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bility from Parallel Dimensions RAW novel - Chapter 72
72. 제시카
정기훈을 협박한 남자의 실전 경험은 서정우의 백 분의 일도 되지 않는다.
서정우는 몬스터를 상대로 실전 경험을 쌓고 쌓고 또 쌓았다. 수많은 몬스터들이 이 남자보다 훨씬 더 치명적이고 날카로운 방법으로 서정우를 공격했다. 그는 대부분의 몬스터를 총으로 쏴서 죽였지만, 급할 때는 단검도 썼다.
남자가 정체를 물었지만 서정우는 대답하지 않았다. 그는 조금 전에 쓰러뜨린 두 명을 먼저 확인했다.
‘백인. 북유럽이나 러시아 쪽 출신 같은데.’
외모로 선조의 고향을 추측할 수는 있어도 국적을 확인할 수는 없다. 미국만 해도 전 세계에서 이민 온 사람이 살고 있다.
그래도 한 가지 정보는 얻었다.
‘일단 왕원이 중국 정보부로 들어간 건 아니야.’
저쪽 세계의 왕원은 중국 각성자 첩보부대의 엘리트다. 이쪽에서도 같은 경로를 밟았으면 중국 정보부로 들어갔어야 한다.
‘중국 정보부에 북유럽 계열 백인들이 소속되어 있지는 않겠지. 설사 있다 해도 한국에서 저지르는 일에 백인 요원을 동원할 리는 없어.’
그런데 그가 마지막으로 붙잡은 놈은 동양인이다.
서정우가 그놈에게 물었다.
“야. 박사님이 설계도를 안 판다고 했으면 곱게 꺼져야지. 어딜 협박질이야?”
남자가 왼손으로 서정우에게 붙잡혔던 목을 만지며 말했다.
“어렵지 않은 작전이라고 생각했는데, 이런 변수가 있을 줄이야.”
“이놈 이거 묘하게 여유가 있네? 야. 너 뭘 또 숨기…….”
서정우의 표정이 굳었다.
그는 이 세 명이 적의 전부가 아니라는 건 안다. 여기에는 왕원이 없기 때문이다.
서정우가 정기훈에게 말했다.
“박사님. 제시카에게 전화 걸어봐요.”
정기훈은 서정우가 싸우는 모습을 보고 너무 놀라서 입만 떡 벌리고 있었다. 그러다 딸의 이름을 듣고 정신이 번쩍 들었다.
“제시카! 제시카에게 무슨 일이라도 있습니까?”
남자가 웃었다.
“크크크. 정 박사. 돈이 싫다면 딸의 목숨은 어때? 딸을 다시 보고 싶으면 설계도를…….”
서정우가 남자의 왼팔을 잡아 꺾었다. 팔이 뚝 부러졌다.
“끄…….”
그놈이 비명을 지르기도 전에 목을 틀어쥐었다.
“컥!”
서정우가 그 상태로 남자의 왼손을 확인했다. 손목 근처에 작은 스위치가 있었다.
그게 자폭장치였다면 누르기도 전에 서정우의 감지 스킬에 살기가 강하게 감지됐어야 한다. 본인도 죽고 상대도 죽이는 자폭을 하려 할 때의 살기는 몬스터와 비슷할 정도로 강하기 때문이다.
그런데 방금은 살기가 약하게 감지됐다. 살기가 감지됐으니 그를 죽일 생각은 확실히 있지만, 자폭은 아니다.
“패거리를 불렀냐?”
“커컥.”
“잘했다. 넌 어차피 대답 안 할 것 같지만, 새로 오는 놈들은 아는 게 있겠지.”
서정우가 손에 힘을 주었다.
남자의 목에서 관절이 비틀리는 소리가 났다. 두 팔이 부러져 저항하지도 못했다. 두 다리만 버둥거렸다.
서정우는 그놈을 죽이지는 않았다. 지금 이 방에는 정기훈이라는 목격자도 있고, 이 호텔에서는 증거를 없애기도 어렵다.
대신에 죽일 것처럼 목을 쥐다가 손을 풀었다.
남자는 손이 풀리자마자 다급히 사정했다.
“커어억. 마, 말할 테니까.”
서정우는 이 남자를 죽기 직전 상태로 만들면 말할 줄 알았다.
‘돈 때문에 산업스파이 짓을 하는 놈들은 진짜 죽는다고 생각하면 다 털어놓지. 목숨이라도 건져보려고. 이쪽이나 저쪽이나 그건 똑같군.’
“제시카는 지금 어디 있냐? 대답할 기회는 한 번이다.”
“커컥. 이, 이 호텔에 있기로 했다. 어느 방인지는 몰라. 납치는 내 담당이 아니라서 모른다. 지, 진짜다. 난 협박하고 협상하는 일만 맡았다!”
거짓말 같지는 않았다. 진짜인지 확인할 시간도 없다.
서정우가 그놈의 머리를 걷어차 기절시켰다.
그가 정기훈에게 말했다.
“전화는요?”
정기훈의 얼굴은 이미 창백해진 지 오래다.
“제시카가 전화를 안 받아요! 전화를!”
“박사님. 일단 경찰에 신고를……. 아. 내가 경찰이지.”
“아! 경찰! 신고! 신고해야지!”
“여기서 하세요. 난 따로 알아볼 테니까.”
“따로라니요? 그게 무슨…….”
서정우가 복도로 나가 모퉁이를 돌았다.
“말해줄 놈이 저기 오네요.”
엘리베이터가 열리자마자 네 사람이 서정우 쪽으로 뛰어왔다.
서정우도 적을 향해 달렸다.
적들이 서정우를 발견하고 칼을 꺼냈다. 군용 대검이었다.
가장 앞에서 달려온 적이 서정우를 향해 칼을 쭉 뻗었다. 칼질에 망설임이 없었다.
서정우가 옆으로 휙 뛰어 벽을 밟았다. 그는 그대로 벽을 타고 더 위로 뛰었다. 그의 몸이 천장에 닿았다.
그를 공격하려던 놈들은 당황해서 고개를 들었다.
서정우는 천정을 발로 밀어 찼다. 마치 천정을 거꾸로 밟고 달리는 것 같았다.
그는 순식간에 적의 머리 위를 스쳐 지나갔다. 적이 고개를 돌리는 것보다 그가 적의 위를 지나가는 것이 더 빨랐다.
중력 때문에 계속 천정을 밟고 달릴 수는 없다. 발이 결국 천장에서 떨어졌다. 제일 뒤에 있던 놈이 그를 올려다보았다. 그는 그놈의 머리를 걷어찼다.
“켁!”
한 놈이 자빠졌다.
앞으로 달려나갔던 셋은 당황하며 뒤로 돌아섰다.
서정우가 방에서 가져온 칼을 던졌다. 의자에 앉아 있던 놈이 갖고 있던 칼이다.
오른쪽 놈이 그 칼에 맞고 고꾸라졌다.
“아악!”
바닥에는 방금 걷어찬 놈이 떨어뜨린 칼이 있었다. 그는 그 칼을 발로 툭 차 공중에 띄웠다.
왼쪽 놈이 막 돌아서서 서정우를 향해 칼을 휘두르려 했다.
서정우가 더 빨랐다. 그는 공중에 띄운 칼을 잡아 왼쪽 놈의 몸에 푹 꽂으며 스쳐 지나갔다.
그가 지나간 후에 그놈이 비명을 지르며 고꾸라졌다.
“으아악!”
순식간에 셋을 작살 냈다.
이제 딱 한 놈 남았다.
남은 놈은 처음에는 경악했다가, 곧바로 겁에 질렸다.
“너, 너 뭐야!”
“경찰.”
방에서 정기훈이 놀란 얼굴로 뛰어나왔다. 그는 손에 휴대폰을 쥔 채였다.
“비명을 누가!”
마지막 남은 놈이 정기훈을 슬쩍 돌아보며 생각했다.
‘인질을 잡자!’
그가 뒤를 돌아본 시간은 짧았다. 그런데 고개를 다시 앞으로 돌렸을 때는 이미 서정우가 코앞까지 다가온 상태였다.
“날 앞에 두고 뒤를 봐? 미친놈이네?”
당황한 적이 서정우에게 칼을 휘둘렀다.
이제 와서 그런 공격이 통할 리가 없다. 서정우가 적의 손을 덥석 잡았다.
“판단력도 엉망이고.”
그가 적의 팔을 뚝 부러뜨렸다.
“으아악!”
그는 힘을 잃은 적의 손에서 칼을 빼앗았다. 그 칼을 적의 목에 대며 물었다.
“두 번 안 묻는다. 제시카 어디 있냐?”
제압된 놈이 눈알을 굴렸다.
넷이서 엘리베이터를 내렸는데 복도를 다 달려가기도 전에 넷 다 제압됐다. 하나는 머리를 걷어차였고 다른 둘은 칼을 맞았다. 특히 칼에 맞은 놈들은 겉보기만으로는 죽었는지 살았는지 구별이 되지 않았다.
겁이 덜컥 났다. 그는 죽고 싶지 않았다. 어차피 이런 일을 하는 건 다 돈 때문이다. 돈은 살아 있어야 쓸 수 있다.
“다, 다른 층에…….”
“몇 층?”
“그, 그건 우리 담당이 아니라 잘 모릅니다. 사, 살려주십쇼!”
방에서 잡은 놈도 이놈과 같은 대답을 했다.
서정우가 속으로 혀를 찼다.
‘쯧. 역시 왕원. 세계가 달라도 꼼꼼한 건 똑같군.’
정기훈이 휴대폰에 대고 소리를 질렀다.
“내 딸이 이 호텔에 갇혀 있습니다! 예! 두 놈이나 그렇게 자백했습니다!”
서정우가 적을 바닥에 던지고 머리를 걷어찼다. 마지막 적이 기절했다.
서정우가 정기훈에게 물었다.
“경찰에 신고한 겁니까?”
“아니요. 그러면 내 말을 제대로 안 믿을까 봐 정부 쪽에 직접 이야기했습니다. 지금 즉시 이 호텔을 봉쇄하겠다고 했습니다.”
“잘했습니다.”
“그런데 내 딸은 어디 있습니까?”
“이 호텔 어딘가에 있다면 찾아낼 겁니다. 여기선 도망칠 곳이 없으……. 음?”
서정우가 인상을 살짝 찌푸렸다. 뭔가 어색했다.
‘왕원은 제시카가 어느 층에 있는지 동료들에게도 말해주지 않았어. 실패할 때를 대비한 거야. 그런데 정 박사님은 정부에 직접 이야기해서 호텔을 봉쇄할 수 있어. 왕원이 그걸 몰랐을까? 알면서도 이 호텔에 남아있다고?’
저쪽 세계의 왕원이라면 일을 그렇게 어설프게 처리할 리가 없다.
‘왕원이 이쪽 세계에서는 스킬을 각성하지 못했겠지만, 그렇다고 전술 작전을 짜는 머리까지 나빠지진 않았을 텐데?’
결론이 나왔다.
‘이 호텔은 경찰에게 맡긴다.’
서정우가 정기훈에게 말했다.
“이 호텔을 봉쇄하면 경찰이 모든 방을 다 확인해서 제시카를 찾아낼 겁니다.”
정기훈의 목소리가 불안으로 떨렸다.
“그, 그렇겠지요?”
“그러니까 여기는 다른 경찰들에게 맡기고, 전 호텔 밖을 조사하겠습니다.”
“바, 밖을? 하지만 방금 그놈들이 분명히 제시카가 이 호텔 안에 있다고 했잖습니까?”
서정우가 바닥에 쓰러진 놈들을 가리켰다.
“저런 놈들 말을 어떻게 믿습니까? 자기들끼리도 속였을 경우를 대비해야죠.”
* * *
서정우는 1층 로비로 내려갔다.
이미 호텔 경비원과 직원들이 출입구를 막고 있었다. 몇 명의 손님이 밖으로 나가려다가 제지당하고 항의했다.
호텔 직원들은 당황한 얼굴로 설명했다.
“경찰에서 연락이 온 거라서 저희도 어쩔 수가 없습니다. 금방 해결될 테니까 조금만 기다려 주십시오.”
서정우가 출구를 막고 있는 사람들에게 경찰 신분증을 보여주었다. 거기 있던 직원은 서정우의 신분증을 보고 표정이 밝아졌다.
“아. 벌써 오신 겁니까?”
“아니. 난 갈 사람이고, 곧 다른 경찰들이 올 겁니다.”
“네?”
“주차장도 폐쇄해요.”
“네. 물론 차단기를 내려놨습니다.”
“차로 받으면 바로 부서지는 차단기 말고, 아예 다른 차를 가져다가 출구를 막아요.”
“네? 아. 네!”
“그리고 누가 경찰 신분증을 보여주고 이곳을 빠져나가려 해도 일단 기다리고 해요. 신분증이 가짜일 수도 있으니까.”
“예? 그럼 이 신분증도…….”
서정우는 그 충고만 하고, 직원이 붙잡기 전에 얼른 호텔 밖으로 빠져나갔다.
‘왕원이 제시카를 데리고 호텔 안에 남아 있다면, 이제 소란 없이 빠져나가는 건 어려워.’
왕원이 억지로 호텔을 빠져나가면 경찰이 바로 추격에 나선다. 아직 호텔에 남아있다면 경찰이 모든 객실을 수색해서 찾아내면 된다.
‘호텔 안에 갇힌 상태라면 제시카를 함부로 죽이지 못해.’
문제는 제시카가 호텔 밖에 붙잡혀 있는 경우다.
‘왕원이 상황을 파악했으면 빠져나갈 준비를 하고 있겠지. 도망치기 전에 찾아야 해.’
수색 범위를 너무 넓게 잡으면 찾는 데 오래 걸린다. 연쇄 살인마 때와는 상황이 다르다. 그때는 24시간의 여유가 있었다.
‘지금은 한 시간, 아니, 삼십 분도 없어.’
그런데 시간이 없는 건 서정우만이 아니다. 상대도 시간이 없다.
‘이미 이 근처를 빠져나간 게 아니라면.’
왕원이 제시카를 납치하자마자 멀리 데려갔다면 당장은 찾을 방법이 없다. 그때는 남아있는 일당들을 쥐어짜야 한다.
대신에 그 경우는 제시카의 생존 시간이 조금 길어진다. 그래 봐야 겨우 몇 시간 정도지만, 만약 아직 호텔 근처에 있다면 그녀의 생존 시간은 시간 단위가 아니라 분 단위로 줄어든다.
‘아마 아주 가까운 곳에 있겠지. 그러면 제시카가 위험해.’
서정우는 감지 스킬을 집중해서 쓰는 것을 고민했다.
평소의 상시 감지 모드가 아니라, 특정 장소에 집중해서 사용하는 액티브 모드를 쓰면 약한 살기도 확실히 감지할 수 있다.
‘영업 중인 곳이 아니라 문이 닫힌 곳 위주로 확인해볼까?’
문제는 액티브 모드로 감지 스킬을 쓰면 재사용 대기시간이 생긴다는 것이다. 그 시간 동안은 패시브 모드의 상시 감지 능력도 정지된다.
‘그래도 그 방법밖에는…….’
서정우가 멈칫했다.
‘젠장.’
가까운 곳에 있는 낡은 건물 1층에서 살기가 감지됐다. 아직 액티브 모드로 전환하기도 전이다.
‘제시카를 죽이고 이곳을 빠져나가려는구나.’
시간이 넉넉하면 경찰특공대를 기다렸다가 그들이 구출작전을 하게 하는 방법도 있다. 그런데 살기가 이렇게 감지된 상황에서는 그럴 여유가 없다. 이대로 놔두면 경찰특공대가 오기 전에 제시카는 죽는다.
서정우가 그 건물을 향해 빠르게 움직이다가, 걸음을 멈추고 뒤를 돌아보았다.
“정 박사님?”
정기훈이 숨을 헉헉대며 따라왔다.
“뭔가 찾았지요? 그렇지요?”
“왜 그렇게 생각합니까?”
“서정우 형사에 관한 기사를 제시카가 보여주었습니다. 범인을 찾는 실력이 엄청나다면서요? 우리 제시카를 찾은 겁니까?”
“찾았습니다.”
정기훈의 얼굴이 확 밝아졌다.
“그럼 당장 구하러 갑시다!”
그는 정기훈이 이런 사람인 건 안다.
정기훈은 저쪽 세계에서도 딸을 구하기 위해서 몬스터 점령지역으로 들어갔다. 스스로 딸을 구할 능력이 있어서 들어간 게 아니다. 유명한 무기 개발자인 그를 구하기 위해서 정부가 대한민국 최고의 구출팀를 보낼 거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때는 그의 판단이 옳았다. 서정우가 그곳에 들어가서 정기훈을 찾아냈다. 그리고 정기훈의 부탁으로 제시카까지 찾아내 구출했다.
정기훈이 딸을 위해서라면 목숨을 거는 사람인 건 알지만, 이번엔 같이 갈 수 없다.
“구하러 가는 건 제가 합니다. 정 박사님은 같이 못 갑니다.”
“내 딸입니다!”
“아무리 하고 싶어도 못 하는 건 못 하는 겁니다. 여기서 기다려요. 그게 딸을 구하는 길이니까.”
“그래도 같이…….”
서정우는 단호했다.
“방해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