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bsolute Dweller RAW novel - Chapter (137)
138화 [Episode 31] 수습 (3)
각성의 순간을 지켜본 것은 이번이 처음이었다.
‘투시 능력이라.’
이준영이라는 이름의 남자는 아직 자각하지 못하고 있는 모양이었지만, 방금 발작하던 순간에 힘을 각성했다.
그는 각성과 동시에 30레벨이 되었는데, 이는 그가 각성한 능력이 A등급에 해당한다는 소리였다.
같은 능력이라 하여도 각성한 사람에 따라 다른 등급이 매겨지는 경우가 종종 있었다.
장성준의 염력이 대표적이다.
염력을 각성한 사람들은 종종 있었지만, A등급인 사람은 장성준이 유일했으니까.
투시의 경우 내가 본 것은 딱 두 명 있었는데, 둘 다 D등급 판정이었다.
‘그런데 A등급이라니.’
하지만.
‘A등급 투시는 뭔가 특별한가?’
염력의 경우에는 등급이 높아질 때마다 출력이 강해지거나 힘을 더 잘 통제할 수 있게 되리라는 기대가 가능했지만, 투시의 등급이 높다고 해서 크게 좋아질 것 같지는 않았다.
‘그래도 일단 가신 등록 후보로 지정해 둘까.’
최근에는 가신 등록을 적극적으로 늘려 가는 추세였다.
전초기지의 숫자가 늘어나며 가신들이 더 필요해진 것도 있지만, 최근에 스킬 레벨을 올리며 가신 등록의 제한이 대폭 늘어났기 때문이다.
품위 유지 스킬을 7레벨로 올리면서 기본 가신 등록의 한계치가 100명까지 올라갔다.
기존에 충성도 100을 달성하며 늘어난 슬롯은 별개로 취급되어 지금은 133명으로 한계가 늘어나 있는 상태였다.
‘A등급 능력을 각성했다면 가신의 자격은 충분하지.’
대체로 높은 등급의 각성자를 가신으로 받아들이고 있었는데, 그편이 효율이 더 좋았기 때문이다.
물론, 능력만 보고 마구잡이로 뽑는 것은 아니었다.
그 사람의 인성과 됨됨이를 보고 상대방의 의사를 물어본 다음에야 가신으로 등록하는 방식이었다.
‘첫인상은 나쁘지 않아.’
이준영이 각성을 하게 된 계기는 ‘죽음의 공포’였을 것이다.
아이젠블레이드의 존재를 알고 있었기 때문인 것 같았는데, 그는 죽음의 공포를 느끼는 극한의 상황에서도 동료들을 챙기려는 모습을 보였다.
리더로서의 책임감 하나는 이미 검증된 것이나 다름없었다.
‘일단은 보류.’
이번에 JHS 교단을 타도하면서 십만을 훌쩍 넘기는 사람들이 새로 유입되고 있었다.
JHS 교단은 각성자들을 대우해 주었기 때문인지 다양한 능력을 지닌 사람들이 많았는데, 그중에는 투시 능력보다 더 쓸모 있어 보이는 능력을 각성한 경우도 부지기수였다.
지금 당장 가신들을 늘릴 필요는 없으니, 모두 후보에 두고 천천히 지켜볼 생각이었다.
‘게다가 지금은 그럴 때도 아니니.’
가신 등록보다는 당장 사람들을 살리는 데에 더 집중하는 게 맞았다.
‘절대자의 눈.’
나는 그들이 무사히 건대 입구 역에 도착해 부산에 입성하는 것까지 확인한 뒤, 다시 재해 현장이나 다름없는 잠실로 눈길을 돌렸다.
* * *
이준영과 그의 동료를 포함해 백여 명이 넘어가는 사람들이 멍한 표정으로 길을 걸었다.
그나마 이것도 많이 진정이 된 모습이었다.
처음 전포역에서 올라왔을 때 예상 밖의 일상과 마주했던 사람 중에는 영문도 모르고 눈물까지 흘린 사람들도 몇 있었다.
이준영이 선두에서 사람들을 인도하는 중인 남자를 향해 물었다.
“선생님. 부산에는 몬스터가 나타나지 않은 겁니까?”
남자는 잠시 멈칫거리더니 대답했다.
“……그럴 리가 있나요. 한때는 이곳에서도 몬스터들이 넘쳐났었죠.”
남자의 대답에 이준영은 다시 한번 거리의 모습을 눈에 담았다.
“주문하신 아이스 아메리카노 나왔습니다!”
활기가 가득 넘치는 거리의 모습 어디에서도 몬스터의 흔적은 찾기 힘들었다.
그때 남자가 재차 입을 열었다.
“지금은 이렇게 평화롭지만, 몬스터가 나타났을 때만 해도 지옥이 따로 없었습니다. 하지만 재현 님께서 그 모든 몬스터를 몰아내시고, 이곳에 축복을 내려 안전하게 만들어 주셨죠.”
“…….”
당장 눈앞에 보이는 경이적인 광경을 직접 보지 못했다면 남자의 말을 헛소리 취급했을 것이다.
하지만 눈앞에서 기적을 보고 있으니 남자의 말을 흘려들을 수 없었다.
‘김재현이라고 그랬나.’
도대체 그는 누구기에 이런 기적을 실현하는 게 가능했던 걸까.
‘게다가…… 이 힘은 도대체……?’
기분 탓일까.
시민권이라는 것을 얻은 이후로 전신에서 힘이 넘쳐나고 있었다.
지금이라면 무엇이든 해낼 수 있을 것만 같은 생각이 들 정도였다.
특히 김재현이라는 이름을 머릿속에 새기면 새길수록 더욱더 힘이 생기는 이상한 느낌이 들었다.
“궁금한 게 있습니다.”
그러자 남자가 멋쩍은 웃음을 지으며 대답했다.
“제가 말주변이 없어서……. 질문이 있으시면 이제 곧 도착할 장소에서 마음껏 해 주시길 부탁드리겠습니다. 거기에서 이것저것 가르쳐 줄 겁니다.”
남자가 사람들을 이끌고 도착한 곳은 어느 중학교의 강당이었다.
강당에 불이 켜져 있는 것은 더 이상 놀라운 일도 아니었다.
여기까지 걸어오는 과정에서 이미 너무 많은 것을 봐 버렸기 때문이다.
“여깁니다. 자리에 앉아서 잠시만 기다리시면 오리엔테이션이 있을 겁니다.”
떠나가려는 남자를 붙잡고 이준영이 물었다.
“선생님. 혹시 존함을 여쭈어도 되겠습니까?”
“아, 물론이죠. 제 이름은 최형준입니다. 최형준.”
“저는 이준영입니다.”
이준영을 시작으로 사람들 모두가 돌아가며 자신의 이름을 소개했다.
“저는 김태현이라고 합니다.”
“서지현이라고 해요.”
“박민웁니다.”
묵묵히 모두의 차례가 끝나길 기다리던 이준영은 마지막 사람이 자신을 소개한 직후 최형준을 향해 허리를 숙여 보였다.
“저희를 여기로 데려와 주셔서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선생님.”
최형준이 손사래를 치며 대답했다.
“제가 한 게 뭐 있나요. 전부 재현 님의 은총일 뿐입니다.”
그가 떠나가고 그들은 미리 준비되어 있던 자리에 착석한 채로 기다렸다.
다른 대피소에서 온 것으로 보이는 사람들이 몇 그룹 더 도착했다.
그들이 다른 대피소에서 온 사람들이라는 것을 알아보는 방법은 간단했다.
‘우리도 저런 표정이었나.’
조금 전만 해도 자신들이 짓고 있던 표정을 그들이 그대로 재현하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너무나도 큰 충격에 멍해 있는 표정.
그런 사람들로 강당이 가득 찰 때쯤에야 담당자들이 도착했다.
“안녕하세요. 저는 행정 관리부 부장 유혜린이라고 합니다. 만나서 반갑습니다.”
가벼운 박수 소리 이후에 본격적인 오리엔테이션이 진행되었다.
“이 오리엔테이션의 목적은 여러분들이 이곳에 최대한 빠르게 적응할 수 있도록 도와드리는 것입니다. 앞으로 살아가는 데 필수적인 정보를 알려 드리는 것이니, 잠시만 집중해 주시기 바랍니다.”
그와 함께 불이 꺼지고 빔프로젝터가 켜지며 강당에 PPT 화면이 나타났다.
“와…….”
너무나도 오랜만에 보는 그 광경에 알 수 없는 감동마저 밀려오고 있었다.
“제일 처음 소개할 것은 이곳의 화폐에 대한 개념과 사용 방법에 대하여 알아볼 것입니다. 먼저 이곳에서 사용하는 돈에 대해서 간단하게 소개하겠습니다. 시민권을 받게 되시면 개인 지갑을 발급받게 되는데, ‘지갑 오픈’이라는 명령어로 자신의 재산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다들 한번 해 보시겠어요?”
그녀의 말과 동시에 강당이 잠시 소란스러워졌다.
다들 자신의 지갑을 확인해 보고 있는 것이다.
주변 사람들의 반응을 지켜보던 이준영이 조심스럽게 명령어를 입에 담았다.
“지갑 오픈.”
【시민 이준영의 지갑】
-보유 금액 : 0 원
“!”
정말로 눈앞에 홀로그램창이 뜬다는 것에 신선한 충격을 받았다.
“준영아. 넌 얼마 있냐?”
“당연히 0원이지. 태현이 너는?”
“나도.”
김태현이 헛웃음을 지으며 말했다.
“이게 그거냐? 증강현실인가 메타버스인가 하는 그런 거 맞지?”
“모르겠는데.”
그들이 떠드는 와중에도 오리엔테이션은 계속해서 진행됐다.
“돈이 없는 것을 보고 너무 걱정하지는 마세요. 그게 정상이니까요. 그렇다면, 어떻게 해야 돈을 벌 수 있을까요?”
PPT 화면이 전환되었고, 장내에는 무거운 침묵이 내려앉았다.
왜냐하면, PPT 속에서 나타난 것이 고블린이었기 때문이다.
‘고블린…….’
서울에는 아이젠블레이드와 같은 끔찍한 괴물들이 넘쳐났다.
그러나 여기 모인 생존자들이 가장 끔찍하게 여기는 몬스터는 바로 고블린과 오크였다.
싸이클롭스와 같은 규격 외의 괴물들에 대한 공포보다도 고블린이나 오크에게 느끼는 공포가 더 컸다.
이유는 간단했다.
그런 끔찍한 몬스터와 마주한 인간들은 대부분이 죽어 나갔기 때문이다.
지금 이 자리에서 숨을 쉬고 살아 있는 이들이 겪은 몬스터는 고작해야 고블린이나 오크 정도가 전부였다.
“첫 번째는 바로 사냥입니다. 몬스터를 사냥하면 그에 따른 보상으로 돈을 벌 수 있게 되죠.”
사람들의 표정이 급격히 어두워졌다.
이 자리에 있는 생존자들의 9할은 고블린을 사냥하는 것도 쉬운 일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지금까지 살아남은 생존자들이다 보니 한두 마리 정도는 잡아 본 적이 있어도, 그것마저 생사를 넘나드는 경험인 경우가 대다수였다.
“여러분들이 걱정하시는 게 무엇인지 잘 압니다. 하지만 너무 걱정하지는 마세요. 고블린 사냥을 나서는 파티에는 총기가 지급되니까요.”
어느새 PPT 화면에는 K2를 비롯한 소총들의 사진이 내걸려 있었다.
“총이라고? 정말이야?”
“총만 있으면 고블린 정도는…….”
“총기를 대여해 준다고? 제정신인가?”
그 뒤를 이어 ‘던전’이니 ‘파티’이니 하는 개념에 대한 설명이 간략하게 이어졌다.
“너무 걱정하지 마세요. 사냥에 적성이 없더라도 돈을 벌 방법은 무궁무진합니다. 일반적인 노동으로도 충분히 돈을 버는 게 가능합니다. 우선 일을 하기 위해서는 ‘거래소’에 대해 알아야 하는데요.”
담당자가 설명하는 ‘거래소’의 개념은 혁신 그 자체였다.
“일종의 인터넷 쇼핑몰이라고 생각하면 좋아요. 그것도 택배를 기다릴 필요가 없는 플랫폼이죠. 물건을 구매하면 이렇게 곧바로 나타나게 된답니다.”
그 말과 동시에 허공에서 콜라 하나가 나타났다.
지갑과 마찬가지로 홀로그램으로 구현된 거래소 창에서 돈만 지불하면 허공에서 물건이 나타난다니.
모든 물류 회사의 멸망을 가져올 시스템이었다.
‘말도 안 돼.’
거래소에는 요리나 디저트부터 시작해서 칼이나 창, 활 같은 무기류도 판매되고 있었다.
이준영이 거래소에 있는 물건들을 확인하는 동안에도 담당자의 설명은 계속해서 이어졌다.
“보통은 일을 하고 이곳에 종이 따위를 올려서 일한 만큼의 일당을 받는 식입니다. 음식점에서의 계산도 이와 같은 방식으로 이루어지니 알고 계시는 편이 좋아요.”
PPT의 자료가 워낙 직관적이어서 그녀의 설명을 알아듣기 쉬웠다.
“그리고 열심히 거래소에 물건을 올리는 것만으로도 돈을 벌 수 있답니다. 한 사람당 거래소에 올릴 수 있는 슬롯이 20개로 제한되어 있기 때문에 상점에 파는 물건들을 조금 비싸게 거래소에 올려도 수익을 얻을 수 있답니다.”
하다 하다 사업 아이템까지.
처음에 호언장담하던 대로 돈을 벌 방법은 무궁무진한 것 같았다.
‘굳이 사냥할 필요는 없다 이건가.’
솔직히 처음 방법보다 뒤에 이어진 방법들이 평범한 사람의 입장에서는 더욱 와닿았다.
목숨을 걸고 몬스터와 싸우고 싶어 하는 미치광이는 생각보다 많지 않을 테니까.
“자, 그럼 돈을 벌었으면 사용해야겠죠? 방금 알려 드린 거래소에서 물건을 구입하는 것도 좋지만, 일단은 그보다 먼저 ‘상점’에 들려 보는 게 좋습니다.”
그 뒤에 이어진 상점의 개념 또한 놀라웠다.
편의점이나 마트의 기능을 대체하는 상점이라는 곳은 그야말로 없는 게 없는 곳이었다.
거기다 그곳에서 물건을 구입하는 영상이 굉장히 충격적이었다.
허공에서 물건이 생성되는 것이 꼭 SF 소설에서나 나올 법한 광경이었다.
‘여기가 진짜 한국인가?’
바깥에서 보았던 일상의 모습도 충분히 충격적이었는데, 이곳의 중심에 자리 잡고 있는 메인 시스템이 현대 기술을 아득히 뛰어넘고 있었다.
지갑이나 거래소와 같은 홀로그램을 보고 있자면 정말로 타임머신을 타고 미래에 여행이라도 온 기분이었다.
‘미치겠군.’
오리엔테이션에서 전달받은 정보 하나하나가 신선한 충격을 주었다.
특히나 충격적인 것은 마지막 부분이었다.
“마지막으로 당분간 여러분들이 지낼 거처가 필요하겠죠? 처음에는 저희 쪽에서 임시로 지정해 드린 거처에서 생활하게 될 겁니다.”
이준영은 긴장할 수밖에 없었다.
사이비 종교에서 내어 준 임시 거처는 한강변에 친 좁은 텐트가 고작이었으니까.
그러나 놀랍게도.
“헐.”
그들에게 배정된 임시 거처는 임대 아파트였다.
무려 따뜻한 물로 샤워가 가능하고, 푹신한 침대에서 잠을 잘 수 있고, 도시가스가 나와서 집에서 요리도 해 먹을 수 있는 그런 꿈 같은 공간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