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bsolute Dweller RAW novel - Chapter (159)
160화 [Episode 34] 서울 수복 작전 (10)
서울 전체를 뒤덮은 얼음이 적당히 녹을 때까지 닷새라는 시간이 걸렸다.
한여름 날씨에도 불구하고 그늘진 곳에는 아직 눈과 얼음이 대량으로 남아 있었다.
강북구의 리더 이강현.
그는 지금 김재현을 만나러 가고 있었다.
‘내 힘만으로는 모두를 지킬 수 없다.’
솔직히 조금 자만했었다.
강력한 능력을 기반으로 주변에 있는 보스급 몬스터를 사냥하는 데 성공하고, 주변에 있는 몬스터들에게 강북구가 자신의 영역임을 확실하게 각인시킨 그였다.
자신의 힘만 있으면 사람들을 지킬 수 있으리라 생각했던 때가 있었다.
그러나 그것은 오만이었다.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결국…… 몬스터를 잡는 것 정도가 전부였지.’
강북구 주변에 있는 보스급 몬스터들을 정리하고, 자신만의 영역을 구축한 것까지는 좋았다.
수만 명에 이르는 사람들이 살아갈 터전을 구축할 수 있었으니까.
그의 강력함에 이끌려 유능한 동료들이 모여들었고, 그들은 유능했다.
마트나 빈집에서 식량을 구하고, 식수 마련을 위해 중랑천 근처에 베이스캠프를 만드는 등 생존의 정석이라고 할 만한 모습들을 보여 주며 사람들을 이끌었다.
그러나 결국 한계가 찾아왔다.
몬스터가 등장하며 전 세계의 물류 흐름은 끊겼고, 새롭게 생산되는 물건은 없다.
대량으로 나타난 몬스터들에 의해 파괴된 시설과 함께 파묻힌 식량도 제법 되었고, 편의점의 과자나 음식을 고블린들이 먹어 치우기도 했다.
그러니 식량이 남아날 리가 없는 것이다.
몬스터 고기까지 먹어 가며 악으로 깡으로 버티던 그때 김재현에게 물자 지원을 받았다.
사실상 그때부터 여론은 크게 기울었다.
지휘부의 절반 이상이 김재현 쪽의 그룹과의 합류를 원했으나 이강현이 직접 신중론을 펼쳤다.
그들이 의견을 굽혀 줬던 것은 그동안 이강현이 쌓아 온 공적을 인정해 주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차라리 그때 제안을 받아들일걸 그랬나. 그랬다면…….’
적어도 이런 일은 없었을 텐데.
이번 사태로 인해 26명이 목숨을 잃었다.
그들 대부분이 너무 어리거나, 나이가 많은 노약자들이었다.
‘나는 무력했다.’
눈과 겨울을 몰고 온 것의 정체가 몬스터라는 건 어렴풋이 깨달을 수 있었다.
추위가 절정에 이르렀을 때 머리 위쪽에서 느껴지던 소름끼치던 감각은 아직도 생생했으니까.
‘나는 아무것도 하지 못했어.’
몬스터를 사냥하는 것.
그것 하나만큼은 누구보다도 자신 있었는데, 가장 자신 있었던 분야에서 자신을 부정당한 것이다.
게다가.
‘불의 정령이라고 했나.’
어둠과 냉기를 몰아내던 불꽃들의 모습은 무척이나 인상적이었다.
크고 작은 덩치의 정령들에게서 느껴지는 존재감은 김재현이라는 남자의 힘을 조금이나마 짐작할 수 있게 해 주었다.
‘그리고…….’
자신들을 김재현의 가신들이라고 소개한 이들의 도움 덕분에 사망자의 숫자가 26명에서 그칠 수 있었던 것이었다.
특히 사람을 치료하는 능력을 가진 김다정이라는 여자의 활약이 대단했다.
김재현의 부하라는 사람들은 하나같이 유능하고 올바른 인품을 가지고 있었다.
하나하나가 자신과 동급으로 보이는 기운을 품고 있는 이들.
그런 이들이 인정하며 따르는 남자가 어떤 사람인지 궁금해졌다.
이강현은 고개를 들어올렸다.
‘저런 능력을 가지고 있는 사람이란 말이지.’
상공 5km 지점에 생겨난 거대한 얼음 돔.
그것은 현재 서울 어디에 있든 볼 수 있는 장관이었다.
복사열이 있는 지상과는 달리 얼음이 거의 녹지 않은 듯한 모습이었는데, 덕분에 서울역에 생성되어 있는 영지의 거대한 투명 장벽의 모습을 간접적으로나마 보는 게 가능했다.
그것은 가까이 다가갈수록 더욱 엄청난 존재감을 내뿜었다.
시선을 하늘에 고정한 채로 걸어가고 있던 그때 그들을 안내해 주고 있던 김민호가 입을 열었다.
“곧 재현 님과 만나실 겁니다.”
“벌써요?”
분명 출발할 때 본거지는 서울역이라고 들었다.
아직 서울역까지는 수 킬로미터나 남은 것으로 알고 있는데, 벌써 김재현과 만날 수 있다니.
“직접 마중 나와 계십니다.”
“……이거 영광이군요.”
그 이후 김민호가 정면을 바라보며 혼잣말 했다.
“네, 바로 근처까지 도착했습니다.”
가끔 지금처럼 혼자서 중얼거릴 때가 있었는데, 김재현과의 소통을 주고받는 거라고 들었다.
‘이런 장거리에서 이야기를 나누다니.’
도대체 김재현이라는 사람은 몇 가지 능력을 가지고 있는 걸까?
물자 생성.
가신들의 장거리 이동.
수백의 정령 군단 소환.
반경 5km의 거대 투명 장벽 생성.
장거리 텔레파시.
지금까지 자신이 확인한 것만 해도 죄다 엄청난 것들뿐이었다.
‘김재현을 보조하는 다른 능력자들이 있는 거겠지?’
그가 저 모든 능력을 가지고 있다는 쪽보다는 설득력 있게 들렸다.
그렇게 5분쯤 김민호의 뒤를 따라갔을까.
그가 말한 대로 이강현 일행을 마중 나와 있는 김재현과 만날 수 있었다.
‘저 사람이…… 김재현.’
겉으로 보기에는 평범한 젊은 남자였다.
그러나 가까이 다가갈수록 이강현은 의문을 가질 수밖에 없었다.
‘……30대라고 그러지 않았었나?’
아무리 봐도 상대는 20대 초반 정도로밖에는 보이지 않았다.
과장 없이 저 상태로 교복만 입으면 고등학생이라고 착각할 정도의 외모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가 김재현이라는 것은 어느 정도 확신할 수 있었다.
전신에서 풍겨져 오는 존재감.
그것 하나만으로 그가 특별한 존재임을 짐작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일정 거리 이상 다가간 그때.
[시민권을 획득하시겠습니까?] [예 / 아니오]김민호에게 미리 들었던 대로 허공에 홀로그램창이 드러났다.
“받아들이겠습니다.”
띠링!
[시민권을 획득하셨습니다.]시민권을 받아들이는 순간.
후우웅―
무언가 신비한 힘이 자신의 전신을 훑는 것을 느꼈다.
그리고.
우우웅
‘……강해졌어?’
에너지가 넘쳐흘렀다.
마치 강력한 몬스터를 잡았을 때 겪는 성장하는 감각과 비슷한 느낌이었다.
수많은 몬스터들을 사냥했던 이강현이기에 더욱 확실하게 말할 수 있었다.
‘힘이 넘쳐난다.’
그것의 정체는 일반 시민들에게 주어지는 갖가지 보조 효과였다.
신중한 성격 탓에 김재현을 신뢰하게 돼서야 찾아온 이강현은 처음부터 신뢰도가 높았고, 그에 따라 모든 능력치가 증폭되는 신뢰의 힘 효과가 발동된 것이다.
‘이것도 저 남자의 힘인가?’
이강현은 조심스레 그를 향해 다가갔다.
그리고.
우웅
어느 순간 신비한 감각이 전신을 훑고 지나갔다.
‘이게 민호 씨가 말하던 투명 장벽인가.’
감각이 예민한 이강현이기에 느낄 수 있는 차이였다.
그리고.
‘……따듯해.’
얼음은 많이 녹았지만, 그 여파는 여전히 남아 있어서 초겨울의 날씨였다.
그런데 투명 장벽을 통과해서 들어오는 순간 따스한 봄이 찾아온 것만 같았다.
‘여기만 추위가 빗겨 간 듯한 모습이라니.’
알고는 있었다.
그러나 직접 두 눈으로 확인하니 감회가 새로웠다.
새삼스럽게 눈앞에서 자신을 기다리고 있는 남자의 능력이 얼마나 대단한지 느낄 수 있었다.
영역 안으로 들어온 그들을 김재현이 손을 내밀며 반겨 주었다.
어려 보이는 겉모습과는 달리 부드러운 카리스마가 느껴졌다.
“반갑습니다. 김재현이라고 합니다.”
“……이강현입니다.”
가볍게 악수를 한 이후에는 서울역 영지에 대한 안내가 시작되었다.
강북구의 주민들이 머물게 될 아파트 시설과 거래소와 같은 기능에 대한 설명을 듣던 이강현이 입을 열었다.
“혹시 부산에 방문해 볼 수 있을까요?”
여러 가지 잡다한 기능이나 혜택에 대해서는 얼음이 녹는 걸 기다리는 동안 지겹도록 들어온 내용이었다.
이강현은 그런 것보다도 이 조직의 실상을 두 눈으로 확인해 보고 싶었다.
“직접 가 본 사람들이 침이 마르도록 칭찬을 해서요. 서면을 방문해 보고 싶습니다.”
“안 될 것 없죠.”
지이잉―
그 직후 공간이 일그러지며 허공에 타원형의 문이 생성되었다.
그리고 그 너머에는 생경한 풍경이 펼쳐져 있었다.
거리에서 흘러나오는 노래 소리.
깨끗하게 정비된 도로에서 신호를 받으며 움직이는 차량들.
편한 옷차림으로 길거리를 걸어 다니는 사람들까지.
“…….”
정보원들에게 들으면서도 믿을 수 없던 몬스터가 나타나기 전 일상의 모습이 그곳에 있었다.
“가시죠.”
김재현의 뒤를 따라 문을 넘어가니 난장판이 된 서울과는 공기부터가 달랐다.
“허…….”
“와.”
이강현의 뒤를 따라 온 동료들도 놀라는 기색이 역력했다.
‘꿈인가?’
꿈을 꾸고 있는 것일까.
지금까지 자신들이 겪어왔던 세상과는 너무 달랐다.
엉망진창으로 얼어붙은 서울과는 전혀 다른 모습.
이곳에는 긴장감이 없었다.
어딘가에서 모습을 숨긴 채로 기습을 노리는 몬스터도 없었고, 사람들도 그런 것을 경계하지 않았다.
주변에 몬스터가 없는 게 당연하다는 듯한 그 태도가 믿을 수 없이 경악스러웠다.
이강현과 그의 동료들이 당혹스러운 눈으로 주변을 훑어대는 동안 주변에 자연스럽게 녹아든 김재현이 그들을 향해 말했다.
“이 주변에 괜찮은 고깃집이 있습니다. 마침 오픈할 시간이니 같이 가시죠.”
그들은 김재현이 이끄는 대로 움직였다.
아직 저녁을 먹기에는 이른 시간이었음에도 불구하고 손님이 두 테이블 있었다.
치이익―
고기 굽는 냄새는 그들을 미치게 만들기에 충분했다.
김재현의 물자 원조 덕분에 최근에는 배를 곯지는 않았지만, 그 지원 물자에 고기가 있는 것은 아니었다.
게다가 지금 구워지는 고기는 평범한 고기보다도 특별했다.
“자이언트 블랙 보어라는 몬스터의 고기입니다. 보통 삼겹살보다 몇 배는 더 맛있죠. 가격도 그만큼 더 비싸지만, 오늘은 제가 사는 거니 부담 없이 즐겨 주시기 바랍니다.”
비교적 최근에 개업한 이곳은 몬스터 고기를 전문적으로 파는 곳이었는데, 벌써부터 입소문을 타 저녁 6시쯤에는 자리가 없을 지경이었다.
“여섯 명이요.”
“편한데 앉으시면 됩니다.”
알바생도 프로페셔널한 것이 그들이 앉는 것과 동시에 기본 밑반찬들이 세팅 완료되었다.
“삼겹살 10인분이요.”
“넵!”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주방에서 고기가 준비되어 나왔다.
회전율이 빠른 식당답게 미리미리 다 준비가 되어 있었던 것이다.
치이이익―
고기는 김재현이 직접 구워 주었다.
숯불 위에서 노릇노릇하게 익은 고기를 먹기 좋은 크기로 잘라 이강현을 비롯한 다섯 명에게 나누어 주었다.
“드세요.”
“……감사히 먹겠습니다.”
제일 먼저 이강현이 고기를 집었고, 그를 따라 동료들도 모두 고기를 입에 넣었다.
“““!!!”””
그리고는 모두가 같은 표정이 되어 서로를 바라봤다.
‘맛있다.’
맛있다는 표현이 너무나도 부족하게 느껴질 정도였다.
“많이 드세요.”
김재현은 별 말 없이 계속해서 고기를 구워 주었고, 모두 정신없이 그것을 받아먹기 바빴다.
“사장님 10인분 추가해 주세요.”
“넵!”
20인분을 모두 먹어치 우고 나서야 겨우 젓가락질들이 둔해졌다.
“냉면이랑 된장찌개도 시킬까요? 냉면 드실분?”
그렇게 그들은 된장찌개와 공깃밥 6개, 그리고 비냉 2개와 물냉 1개까지 순식간에 해치워 버렸다.
말도 없이 빠른 속도로 식사를 마친 그때.
“흐윽.”
이강현의 일행 중 유일한 여자인 박지민이 눈물을 터뜨렸다.
“흐으윽. 왜, 흑. 눈물이, 죄송해요.”
다급하게 눈물을 닦아 내는 그녀의 주변에 앉아 있는 다른 남자들도 마찬가지로 눈시울을 붉히고 있었다.
“사장님 여기 2인분 추가요!”
“네!”
“여기 소주 하나만 주세요!”
다행히 그들의 울음소리는 주변 사람들의 소리에 묻혀 그리 주목 받지는 않았다.
이강현은 눈물을 흘리는 자신의 일행과 주변에서 술과 고기를 먹으며 왁자지껄하게 떠드는 사람들의 표정을 번갈아 가며 확인했다.
그들의 표정에는 어떠한 가식도 느껴지지 않았다.
눈을 감고 잠시 생각에 잠겼던 그는 이내 결론을 내릴 수 있었다.
“내일 모두와 함께 서울역으로 오겠습니다.”
“잘 생각하셨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