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bsolute Dweller RAW novel - Chapter (144)
145화 [Episode 32] 구세주 (5)
대한민국의 자랑스러운 수뇌부들의 행동거지에 대해 들은 이후로 서울의 현 상황과 힘의 구조에 대한 이야기를 한참이나 들었다.
서울의 상황은 내 생각보다 심각했다.
이학기 사령관과의 대면을 마친 이후 특별한 일정이 하나 예정되어 있었다.
“여긴가요?”
“네. 이번에 새롭게 오픈할 예정인 목욕 시설입니다.”
김다빈이 주도적으로 벌인 일은 수십 가지를 넘어갔다.
생활에 필수적인 요소부터 시작해서 통신망 복구, 상권 활성화, 일자리 창출, 난민 지원, 건물 수복 등등 오히려 그녀가 손대지 않은 분야를 찾는 것이 어려울 지경이었다.
지금 눈앞에 있는 목욕탕은 그 수많은 프로젝트 중 하나의 결과물일 뿐이었다.
“대단하네요. 그런데 서면이 아니라 왜 여기인 거죠?”
“대형 목욕탕 중에서 가장 온전한 형태를 유지하고 있는 건물을 우선적으로 고른 결과입니다. 아시다시피 서면 쪽에 있는 공중목욕탕 시설은 대부분 심하게 파손된 상태라…….”
“그렇군요. 수고했어요.”
공교롭게도 나에게는 상당히 익숙한 장소였다.
‘해수피아라니.’
본가에서 5분 정도만 걸어가면 나오는 건물이었다.
실제로 바로 고개를 돌리니 세계수의 모습을 확인할 수 있었다.
수백 미터에 달하는 높이도 높이였지만, 줄기의 굵기가 아파트 단지를 포용하고도 남을 것 같았다.
더군다나 이곳은 세계수가 자라나던 곳과는 수백 미터 떨어져 있는 곳인데, 이곳까지 굵은 뿌리의 모습이 뻗어 나와 있을 지경이었다.
게다가 주변에는 나무가 무성하게 자라나 있어서 이제는 이곳이 도시인지 숲인지 알아볼 수 없을 지경이었다.
덕분에 나무에 둘러싸인 해수피아의 모습은 익숙하면서도 낯설었다.
건물의 모습을 보면 어릴 때부터 자주 다니던 목욕탕이 분명한데, 주변 환경은 전혀 달라져 있었으니.
“들어가 볼까요.”
넝쿨과 수풀이 무성하게 자라나 있는 건물 벽면과는 달리 입구에 있는 수십 개의 계단은 깔끔하게 정리되어 있었다.
계단을 다 올라가자 예전 그대로의 카운터를 발견할 수 있었다.
내 발걸음에 맞춰 함께 올라온 김다빈이 설명했다.
“드물게도 건물이 파손되지 않았을 뿐만 아니라 제반 시설들도 그대로 남아 있었습니다. 덕분에 신발장, 로커룸, 열쇠까지 전부 사용이 가능해 따로 준비할 것도 없었고요.”
김다빈의 설명이 끝나는 것과 동시에 카운터에서 대기하고 있던 직원이 남탕 전용 키를 하나 꺼내어 나에게 건네주었다.
“마, 만나 뵙게 되어서 영광입니다!”
잔뜩 긴장한 직원을 향해 웃어 주자 경쾌한 알림음이 들려왔다.
[시민 최지우의 신뢰도가 올라갑니다.] [시민 최지우의 충성도가 올라갑니다.]아까부터 계속 신뢰도와 충성도가 올라간다는 알림이 빗발치고 있었다.
평소에는 이렇게까지 심하지 않았다.
눈을 마주치거나, 대화를 나누거나 하는 사소한 일로 신뢰도와 충성도가 마구잡이로 올라가진 않는다.
그랬다면 내가 밖에 나갈 때마다 매번 난리가 났을 것이다.
그러나 평소에 밥을 먹으러 나가거나 산책을 할 때는 괜찮았다.
지금 이 현상은 이들이 나를 확실하게 인지하고 있기 때문이었다.
이곳의 주인이자 내가 ‘김재현’이라는 것을 똑똑히 인지하고 있는 이들의 경우 대개 이런 반응이 쏟아져 나온다.
나는 김다빈의 에스코트를 따라 3층의 남탕까지 이동했다.
그리고 아직까지 나를 따라오고 있는 김다빈을 향해 물었다.
“……목욕탕 안까지 들어오실 생각인가요?”
그러자 김다빈이 대꾸했다.
“목욕 시중을 도와드리겠습니다.”
“…….”
목욕 시중이라면 아마도 그것을 말하는 거겠지.
드라마나 영화에 나오는 그런 것들.
귀족이나 왕족들 곁에서 몸을 씻겨 주고, 물기를 닦아 주고, 옷을 입혀 주는 것 같은….
그때 김다빈이 장난스러운 웃음을 지으며 말했다.
“농담입니다만.”
“그, 그렇죠?”
“원하신다면 기꺼이―.”
“됐습니다.”
이어지는 그녀의 장난을 빠르게 끊어 낸 후, 목욕탕 안쪽으로 들어갔다.
대리석으로 된 복도를 한참 들어가니 수백 개의 로커가 줄지어 있는 곳이 나타났다.
‘333번.’
해당 번호가 적힌 로커를 찾아 옷을 집어넣은 다음 왼쪽 팔에 키를 걸고 목욕탕으로 향했다.
로커룸을 지나가던 중 전신 거울에 비친 내 모습을 볼 수 있었다.
그림으로 그린 듯한 잔근육과 균형 잡힌 몸매.
물렁하고 평범하던 몸은 온데간데없이 완벽한 비율의 몸이 거울 속에서 존재감을 과시하는 중이었다.
‘티끌 모아 태산이라더니.’
일일퀘스트 보상으로 인해 조금씩 늘어나던 근력과 체력이 만들어 준 몸이었다.
‘보기 좋네.’
목욕탕 문을 열자 안쪽에서부터 따뜻하고 습한 공기가 전신을 부드럽게 마사지해 주었다.
해수피아의 경우 탕의 종류도 많고, 탕 하나하나가 열댓 명이 들어갈 수 있을 정도로 넓은 편이었다.
그런 곳을 혼자서 쓰고 있자니 정말 왕이라도 된 기분이었다.
한쪽에 있는 샤워 부스에서 가볍게 몸을 씻은 다음 두꺼비 조각상이 물을 내뿜고 있는 온탕에 몸을 담갔다.
발끝에서부터 전해져 오는 찌릿한 감각이 전신으로 퍼지자 몸 전체의 근육이 편안하게 늘어지는 기분이었다.
“허어.”
절로 감탄사가 새어 나왔다.
아무도 사용하지 않은 물이어서 그런지 엄청나게 깨끗했다.
“아, 좋다.”
목욕을 좋아하는 엄마와 할머니가 특히 좋아하실 것 같았다.
아무도 없는 목욕탕에서 따뜻한 물에 몸을 담그고 있자니, 기분 좋은 졸음이 몰려왔다.
‘조금만…… 잘까…….’
따뜻한 물에서 올라오는 증기가 얼굴에 스치는 것을 느끼며 천천히 두 눈을 감았다.
스르륵
‘……세요.’
‘우리…… 제발…….’
‘……보고 싶어요.’
‘살려 주세요!’
‘제발, 제발 우리 애라도 구해 주세요!’
‘여기, 여기 사람이 깔렸어요!’
‘제발!’
‘아아악!’
‘도와주세요! 꺄아아아악!’
‘당신을 저주해! 죽어서도 저주하겠어!’
그때 눈을 떴다.
두꺼비가 뱉어 내는 물소리가 멈추지 않고 귓가를 때렸다.
나는 따뜻한 물 속에서 천천히 손을 들어 올려 얼굴을 적셨다.
[다빈 씨. 시간이 얼마나 지난 거죠?] [10분 정도 지났습니다. 무슨 일 있으십니까?] [아니요. 깜빡 잠이 든 것뿐입니다.]온몸을 휘도는 따뜻한 물을 느끼며 고개를 들어 천장을 바라봤다.
‘또 그 꿈인가.’
어둠 속에서 알 수 없는 목소리들이 메아리치는 악몽이었다.
목소리의 주인들이 누구인지는 알 수 없었다.
잠실의 재난 상황에서 들었던 목소리인지, 구조가 필요한 난민들의 목소리였던 것인지, 몬스터에게 쫓기는 사람들의 목소리인지.
‘나에게 죽어 나갔던 사람들의 목소리인지.’
그마저도 아니라면 단순히 내 죄책감이 만들어 낸 환상일지도 모르겠다.
‘충분히 각오했다고 생각했는데, 부족했던 건가.’
막상 JHS 광신도들을 죽여야 하는 상황이 다가오자 계속해서 망설였던 것을 생각하면, 각오가 부족했던 것일 수도 있었다.
나는 모든 사람에게 좋은 사람이 되고 싶은 생각은 없었다.
좋은 사람이나 나쁜 사람 같은 개념은 상대적일 뿐이라 개인적인 입장에 따라 바뀔 뿐이었다.
예를 들어 정현수에게 희생당할 뻔한 14만 4천 명의 시민들에게 나는 구세주였겠지만, 정현수를 비롯한 그의 추종자들에게 있어서 나는 저승사자와 다를 게 없었을 것이다.
‘내 선택으로 인해 수백 명이 죽었다.’
어쩔 수 없는 일이라는 변명은 하기 싫었다.
그 사람들의 목숨은 온전히 내 선택으로 지워진 것이다.
다른 경우에도 마찬가지였다.
흡혈귀들에게 나는 악몽과도 같았을 것이고, 몬스터들의 입장에서 나는 지옥 그 자체일 것이다.
‘그건 앞으로도 달라지지 않는다.’
몬스터를 죽이고, 흡혈귀를 죽이고, 좀비를 죽일 것이다.
그들이 한때 사람이었다고 해도, 그것이 생존을 위한 결정이었다고 해도 달라지는 것은 없을 것이다.
인간인 경우에도 마찬가지였다.
나는 선택을 할 것이고, 그로 인해 죽는 사람들이 생겨날 것이다.
‘이학기 사령관에게 들은 서울의 상황을 고려하면 서울을 수복하는 과정에서 많은 사람을 죽여야 하겠지.’
어쩌면 우리 쪽에서도 희생자가 나올지 모른다.
흡혈귀전 때 그랬던 것처럼 장례식을 치러야 할지도 모른다.
그렇다고 해도 나는 내가 옳다고 생각한 길을 나아갈 생각이었다.
망설일 수는 없었다. 내 어깨 위에 놓인 50만 명의 목숨을 위해서라도.
‘이깟 악몽쯤.’
아무렇지도 않았다.
잠시 멍하니 생각에 잠겨 있던 나는 몸을 일으켜 목욕탕 밖으로 나와 수건으로 몸을 닦았다.
잠든 시간은 짧았지만, 몸의 피로는 말끔하게 풀려 있었다.
오랜만에 목욕탕에 들어간 것도 있었지만, 그보다는 기초 체력의 힘이었다.
그동안 일일퀘스트로 소소하게 올라간 체력과 오언주의 능력인 태고의 생명력이 복합적으로 작용하며 나를 초인으로 만들어 주고 있었다.
태고의 생명력은 상처가 늘어날 때마다 재생력이 급격히 올라가는 능력이었다.
‘아직 다쳐 본 적이 없어서 효과를 본 적은 없지만.’
그런데 그것은 단순히 상처에만 적용되는 것이 아니라 몸의 피로에도 적용이 되고 있었다.
체력을 소모하면 소모할수록 태고의 생명력이 발동되며 소모된 체력을 회복시키는 것이다.
정신력만 충분하다면 체력은 무한 동력이나 마찬가지였다.
덕분에 겨우 10분 정도의 쪽잠으로도 피로를 푸는 게 가능한 것이다.
몸을 닦고 로커에서 옷을 꺼내 입은 다음 밖으로 나가니 김다빈이 기다리고 있었다.
아무래도 내가 씻을 동안 엘리베이터 앞에서 계속 기다리고 있었던 모양이었다.
“빨리 나오셨네요.”
“자주 왔던 곳이라서요.”
“그렇군요. 목욕은 어떠셨습니까?”
“좋았어요. 지금 바로 오픈해도 될 것 같던데요?”
“감사합니다.”
김다빈의 에스코트를 받으며 카운터로 내려가는 길에 물었다.
“그런데 서면에는 이런 곳이 없나요? 동래 쪽이었나? 유명한 목욕탕이 하나 있었던 것 같은데.”
“그렇지 않아도 토용이들이 열심히 복구 작업에 있습니다.”
토용(土俑).
흙으로 대충 빚은 골렘같이 생긴 녀석들로 집구석 절대자의 집구석 수복 스킬을 2레벨로 올리며 얻은 놈들이었다.
한 마리당 3억이라는 거금을 들여 총 30마리를 만들었는데, 폐허가 된 도시를 수복하는 데 이놈들의 도움이 상당히 컸다.
“그렇군요. 너무 부려 먹지는 마세요. 누굴 닮아서 밤낮으로 일하는 아이들이니. 언제 쓰러질지 모르잖아요.”
내가 농담을 던지자 김다빈이 가볍게 맞받아쳤다.
“제가 쓰러질 일은 없을 겁니다. 모든 것을 제가 해야 한다는 욕심을 버렸거든요.”
“그건 다행이네요.”
“마침 공사가 끝나는 개체가 몇 기 있는데, 하루 정도 휴가라도 보내 줄까요? 달콤한 디저트라도 먹이면서.”
“그거 좋죠.”
그렇게 농담을 주고받던 와중에 한 가지 생각이 머릿속을 번뜩였다.
“어?”
이학기 사령관과 대면하기 전만 해도 머릿속을 가득 채우고 있던 생각이었다.
‘어쩌면 토용이들로 직업연구소의 레벨을 올릴 수도 있는 거 아닐까?’
당장 김다빈을 다그쳤다.
“다빈 씨. 그 남는 토용이들 지금 어디에 있죠?”
“……대연동 아파트단지 쪽입니다. 무슨 일이라도 생기셨습니까?”
“급하게 시켜볼 일이 있어서요.”
나는 토용이 3기를 데리고 서면의 직업연구소를 찾았다.
그 순간.
[해당 시설의 레벨을 올리기 위해서는 건설 기간(7일) 동안 토용(土俑) 3기를 필요로 합니다.] [직업연구소 건물을 2레벨로 올리시겠습니까?] [예 / 아니오]‘올려.’
[3,000,000,000 원이 소모됩니다.]방법을 찾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