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bsolute Dweller RAW novel - Chapter (178)
179화 [Episode 39] 아바타 (2)
‘다행이라고 생각해야 하나.’
아바타가 이면세계에 진입하는 것과 동시에 박새롬처럼 절대자의 눈을 사용하거나 텔레파시를 거는 것은 불가능했다.
하지만 두 눈을 감고 집중하면 아바타의 감각을 통해 전해지는 정보는 온전히 받아들일 수 있었다.
굳이 스마트폰에 녹화하는 귀찮은 과정 없이도 정보를 전달받을 수 있게 된 것이다.
다만, 이쪽에서 개입할 수 있는 것은 없었다.
‘그림자 성의 정체가 몬스터였을 줄이야.’
거대 그림자 몬스터.
그림자 성이라고 여겨지던 것의 정체였다.
절대자의 눈을 사용할 수 없는 탓에 정확한 레벨을 알 수는 없었지만, 낮지는 않을 것이다.
‘그래도 다행인가. 움직이지는 않고 있으니.’
아바타를 통해 전해지는 감각에 집중하며 놈에 대한 정보를 알아내려 노력했지만, 놈이 생명체라는 것을 제외하고는 딱히 얻을 게 없었다.
‘아무리 봐도 이면세계에서 빠져나가기 위해서는 저 괴물을 처치해야 할 것 같은데…….’
아바타의 힘만으로는 저 괴물을 처치하기는 힘들어 보였다.
‘영지가 완성되길 기다리는 수밖에 없나.’
고민하는 와중에도 천리안을 통해서 다양한 정보가 유입되고 있었다.
이면세계 안에는 그림자 괴물들만 있는 게 아니었다.
오크나 고블린처럼 평범한 괴물들은 물론, 다양한 종류의 몬스터들이 이면세계에서 서식하고 있었다.
그러나 몬스터들의 입장은 인간들과 그리 다를 바가 없었다.
그림자 괴물들 앞에서 몬스터든 인간이든 모두가 공평하게 사냥감일 뿐이었으니까.
‘시간의 흐름이 달라서 그런지 슬로우 모션처럼 보이네.’
현실 쪽이 5배 더 빠른 만큼 아바타에게서 전해지는 시각 정보는 특수 효과를 가미한 영상처럼 느껴졌다.
오크가 전투 도끼를 그림자 괴물의 몸에 박아 넣는 것과 그와 동시에 그림자 괴물의 몸이 폭발하며 오크를 즉사시키는 과정이 적나라하게 펼쳐졌다.
‘역시나 저 폭발이 문제야.’
이윽고 천리안의 시야가 검은 안개가 끼어 있는 이면세계 외곽 지역까지 닿았다.
안개가 낀 지역은 생각보다 넓었지만, 그 속에는 아무것도 없이 텅 비어 있을 뿐이었다.
‘생존자 그룹은…… 그 사람들이 마지막이었나.’
박새롬이 마주쳤던 송태영 그룹이 마지막 생존자인 듯했다.
‘좀 더 있으리라 생각했는데.’
이면세계의 시간은 현실보다 느리게 흐른다.
현실에서 10개월이라는 시간이 흘렀더라도 이면세계 안에서는 겨우 두 달이라는 뜻이다.
그래서 생존자가 더 많을 수 있다고 생각했는데, 헛다리를 짚은 모양이었다.
‘하긴, 저런 환경에서 살아남았다는 게 기적에 가깝다고 할 수 있지.’
저들이 살아남을 수 있었던 것은 그림자 괴물의 등장이 거울이나 유리처럼 빛을 반사하는 물질의 존재와 연관이 있다는 것을 일찌감치 깨달았기 때문일 것이다.
이면세계를 전체적으로 훑어본 아바타가 박새롬과 합류하는 것을 확인하며 나는 두 눈을 떴다.
그리고 바로 녹화를 시작했다.
“우선, 예상과는 달리 감각은 여전히 실시간으로 공유되는 중이야. 그러니 필요한 게 있으면 그 자리에서 바로 말해. 인벤토리 안에 직접 공급해 줄 테니까.”
지금 당장은 필요한 물건은 없는 것 같았다.
식량이나 필수품 등은 박새롬을 통해 모두 지원해 준 뒤였으니까.
게다가.
“지금부터 바로 영지 건설을 시작할 거야.”
오언주의 작위는 백작.
그녀의 영지는 반경 5km에 달하며, 완성되기까지 닷새가 필요했다.
그러니까.
“그곳에서 하루만 버텨.”
이면세계에서 하루만 버티면 바깥의 영지가 완성된다.
“하루만 버티면 돼.”
그러면 아바타가 아닌, 내가 직접 이면세계 안으로 들어갈 수 있게 될 것이다.
그때였다.
[시민 박새롬의 신뢰도가 올라갑니다.] [시민 박새롬의 신뢰도가 100에 도달했습니다.] [‘그림자 제어’를 획득합니다.]“……응?”
아바타의 감각에 집중하고 있지 않았던 터라 정확히 무슨 일이 벌어진 것인지는 알 수 없었다.
아마도 거기까지 직접 구하러 온 것에 감동을 받은 게 아닐까?
‘어쨌든 잘됐네.’
다른 곳이라면 몰라도 저곳에서만큼은 박새롬의 저 능력이 크게 도움이 될 테니까.
영상이 녹화된 스마트폰을 내 아바타의 인벤토리에 넣은 다음 곧바로 영지 건설을 위한 준비를 시작했다.
우선, 경기도에서 몬스터 사냥에 열중하던 5팀부터 8팀을 전부 불러 모았다.
원래는 사냥팀까지 동원하려 했지만, 사냥에 동원되는 가신들의 숫자만 마흔여덟에 달하니 굳이 그럴 필요가 없어졌다.
게다가 그중에는 정소라와 차현승이 모두 포함되어 있었다.
정소라의 정령 군단과 차현승의 짐승 군단만 하더라도 그 병력이 엄청났다.
게다가 차현승의 무리에는 가신이 된 8명의 수인도 함께였다.
차현승과 짐승 가신들은 강덕수가 이끄는 6팀에 소속되어 있었는데, 차현승이 팀장이 되지 못한 것은 그의 작위가 [기사]에 불과했기 때문이다.
아예 영지를 가질 수 없는 계급이었기에 어쩔 수 없이 강덕수를 팀장으로 임명시킨 것이었다.
그런데 지금 상황에서는 굳이 6팀에 소속되어 있을 필요가 없었으니, 다시 팀을 재구성해 주었다.
더불어 나 또한 광주의 전초기지로 옮겨 갔다.
천리안으로 주변을 살피며 혹시나 모를 변수를 원천 차단하기 위해서였다.
[능력껏 이 주변의 몬스터를 최대한 소탕해 주시면 됩니다. 다만 한 가지 조심하셔야 할 것이 있습니다.]이면세계에 대한 위험성과 그 경계선을 확실하게 인지시킨 다음 본격적인 작업을 시작했다.
하나하나가 괴물 같은 스펙을 가지고 있는 마흔여덟 명의 가신들이 본격적으로 날뛰기 시작하자 주변 몬스터들의 씨가 빠르게 말라 갔다.
어느 정도 주변이 정리됐다는 것을 확인한 내가 오언주에게 물었다.
“준비되셨나요?”
오언주가 비장한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거렸다.
“그럼, 시작하겠습니다.”
“……후우. 네.”
곧바로 건설을 시작했다.
‘영지 건설.’
[해당 시설은 건설 기간(5일) 동안 ‘백작’급 이상의 칭호를 가진 시민을 필요로 합니다.] [정말로 설치하시겠습니까?] [예 / 아니오]‘예.’
[50,000,000,000 원이 소모됩니다.] [‘백작의 영지’건설을 시작합니다.] [백작의 영지 건설 완료까지 남은 시간]-119시간 59분 59초
영지 건설이 시작되는 것과 동시에 오언주의 입에서 고통스러운 신음이 흘러나왔다.
우우웅!
대신 그녀가 고통스러워하는 만큼 안전지대 영역이 착실히 늘어나기 시작했다.
그에 맞춰서 가신들 또한 몬스터 토벌 속도에 박차를 가했다.
시간이 빠르게 흘러갔다.
모두의 노력 아래 별탈 없이 진행되며 하루가 지난 시각.
기어코 일이 터지고야 말았다.
정확히 순조롭게 늘어난 영지의 영역이 이면세계의 경계선과 맞닿은 시점이었다.
이면세계의 중심에서 가만히 있던 그 ‘괴물’이 움직이기 시작했다.
* * *
박새롬과의 합류는 어렵지 않았다.
천리안도 마찬가지로 ‘텔레포트’와 시너지 효과를 발휘하는 능력이었으니까.
‘시야’만 제공되면 어디든지 이동할 수 있었다.
물론, 이동하는 거리에 비례하여 정신력이 소모되기는 했으나, 몇 킬로미터 정도 이동하는 것 정도는 충분히 감당할 수 있었다.
‘그래도 살짝 피곤해지기는 하네.’
새삼스럽게 본체의 정신력이 얼마나 말도 안 되게 높은 수준인지 실감할 수 있었다.
영역 안이라는 제약이 있긴 했지만, 수십 킬로미터 단위도 가볍게 이동하던 나였다.
그러면서도 정신력의 소모를 전혀 느끼지 못할 수준이었는데.
‘좀 답답하네.’
드넓은 바다를 헤엄치다가 싸구려 모텔의 욕조에 갇혀 버린 기분이라고 해야 할까.
본체와 아바타의 정신력 차이는 그 정도로 체감이 컸다.
“재, 재현 님?”
“안녕하세요, 새롬 씨.”
박새롬은 경악한 표정으로 물었다.
“재, 재현 님이 왜 여기에……? 서, 설마 저를 구하러―.”
“아뇨. 저도 갇혔어요.”
“네……?”
그러자 박새롬의 얼굴이 사색이 되었다.
“너무 걱정하지 마세요. 아직 여기서 나가는 정확한 방법은 모르지만, 짐작 가는 게 있거든요.”
“여, 역시! 그렇죠? 휴우.”
“그보다 당장 치료가 필요한 사람들이 꽤 되는군요.”
박새롬이 어두운 표정이 되어 말했다.
“최선을 다하기는 했지만, 아무래도 제 능력으로는 한계가 있어서요.”
“아니요. 잘하셨어요.”
“네?”
영문을 모르겠다는 표정을 짓는 박새롬을 내버려 두고 상태가 심각한 이들을 향해 이동했다.
그리고.
우우웅―
그들을 향해 세계수의 생명력을 뿌려 댔다.
초록빛 광채가 더러운 비상계단을 훑었다.
심각한 탈수 상태에 빠져 있던 사람, 박새롬이 링거 처치를 했음에도 불구하고 점점 뚜렷하게 죽어 가던 사람, 작은 부상이 염증으로 번져 고통스러워하고 있던 사람.
그들 모두가 포근한 초록빛에 휩싸이더니, 급격히 상태가 호전되기 시작했다.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도 않았다.
겨우 심호흡 몇 차례를 하면 끝날 정도로 짧은 시간 만에 죽어 가던 이들이 생기를 되찾고 눈을 떴다.
“어?”
“여보!”
“엄마! 엄마! 정신이 들어?”
생과사의 경계에서 이별을 준비하던 이들의 극적인 만남이 성사되었다.
“흐으으윽.”
곳곳에서 서러운 울음소리가 들려왔다.
울음소리는 마치 전염성이라도 있는 듯 주변으로 빠르게 퍼져 나갔다.
“다행이다, 흐윽. 다행이야.”
사람들의 모습을 둘러보던 박새롬이 씁쓸한 목소리로 말했다.
“……역시 재현 님은 대단하세요. 저는 아무것도 할 수 없었는데.”
비상계단은 칠흑 같은 어둠에 휩싸여 있었지만, 투시를 쓰고 있는 내게는 박새롬이 어떤 표정을 짓고 있는지 너무나도 잘 보였다.
“그런 표정 짓지 마세요.”
“……네?”
“이분들은 새롬 씨가 구한 겁니다.”
“……네?”
무슨 말인지 이해가 안 간다는 표정을 지은 채 나를 바라보고 있는 박새롬을 향해 설명해 주었다.
“새롬 씨의 응급 처치가 아니었다면 제가 올 때까지 버티지 못했을 사람들이 몇 명이나 있어요. 새롬 씨는 그 사람들의 목숨을 구해 주신 겁니다. 새롬 씨가 필사적으로 했던 그 행동은 결코 무의미한 행동이 아니었어요.”
“……!”
그 순간이었다.
[시민 박새롬의 신뢰도가 올라갑니다.] [시민 박새롬의 신뢰도가 100에 도달했습니다.] [‘그림자 제어’를 획득합니다.]실제로 눈앞에 보이지는 않았지만, 지금쯤 본체의 눈앞에는 그런 알림이 나타났을 것이다.
왜냐하면.
‘갑자기 능력이 늘어났네.’
묘한 느낌이 들어 상태창을 확인해 보니, ‘그림자 제어’라는 각성 능력이 하나 더 늘어나 있었기 때문이다.
“……위로해 주셔서 감사해요. 역시 재현 님은 대단하신 거 같아요.”
그 뒤로 인벤토리에 들어온 스마트폰의 영상을 확인할 수 있었다.
내 모습과 똑같은 얼굴을 한 이가 나와서 내게 말하는 것을 지켜보는 느낌은 뭐랄까…….
“……되게 부끄럽네.”
세상이 망하기 전의 유튜버들은 어떻게 매번 자신의 얼굴을 찍은 영상을 편집했던 걸까.
새삼스레 대단하단 생각이 들었다.
“일단은…….”
당장 필요한 것은 없었지만, 지금까지 고생했을 저 사람들을 조금이나마 위로해 주고 싶었다.
“약간의 술이랑 고기. 정도면 될 것 같은데. 고기는 갓 구운 것들로 준비해 주고.”
세계수의 생명력으로 치료를 받은 것이니, 기름기가 많은 고기를 먹어도 크게 문제가 되지는 않을 것이다.
‘어차피 하루만 버티면 된다고 했으니까.’
그리 어려운 과제는 아니었다.
그림자 괴물들이 이곳으로 몰려온다고 해도 혼자서 하루 정도는 버텨 낼 자신이 있었다.
‘그 괴물이 찾아오는 경우만 제외하면 말이지.’
그렇게 사람들과 술과 고기를 마시며 친분을 나누었다.
생각보다 더 괜찮은 사람들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술은 너무 많이 마시진 않았다.
혹시나 모를 상황에 대비해야만 했으니까.
하지만 대비는 하면서도 그런 상황이 찾아오지 않았으면 했는데 말이지.
쿠구구구―
처음 시작은 작은 진동에 불과했다.
“재현 님, 이건……?”
제일 먼저 이변을 눈치챈 것은 나와 박새롬이었다.
그 직후.
쿠구구구구―
다시 한번 땅이 흔들렸다.
아까보다 더 강렬한 흔들림이었다.
“으음?”
“뭐야?”
잠들어 있던 사람들이 하나둘 잠에서 깨어나기 시작했다.
‘천리안.’
혹시나 싶은 마음에 천리안을 활성화했다.
그리고.
‘이런 젠장.’
콰아아아아앙!
그림자 성, 아니 거대한 그림자 괴물이 날뛰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