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bsolute Dweller RAW novel - Chapter (157)
158화 [Episode 34] 서울 수복 작전 (8)
눈보라가 몰아치는 어두운 하늘 위로 드리우는 검은 그림자.
모든 것이 흰 눈으로 뒤덮여 시야는 탁한데, 탁한 하늘의 끄트머리에서부터 드리우는 거대한 그림자가 등골을 오싹하게 만들었다.
큰 날개를 펼친 어떤 존재의 윤곽.
그것은 실존하는 재앙이었다.
등장과 함께 계절을 바꿔 버린 놈의 존재감도 존재감이었지만, 놈이 다가올 때마다 한층 더 강력해지는 한파가 압권이었다.
세상을 뒤덮어 버릴 기세로 강렬하게 흩뿌려지는 눈발과 함께 다가오는 살을 에는 듯한 추위가 점점 가속화되고 있었다.
특히 현재 놈과 가장 가까운 거리에 있는 강북 쪽은 이미 한겨울보다 혹독한 추위가 느껴지고 있었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서울역과 신도림에 지어진 영지 안쪽은 추위가 파고들지 못하고 있다는 점이었다.
‘어떡하지?’
가신들이야 소환하면 그만이었지만, 강북구에 있는 수많은 생존자를 영지 안으로 받아들일 방법이 없었다.
‘북대문을 개방한다고 해도 이용할 수 있는 이들은 시민권이 있는 가신들뿐이다.’
현재 강북구에 있는 조직 중 겨우 수백 명 정도가 시민권을 획득한 상태였다.
나머지 수만 명에 이르는 사람들은 북대문을 이용할 수 없었다.
‘그렇다고 저 많은 인원을 여기까지 끌고 오는 것도 무리다.’
결론은 나와 있었다.
[모두 가까운 안전지대로 복귀하세요! 지금 당장!]우선, 영지 주변에 있는 모든 이들에게 일제히 대피 명령을 내렸다.
[너무 멀거나 여건이 되지 않는 사람들은 가까운 지하로 대피하세요! 서두르셔야 합니다!]그때쯤 강북의 생존자 그룹에서 소란이 일어나기 시작했다.
“시민들부터 지하로 대피시켜! 얼른!”
강북구의 우두머리는 무능하지 않았다.
다행인 것은 대한민국에는 지하철, 지하 주차장을 비롯하여 지하에 마련된 시설이 다수 존재한다는 것이었다.
“모두 움직여!”
마찬가지로 그가 이끄는 수뇌부와 사람들 또한 유능한 이들이 많았다.
“여기는 알파 원! 모두 지하로 대피하라! 시민들의 대피를 최우선으로 움직여!”
어디서 구한 것인지 군용 워키토키를 사용해 빠르게 명령을 하달했다.
수뇌부가 주도적으로 움직이며 시민을 빠른 속도로 지하로 대피시키기 시작했다.
평소에 대피하는 연습이라도 한 것처럼 작전이 전개되고 있다는 것 자체가 그들의 유능함을 증명하고 있었다.
게다가 그들의 주거지가 지하철에 형성되어 있는 경우가 많았기 때문에 대피가 더욱더 수월하게 이루어졌다.
[협력해서 시민들의 대피에 최선을 다해 주세요!]강북에 파견되어 있는 것은 김민호 팀과 문지훈 문상훈 형제, 그리고 김 건이었다.
김 건을 향해 말했다.
[적을 확인하고 싶습니다.]“알겠습니다.”
곧바로 까망이와 일체화한 김 건이 검은 날개를 펼치며 하늘로 날아올랐다.
그때쯤 레벨 업이 종료되며 격통이 멈추고, 명경지수의 효과가 끝났다.
‘도대체 어떤 놈인지는 모르겠지만…….’
약간의 기대감이 피어올랐다.
‘바로 레벨 업을 할 수도 있겠는걸?’
서울에서 작전을 진행하며 가신들의 힘에 대한 신뢰도가 하늘을 뚫고 있었다.
그들의 힘을 합친다면 저 몬스터와도 충분히 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규모를 보아하니 최소 60레벨. 아니, 어쩌면 70레벨을 넘어갈지도.’
그렇다면 한 번에 몇 단계의 레벨 업을 경험할 수도 있었다.
‘스킬 포인트가 생기겠군.’
정산금 또한 넉넉하게 벌어들일 수 있을 것이다.
‘진조 때 받았던 금액이 1조 정도였지 아마?’
나는 기대감을 품은 채로 하늘로 올라가는 김 건의 모습을 바라봤다.
심각하게 몰아치는 눈보라를 가볍게 뚫어 내는 그에게 힘을 부여했다.
‘강화.’
곧장 검은 기운이 피어올라 그의 몸을 휘감았고, 눈과 추위를 밀어내 주었다.
덕분에 수월하게 비행할 수 있게 된 김 건이 순식간에 수백 미터 상공으로 치솟았다.
그렇지 않아도 차갑게 느껴지던 공기가 위로 올라갈수록 더욱 빠르게 차가워졌다.
그러나 검은 기운이 추위에서부터 그를 보호했고, 심지어 검은 기운의 보호가 없다고 하더라도 50레벨인 그에게 있어서 이 정도 추위는 견디기 힘든 수준도 아니었다.
그렇게 상공 수 킬로미터에 도달했을 때, 다가오고 있는 재앙의 정체를 두 눈으로 확인할 수 있었다.
‘……미친.’
그것의 정체를 확인한 김 건은 완전히 굳은 채로 멈춰 버렸다.
그럴 수밖에 없었다.
그곳에 있는 것은 괴물 그 자체였으니까.
「아이스 드래곤(Lv. 87)」
“…….”
얼음 산 하나를 통째로 조각해 만든 예술 작품.
하늘에서 마주한 놈의 첫 인상이었다.
날개의 끝에서 끝까지의 길이가 족히 1km는 넘어가는 듯 했다.
그 압도적인 크기의 얼음 덩어리 전신에서는 밀도 높은 냉기가 안개 형태로 뿜어져 나오고 있었다.
자그마한 얼음 알갱이 조각들이 빛에 반사되는 놈의 모습을 마주하자 일종의 경이마저 느껴졌다.
그것은 대자연이 현신한 듯한 모습이었다.
바로 견적이 나왔다.
‘이건, 어떻게 할 수 없다.’
이것은 도무지 사냥을 하니 어쩌니 할 수 있는 수준이 아니다.
김 건 또한 멍하니 놈의 모습을 보고 있던 그때였다.
쩌저적―
“크윽?”
갑자기 김 건의 전신에 하얗게 성애가 서리기 시작했다.
그러더니.
쩌저저적―!
“!!!”
순식간에 그의 몸이 얼음으로 뒤덮였다.
그 이유는 금세 알 수 있었다.
‘이런!’
놈이 이곳을 바라보고 있었다.
아이스 드래곤의 무심한 눈이 김 건을 향하는 것과 동시에 김 건의 몸이 얼어붙어 버린 것이다.
놈의 눈길에는 딱히 어떠한 악의도 들어있지 않았다. 그저 김 건의 존재를 인식하고, 바라봤을 뿐.
그 결과가 이것이었다.
더욱 더 커다란 얼음덩어리로 변해 가는 김 건이 바닥을 향해 추락하기 시작했다.
‘가신 소환, 김 건!’
지이잉―
서울역으로 전이되어 온 김 건의 모습은 처참했다.
일그러진 얼굴로 얼어붙은 거대한 얼음 덩어리의 모습이었으니까.
‘살아 있다.’
화르륵!
검은 불꽃이 피어올라 김 건을 둘러싸고 있는 두꺼운 얼음을 제거해 주었다.
“허―억!”
얼음에서 풀려난 김 건이 바닥에 주저앉아 숨을 들이쉬었다.
“괜찮으십니까?”
“허억, 헉-.”
자신의 몸을 확인해 보던 김 건이 천천히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했다.
“괜찮, 괜찮은 것 같습니다. 허억.”
그가 멀쩡할 수 있었던 것은 높은 레벨과 그로 인한 몸의 내구성 덕분이었다.
그렇다고 완전히 멀쩡한 것은 아니었다.
피부 곳곳이 빨갛게 달아올라 있었다.
강화를 통해 그의 몸을 검은 기운으로 둘러쌌음에도 불구하고, 몸 곳곳에 동상을 입은 것이다.
만일 아이스 드래곤의 눈길에 노출되는 시간이 길어졌다면 상황은 더욱 심각해 졌겠지.
‘놈을 잡는 것은 불가능하다.’
아이스 드래곤은 일종의 자연재해에 가까웠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내 영역으로 놈이 내뿜는 냉기를 막을 수 있다는 것이었다.
‘문제는 아직 받아들이지 못한 생존자들인데…….’
놈을 직접 마주하고 나니 알겠다.
강북구를 덮친 눈보라와 추위는 이제 겨우 시작일 뿐이다.
앞으로 더욱 혹독한 추위가 들이닥칠 것이다.
강북구의 우두머리인 이강현이 빠른 판단과 수뇌부들의 노력에도 불구하고, 시민들의 피신은 이제 겨우 반쯤 진행되고 있었다.
너무나도 갑작스럽게 닥친 상황이었기 때문이다.
쏴아아아아!
더군다나 눈보라가 갈수록 거세지며 쌓이는 눈 탓에 대피의 난이도가 실시간으로 상승하고 있는 중이었다.
화르르륵!
“이쪽입니다!”
불길을 일으키거나,
쩌저저적―
“다들 여기로!”
역으로 얼음을 이용해 길을 만들어 사람들을 대피시키는 이들도 있었다.
각자 자신의 능력을 최대한 활용하여 사람들의 대피를 돕고 있는 것이다.
하지만.
‘지하로 파고드는 냉기만으로도 생명이 위험할 수 있다.’
단순히 지하로 피신하는 것만으로는 부족했다.
마침 문지훈과 문상훈 형제도 냉기를 다루는 능력을 가지고 있었기에 두 사람을 향해 물었다.
[문지훈 씨, 문상훈 씨. 냉기가 지하로 침범하지 못하도록 할 수 있을까요?]“해 보겠습니다……!”
두 사람은 냉기를 다루는 능력을 가진 만큼 냉기에 대한 저항이 면역 수준에 가까웠다.
덕분에 거센 눈보라 속에서도 남들보다 자유롭게 움직이는 게 가능했다.
거기다.
‘강화.’
두 사람의 능력을 강화하자 곧바로 효과가 나타났다.
“흐읍!”
쩌저적!
사람들이 피신한 지하철 역을 중심으로 얼음벽이 만들어지기 시작했다.
쏴아아아―
주변을 가득 메운 냉기가 오히려 그들이 힘을 발휘하는 촉매제가 되어 주면서 더욱 스케일이 커졌다.
쩌저저적―!
거대한 얼음 기둥이 곳곳에서 치솟아 올랐다.
수십 미터 상공까지 치솟은 얼음 기둥은 꽃이 피어나듯이 주변으로 얼음 가지들을 펼쳐 나갔다.
그것이 얽히고설키더니, 곧이어 하나의 거대한 돔 형태를 이루어 나갔다.
하나의 거대한 이글루가 만들어지고 있는 것이다.
쩌저저저적―!
주변에서 몰아치는 눈보라는 오히려 이글루의 완성을 도왔다.
결국, 눈보라와 추위를 막아 주는 거대한 이글루가 완성되었다.
이글루가 완성된 뒤 쌍둥이 형제는 시민들이 있는 지하로 냉기가 침입하지 못하도록 심혈을 기울였다.
“…….”
그들은 기대 이상으로 잘해 주었다.
쌍둥이 형제가 보호하고 있는 지하철역으로 피신한 약 1만 명의 사람들은 무사할 것이다.
하지만 다른 아파트 단지의 지하 주차장이나 건물 지하에 몸을 숨긴 사람들은 아직 추위에 그대로 노출되어 있었다.
‘뭔가 방법이…….’
그때였다.
[이봐.]서울역 곳곳을 마음대로 돌아다니다가도 특정 시간만 되면 반드시 나를 찾아오는 녀석이 있었다.
[배고프다.]불의 정령왕 샐리온.
이 녀석은 정해진 시간에 나를 찾아와서 당당하게 세계수의 생명력을 요구하고는 했다.
그를 보며 문득 한 가지 깨달은 것이 있었다.
“샐리온. 너는 분명 내가 너희의 힘을 빼앗아 갔다고 말했지?”
[그렇다.]“그 힘, 어떻게 사용하는 건지 구체적으로 알려 줄 수 있을까?”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으로 물어본 것이었다.
사람들을 구하기 위해서는 모든 수단과 방법을 동원해야 했으니까.
[내가 왜 그걸 너에게 알려 줘야 하지?]“그러면 앞으로 밥은 없을 거야.”
[……어려울 것 없다. 내 힘은 모든 불의 정령의 통솔권. 너는 그들에게 절대적인 명령을 내릴 수 있는 권한을 얻은 것이나 다름없다.]“그래서 그 권한을 어떻게 사용할 수 있는데?”
[그건…….]* * *
이강현은 처음에 눈이 내릴 때만 해도 그리 심각하게 여기지 않았다.
온 세상이 미쳐 돌아가고 있는데, 여름에 눈이 좀 오는 일이야 대수롭지 않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어쩌면 몬스터가 등장하기 전에 시끄럽던 지구 온난화 때문에 날씨가 병든 것일지도 모른다고 그렇게 가볍게 여겼었다.
그러나 눈보라가 더욱 거세지고, 하늘의 끄트머리에서 무언가 나타나는 것을 보았을 때는 자신이 완전히 잘못 판단했음을 깨닫고 사태를 수습하기 위해 전력을 다했다.
그러나 이제 한계였다.
쩌저저적―
고층 건물의 끄트머리가 얼어붙어 가는 것을 보며 이강현은 절망했다.
‘끝이다.’
이 심상치 않은 냉기는 단순히 지하로 피신한다고 피할 수 있는 종류의 것이 아니었다.
지하 깊은 곳에 마련된 방공호쯤 되지 않으면 저 매서운 추위를 막아 낼 수단은 없어 보였다.
‘얼마나 살아남을까?’
절반? 아니. 분명 그보다 더 많은 사람들이 얼어 죽을 것이다.
이런 추위를 견디고 살아남을 수 있는 자들은 기껏해야 각성자들 정도.
‘……저들이 있어서 다행인가.’
서울에 갑작스레 나타난 신진 세력.
어마어마한 양의 구호물자와 함께 자신의 그룹에 합류할 것을 제안한 사람들은 하나같이 괴물같은 능력을 가지고 있었다.
그들 하나하나가 모두 자신과 맞먹는 강자로 보였다.
‘저들과 합류했어야 했나?’
저들이 주장하는 안전지대.
어쩌면 그곳이라면 이 추위를 막아 낼 수도 있지 않을까.
‘의심하지 말았어야 했나.’
반드시 대가가 따를 것이라 생각했다.
세상에 공짜는 없다가 그의 신조였고, 지금까지 겪어 온 세상은 그 믿음대로였다.
김재현이라는 남자를 따르는 저들 무리에게도 무언가 있다고 확신했다.
그쪽 무리에 합류하여 시민권을 얻은 이들이 지나칠 정도로 그 조직을 찬양하는 등, 약한 세뇌의 정황도 있었다.
사람들을 받아들이려는 데에 반드시 목적이 있으리라 생각했고, 리스크를 감당하며 그의 휘하로 들어가는 것보다는 이대로 좋은 관계를 유지하며 물자를 얻어 내는 게 맞다고 판단했다.
‘그런데 일이 이렇게 되어 버릴 줄은.’
자신을 믿고 남아 준 사람들은 지금 자신의 잘못된 판단 때문에 죽어 나가게 생긴 것이다.
이강현은 자신의 옆에 선 남자를 불렀다.
“민호 씨.”
“예?”
그쪽에서 대표로 온 남자였다.
“그쪽이 말하는 안전지대는 이거, 막을 수 있어?”
그러자 김민호는 확신을 담아 고개를 끄덕였다.
“네. 지금 그곳은 안전합니다.”
“그런가. 그렇다면 지금이라도 다 같이 그곳으로 돌아가는 게 좋지 않겠어?”
“저희는 언제든지 돌아갈 수 있습니다. 마지막까지 최대한 돕겠습니다.”
“……고맙군.”
그러나 이강현에게는 희망이 보이지 않았다.
이 절망적인 추위 속에서는 그 무엇도 부질없게 느껴졌다.
눈구름에 어두컴컴해진 분위기가 암울한 미래를 말해 주고 있는 듯했다.
바로 그 순간이었다.
화륵!
작은 불꽃이 어둠을 몰아내었다.
그리고.
화륵! 화르륵!
점점 그 숫자가 불어나기 시작했다.
자그마한 불꽃부터 불로 이루어진 거대한 도마뱀, 불타는 몸을 가진 새 등등.
비현실적인 광경이 도시 곳곳을 밝히기 시작했다.
“이건……?”
화르르르륵―
수많은 숫자의 불의 정령들이 냉기를 물리쳐 주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