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bsolute Dweller RAW novel - Chapter (103)
>[Episode 23] Lilith (3) >
이봉열, 그의 등장으로 전장의 판도가 완전히 뒤바뀌었다.
꾸득꾸득-
숲 전체가 이봉열의 의지에 따라 움직이며 적들을 섬멸하며, 동시에 사람들을 보호하는 벽을 만들어냈다.
비단 이 근처에서만 일어나는 일이 아니었다.
문자 그대로, 정말 이 숲 전체가 이봉열의 의지 아래 움직이며 그림자 괴물들을 처리해나가고 있었다. 숲의 어둠에서 태어나는 그것들이 무언가를 해 보기도 전에 나무뿌리나 줄기가 그들을 덮치는 것이다.
그 모든 광경을 온전히 지켜볼 수 있는 사람은 가신들 중에서도 천리안 스킬을 보유한 유한길이 유일했다.
‘이럴 수가.’
일전에 흡혈귀들과의 전투에서 호흡을 맞췄던 터라 가신들이 얼마나 강한지, 그중에서도 에이스인 하동건 파티의 전투 수행 능력이 얼마나 대단 한지 정도는 인지하고 있었다.
그런데.
‘이건・・・ 차원이 다르잖아?’
모든 가신들이 힘을 합쳐 저항해도 끝도 없는 물량에 밀려나는 게 고작이었는데, 단 한 사람의 등장만으로 전황이 뒤바뀐 것이다.
사실상 전황이라는 표현을 하는 것도 민망할 지경이었다.
당장 가신들이 모여 있는 이곳은 평온하기 그지없었으니까.
게다가 반경 수킬로미터에 걸친 영역에서 실시간으로 죽어 나가는 그림자 괴물들의 모습은 전투라기보다는 학살이라는 표현이 어울렸다.
유한길은 하동건과 이야기를 나누는 이봉열을 바라보며 생각했다.
‘이게 정말 단 한 사람의 인간에게 가능한 일이란 말인가?’
가신들의 전투 장면은 그래도 납득이 가능한 수준이었다.
평범한 인간이라는 범주를 아득히 초월한 그들이었지만, 그래도 인간이라는 범주 안에는 들어가 있었다.
재능을 가진 인간이 좋은 능력을 갖추게 되면 충분히 보여줄 수 있는 모습이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지금 이곳에서 벌어지고 있는 광경은 이해의 범주를 아득히 넘어서 있었다.
사실, 그가 보고 있는 이 압도적인 힘에는 약간의 사정이 존재했다.
세계수와 함께 성장한 이봉열의 능력치도 물론 영향을 끼쳤지만, 그보다는 이 숲 전체가 세계수의 생명력을 기반으로 만들어진 공간이었기 때문이다.
세계수의 생명력을 먹고 자란 숲의 입장에서는 이제야 본래 주인이 나타난 것이나 다름없었고, 당연하다는 듯이 순종하게 된 것이다.
흙바닥 대신 아스팔트가 있고, 나무 대신 건물이 자라나 있던 본래 세상에서보다 이곳에서 이봉열이 더 큰 힘을 발휘할 수 있는 것은 필연적이었다.
그때 김다정이 유한길에게 말을 걸어왔다.
“유한길씨?”
“네?”
“왜 그렇게 멍하니 서 계신 거예요?”
“아, 그게…”
유한길은 여전히 이봉열 쪽에서 시선을 떼지 못한 채로 김다정에게 물었다.
“저분도 가신이신 건가요?”
“저분이요?”
김다정은 유한길의 시선의 끝에 이봉열이 있다는 것을 확인하고는 설명해 주었다.
“저분은 재현님 가족분이세요. 외할아버님 되시는 분이죠.”
“아…?”
그 말을 듣는 순간 유한길은 하나의 사실을 깨달을 수 있었다.
‘그분의 가족분이라면.’
어느 정도는 이해가 됐다.
도시 하나를 뒤덮을 정도로 방대한 영역에 안전지대를 만들어내어 몬스터들의 침입을 차단하고, 세상이 망하기 전의 안락한 생활을 보장하고, 흡혈귀에게 사육당하는 수만 명의 생명을 구한 사람이었으니까.
첫만남 때부터 상식의 범주를 뛰어넘었던 김재현의 가족이라면 신기하게도 납득이 갔다.
‘그분께서는 가족분들도 하나같이 엄청난 힘을 가지고 계시는구나.’
그저 감탄할 뿐이었다.
그러다 문득.
“어?”
직전에 무리해서 사람들을 구하려던 이성민을 만류하던 자신의 모습이 떠올랐다.
포기해야 한다고, 이러다 다 같이 죽을 거라며 소리치던 모습을.
‘재현님이 보셨을까?’
유한길은 순수하게 생존 본능에 따른 선택이었지만, 그 생존자 중에서 김재현의 가족이 나왔다.
어떻게 해석하느냐에 따라 유한길의 행동은 문제가 될 여지가 충분한 것이다.
마음이 급해진 유한길은 자신이 뭐라도 해야 할 것 같았다.
‘내 힘을 활용하면 사람들을 더 빨리 구해낼 수 있을 거야.’
그러나.
“어?”
이내 천리안을 통해 보이는 광경에 자신의 힘이 필요 없다는 것을 깨달을 수 있었다.
혹이 달려있는 나무가 자체적으로 움직여 안에 있는 사람을 풀어주고 있었던 것이다.
게다가.
우우웅
나무에서 뿜어져 나온 생명력이 그들을 정신 차리게끔 만들어 주고 있었다.
숲이 직접 사람들을 구해주니 유한길의 탐색 능력이 전혀 필요가 없어진 것이다.
‘이, 이대로라면…!’
김재현에게 미운털이 박히게 될 수도 있다고 생각하니 아찔해졌다.
‘뭐, 뭐라도 해야 해.’
그러던 어느 순간.
‘어? 저분은…??’
이곳에서 수백 미터쯤 떨어진 곳에서 익숙한 얼굴이 눈에 들어왔다.
마구잡이로 구출되고 있는 생존자들 중에서 흡혈귀들과의 전쟁에서 가장 두각을 드러냈던 사람이자 김재현의 아버지인 김동혁을 발견한 것이다.
“어어! 저기요! 재현님의 아버님을 찾았습니다! 제가 찾았어요!”
[집구석 절대자에게 적대적인 개체가 발견되었습니다.] [제거합니다.] [집구석 절대자에게 적대적인 개체가 발견되었습니다.] [제거합니다.] [집구석 절대자에게 적대적인 개체가 발견되었습니다.] [제거합니다.]퍼억! 퍽!
응축된 영역 안으로 그림자 괴물이 짓쳐 들어오는 것과 동시에 시스템 메시지가 출력되며 제거되었다.
벌써 수 시간째 이런 쓸데없는 소모전이 계속되고 있었다.
나쁘기만 한 것은 아니었다.
[그림자 올빼미(Lv. 23)를 사냥하셨습니다.] [그림자 박쥐(Lv. 17)를 사냥하셨습니다.]계속해서 경험치와 정산금이 쏟아져 들어오고 있었기 때문이다.
영역 안으로 들어오며 죽어버린 그림자 괴물들의 경험치는 배수가 적용되지 않아 별것 없었지만, 할아버지가 사냥하는 그림자 괴물들은 달랐다.
[그림자 늑대(Lv. 16)를 사냥하셨습니다.] [경험치를 획득합니다.] [그림자 하운드(Lv. 26)를 사냥하셨습니다.] [경험치를 획득합니다.]할아버지가 사냥하는 수많은 괴물들에 대한 경험치가 쏟아져 들어오고 있었다.
정산금은 없어도 5배가 적용된 경험치만으로도 엄청난 양의 경험치가 들어오고 있는 셈이었다.
‘할아버지 덕분에 저쪽은 완전히 안정화되고 있다.’
가신들만 있을 때에는 살짝 불안했는데, 지금은 걱정할 필요가 없었다.
할아버지 한 명만으로도 그림자 괴물들을 모두 쓸어버리기에는 충분했기 때문이다.
혹 속에 있는 생존자들을 찾는 작업도 무척이나 빨라진 상태였다.
‘아빠도 합류했고.’
엄마와 할머니를 구하는 것도 시간문제였다.
‘운이 좋았다.’
할아버지가 구해주고 있는 사람들 대부분이 지금 밖에서 영문도 모른 채로 잠든 사람들이었다.
이것은 천운이라고 할 수 있었다.
만약에 숲 전체에 사람들이 퍼져있었다면 결코 이런 결과를 기대할 수 없었을 것이다.
아무리 할아버지라고 하더라도 반경 수 킬로미터 수준의 영역을 컨트롤하는 게 한계였고, 숲은 그보다 몇십 배, 혹은 몇백 배는 더 넓어 보였다.
그런데 이렇게 빠르게 사람들을 찾을 수 있었던 것은 우리 쪽 세상에서 넘어온 사람들이 한 지점에 몰려있기 때문이었다.
그러니까 지금 가신들이 있는 곳을 중심으로 시민들이 모두 모여 있을 거라는 소리였다.
“이대로 시간만 벌면 모두를 구할 수 있겠어.”
물론 문제가 없는 것은 아니었다.
정신체 상태인 저들이 본래 세계로 돌아갔을 때, 그들이 정상적으로 자신의 몸에 정착할 수 있느냐 하는 것이다.
그 문제만 해결된다면 모두 오케이였다.
‘그래도 일단 생명력을 흡수당하던 상태에서 풀려난 것만 해도 크다.’
그때였다.
끝나지 않을 것 같던 그림자 세례가 끝이 나고, 그 여자의 모습이 보였다.
조용히 입 다문 채 정색하고 있는 여자를 향해 예의를 차리며 물었다.
“생각이 좀 바뀌셨습니까?”
“…너, 정체가 뭐야?”
몇 시간 전과는 달리 딱딱하게 굳은 그녀의 얼굴을 보면 저쪽도 지금 사태를 분명하게 인식하고 있는 듯 했다.
“이대로 시간만 흘러봤자 당신만 손해라는 것을 알 텐데요? 저는 제 사람들을 모두 구한 다음 돌아가면 그만일 뿐입니다.”
“그래봤자 초대받았던 사람들은 시간이 지나면 자연히 여기로 돌아오게 되어 있어.”
“그때는 다시 이곳으로 와서 구해내면 그만입니다.”
“또 와서 이 난리를 피우겠다고?”
“그땐 좀 더 길게 난리를 칠 예정입니다.”
여자의 표정이 보기 좋게 일그러졌다.
그렇게 잠시간의 침묵이 흐르는 동안.
[그림자 거인(Lv. 39)을 사냥하셨습니다.] [대량의 경험치를 획득합니다.]절대자의 눈으로 확인하지는 못했지만, 할아버지의 힘에 의해 무언가 커다란 그림자가 당한 모양이었다.
여자가 붉은 입술을 짓씹었다.
상당한 손해를 입고 있으면서도 여자가 포기하지 못하는 것은 나를 바라보는 눈빛에 맺혀 있는 탐욕 때문일 것이다.
그래서 조언했다.
“잘못 먹으면 배탈이 나는 법입니다. 감당하실 수 있겠어요?”
그와 동시에
우우웅-
한계까지 응축시켜 두었던 영역을 살짝 개방했다.
순식간에 수 미터 크기로 늘어난 영역에 그림자 괴물들이 포함되었다.
[집구석 절대자에게 적대적인 개체가 발견되었습니다.] [제거합니다.]그것들이 폭발하듯 사라지며 경험치와 정산금으로 변한 직후, 일그러질 대로 일그러진 표정의 여자가 한숨을 내쉬며 말했다.
“…원하는 게 뭐야.”
이제야 대화할 준비가 된 듯 했다.
“처음부터 말했습니다. 제 가족들을 비롯해 제 사람들을 지금 당장 풀어주십시오. 그러면 제가 다시 찾아오는 일은 없을 것입니다.”
그녀의 눈빛이 적개심으로 불타올랐다.
“네가 지금 말하고 있는 게 얼마나 황당한지 알고 있어? 감히 내 영역에 침입해 들어온 도둑고양이 주제에 나를 협박해?”
“제 가족을 먼저 건드린 건 그쪽입니다.”
내가 차분하게 대응하자 그녀는 이를 갈았지만, 결국 꼬리를 내렸다.
비유가 아니라 정말로 등 뒤에 달려 있는 꼬리를 내리며 대답했다.
“알겠어. 내가 졌어.”
우웅
그때 투명한 빛이 그녀의 전신에서 뿜어져 나오기 시작했다.
그리고.
“내 이름은 릴리트. 악몽의 주인이자 성역의 찬탈자. 네 이름은?”
내가 가만히 보고 있자 릴리트가 짜증내며 말했다.
“계약 안 할 거야?”
“계약?”
“그래, 계약. 네 요구대로 사람들을 모두 풀어주는 대신 다시는 내 영역에 침범하지 않겠다는 계약.”
아무래도 서로 신뢰를 할 수 있는 어떤 방법이 있는 모양이었다.
그러나 계약 조건이 마음에 걸렸다.
“초대의 흔적도 모두 지워주시는 걸로 하죠. 다시는 영역에 침범하지 않겠다는 것에는 어떤 방식으로든 제 사람들에게 해를 끼친다거나 손을 대지 않았을 때라는 조건도 추가해주시고요.”
그 순간 릴리트의 한쪽 눈썹이 약간 꿈틀거리는 것이 보였다.
‘역시나 뭔가 꿍꿍이가 있었군.’
그러나 그녀의 반응으로 인해 오히려 약간 안심할 수 있었다.
지금 이 행위가 정확히 어떤 것인지는 모르겠지만, 릴리트의 반응을 보면 계약 불이행 시 상당한 페널티가 존재하는 것으로 보였으니까.
이 계약만 제대로 체결한다면 다시는 이쪽을 건드리지 못할 것이다.
“하아. 알겠어. 그 조건으로 계약하도록 하지.”
가만히 나를 바라보는 릴리트의 눈치를 보며 물었다.
“그래서 제가 어떻게 하면 되는 겁니까?”
“…힘을 끌어올려. 그리고 이름을 걸고 맹세하는 거야.”
그렇게 릴리트의 주도 아래 계약을 맺으려던 그 순간.
[집구석 절대자의 정신이 공격을 차단합니다.]찜찜한 알림과 함께.
“어라…?”
당황해하는 릴리트의 모습이 보였다.
내 표정이 일그러지는 것과 함께.
[스킬 레벨이 상승하였습니다.]‘어?’
화아아악-
갈무리되었던 영역이 사방으로 터져나가며 확장했다.
그리고.
“꺄아아아악!”
릴리트의 고통에 찬 신음이 동굴을 가득 울렸고.
[집구석 절대자에게 적대적인 신격이 발견되었습니다.] [격이 낮은 신격을 흡수합니다.]“잠ㄲ…!”
이상한 메시지와 함께 어마어마한 양의 힘이 쏟아져 들어왔다.
>[Episode 23] Lilith (3)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