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bsolute Dweller RAW novel - Chapter (185)
186화 [Episode 40] 적응 (3)
“아.”
꿈에서 깨어난 김혜나는 어젯밤 자신이 술에 취해 저질렀던 일들을 곱씹었다.
술기운의 힘을 빌려 김명환의 어깨에 기댄 것이나, 술에 취한 척 ‘같이 있어 달라.’며 떼를 쓴 것이나, 그렇게 김명환에게 업혀 그의 집에 함께 들어가게 된 것이나, 만취한 모습으로 김명환의 어머님과의 첫 대면까지.
거기까지 떠올린 김혜나는 베개에 얼굴을 파묻고 괴로워했다.
“아아앙악!”
차라리 기억을 못 했다면 위로라도 됐을 텐데, 자신은 술에 아무리 취해도 기억은 생생하게 나는 타입이었다.
김명환이 어머님과 함께 살고 있다는 것은 알고 있었다.
하지만 오늘은 당연히 어머님이 안 계실 줄 알았다.
그야 당연하지 않은가?
여자 쪽에서 같이 있어 달라는 말을 듣고 데려온 곳이었는데, 그곳에 부모님이 계시리라 누가 상상이나 할 수 있을까?
‘어머님과의 첫 대면이 이런 식이라니…….’
나락 끝까지 곤두박질쳤을 자신의 이미지를 생각하니 한숨을 참을 수 없었다.
“하아.”
원망하려면 술에 취해 주정을 부린 어제의 자신을 탓할 수밖에.
“내가 또 술을 마시면 성을 간다.”
예전의 김혜나는 어제처럼 지독하게 술을 마시는 스타일도 아니었고, 주사가 있는 것도 아니었다.
소주 3잔만 마셔도 곧바로 기절하듯 잠에 빠지곤 했으니까.
그런데 레벨이 오른 탓일까, 이제는 소주를 통째로 위장에 들이부어도 잠들지 않는다.
알딸딸해지며 기분이 좋아지고, 즐거워질 뿐이었다.
게다가 아무리 술을 들이부어도 다음 날 숙취가 없었다.
진정으로 술을 즐길 수 있게 됐다고 해야 할까.
“미친년, 미친년…….”
이불킥을 하며 한참이나 자아 성찰을 하던 그녀는 습관처럼 인벤토리에서 핸드폰을 꺼내 커뮤니티에 접속했다.
커뮤니티가 활성화된 것은 비교적 최근이었지만, 그 영향력은 순식간에 거대해졌다.
왜냐하면, 인터넷을 사용하는 유일한 방법이었기 때문이다.
자연스레 ‘김가영 갤러리’에 들어간 김혜나는 그곳에서 ‘오늘 자 가영 누님’이란 게시글을 발견하자마자 들어갔다.
“와, 대박.”
그곳에는 김가영의 사진들이 있었다.
조깅을 하다가 찍은 것인지 레깅스에 편한 반팔을 입은 가벼운 운동복 차림이었다.
“진짜 이 사람은 누구지?”
멀리서 찍은 도촬이 아니라 정면에서 찍은 사진을 올리는 것은 이 사람이 유일했다.
가까이서 찍기 때문에 항상 고퀄의 사진이 올라와 유저들에게 항상 환영받는 사람이었다.
간단하게 댓글을 작성하고 다른 글들을 확인하던 그때.
철컥.
문이 열리며 김명환이 들어왔다.
“일어났으면 나와. 밥 먹게.”
“……네, 선배.”
김혜나는 자신에게는 조금 큰 김명환의 트레이닝복을 입은 채로 바깥으로 나와 눈치를 살폈다.
사주 경계를 하며 거실로 나온 김혜나는 테이블에 앉으며 물었다.
“저…… 어머님은요?”
“잠깐 밖에.”
“아하……!”
그제야 약간 안심이 된 김혜나가 테이블 위에 차려진 아침 식사를 살펴봤다.
“우와. 이거 다 선배가 만든 거예요?”
“아니? 당연히 엄마가 만들었지. 엄마가 너 많이 취한 것 같다고 콩나물국까지 끓인 거야.”
“아……. 어머님께서…….”
풀이 죽은 김혜나는 조심스럽게 콩나물국부터 먹어 봤다.
“마, 맛있어요!”
생각했던 것보다 더 맛있어서 놀랐다.
“그러냐.”
“완전요! 간도 딱 맞고 깔끔한 데다 뭔가 깊은 맛이 나요.”
“입에 맞다니 다행이네.”
“헤헤. 잘 먹겠습니다. 아, 맞다. 선배 오늘 던전 공략 가신다고 하지 않으셨어요?”
“그렇지.”
식사가 시작되고 소소한 대화를 나누면서도 김혜나의 머릿속은 복잡한 생각을 이어 나가고 있었다.
어머님이 있는 집에 자신을 데려온 이 남자의 생각은 무엇일까, 자신을 친한 여동생쯤으로 생각하고 있는 걸까, 그렇다면 조금 서운한데.
자신을 어떻게 생각하고 있는 것인지 궁금했지만, 물어볼 수가 없었다.
자칫 잘못하여 지금의 관계가 무너져 버릴까 두려웠기 때문이다.
‘지금 이대로도 괜찮지 않을까.’
집에서 재워 줄 수 있는 친한 여동생의 포지션도 나름 괜찮은 거 아닐까.
그의 옷도 빌려 입을 수 있고, 그의 침대에서 잠을 잘 수도 있으니까.
가족을 제외하고는 그와 가장 가깝다고 할 수 있는 관계, 이 정도면 만족해도 괜찮은 거 아닐까.
고백 같은 건, 불가능했다.
술을 그렇게 먹고서도 하지 못했는데, 맨정신으로 그런 걸 할 수 있을 리가.
그런 생각을 하며 밥을 입에 넣던 그 순간.
“혜나야.”
지금까지 기계적으로 대답만 하던 김명환이 자신의 눈을 똑바로 바라봤다.
뜬금없는 타이밍이라는 건 아는데, 왠지 그가 지금 여기서 고백할 것만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띡띡띡띡― 띠링♪
현관문 쪽에서 비프음이 들리더니 문이 열리는 소리가 났다.
김혜나는 급하게 자리에서 일어나 어머님을 맞이할 준비를 했다.
그러나 안으로 들어온 사람은 김명환의 어머님이 아닌 다른 사람이었다.
그와 약간 닮은 것 같으면서도 훨씬 세련되어 보이는 여자.
“안녕하세요.”
“앗, 아앗!”
김가영이 나타났다.
* * *
“처, 처음 뵙겠습니다! 김혜나라고 합니다!”
“반가워요. 명환이 누나 김가영이라고 해요.”
김가영은 관심 있는 눈길로 김혜나를 관찰했다.
그야 김명환이 집에 여자를 데려온 게 이번이 처음이었으니까.
“네, 네! 당연히 알죠! 팬이에요, 언니!”
“……팬?”
“네! 혹시 같이 사진 좀 찍어도 될까요?”
“어? 그, 그럼요. 당연히 괜찮죠.”
예상과는 다른 전개에 당혹스러워하면서도 김혜나와 함께 다정해 보이는 투 샷을 찍었다.
“헤헤. 감사합니다.”
진심으로 자신을 좋아하며 폰을 만지작거리는 김혜나를 보며 김가영이 물었다.
“궁금한 게 있는데요. 어떻게 제 팬이 된 거예요? 저랑 직접 만난 적도 없잖아요.”
김가영의 궁금증은 매우 합당한 물음이었다.
자신은 연예인도 아니고 인플루언서도 아니었는데, 팬이 있다는 걸 이해할 수 없었으니까.
그녀에게 직접 구원받은 사람들이 이야기를 퍼뜨린다고 이렇게 처음 보는 사람이 팬이 될 정도로 인지도가 쌓였을 것 같지는 않았다.
다른 무언가가 있는 게 분명했다.
“김가영 갤러리에서 보고요! 가영 님은 가신님들 중에서도 제 원픽이에요!”
“……?”
“어, 모르세요? 요새 엄청 핫하신데…….”
정말 아무것도 모르는 듯한 김가영의 모습에 오히려 김혜나가 더 당황한 듯했다.
“잠시만요.”
김혜나는 다급히 핸드폰을 조작하더니 어떤 앱을 켜서는 김가영의 눈앞에 들이밀었다.
“여기예요!”
그녀의 핸드폰 화면에는 지금도 실시간으로 글이 올라오고 있는 게시판이 있었고, 제일 위쪽에는 ‘김가영 갤러리’라고 적혀 있었다.
그중 눈에 띄는 제목이 있어 들어가 봤다.
[대박! 가영 언니랑 한 컷!]시간을 확인해 보니 몇 초 전에 올라간 글이었다.
그것을 눌러 보니 아니나 다를까, 방금 자신과 김혜나가 찍은 사진이 올라가 있었다.
“……헤헤.”
김혜나가 부끄러운 듯 웃었다.
“미안한데, 잠시 폰 좀 빌려도 될까요?”
“그럼요.”
이런 커뮤니티가 존재한다는 사실조차 몰랐던 김가영은 김혜나에게 양해를 구하고 갤러리를 둘러봤다.
[오늘 자 가영 누님]오늘도 최고다.
그 게시글을 클릭하자 대문짝만 하게 박힌 자신의 사진을 보고는 할 말을 잃었다.
아침 조깅을 하던 때의 모습이었다.
‘아침에 홍보물 촬영한다는 게 이거였어? 그럼 지금까지 홍보물 촬영이란 게 모두 여기 올라가는 사진이었던 거야?’
가끔 이런 식으로 행정부에서 나온 사람이 자신의 사진을 찍어 가곤 했었다.
그런데 그 사진들이 이런 곳에 올라가 있다니.
댓글도 가관이었다.
-HN7737 : 너무 예뻐요, 언니!
어딘가 익숙한 닉네임이다 싶더니, 아까 자신과 찍은 사진을 올렸던 김혜나의 닉네임이었다.
-ddong : 진짜 동건 형님은 세금 3배 내십시오.
┗EnvyMaster : 겨우 3배? 10배는 내야 한다.
┗bee1203 : 요즘 세상에 세금 같은 게 어딨음. 걍 거래소 수수료 10배로 합의하자.
게시글의 종류는 다양했다.
김가영에게 구출 받았다는 사람들의 증언부터, 그녀가 빛의 화살을 쏘아 내 몬스터를 사냥한 동영상이 올라온 글까지.
지금도 계속해서 실시간으로 올라오며 김가영에 대한 이야기로 가득 차 있었다.
“이거 다른 사람들도 다 있는 거예요?”
“그럼요.”
하동건, 문병호, 김다정, 오언주, 서예진 등등.
원년 멤버나 다름없는 가신들의 갤러리는 모두 개설되어 있는 상태였다.
그리고 그곳에는 그들에 대한 이야기가 실시간으로 업로드되고 있었다.
이는 김다빈이 직접 주도한 프로젝트 중 하나로 일종의 ‘영웅 만들기’였다.
사람들의 불안을 잠재우고 가신들의 인지도를 높이기 위한 프로젝트.
실제로 이것을 통해 자진해서 가신이 되겠다며 찾아온 사람들이 꽤 되었다.
그중에서 실제로 가신이 된 케이스도 존재했고.
“이런 곳이 있는 줄은 몰랐네요…….”
김가영은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인플루언서가 되어 있었던 것이다.
‘어쩐지 요즘 따라 사람들이 나를 알아보는 것 같더라니.’
직접 말을 걸어오는 경우는 아직까진 한 번도 없었지만, 이대로라면 언젠가 길거리에서도 팬이라며 사진을 찍어 달라는 사람들과 마주치게 될지도 몰랐다.
베스트 게시글의 조회 수가 천 단위로 나오는 것을 보면 이용자가 적지 않다는 뜻이었으니까.
‘피곤하게 됐네.’
그래도 나쁘지만은 않았다.
어찌 됐든 팬이라며 자신을 향해 초롱초롱한 눈을 빛내는 사람이 있다는 게 기분 나쁜 일은 아니었으니까.
“저도 아직 밥을 못 먹어서 그런데, 같이 먹어도 될까요?”
“그럼요!”
마침 반찬은 다 준비되어 있었기에 밥그릇과 국그릇만 가져오면 끝이었다.
테이블에 앉은 김가영이 본격적으로 김혜나를 향해 궁금한 것들을 묻기 시작했다.
“그래서 두 사람은 어떻게 만나게 된 거예요?”
“예전에 고블린 사냥 때부터 만났어요. 그때 조금 위험했었는데, 선배가 저를 구해 줬었거든요. 그러니까 선배는 제 생명의 은인인 거죠.”
“어머나. 그래서 한눈에 반한 거예요?”
“네, 네?”
“혜나 씨가 너무 귀엽고 예뻐서 아깝다 싶었는데, 생명의 은인이라면 이해가 되네요.”
그러자 얼굴이 빨개진 김혜나가 더듬거리며 말을 이었다.
“그, 그런……! 저희는 아직 그런 사이가 아니라…….”
아니긴 뭐가 아니야.
“그러니까 ‘아직’인 거네요?”
“앗. 그런 게 아니라…….”
둘 다 얼굴이 빨개져서는.
김명환은 아까부터 얼굴이 빨개진 상태로 아무런 말도 못 하고 있는 중이었다.
“그래요? 제가 오해했나 보네요. 그럼 저희 명환이랑은 무슨 사이이신 거죠?”
“그…… 일단은 사냥 팀의 팀장……입니다.”
“팀장이요? 그런데 왜 선배라고 불러요?”
“그건 처음 만났을 때 선배라고 부르던 게 입에 붙어서…….”
사귀는 사이가 아니라고 말은 했지만, 두 사람의 모습만 봐도 앞으로 어떻게 될지는 뻔할 뻔 자였다.
그러니.
“우리 명환이 좀 잘 부탁드릴게요, 팀장님.”
“네, 넵!”
앞으로 둘이 사귀게 되면, 결혼까지도 가게 되는 걸까?
아마도 그럴 가능성이 컸다.
김가영은 누나로서 동생의 성격을 잘 알고 있었다.
아무나 집에 데려오는 스타일은 절대 아니었다.
‘그 정도로 진지한 사이라고 생각하니 집에 데려온 거겠지.’
동생이 결혼하게 될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입꼬리가 올라갔다.
‘결혼하게 되면…….’
그러나 곧이어 떠올린 결혼에 약간 가슴이 미어졌다.
‘…….’
설레던 마음도 금세 식어 버리고 우울함이 밀려왔다.
왜냐하면, 동생의 결혼식은 자신의 결혼식과는 다를 테니까.
김재현 덕분에 이제는 결혼식장도 운영되는 중이었고, 실제로 결혼을 하는 커플들도 있는 것으로 알고 있었다.
그러나 동생의 결혼식에는 너무 큰 빈자리가 존재했다.
‘……아빠.’
그곳에는 아빠가 없을 테니까.
문득 부산역에서 봤던 아빠의 마지막 모습이 떠올랐다.
그때는 아빠의 얼굴을 떠올리는 것만으로 눈물을 참을 수 없었는데, 지금은 가슴이 아프지만 눈물을 흘리지는 않았다.
시간이 흐르면서 괜찮아져 버린 것일까.
그때는 매일 밤 눈물을 흘렸었다.
그런데 요즘은 너무 바빠서, 바쁜 하루하루를 보내느라 아빠에 대한 생각을 미처 하지 못할 때가 많았다.
지금 떠오른 아빠에 대한 생각도 무척 오랜만이었으니까.
어느새 아빠의 빈자리에 적응해 버린 것일지도 모른다는 사실이 못내 가슴 아팠다.
‘보고 싶네…….’
정말이지 오랜만에 아빠의 목소리가 그리운 하루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