서 보통은 성물의 존재 자체를 숨긴다. 거래할 때도 아는 사람끼리 조용히 거래한다.
어떤 물건이 성물인지는 뉴스에도 나오지 않는다.
서정우는 군대에서 딱 한 번 성물을 다뤄본 경험이 있다.
그가 군 각성자 특수부대에 있을 때 충청도에 게이트가 열렸다. 중형 게이트라 처음에는 육군이 출동해 그 지역을 봉쇄했지만, 곧바로 철수했다. 굉장히 강력한 저주를 거는 몬스터가 나타났기 때문이다.
급히 군 각성자 특수부대가 출동했지만 그 지역이 이미 오염되어 접근이 어려웠다. 저주가 너무 강력해서 일반 저항 장비는 통하지 않았다.
정부는 어쩔 수 없이 비밀리에 보관하고 있던 희귀 등급의 성물을 긴급 제공했다. 제공된 성물이 하나뿐이라 침투할 수 있는 사람도 한 명밖에 없었다.
서정우는 그때 그 성물을 몸에 지니고 오염 지역에 들어가, 그 저주 몬스터에게 철갑탄을 백 발쯤 박고 상황을 종결시켰다.
서정우가 평행차원을 넘어왔다. 이쪽 세계에는 몬스터가 없다.
‘그래도 성물은 있겠지.’
확신은 못 한다. 21세기에 게이트가 열리고 나서 사람들이 스킬을 각성했듯이, 성물도 그때 성스러운 힘이 생긴 것일 수 있다. 진실은 아무도 모른다.
“제발 있어라.”
서정우는 형사과의 그의 자리에 앉아 박물관부터 검색했다. 인터넷에는 국내 박물관에 대한 자료가 많았다. 그는 그중에서 제일 유명한 곳을 골랐다.
‘그래. 역시 국립 중앙 박물관을 털어야겠어. 거기서 역사책에 나오는 국보 열 개만 빌리자. 휴대가 가능한 크기로. 설마 그중에 하나는 성물이겠지.’
역사책에 나온다고 해서 다 성물인 건 아니다. 그래서 아예 열 개쯤 훔쳐갈 생각이다.
강력팀장 권병철이 지나가다 모니터에 뜬 국립 중앙 박물관 사진을 보고 감탄했다.
“이야아. 정우 너 이번에는 그 사건을 해결하게?”
서정우는 무슨 소리인가 싶어서 돌아보았다.
그가 묻기도 전에 맞은 편에 있던 백성민이 물었다.
“팀장님. 무슨 사건이요?”
“너는 고참이라는 놈이 묻는 거 하고는. 정우는 국립 중앙 박물관을 검색하고 있는데 넌 왜 아무것도 모르냐?”
“예? 거기가 털렸나요? 와. 어떤 미친놈이 거길!”
서정우는 뜨끔했다. 그는 원래 오늘 밤에 국립 중앙 박물관을 털 생각이었다.
백성민이 물었다.
“그런데 거긴 우리 관할이 아닌데요?”
“박물관이 왜 털려? 얼마 전에 오래된 절에 있는 석탑을 수리했는데 거기서 사리함이 나왔다. 역사책에도 나온 고승의 사리인데, 국립 중앙 박물관 행사에 잠깐 빌려줄 예정이었다더라. 그런데 빌려주기도 전에 도난당했다.”
백성민은 흥미를 잃었다.
“아아. 정우 퇴근한 뒤에 넘어온 그 건이요? 근데 그건 우리 관할에서 일어난 사건이 아니잖아요.”
“유력한 용의자의 집이 우리 관할구역에 있잖아.”
“에이. 설마 그놈이 집에 왔으려고요. 조사해봤자 헛고생할 게 뻔합니다.”
“그래서 아직 손도 안 댔냐? 하는 시늉이라도 해야지. 말 나온 김에 성민이 네가…….”
서정우가 손을 번쩍 들었다.
“제가요.”
“응?”
“제가 맡을게요.”
“어? 네가?”
백성민이 활짝 웃었다.
“그래! 정우야! 네가 해! 나만 안 맡으면 되니까!”
서정우는 자료를 받아 내용을 확인했다.
‘고려 시대 고승, 그것도 역사책에 나온 고승의 사리. 게다가 천 년 동안 석탑에 보관된 상태로 사람들의 기원을 받았어. 이거 성물이다!’
박물관의 국보 열 개보다 이쪽이 성물일 확률이 훨씬 더 높다.
그가 군 각성자 특수부대에서 복무할 때 한 번 다뤄본 성물은 조선 시대 고승의 사리였다.
‘이 도둑놈 반드시 잡는다. 사흘 안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