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bsolute Dweller RAW novel - Chapter (179)
180화 [Episode 39] 아바타 (3)
반경 수백 미터의 공간을 차지하는 어마어마한 크기의 어둠.
그것이 웅크리고 있던 몸을 펼치자 그 압도적인 크기를 실감할 수 있었다.
머리부터 꼬리까지의 길이만 약 500m는 달하며 네 발로 서 있는 주제에 그 체고가 300m는 넘어갔다.
뾰족한 귀와 길게 뻗은 주둥이, 네 발이 달려 있으며 세 개의 꼬리까지.
거대한 늑대의 모습을 취하고 있는 녀석은 웬만한 고층 아파트를 내려다볼 정도로 압도적인 덩치를 가지고 있었다.
그 크기만 보자면 얼마 전에 보았던 아이스 드래곤과 맞먹을 정도였다.
‘다행히 그 정도는 아니다.’
그때 아이스 드래곤에서 풍겨 나오던 포스와 위압감보다는 훨씬 덜했다.
그렇다고 놈이 약하다는 뜻은 결코 아니었다.
일반적인 보스급 몬스터 따위와는 비교할 수도 없을 만큼 강렬한 존재감을 뿜어내고 있었으니까.
단지 아이스 드래곤과 비교하면 그 빛이 바랜다는 것뿐이다.
‘그 괴물과 비교해서 안 그런 놈이 얼마나 있겠느냐마는…….’
절대자의 눈을 사용할 수 없어 정확한 레벨을 파악할 수는 없었지만, 앞자리가 7 정도 되는 놈이 아닐까.
‘적어도 80대 레벨은 아닌 것 같은데.’
그나마 희망적인 소식이었지만, 달라지는 것은 없었다.
‘아바타인 내가 어떻게 할 수준이 아니다.’
저 괴물을 막아 낼 수 있는 방법은 하나밖에 없었다.
‘강림을 써야 해.’
내 본체가 직접 나서서 제압하는 것만이 유일한 해결책이었다.
‘그나마 다행인가.’
내 옆에 붙어서 벌벌 떨고 있는 박새롬이 마침 신뢰도 100을 달성하면서 강림의 사용 조건을 갖춘 상황이었다.
하나 그렇다고 하더라도 이면세계에 시스템의 힘이 닿지 않는 것을 감안하면 본체가 이 세상으로 들어와야만 할 것이다.
그를 위해서 이면세계 경계면 근처에 전초기지를 건설하고, 영지까지 건설하고 있지 않나.
‘하루라고 그랬지.’
모두 함께 술과 고기를 먹고 잠을 자며 벌써 대여섯 시간 정도는 흘렀을 것이다.
‘대충 18시간이 넘게 버텨야 한다는 건가.’
물론, 저 괴물과 18시간 동안 싸우는 것은 불가능할 것이다.
그러나 놈에게서 도망치는 것 정도는 할 수 있지 않을까?
‘텔레포트를 활용하면 그 정도 시간을 버티는 것도 충분히 가능성 있는 이야기야.’
작전을 수립하는 동시에 천리안의 능력을 통해 주변 지형지물을 파악해 나가기 시작했다.
지금 이곳에 있는 인원을 충분히 수용할 수 있는 곳은 어디인지, 만약에 놈이 이곳을 향해 온다면 어디로 이동하는 게 가장 효율적일지, 내 정신력이 그것을 감당할 수 있을지 어떨지.
그것을 고민하고 있던 그때.
쿠우우우웅―!
놈이 발을 뗐다.
‘!!!’
오만가지 경우를 생각하며 고민하던 것이 무색하도록 놈이 발을 내디딘 방향은 우리가 있는 곳과는 정반대 쪽의 방향이었다.
실시간으로 놈과의 거리가 벌어지는 것을 확인하며 긴장이 탁 풀렸다.
“후우.”
안도의 한숨을 내쉬며 생각했다.
‘괜한 걱정이었나.’
아무래도 우리를 죽이기 위해 놈이 육중한 엉덩이를 들어 올린 건 아닌 것 같았다.
그렇다면 자연스레 한 가지 의문이 남는다.
‘어째서 갑자기 움직이기 시작한 거지?’
지금까지 얌전히 있던 놈이 움직이는 이유가 무엇일까.
왜 하필 지금 움직인 걸까.
그리고.
‘왜 다른 그림자 괴물들도 놈과 같은 방향으로 움직이고 있는 거지?’
그러한 의문의 끝에 도달한 것은.
‘……설마.’
불길한 추측이었다.
“새롬 씨.”
“네, 넷?”
“사람들 좀 잘 부탁드릴게요.”
그 말만을 남기고 투시를 사용해 위를 올려다봤다.
어둠과 콘크리트를 비롯한 시야를 가로막는 모든 것들을 통과하여 새까만 하늘의 모습이 보였다.
이면세계의 경계면 근처와 마찬가지로 하늘에는 어둠의 안개가 자욱하게 끼어 있었다.
‘호신강기.’
혹시나 모를 사태를 대비하여 전신을 호신강기로 보호했다.
그리고 그 상태 그대로.
‘텔레포트.’
텔레포트를 사용해 이동했다.
슈슉―
다음 순간 어둠의 안개 속으로 이동하는 것과 동시에 중력이 내 몸을 강하게 잡아끄는 감각이 느껴졌다.
나는 여전히 투시를 유지한 채로 지상을 쏘아봤다.
정확히는 그 괴물이 움직이고 있는 이면세계의 중심부를 향해서.
콰과과광―!
중심에 있는 괴물이 발걸음을 내디딜 때마다 굉음과 함께 건물들이 박살 났다.
박살 난 고층 건물들은 이리저리 쓰러지며 저층 건물들을 덮치고, 일부는 다른 고층 건물 위로 쓰러지며 도미노처럼 연쇄 작용을 일으켜갔다.
그나마 멀쩡한 모습을 유지하고 있던 광주가 순식간에 초토화되고 있었다.
그 끔찍한 광경을 하늘에서 내려다보니 놈의 목적지가 명확해졌다.
‘역시…….’
놈은 지금 이면세계의 서쪽 외곽을 향해 움직이고 있었다.
그리고 그곳에서는 지금.
‘영지 건설이 이루어지고 있지.’
저 괴물은 지금 영지 건설을 방해하려는 것이다.
* * *
이변이 발생하자마자 아바타의 감각에 정신을 집중한 덕분에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 것인지 곧바로 인지할 수 있었다.
‘설마 이면세계 안에서도 영지 확장이 적용되고 있을 줄이야.’
영지 건설에서 가장 커다란 약점은 바로 실시간으로 늘어나고 있는 투명 장벽이었다.
레벨 업과 함께 동반되는 집구석 영역 확장의 경우 중간에 몬스터가 있으면 영역 안으로 끌어들여 대가리를 부숴 버린다.
시민권이 없는 사람들이 있다고 해도 마찬가지다. 강제로 영역 안에 포함시켜 시민권을 부여하게끔 할 수 있었다.
그러나 영지 건설은 다르다.
영역을 확장해 나가는 도중에 몬스터가 버티고 있다면 확장은 멈추고, 그 부담은 그대로 영지의 중심에 있는 오언주에게 가게 되는 구조다.
그것만 해도 상당한 정신적 고통을 동반하는 일이었다.
지금 가신들이 주변에 있는 몬스터들을 미친 듯이 사냥하고 있는 이유이기도 했다.
‘그런데 그 현상이 이면세계 안에서도 나타날 줄이야.’
외부에서 보기에는 몬스터 한 마리 없었기에 영지를 건설할 때 신경 쓰지 않아도 되는 보너스 구역이라 생각했다.
그런데 알고 보니, 직접 이면세계 안으로 들어가서 방어해야만 하는 최악의 구역이었던 것이다.
아바타의 눈을 통해 전해져 오는 광경은 소름이 돋을 지경이었다.
육중한 몸을 움직이고 있는 거대 괴물을 중심으로 수천수만의 그림자 군세가 영지 건설이 한창인 서쪽을 향해서 진군하고 있었다.
‘장애물이 있는 것만으로도 상당한 정신적 충격을 받는다.’
그런데 저것들에게 직접적인 공격이라도 받게 되면 어떨까?
‘위험하겠지.’
그리고 만약에.
‘저 괴물의 공격을 받게 된다면…….’
추정 레벨 70대의 괴물이 저 무거워 보이는 발을 휘둘러 공격한다면, 오언주에게 전해지는 정신적 충격은 얼마나 클까?
‘어쩌면 목숨이 위험할지도 몰라.’
그 정도로 심각한 사안이었다.
‘어떡하지?’
두 가지 선택지가 있었다.
하나는 지금이라도 건설을 중단해 버리는 것이다.
이러면 오언주의 목숨은 보장할 수 있게 된다.
보아하니 실시간으로 늘어나는 영역의 경계선이 맞닿은 순간 무언가를 느낀 듯한데, 그렇다면 지금보다 조금 더 떨어진 곳에 전초기지를 건설하여 영지를 건설하면 해결될 일이었다.
경계선에 맞닿은 지 얼마 지나지 않아 영지가 완성된다면, 저 괴물이라고 하여도 별수 없을 테니까.
그 이후에 이면세계에 진입하는 방법을 천천히 찾아보면 될 것이다.
호신강기를 사용하면 어딘가 불길해 보이는 검은 안개 속에서도 무사할 수 있다는 건 이미 확인했으니, 외곽 지역에서 진입해도 괜찮겠지.
‘하지만…….’
그렇게 될 경우 어쩔 수 없이 시간이 지체될 수밖에 없었다.
조금 남아 있던 보석도 이번 광주 전초기지 건설에 모두 소모해 버린 상태라 이제는 즉시 완료도 쓰지 못한다.
순수하게 기다려야 한다는 소리였다.
그럴 경우 전초기지를 건설하는 데만 사흘은 걸릴 것이다.
다시 영지 건설을 시작해서 영지가 완성될 때까지 총 여드레가 걸린다.
이면세계의 시간이 느리게 흘러 주는 탓에 지금부터 이틀만 버텨 주면 되는 셈이기는 했지만.
‘문제는 영지 건설을 중단할 경우 저 괴물 놈이 다시 얌전해질 거냐는 거지.’
광주가 전체적으로 멀쩡한 모습인 것을 보면 지금까지 놈이 움직인 경우 자체가 없는 듯했다.
불길한 직감이었지만, 한번 자극 받은 놈이 계속해서 미쳐 날뛸 것 같다는 생각이 자꾸 들었다.
만약에 저 괴물이 계속해서 날뛴다면 이틀이나 버티는 것은 불가능할 것이다.
박새롬을 포함하여 이면세계 안에 있는 생존자들이 모두 죽겠지.
“하아.”
다른 하나는 이대로 영지 건설을 속행하는 것이다.
이 경우 잘만 하면 모두의 희생 없이 일을 마무리 지을 수 있는 가능성이 존재했다.
‘강력해 보이기는 해도…….’
아바타의 시야 너머로 보이는 거대한 그림자 괴물을 보면서 놈의 힘을 가늠해 봤다.
절대자의 눈이 발동된 것은 아니었지만, 아바타의 감각으로 느껴지는 기운으로 놈의 강함을 어느 정도 유추해 볼 수 있었다.
‘해볼 만해.’
아바타의 힘만으로는 조금 부족할지 모른다.
하지만.
[이준혁 씨, 장성준 씨. 지금 당장 광주 시내로 넘어가 주세요.]가신 중에서도 몇 안 되는 60레벨 달성자들.
이들이 아바타를 보조한다면 충분히 할만 하다는 계산이 섰다.
그리고.
[정소라 씨도요.]현재 영지 주변을 바라보니, 그녀가 빠진다고 하더라도 충분할 것으로 보였다.
‘정소라의 레벨을 최대치까지 올리면 지키는 것 정도는 충분히 막을 만해.’
만약에 실패하더라도 그때 가서 영지 건설을 취소해도 되리라 판단했다.
‘이 전력이라면 이틀 정도는 버틸 수 있을 테니까.’
아예 가신들을 좀 더 투입하는 쪽으로 작전을 수정해 나가며 그들에게 브리핑했다.
[지금부터 이면세계 안으로 진입하실 겁니다. 그곳에서 영지 확장을 방해하는 그림자 괴물들을 막아 주셨으면 합니다. 광주 중심부에 있는 거울을 바라보면 이면세계 안으로 들어가실 수 있을 겁니다.]그러나 그 기대가 배신되는 데는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재현 님. 여기가 맞나요?”
[……?]세 사람은 분명히 거울 앞에 있었으나, 이면세계로 이동하는 일은 벌어지지 않고 있었다.
‘단순히 거울을 보는 게 출입하는 방법이 아니었나?’
당황스러웠다.
[거울에 손을 대 보시겠어요?] [빛을 비추면…….] [유스퀘어 안쪽에 화장실이 있을 겁니다. 그곳으로 가시면…….]생각나는 대로 모든 방법을 동원해 봤지만, 모두 헛수고였다.
정확히 아바타가 이면세계로 들어갔던 거울 앞으로도 가 봤지만, 소용없었다.
‘설마, 그림자 괴물이 직접 대상을 끌어와야만 하는 건가?’
현재 모든 그림자 괴물들이 서쪽에 있는 영지를 공격하는 것에 정신이 팔려 있는 상황이었다.
가신들을 이면세계로 이끌어 줄 매개체가 없는 셈.
‘이런.’
눈을 감고 아바타의 감각을 통해 이면세계의 상황을 확인해 봤다.
콰아아앙! 콰아앙!
영지가 확장되는 경계면에는 아바타가 소환한 수많은 정령이 버티며 항전하고 있었고, 아바타는 혼자서 그 거대 괴물을 상대로 분전하고 있었다.
‘이대로라면 얼마 못 버틴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영지가 확장되며 생겨난 영역으로 인해 정령들의 힘이 강화된 상태라는 점이다.
강화된 정령들의 공격에 잡몹에 불과한 그림자 괴물들은 접근조차 하지 못한 채로 몸이 터져 나가고 있었다.
콰아아앙―!
‘응?’
그랬다.
‘이면세계 안에 내 영역이 그대로 적용되고 있다고?’
불의 정령왕 샐리온의 레벨이 올라가며 생겨난 필드 효과가 적용되고 있는 것이다.
‘절대자의 눈.’
곧바로 이면세계 안쪽에 절대자의 눈을 소환하려 해 봤으나 발동되지 않았다.
‘뭔가 있다.’
돌파구가 있다면 여기라고, 그런 확신이 들었다.
슈슉―
곧바로 텔레포트를 사용해서 한창 확장 중인 영역의 끄트머리로 이동했다.
이면세계가 아닌 외부.
아무것도 없이 텅 비어 있는 세상 속에서.
콰아아앙! 콰아앙!
앞쪽의 건물이나 바닥들이 실시간으로 터져 나가고 있었다.
나는 그곳에서 조용히.
우우웅
흑색의 기운을 피어 올렸다.
‘……절대자의 눈.’
검은 기운 속에서 피어난 눈이 그곳을 훑었다.
그러자.
지이잉―
검은 기운에 의해 강화된 절대자의 눈 속에 특별한 광경이 눈에 들어왔다.
건물에 달려 있는 부서지지 않은 유리창.
그 너머로 이면세계의 모습이 보이기 시작했다.
나는 그 앞에 서서 조용히 손을 앞으로 뻗었다.
그리고 검은 기운을 거울 속으로 흘려 넣었다.
우우우웅!
거울 속으로 빨려들 듯이 흘러들어 간 검은 기운이 이면세계 안쪽에 있는 내 영역 속에 닿았고.
‘동대문 개방.’
비로소 그곳에 내 힘이 닿았다.
지이이잉―!
강제로 개방한 동대문의 너머로 불의 정령들과 그림자 괴물들의 전투가 보였다.
슬로우 모션처럼 보이는 그곳을 향해 나는 망설임 없이 발걸음을 내디뎠고.
콰아아앙! 화르르륵―!
순식간에 전장으로 이동되었다.
자꾸만 영지가 확장되며 영역이 넓어지고 있는 탓에 그림자 괴물들과 맞닿기 직전인 상태까지 와 있었다.
‘소환.’
그 순간.
퍼어어엉―
불의 정령 뒤쪽으로 소환된 바람의 정령들이 그림자 괴물들을 크게 밀어냈다.
그리고.
쿠구구구구!
땅이 진동하더니 콘크리트 바닥을 뚫고 무언가 솟아올랐다.
땅에서 솟아오른 뾰족한 가시가 그림자 괴물들을 순식간에 관통했고.
콰과과과광―!
장렬한 폭발과 함께 최전선을 물러냈다.
바람의 정령들과 땅의 정령들의 합작품.
그리고 동시에 화력을 지원해 줄 불의 정령들이 빈자리를 채워 나갔다.
정령들을 소환하여 그림자 괴물들을 밀어낸 직후.
‘가신 소환.’
지이이잉―
지원 병력을 소환했다.
반격의 시간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