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bsolute Dweller RAW novel - Chapter (155)
156화 [Episode 34] 서울 수복 작전 (6)
김민우는 박성현의 뒤를 따르면서도 영 내키지 않았다.
‘건대 입구역이라고 했나.’
그곳에 남에게 환각을 보여 주며 사람들을 현혹하는 악당이 있다며 토벌하러 가겠다고 선언했다.
‘이번 일은 어느 정도 진짜인 것 같기는 한데…….’
직접 다녀온 사람들의 말을 들었다.
당장 건대 입구역을 통해 부산으로 이동할 수 있다는 것도 비현실적이었지만, 그 외의 이야기들이 더 거짓말 같았다.
식량이 넘쳐나는 데다 집집마다 전기나 수도, 가스 등이 들어오고 식당이나 카페가 정상적으로 영업을 하고 있는 곳이라니.
‘말이 안 되지.’
그런 일은 있을 수 없었다.
차라리 박성현이 주장하는 것처럼 그곳에 환각을 만들어 내는 놈이 있고, 어떠한 목적이 있어서 사람들을 끌어모으는 것이라는 쪽이 더 현실적이었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박성현이 하는 말을 전부 신용하기는 힘들었다.
‘그동안 거짓말했던 전적이 있으니.’
양치기 소년 효과라고 해야 할까.
종종 이렇게 박성현이 전투 병력을 대동하고 출전한 적이 몇 번 있었다.
그때도 비슷한 논지였다.
‘강간범들의 소굴이다.’
‘사람을 잡아먹는 식인종들이 있다.’
‘우리 쪽 애들을 건드린 복수를 하러 간다.’
처음에는 박성현의 말만 믿고 사람을 죽였다.
그러나 최근에 우연한 계기로 박성현과 수뇌부들의 실체를 알게 됐다.
쥐를 잡으려던 중 그들의 대화를 엿듣게 된 것이다.
(이번 인간 사냥은 어디로 가실 생각입니까?)
(글쎄. 이 주변은 전부 처리했으니까 조금 멀리 나가야지.)
(흐흐. 역시 이렇게 저희끼리 가는 게 좋다니까요. 대장. 예쁜 여자는 죽이지 말아 주세요. 헤헤.)
(야. 그건 내 거야.)
(더러운 식인종 새끼는 저에게 말 걸지 말아 주십시오. 기분이 나빠집니다.)
(보기 좋은 떡이 먹기도 좋다는 말 모르냐?)
설마 수뇌부 중에서 자신을 제외한 모두가 쓰레기 같은 인간이었을 줄이야.
박성현을 포함해 수뇌부들은 쓰레기들의 집합체였다.
한 놈은 강간에 미쳐 있었고, 사람을 잡아먹는 미친놈도 있었다.
또한 박성현이 정기적으로 자리를 비우는 이유가 ‘인간 사냥’ 때문이라는 것도 얼마 지나지 않아 알게 되었다.
자신이 몸담고 있는 조직의 우두머리가 살인에 미친놈이라는 것을 깨닫게 되자 그동안 쌓여 왔던 신뢰가 한순간에 무너져 내렸다.
과연, 놈의 지시 아래 죽여 왔던 사람들이 모두 악인이긴 했던 걸까?
믿음이 무너지자 그제야 주변의 상황이 제대로 눈에 들어왔다.
박성현은 너무 쉽게 사람을 죽였다.
창고의 음식을 훔쳐서.
자신의 말에 반기를 들어서.
조직에서 도망치려 했기 때문에.
예전에는 무참히 죽어 나가던 그들을 바보 취급했었다.
자기만 배고픈 것도 아닌데.
입을 잘못 놀려서 죽는 구나.
밖에 나가 봤자 몬스터들에게 죽을 텐데, 멍청하기는.
전부 실제로 했던 생각들이었다.
박성현의 손에 죽은 이들을 변해 버린 세상에 적응하지 못한 부적응자로 여겼었다.
그러나 그런 생각을 할 수 있었던 것은, 그들과 자신의 처지가 달랐기 때문일 뿐이었다.
운 좋게 각성자가 된 덕분에 자신과 가족들은 이 조직에서 나름대로 대우를 받고 있었다.
사람들이 굶어 죽고 있을 때, 그의 가족들은 죽지 않을 정도로의 배급을 받을 수 있었고, 그렇기에 굳이 박성현과 대립할 필요도 없었다.
그러나 과연 죽는 것이 자신의 가족이었다면, 그런 식으로 합리화할 수 있었을까?
‘……제기랄.’
박성현과 수뇌부들의 실체를 알게 되고, 현실을 직시하게 된 이후로는 당장이라도 이 조직을 벗어나고 싶었다.
그러나 그럴 수 없었다.
“민우야.”
“……예, 성현님.”
“요새 무슨 고민이라도 있냐?”
“……없습니다.”
“그래?”
박성현이 차가운 눈으로 김민우를 내려다보며 말을 이었다.
“본진에서 기다리고 있는 부모님과 동생을 위해서라도 잘해야지. 안 그래?”
순간 목 줄기가 서늘해졌다.
“……열심히 하겠습니다.”
“열심히 말고, 잘. 잘해라.”
“……노력하겠습니다.”
자신은 이곳에 너무 깊기 관여했다.
각성자인 덕분에 혼자서는 어찌저찌 도망칠 수 있더라도, 가족들을 데리고 도망치는 것은 현실적으로 어려워 보였다.
‘그리고 도망쳤다가는 이 자식이 직접 쫓아오겠지.’
김민우는 강한 편에 속했다.
지금까지 수많은 싸움을 거치며 더욱 자신의 위치를 확실하게 깨달을 수 있었다.
자신은 각성자들 중에서도 굉장히 상위권에 속하는 사람이었다.
하지만 그것도 박성현에 비하면 자신은 불 앞의 반딧불이에 불과했다.
어디로 도망친다고 해도 박성현이 마음만 먹으면 그와 그의 가족들을 몰살시키는 것쯤은 식은 죽 먹기나 다름없었으니까.
‘살아남기 위해선 최소한 박성현에 맞먹는 힘을 지닌 존재의 그늘로 가야 한다.’
그러나 과연 박성현의 원한을 감당하면서 자신을 받아 줄 사람이 있긴 있을까.
회의적이었다.
‘젠장.’
박성현을 죽이지 않는 이상은 자유를 얻기 힘들 것이다.
‘죽여야 해. 내 손으로.’
수뇌부의 각성자 전원을 대동한다는 것은 이번이 그만큼 위험한 일이라고 판단했다는 뜻이었다.
‘어쨌든 JHS를 무너뜨리고, 건대 입구역에 있는 괴물을 쓰러뜨린 놈들이니까.’
그곳을 돌아다니는 칼의 골렘에 대한 것은 알 만한 사람이면 다들 아는 이야기였다.
‘그런 곳을 점령했으니, 최소한의 전투 능력은 있다는 거겠지.’
사람들에게 환각을 걸어 생존자들을 끌어모으는 그들도 그리 좋게 보이지는 않았지만, 최소한 박성현만큼의 쓰레기는 아닐 테니까.
‘기회는 온다. 반드시.’
이번 전투에서 박성현을 죽이고 가족들을 데리고 떠난다면 혼자서도 충분히 감당할 수 있을 것이다.
그때였다.
쿵 쿵 쿵-!
오른쪽에서 요란한 소리가 들려왔다.
“이게 무슨 소리지?”
“뭐야?”
그리고.
“전투 준비!”
공중에서 거대한 몬스터가 나타났다.
콰아아아앙!
“어?”
“저 새끼가 왜 여기에……?”
콘크리트 바닥을 박살 내며 등장한 그 괴물은 전신이 검은 비늘과 뾰족한 가시로 뒤덮여 있었다.
집 한 채만 한 거대한 덩치와 턱에 붙어 있는 번들거리는 독니가 위협적이었다.
검은 가시 거미.
놈의 출현으로 모두가 사색이 되었다.
‘분명 놈의 영역은 이곳에서 한참 떨어진 곳일 텐데?’
서울은 몬스터 밭이 되었고, 검은 가시 거미처럼 강력한 존재는 자신의 영역을 구축하고 그곳에 군림하는 경우가 많았다.
보스급 몬스터가 자신의 영역 밖으로 나오는 경우는 거의 없었기 때문에 당황할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사실 검은 가시 거미가 자신의 영역과 한참 떨어진 영역에 출현한 것에는 그럴 만한 이유가 있었다.
“씨발!”
“이, 이 새끼 다쳤어! 왼쪽을 집중 공략해!”
하늘에서 떨어져 내린 검은 가시 거미의 모습은 처참했다.
왼쪽 얼굴이 완전히 뜯겨져 나간 데다 다리 세 개가 없었다.
게다가 몸통이 완전히 난도질당해 있었다.
언제 죽어도 이상하지 않은 모습이었다.
다른 몬스터에게 영역 다툼에서 밀려난 것이다.
최근 김재현의 가신들이 영역을 구축하고 몬스터들을 몰아내며 생겨난 혼란 속에서 피해를 본 것은 인간들뿐만이 아니었다.
같은 몬스터끼리도 영역을 침범하고 지키는 과정에서 이런 저런 피해를 입고 있었다.
검은 가시 거미가 이곳에 나타난 것은 그 여파 중 하나였다.
“공격해!”
화르르륵!
검은 가시 거미의 얼굴이 불타오르는 것을 시작으로 대대적인 공격이 시작되었다.
그러나 전신을 파충류의 비늘과 가시로 보호하고 있는 놈에게 일반적인 공격은 통하질 않았다.
하지만 이곳에 모인 그들은 서초동 조직에서도 정예 중의 정예.
“상처 부위를 집중 공략해!”
빠르게 상황을 파악하고 최적의 판단을 내렸다.
-캬아아아악!
하지만 그것이 오히려 역효과를 내 버렸다.
검은 가시 거미가 자신의 마지막 생명을 불사르며 최후의 저항을 하기 시작한 것이다.
“커헉!”
순식간에 몇 명이 나가떨어지며 포지션이 뒤틀렸다.
그때였다.
“어휴. 한심한 것들.”
보다 못한 박성현이 전면으로 나섰다.
그 모습을 보며 김민우가 눈을 빛냈다.
‘기회다!’
본래 상처 입은 짐승이 더욱 무서운 법이다.
아무리 박성현이라고 해도 검은 가시 거미와의 전투에서 빈틈을 내비칠 지도 모른다는 기대였다.
‘감히 내 가족을 걸고 협박했겠다? 내 손으로 직접 죽여 주마.’
그러나 안타깝게도, 김민우가 노리던 그런 기회는 찾아올 새도 없었다.
서걱!
어느새 검은 가시 거미의 등 위로 올라탄 박성현이 손톱을 휘둘러 괴물의 목을 잘라 내버렸기 때문이다.
‘……어?’
쿠우웅!
육중한 머리가 콘크리트 바닥에 떨어지며 날뛰던 괴물의 몸도 풀썩 주저앉았다.
“우와아아아!”
모두가 환호하는 그 시점, 김민우는 경악한 표정으로 박성현을 바라보고 있었다.
‘……더 강해졌다고?’
분명 한 달 전만 해도 이 정도는 아니었다.
그런데 그때와는 비교도 할 수 없을 만큼 강력해진 모습이었다.
아무리 상처 입은 상태였다고 해도, 검은 가시 거미를 한 방에 죽여 버리다니.
‘……괴물.’
괴물이었다.
자신과는 비교도 되지 않는.
‘……포기하자.’
저런 괴물의 등에 칼을 꽂겠다니.
방금 그 모습을 보고 확신 할 수 있었다.
자신의 능력으로는 결코 저 괴물을 죽일 수 없다.
괜히 나섰다가는.
‘가족들의 목숨만 위험해질 뿐이다.’
다른 방법을 찾으면 된다.
분명히 놈의 손아귀에서 벗어날 방법은 있을 것이다.
‘신이시여…….’
김민우는 신이 없다는 것을 알면서도 신을 찾았다.
지금까지 그의 눈에 새겨졌던 수많은 비극과 참상의 현장은 이 세상에 신 따위 없다는 것을 증명해 준 것과 같았다.
자신의 손에 죽기 직전까지 신을 찾다가 죽은 이도 봤었으니까.
그러니 자신은 신 같은 건 믿지 않는다.
그렇다고 하여도.
‘제발… 저 악마를…….’
자신의 무력함을 깨달았을 때 찾게 되는 것은 결국 신이었다.
‘처단해 주소서.’
기도 말고는 할 수 있는 게 없었으니까.
그때였다.
두근―!
‘헉!’
갑자기 전신에서 격통이 느껴졌다.
특히나 가장 고통스러운 것은 심장.
그와 동시에 한 발자국도 움직일 수 없게 되었다.
‘뭐, 뭐가 어떻게 된 거야?’
움직일 수 없게 된 것은 비단 자신뿐만이 아닌 듯했다.
주변에 흘러넘치던 함성도 순식간에 조용해진 것을 보면.
“뭐 하고 있어. 다들 움직여!”
그나마 움직이고 있는 것은 박성현뿐이었다.
그런데 이상한 것은 그의 목소리였다.
그의 목소리에는 당황스러운 감정이 가득 배어 나오고 있었다.
“움직……이라고, 이 개잡것들아아아!! 다 죽여 버린다―!!”
박성현의 선포에도 불구하고 아무도 움직이는 이 하나 없었다.
그때.
찰팍- 찰팍―
어디선가 남자 하나가 찰팍거리는 발걸음 소리와 함께 나타났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퍼억―!
‘!!!’
무언가 불길한 소리가 들려오고 있었다.
무언가가 폭발하는 듯한 그 불길한 소리에 김민우는 전력을 다해 고개를 돌렸다.
“끄흐윽―!”
간신히 고개를 돌리고 그곳에서 마주한 장면은 끔찍하기 짝이 없었다.
‘헉!’
퍼어억―!
몸이 터져 나가며 고깃덩어리가 바닥을 뒹굴고 있었다.
남자가 다가올 때마다 주변이 피로 가득해지고 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김민우는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
그저 공포에 질린 채 다가오는 죽음을 바라보는 것이 그가 할 수 있는 전부였다.
‘오, 오지 마!’
공포 때문에 굳은 것인지, 저 남자의 능력인지 전혀 알 수 없었다.
‘흐윽!’
공포에 질려 눈물 흘리는 것조차 허락되지 않았다.
그런데.
찰팍―
남자는 김민우를 힐끗 보더니, 이내 관심 없다는 듯 눈길을 거두었다.
자신의 몸이 터져 나가지 않았다는 것을 알아차린 것은 남자가 지나가고 한참 뒤의 일이었다.
‘무슨?’
그러고 보니 살아남은 것은 자신 뿐만이 아니었다.
그 숫자가 적기는 해도 확실히 살아남은 사람들이 존재했다.
그들의 공통점은 금방 알아차릴 수 있었다.
자신을 포함해서.
‘……적어도 인간이기를 포기하지는 않았던 사람들.’
생존을 위해 어쩔 수 없이 붙어 있던 자신과 같은 처지의 사람들이었다.
잔혹한 현실에서 눈을 돌리며 방관자 역할을 하고 있던 이들.
그들에게는 두 번째 기회가 주어진 것이었다.
“끄아아아아악!”
뒤쪽에서 처절한 목소리가 터져 나왔다.
박성현의 목소리가 분명했다.
그의 기합에는 공포가 깃들어 있었다.
그리고.
푸확―!
무언가 폭발하는 소리를 마지막으로.
“허억!”
전신을 옥죄던 감각이 사라졌다.
“후욱! 허억!”
속박이 풀리며 숨을 몰아쉬던 김민우는 천천히 뒤를 돌아보았다.
“……아아!”
그곳에는 끔찍한 광경이 펼쳐져 있었다.
조각조각난 사람의 시체와 거대한 피 웅덩이.
그 중심에 있는 것은 만신창이로 갈기갈기 찢겨져 나간 박성현의 시체였다.
마치 천벌을 받은 듯한 모양새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