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bsolute Dweller RAW novel - Chapter (152)
153화 [Episode 34] 서울 수복 작전 (3)
차현승은 혼란스러운 표정으로 정면을 바라보고 있었다.
‘꼼짝도 할 수 없다.’
당장 그의 몸을 막아 세운 무언가의 힘도 있었지만, 그것 때문에 움직이지 못하는 것이 아니었다.
눈앞에 있는 남자의 압도적인 존재감.
두 눈에 담겨 있는 은은한 분노.
전신에서 풍겨 나오는 카리스마.
그것들이 차현승의 몸을 옥죄고 있었다.
분명 자신의 영역을 침범한 개잡놈임에도 불구하고, 분노보다는 두려움의 감정이 앞섰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도망칠 수 없었다.
이곳은 차현승의 영역이었고, 자신은 무리를 지키는 우두머리였으니까.
그러나.
“누, 누구냐 넌!”
그의 입에서 나온 대사는 드라마나 소설에서 삼류 악당이나 읊어 댈 만한 초라한 대사였다.
두려움의 감정이 그의 목소리에 깊게 배어들어 더욱 추잡하게 느껴졌다.
그에 비해.
“저는 김재현이라고 합니다. 차현승 씨죠? 이야기 좀 나눌 수 있을까요?”
상대의 대처는 놀랍도록 침착했다.
마치 자신 따위는 아무런 위협이 되지 못한다는 듯한 그 태도에 차현승은 화가 머리끝까지 치솟았다.
‘저놈은 우리의 영역을 침범한 침입자다.’
먹이를 구걸하러 온 인간들이나 무리의 일원이 되기를 희망하며 찾아온 인간들과는 의미가 달랐다.
자신을 김재현이라고 소개한 남자는, 지금 영역을 빼앗으러 온 약탈자였다.
당장 꼬리를 내리고 도망치는 선택을 한다면 살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저 압도적인 힘을 지닌 남자의 손아귀를 벗어나 생존하기 위해서는 큰 희생을 필요로 할 것이라는 계산이 섰다.
그럴 수는 없었다.
그럴 바에는 차라리…….
“크르르.”
차현승의 입에서 짐승의 소리가 흘러나왔다.
싸울 준비를 하는 것이다.
자신의 몸을 막고 있는 보이지 않는 손 따위 쳐 내버리고, 단숨에 남자의 목덜미를 물어뜯을 심산이었다.
뿌드득―
차현승의 몸이 변화해 간다.
근육이 부풀어 오르고, 손톱과 발톱이 길게 자라나며, 전신을 회백색의 털이 뒤덮었다.
한 마리의 짐승이 된 차현승이 김재현을 향해 돌진하려던 그 순간.
“!?”
우드득!
자신의 가슴을 막아 세우고 있던 투명한 무언가가 갑작스럽게 팽창하더니 그의 몸을 찍어 눌렀다.
콰아아앙!
“으아아아악―!”
발악해 봤지만, 소용없었다.
그의 전력은 김재현이 가지고 있는 힘의 발톱 때만큼도 따라가지 못한다는 것을 깨달았을 뿐이다.
‘그렇다고 해도……!’
차현승의 뒤쪽에서 대기하고 있던 동물들이 그의 의지를 읽고 전투에 참여할 준비를 했다.
그들은 언제든지 기꺼이 차현승을 위해 목숨을 바칠 준비가 되어 있는 전사들이었다.
모두가 힘을 합친다면, 어쩌면 저 침략자들을 몰아낼 수도 있지 않을까 하는, 그런 터무니없는 생각이 들었다.
상대는 겨우 하나.
무리를 이끌고 다니는 차현승은 숫자의 힘을 누구보다도 잘 알고 있었다.
자신보다 강력한 존재를 만난 것이 이번이 처음인 것도 아니었고, 그는 매번 그 위기를 극복하며 더 강해져 왔다.
‘이번에도 할 수 있다.’
그런 감이 왔다.
어떻게든 될 것 같다는.
그리고 대체로 그의 직감은 맞았기에 모두에게 돌격 명령을 내리려 했다.
일촉즉발의 그 순간.
지이잉― 지잉―
차현승의 눈앞에,
“!!!!!”
지이잉―
열댓 명의 인파가 등장했다.
그들을 보는 순간 전력 파악이 끝이 났다.
한 명 한 명이 품고 있는 힘이 말도 안 되게 엄청났다.
충격적인 것은 절반 이상이 자신보다 더 강력한 힘을 품고 있다는 점이었다.
이대로 싸움을 시작하면 그것은 전투가 아닌 일방적인 학살극이 되고 말 것이다.
상대가 혼자라면 어떻게든 기회가 찾아왔을지도 모르지만, 무리 대 무리로 붙는다면 필패였다.
“……다들 멈춰.”
결국, 꼬리를 말 수밖에 없었다.
치욕적이었지만, 살아남기 위해서는 얼마든지 꼬리를 내릴 수 있었다.
차현승은 금방이라도 터져 나오려는 두려움의 감정을 억지로 꾹꾹 눌러 담으며 태연한 척 말했다.
“그래서 내 땅을 빼앗으면서 나에게 하고 싶은 말이 뭐지? 여기서 나가 주길 바란다는 건가?”
그러자.
“당신의 영역을 침범한 것은 진심으로 사과드립니다.”
김재현이라고 자신을 소개한 남자가 자신을 향해 허리를 숙여 왔다.
“……뭣?”
굴복하지 않는 것만이 자유를 위한 최선의 행동이라 생각하고 있던 차현승에게 그 모습은 가히 충격적이었다.
자신보다, 자신의 무리보다 훨씬 강력한 힘을 가진 우두머리가 이쪽을 향해 먼저 고개를 숙여 온 것이었으니까.
차현승은 자기보다 약한 자에게는 물론, 강자에게도 고개를 숙인 적이 없었다.
그렇기에 김재현의 모습은 신선한 충격이었다.
어느새 자신을 짓누르고 있던 투명한 힘도 사라져 있다는 것을 깨달을 수 있었다.
그러나 차현승이 선택한 것은 빈틈을 노린 공격이 아니었다.
“어어……. 먼저 공격한 것에 대해 사과하지.”
그의 선택은 눈앞의 남자와 마찬가지로 상대를 향해 고개를 숙이는 것이었다.
김재현이 차현승을 향해 한 발자국 내디디며 말했다.
“저는 이 서울을 구해 낼 생각입니다.”
처음 그의 말을 들었을 때는 이 남자가 지금 무슨 헛소리를 하는가 싶었다.
그러나 고개를 들었을 때 마주한 그의 진지한 눈빛을 보고 알았다.
‘진심이다.’
그리고 그의 주변을 가득 메우고 있는 사람들의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자신의 무리와 마찬가지로 신뢰와 존경으로 가득 차 있는 눈빛.
그들의 믿음이 느껴졌다.
그가 서울을 구한다고 말했으면, 정말로 해내고 말리라는 단단한 마음이.
“저에게는 몬스터의 침입을 막아 내는 장벽을 세울 수 있는 힘이 있습니다. 그 힘을 사용해 서울을 수복하고 예전과 같은 도시로 만들 생각입니다.”
김재현이 말하는 힘이 어느 정도로 강력한 것인지, 그게 정말 서울 전체를 구할 수 있을 정도인지는 알 수 없었다.
애초에 차현승에게 있어서 서울을 구하고 말고는 딱히 중요한 것이 아니었다.
김재현이 말하는 ‘서울’이란 인간들이 살아가는 ‘서울’을 말하는 것일 테니까.
솔직히 말해서 차현승은 그보다는 지금이 더 좋다고 생각했다.
‘인간 따위 어떻게 되든 내 알 바 아니니까.’
평소 동물을 사랑하는 차현승은 동족인 인간들을 혐오했다.
동물원이라는 틀을 만들어 그들의 자유를 속박하고 가두어 두는 것도, 호기심에 입양했다가 책임감 없이 길가에 버리는 행위도, 오로지 고기를 얻기 위해 길러지는 가축들의 처지도, 자신의 이익을 위해 숲을 파괴하는 것도.
인간들의 그 모든 것들이 역겨워서 참을 수가 없었다.
그래서 세상의 종말이 찾아와 수많은 사람이 죽어 나갔을 때, 차현승은 오히려 기뻐했다.
최상위 포식자였던 인간의 자리를 위협하는 수많은 몬스터들의 등장에 인간들은 약자가 되었고, 그동안 지은 죄를 모두 한꺼번에 돌려받는 듯했다.
처음에는 그것을 보는 게 통쾌했다.
사람들이 죽어 나가는 동안 동물원의 짐승들을 해방하고, 모두와 함께할 수 있는 영역을 만드는 것에 열중했었다.
주위에서 얼마나 많은 사람이 죽어 나가는지는 관심사가 아니었다.
‘하지만…….’
아무리 눈을 돌려도 온통 세상에는 죽음과 슬픔으로 가득했다. 그래서 그들의 비극을 마주할 수밖에 없었다. 그것들을 보며 깨달은 것이 있었다.
지금까지 혐오했던 인간의 추악하고, 잔혹한 행위들까지 모두 자연의 일부일 뿐이었다는 것.
그리고 자신 또한 인간이라는 것.
그 이후로 자신의 영역 근처에 빌붙어 생계를 유지하는 인간들을 용납했다.
직접적으로 도와주지는 않더라도 살기 위해 자신의 그늘로 들어오는 것까지는 용납한 것이다.
‘내 힘으로는 겨우 몇만 명의 목숨을 부지하는 게 한계였다.’
그런데 눈앞에 남자는 서울 전체를, 나아가 나라 전체를 구하려 하고 있었다.
서울을 수복하는 게 정말로 가능한 것인가.
만약에 가능하다고 해도 그 많은 사람을 어떻게 먹여 살릴 생각인가.
그런 사소한 것들은 의외로 중요하지 않았다.
“저는 차현승 씨가 저희와 함께해 주셨으면 합니다. 저에게 힘을 빌려주실 수 있을까요?”
중요한 것은 차현승 스스로가 눈앞에 있는 남자를 믿어 보고 싶어졌다는 것이었다.
“……제가 뭘 도와드리면 되죠?”
* * *
성공적으로 차현승에게 시민권을 부여한 뒤, 그의 시민 정보창을 확인했다.
『이름 : 차현승 (Lv. 53)
신뢰도 : 21
각성 능력 : 비스트 로드
경험치 분배율 : 0% (+200%)
정산금 분배율 : 0% (+200%)
★퀘스트 부여 퇴출』
직접 대면하고 이야기를 나눴는데도 불구하고 신뢰도가 낮은 편이었지만, 충분히 만족스러웠다.
차현승은 혼자가 아니었으니까.
그는 군단이었다.
「백호(Lv. 46)」 「큰까마귀(Lv. 37)」 「반달곰(Lv. 41)」 「수리부엉이(Lv. 39)」 「회색 늑대(Lv. 35)」 「꽃사슴(Lv. 29)」 「사막 여우(Lv. 33)」 ……
그의 곁에는 수십 종류의 고레벨 동물들이 함께하고 있었다.
그것도 덩치만 봐도 일반적인 동물들보다 배는 더 커다란 놈들 투성이였다.
그 숫자만 무려 수백.
그중에서도 30레벨이 넘어가는 이들은 각자 무리에서 우두머리 격인 놈들로 보였지만, 나머지 동물들의 평균 레벨도 20 정도로 결코 낮은 편이 아니었다.
군단을 손에 넣은 것이다.
차현승 곁으로 몰려들어 교감하고 있는 그들의 모습을 바라보며 속으로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위험했어.’
만약 그가 목숨을 걸고 나와 맞서는 것을 선택했다면 상황이 안 좋게 전개가 될 수도 있었다.
어쨌든 지금 이곳에 있는 투명 방벽은 불완전한 것이었다. 차현승과 그의 무리가 동시다발적으로 달려들었다면, 방벽에 피해가 갔을 것이고, 그것은 고스란히 오언주가 부담해야 했다.
그러다 그녀가 기절하기라도 한다면 3일 동안 공을 들였던 영지 건설이 끝장나는 것과 동시에 영역이 깨져나갈 것이고, 이곳에 있던 나는 졸지에 안전지대 밖으로 이동하게 되는 것이다.
그 경우.
‘나는 어떻게 됐을까?’
기본적으로 나는 집구석 영역 밖으로 나갈 수 없다.
예외적인 강림의 경우에도 먼저 신뢰도 100을 달성한 가신을 중심으로 일시적인 집구석 영역이 펼쳐진 다음에야 내가 이동하는 것이었다.
‘별일 없을 것 같기는 하지만…….’
이건 내 예상일뿐이지만, 강림이 풀릴 때와 비슷하지 싶었다.
‘아마도 그냥 집으로 돌아가게 되겠지.’
그러나 그때쯤이면 차현승과의 관계는 박살이 나 있을 가능성이 컸다.
어찌 됐든 우리 입장에서는 투명 방벽을 보호해야 했으므로 그들의 무리와 전투를 벌였을 것이고, 저들 중 대부분이 죽거나 다치게 됐을 것이다.
나는 차현승을 향해 물었다.
“지금까지 어디에 계셨던 겁니까?”
“제 영역에 침입해 동료를 죽이고 달아난 몬스터가 한 마리 있었습니다. 그놈을 잡기 위해 모두 같이 다녀온 참이었습니다.”
차현승과 동물들의 관계를 볼 때, 사태가 거기까지 흘러가게 된다면 끝장을 볼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그렇게 되면 내 입장에서는 커다란 손해였다.
영지 건설에 들어간 돈의 3할이 사라지고, 사흘이라는 시간이 날아가 버리는 데다 차현승이라는 인재까지 잃어버리는 격이었다.
그렇기에 진심을 다해 그를 설득했고, 다행히 진심이 그의 마음에 닿은 모양이었다.
‘최고의 결과다.’
어찌 됐든 피 한 방울 흘리지 않고, 그를 받아들일 수 있게 되었으니까.
‘신뢰는 차차 쌓아 나가면 된다.’
그때 차현승이 나를 향해 물었다.
“그래서 앞으로 어떻게 하실 생각입니까?”
“우선, 이 근처에 있는 생존자들의 구출을 최우선 사항으로 움직일 겁니다.”
영지가 본격적으로 활성화되면 굳이 부산으로 이동할 필요 없이 서울을 재건할 수 있게 될 것이다.
“그리고.”
충분할 만큼 사람들을 구한 뒤에는.
“서울에 있는 모든 몬스터들을 쓸어버릴 계획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