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bsolute Dweller RAW novel - Chapter (127)
128화 [Episode 29] 사이비 (3)
“저기입니다. 저기 올림픽 대로에 붙어 있는 14동 아파트요.”
최상현이 가리킨 곳은 어두컴컴한 아파트 단지였다.
롯데타워의 불빛 덕분에 분간이 가능하기는 했지만, 정확히 어디를 말하는 건지는 알 수 없었다.
그와 함께 켈리칸의 등에 함께 타고 있던 강덕수가 물었다.
“올림픽대로가 어딘데요?”
게다가 모두가 부산 토박이라 이곳 지리에 어두운 편이었다.
“한강 바로 옆에 붙어 있는 도로입니다. 저기 저쪽으로, 한강 쪽으로 가 주시면 됩니다.”
“아하. 오케이. 접수 완료.”
그들의 대화를 들은 나는 강덕수가 타고 있는 켈리칸을 향해 텔레파시를 보냈다.
[강 바로 옆에 있는 건물에 내려 줘.]종속의 계약을 맺은 켈리칸들은 가신들이 직접 다루기보다는 이런 식으로 내가 직접 명령을 내렸다.
켈리칸들이 인간의 언어를 알아듣는 게 아니었기 때문에 확실한 의사를 전달하기 힘들었기 때문이다.
가신 중에서는 텔레파시 사용이 가능한 김다빈만이 켈리칸과 의사소통이 가능했는데, 행정 업무만으로도 바쁜 그녀를 파견까지 보내며 혹사시킬 수는 없었다.
다행히 절대자의 눈이 사용 가능한 가신들 근처까지는 나도 텔레파시를 사용할 수 있어서 이런 식으로 운용이 가능했다.
펄럭!
여섯 마리의 켈리칸들이 본능적으로 아파트 옥상에 착지하려 내려가는 순간 최상현이 다급하게 말했다.
“옆 동입니다. 바로 옆이요!”
그러자 별다른 지시를 하지 않았는 데도 켈리칸들이 옆 건물 옥상을 향해 방향을 틀었다.
비록 인간의 언어는 알아듣지는 못해도 지능이 있는 놈들이어서 눈치껏 반응한 것이다.
그렇게 성공적으로 14동 아파트 옥상에 착지한 하동건 파티와 최상현은 곧바로 8층으로 내려갔다.
그리고.
철컥.
최상현이 803호의 문을 열었다.
그곳에는.
“슬기야! 최슬기!”
“아빠!”
아비의 귀환을 기다리던 최슬기가 있었다.
의외로 아빠인 최상현과 맞먹을 정도로 키가 큰 아이였다.
최슬기는 아빠의 품에 안기려다 뒤늦게 최상현의 뒤를 따라 들어오는 하동건 파티의 모습을 보고는 멈칫했다.
“그분들은 누구셔……?”
전기가 들어오지 않는 아파트였기 때문에 거실에 촛불이 타오르고 있었는데, 촛불 하나가 집안 전체를 밝혀 주지는 못하고 있었다.
그 때문에 반쯤 어둠에 잠겨 있는 낯선 이들의 모습은 최슬기의 입장에서는 위협적으로 보일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게다가 하동건 파티에게서 뿜어져 나오는 강렬한 존재감을 최슬기도 본능적으로 느끼고 있는 듯했다.
최상현은 그런 최슬기에게 성큼성큼 다가갔고, 최슬기는 뒷걸음질 쳤다.
분위기가 심상치 않다는 것을 느낀 최슬기가 두려움에 잠긴 목소리로 말했다.
“아, 아빠? 왜 그래? 무서워.”
그러나 최상현은 그런 딸아이의 팔목을 잡아 끌며 말했다.
“가자. 빨리 여기서 떠나야 해.”
“떠나……?”
“그래.”
최상현이 이끄는 대로 끌려오던 최슬기가 갑자기 한 손으로 입을 가리며 말했다.
“꺄악. 설마 벌써 오신 거야? 우리 지금 롯데타워로 가는 거 맞지? 내가 신부가 됐으니까!”
“…….”
방금까지만 해도 그녀의 두 눈에 남아 있던 두려움은 온데간데없이 기쁨과 설렘으로 가득한 눈빛으로 변했다.
“그럼, 저분들은 신의 기사님들이었구나! 나를 에스코트해 주시러 온 거야?”
절대자의 눈으로 실시간으로 변화하는 최슬기의 반응을 보던 나는 이를 악물었다.
‘정말이었군.’
이것으로 최상현의 말이 정말이었다는 것이 증명됐기 때문이다.
키나 발육 상태 때문에 나이에 비해 조숙해 보이는 최슬기였지만, 그녀는 겨우 열다섯살이었다.
‘쓰레기 같은 놈.’
그때였다. 최슬기가 최상현의 팔을 뿌리치더니 말했다.
“아빠! 갈 땐 가더라도 짐은 챙겨야죠!”
“……그래.”
약간의 오해 덕분에 신이 난 최슬기가 자신의 옷을 챙기는 동안 최상현은 식량을 비롯한 생필품들을 챙겼다.
“다 챙겼니?”
“네!”
“그럼 가자. 어서.”
“네에―!”
싱글벙글인 최슬기에게 다가간 김가영이 말했다.
“이리 줘. 들어 줄게.”
“앗. 기사님. 감사해요!”
김가영이 캐리어를 가볍게 들어 올리자 최슬기가 짧게 감탄했다.
“와! 역시 신의 기사님들은 엄청 강하시구나.”
그녀의 반응에 김가영은 씁쓸한 미소를 지어 보였다.
옥상으로 올라간 직후 그곳에서 대기하고 있던 켈리칸들을 본 최슬기가 비명을 지르며 최상현에게 안겼다.
“아빠! 괴, 괴물이에요!”
“괜찮아. 우리 편이야.”
“우리 편이요……?”
“그래. 윽.”
울먹이며 최상현의 품에 안겨 있던 최슬기는 그제서야 최상현의 얼굴에 남아 있는 상처를 발견했다.
최슬기는 심각해진 얼굴이 되어 물었다.
“아, 아빠. 얼굴이 왜……?”
최상현은 딸에게서 떨어지며 눈을 돌렸다.
“일단 타렴. 서둘러야 해.”
“하지만…….”
“어서.”
그의 강경한 태도에 최슬기는 고개를 끄덕였다.
“……알겠어요.”
김가영이 최슬기를 태우고 다시 켈리칸들이 하늘로 날아올랐다.
하동건이 물었다.
“재현 님. 이제 어떡할까요?”
[일단은 근처에서 대기해 주세요.]북대문을 사용해 그들을 불러들인 다음 시민권을 부여해 주고 싶었지만, 쿨타임이 있는 북대문을 지금 사용할 수는 없었다.
문병호의 존재 때문이었다.
‘언제 북대문이 필요해질지 모르니까.’
하동건 파티가 최슬기를 데리고 이동하는 동안 문병호 쪽의 시야를 살폈다.
문병호는 여전히 미로에서 헤매고 있는 중이었다.
‘이건 도대체 무슨 능력인 건지.’
어떤 문을 열어도 수많은 복도가 이어지는 미로.
당연한 이야기였지만, 저곳은 정상적인 공간이 아니었다.
상식적으로 롯데 타워 안에 저만큼 광활한 공간이 존재할 리가 없었으니까.
그나마 다행인 것은 언제든지 문병호를 빼낼 수 있다는 점이다.
‘가신 소환도 있고, 북대문도 있으니까.’
굳이 북대문을 남겨 둔 이유는 가신 소환의 경우 몇 초간의 딜레이가 요구되기 때문이었다.
짧은 시간이었지만, 그동안 아무런 반응도 할 수 없다는 것은 치명적이었으니까.
‘만약을 위해서라도 북대문은 남겨 둬야겠지.’
미로에 있어도 절대자의 눈을 비롯한 모든 스킬들을 문제없이 사용 가능했다.
그러니 가신 소환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혹시나 파훼법이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이것저것 실험해 보고 있는 중이었다.
벽이나 바닥과 천장을 부숴 보기도 해 보고, 닥치는 대로 문을 열어 보기도 해 봤다.
그러나 결과는 언제나 똑같았다.
‘새로운 복도가 나타날 뿐이다.’
바벨 메테오 처럼 공간 자체에 커다란 충격을 주는 방법이 남아 있긴 했지만, 그것은 리스크가 너무 컸다.
‘자칫 잘못하면 대형 사고가 될 수 있다.’
문병호의 목숨만 위험해지는 게 아니었다.
바벨 메테오는 그 파괴력이 너무 커서 롯데타워를 비롯한 주변 일대를 날려 버릴 가능성이 있었다.
‘……70층에 침입하는 것은 포기해야 하나?’
어차피 최상현의 말의 진위 여부를 확인하는 것은 최슬기와 만나면서 해결됐다.
이제는 정현수를 어떻게 벌을 내리느냐를 생각해 봐야 했다.
[덕수 씨. 최상현 씨에게 정현수가 신도들 앞에 모습을 드러내는 경우가 언제인지 물어봐 주세요.]“오케이, 접수했습니다.”
강덕수가 물었다.
“저기요, 아저씨.”
“네?”
“그 정현수? 그 놈 언제 볼 수 있어요?”
“……보통 매일 새벽 기도를 하니, 내일 새벽이면 볼 수는 있을 겁니다.”
“기도는 어디서 하는데요?”
“롯데타워 안에 따로 마련된 기도실이 있습니다. 그곳에서 할 겁니다.”
“그렇군요.”
어찌 됐든 내일 새벽에는 놈이 70층에서 내려온다는 말이었다.
‘그렇다면 지금 무리해서 70층에 침입할 이유는 없지.’
가신 소환으로 문병호를 불러들이려던 찰나였다.
“얘! 위험해!”
“이거 놔요!”
김가영이 타고 있는 켈리칸의 등에 함께 탑승하고 있던 최슬기가 난리를 부리기 시작했다.
“당신들 뭐야! 당신들 누구야!”
“진정해!”
“롯데타워는 저기라고! 내려!! 지금 당장!”
켈리칸들이 롯데타워를 지나쳐서 아예 송파구를 벗어나려 하자 최슬기도 눈치챈 것이다.
세뇌가 얼마나 극단적이면 최슬기는 김가영의 손길을 뿌리치고는 단숨에 켈리칸의 등에서 뛰어내리려 했다.
곧바로 김가영이 저지했지만 말이다.
“아빠의 얼굴을 저렇게 만든 것도 당신들이지! 지금 나를 납치하면 당신들 후회할 거야! 나는 신의 신부라고!”
나는 곧바로 켈리칸들에게 명령했다.
[내려가. 지금 당장.]여섯 마리의 켈리칸들이 일제히 낙하하여 아파트 단지 옥상에 착륙했다.
그곳에서도 최슬기의 난동은 계속됐다.
“이교도들! 당장 내 몸에서 손 떼!”
참다 못 한 김가영이 한마디 했다.
“정신 차려! 네가 믿고 있는 그 사람은 신 같은 게 아니야. 어린애를 겁탈하는 범죄자일 뿐이라고!”
“겁탈……?”
김가영의 말에 충격 받은 듯한 표정을 짓던 최슬기는 이내 격분하며 말했다.
“내가 원해서 한 거야! 주님이 받아 주신 거고! 나는 선택받은 거라고! 주님께서는 우리를 구원해 주셨어. 몬스터들에게 죽을 뻔한 우리를 구해 주셨다고!”
“…….”
그 말을 들은 직후 김가영은 입을 닫았다.
그녀 또한 몬스터들의 위협과 그 상황에서의 구원이 어떤 의미를 가지는지 너무나도 잘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것은 나 또한 마찬가지였다.
‘…….’
과연 놈은 악인인가?
최슬기가 원했던 거라면 상황이 조금 달라진다. 몬스터가 등장하며 어지러워진 이 세상에서 과거의 법과 윤리를 모두 적용하기는 어려웠으니까.
사람들이 살아남기 위해 마트나 편의점을 털고, 빈집에서 물건을 가져오는 모든 행위를 악이라고 규정할 수 없는 것처럼 말이다.
그렇게 된다면 놈의 죄목은 최상현을 죽이려 한 것만 남는다.
그런데.
‘그 전에 놈은 10만 명이 넘는 사람을 살린 인간이다.’
운 좋게 좋은 능력을 각성했을 뿐이라고는 하여도, 어쨌든 수많은 사람의 생명을 구한 영웅인 것이다.
너무 많은 생명을 구했기에, 그가 저지른 죄는 옅어진다.
그런 세상이었다.
힘을 가지고 있는 것만으로도 죄가 옅어지고, 사람의 목숨이 이전만큼 귀하게 여겨지지는 않는 세상.
빵 한 조각을 얻기 위해, 자신이 살아남기 위해 살인을 저지르기도 하는 그런 잔혹한 세상이었다.
‘내가 구하지 못했던 사람들이다.’
그들이 가장 필요한 순간에 그들을 구해 준 것은 정현수인 것이다.
그들에게 정현수란 존재는 내 사람들이 나를 생각하는 것과 같았다.
그렇다면 과연 그를 죽이는 게 정말 맞는 선택인 것일까?
* * *
“놀라워.”
정현수는 자신이 만든 미로에 갇혀 헤매는 문병호를 보며 감탄을 아끼지 않고 있었다.
“이렇게나 오래 버티다니.”
환상을 구현화한 미로는 정신력을 급격하게 깎아 먹는다.
보통 사람이라면 이곳이 미로라는 것을 인지하기도 전에 모든 정신력이 소모되어 완벽하게 세뇌하기 좋은 상태가 되었을 것이다.
그러나 문병호는 벌써 수십 분 째 멀쩡하게 돌아다니고 있었다.
“지치는 기색도 없다니.”
정신력의 미로에서 저 정도로 아무렇지 않을 수 있는 것은 당장 트럼프 기사단 중에서도 없었다.
이 정도면 차현승이나 양하영과도 충분히 맞먹을 강자일 것이 분명했다.
“반드시 내 거로 만들어야겠어.”
어차피 시간은 자신의 편이었다.
정신력이 약해지기를 기다리기만 하면 되는 것이다.
“시기가 좋군.”
마침 휴거의 때가 다가오고 있었다.
중요한 시기에 호박이 넝쿨째 굴러들어 와 준 격이었다.
“이제 곧 14만 4천 명이 모인다.”
14만 4천 명의 제물이 준비되면 자신은 더욱 더 높은 격을 얻을 수 있게 된다.
거기에 저런 힘을 가진 존재까지 부릴 수 있게 된다면 서울 전체를 잡아먹는 것도 꿈이 아니었다.
“조금만 더…….”
때가 다가오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