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bsolute Dweller RAW novel - Chapter (210)
211화 [Episode 44] 일본 진출 (1)
일본의 후쿠오카현.
거리상으로만 따지면 서울보다도 부산에서 가까운 도시가 후쿠오카였다.
중간에 바다가 존재한다는 것만 빼면 상당히 가까운 도시인 것이다.
그러나 부산과는 달리 후쿠오카의 도시 전경은 처참하기 그지없었다.
반파된 건물들.
피와 오물로 가득한 길거리.
시체를 뜯어먹는 괴물들.
현세에 펼쳐진 지옥이 따로 없었지만, 이런 지옥 같은 도시 속에도 살아남은 자들이 있었다.
“아저씨. 우리 이제 어떡해요?”
“어떡하긴. 도망쳐야지.”
후지와라 켄지는 오늘 외출을 결심한 것을 후회하고 있었다.
‘제기랄. 하루만 더 기다릴걸.’
식수를 구하기 위해 어쩔 수 없이 나온 것이었는데, 하필이면 ‘그놈’이 이 근처를 배회하고 있었던 것이다.
‘결계 밖으로 나오면 안 됐어.’
당연한 이야기지만, 후지와라 켄지가 지금까지 살아남을 수 있었던 것은 우연이 아니었다.
일정 공간에 결계를 칠 수 있는 그의 능력 덕분이었다.
그러나 모든 능력이 그렇듯이 그의 능력도 만능은 아니었다.
결계에는 몇 가지 한계가 존재했는데, 기본적으로 그의 결계는 몬스터를 완벽하게 막아 내는 게 불가능했다.
김재현의 영역과는 달리 허가받지 않은 존재들도 마음대로 드나드는 게 가능했다.
다만, 결계 밖에서는 내부에서 벌어지는 일을 알 수 없는, 일종의 은신 장막인 것이다.
“아저씨…….”
후지와라 켄지의 등에는 여자아이 하나가 공포에 질린 얼굴로 눈물 콧물을 쏟아 내는 중이었다.
“괜찮아, 마유. 얼른 집에 가자.”
마음 같아서는 그러게 왜 따라온다고 고집을 부린 거냐고 타박하고 싶었지만, 그럴 수 없었다.
‘결국, 허락한 건 나다.’
몬스터 아포칼립스가 발생하고 거의 1년.
지금까지 살아남은 사람이라곤 자신과 쿠보 마유, 이 어린아이 하나뿐이었다.
당장 자신이 죽고 나면 마유를 돌봐 줄 사람이 없어지는 셈이다.
그때를 대비해서라도 기본적인 교육이 필요하다고 생각했고, 빈집을 털고 식수와 식량을 챙기는 법을 알려 주려 했었다.
‘그런데 하필이면 그 놈과 마주칠 줄은…….’
그에게도 고블린 한 마리도 어려워했던 시절이 있었지만, 지금은 손에 든 일본도 하나만으로 오크 무리도 감당이 가능했다.
게다가 운 좋게 구한 샷건까지 있으니 웬만한 수준의 몬스터를 만나도 문제가 없었다.
‘그놈만 아니었다면 말이지.’
그런데 하필이면 오늘, 그놈과 마주치게 됐고, 그는 살아남기 위해 전력질주를 하고 있는 중이었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거리에 몬스터들의 보이지 않는다는 것이었다.
후지와라 켄지가 자리를 잡은 이 지역에 몬스터의 숫자가 적은 것은 우연이 아니다.
몬스터들의 숫자가 적은 것은 이곳이 ‘그놈’의 영역이기 때문이다.
그 순간.
쿠우웅!
거대한 충격음과 함께 콘크리트가 박살 나며 눈앞에 그놈이 나타났다.
‘젠장!’
2차선 도로를 완전히 틀어막을 정도로 거대한 덩치의 고릴라.
단단해 보이는 근육질의 몸을 맨들맨들한 쇳덩이가 피부 대신 감싸고 있었다.
박살이 난 콘크리트 위에서 은색의 고릴라가 천천히 그들을 내려다보았다.
그리고.
후웅!
순식간에 그들을 덮쳐왔다.
쿠우우우웅!
은색 고릴라의 주먹이 바닥을 때리며 굉음이 울렸고, 콘크리트 바닥이 액체처럼 출렁였다.
간발의 차이로 공격 범위에서 벗어난 후지와라 켄지가 한쪽 어깨에 매고 있던 배낭을 힘껏 던졌다.
퍼엉!
고릴라의 얼굴을 향해 날아가던 배낭은 허공에서 놈의 주먹을 얻어맞고 폭파당했다.
배낭 안을 가득 채우고 있던 생수들과 통조림 따위가 박살이 나며 사방으로 휘날렸다.
오늘 하루를 통째로 바쳐서 비축한 식량과 식수였지만, 아깝다는 생각은 전혀 들지 않았다.
저것을 희생해 약간의 시간을 벌 수 있었으니까.
-크헝?
고릴라는 주변을 두리번거렸다.
분명 직전까지 눈앞에 있었던 후지와라 켄지와 쿠보 마유가 감쪽같이 사라졌기 때문이다.
‘다행이다. 이번에도 통했어.’
후지와라 켄지의 능력은 은신 결계.
원을 그리는 간단한 행위로 완벽한 은신 장막을 펼칠 수 있었다.
능력 사용에 제법 능숙해진 덕분에 찰나의 순간에 발로 그린 원 안에서도 결계를 발동시키는 것이 가능했다.
결계 내부에만 들어가면 밖에서는 볼 수도, 냄새를 맡을 수도, 기척을 느낄 수도 없게 된다.
그러나 치명적인 단점이 하나 있었다.
바로 누구든 그 장소를 침범할 수 있다는 것.
쿠웅- 쿵―
킁킁대며 주변을 수색하는 중인 놈이 우연히 이곳에 들어오게 되면 바로 들키게 된다는 소리였다.
‘그리고 그건 아지트도 마찬가지다.’
커다란 원을 그려 건물 하나를 통째로 은신 장막으로 둘러싼 곳이 그의 아지트였다.
하지만.
‘이대로 아지트로 갔다간 들키고 말거야.’
저놈의 추적 방식이 어떤 원리인지는 몰라도 지금까지 몇 번이나 이런 식으로 따돌렸음에도 끈질기게 따라붙는 중이었다.
그렇다면 분명 아지트 근처까지 놈이 추적해 올 것이 뻔했다.
‘그러다 운 나쁘게 결계 안으로 진입하기라도 한다면 모든 게 끝장이다.’
그렇게 되면 저 강철 주먹에 건물 자체가 박살나게 되겠지.
‘아지트를 버릴까?’
어차피 식량과 식수도 모조리 떨어진 상황.
그곳을 버리고 새로운 아지트를 물색하는 것도 나쁘진 않았다.
하지만.
‘그동안 살아남을 가능성은 제로에 가깝다.’
온갖 괴물들이 넘쳐나는 세상이다.
또한 괴물들만 위험한 것도 아니다.
때로는 인간이 더욱 위험하기도 했다.
그런 세상에서 한번 자리 잡은 곳을 버리기는 쉽지 않은 일이었다.
‘게다가…….’
후지와라는 자신의 목을 꼭 끌어안고 있는 자그마한 두 팔을 살포시 쓰다듬었다.
‘그 과정에서 마유가 죽을 확률이 너무 높아.’
너무 위험하고, 험난한 과정이었다.
당장 자기 목숨 챙기기도 힘든 상황에서 마유를 지켜 가며 움직인다는 것은 불가능에 가까웠다.
무엇보다 함께라면 당장 눈앞에 있는 저 괴물에게서 결코 벗어날 수 없었다.
십중팔구 마유는 죽게 될 것이다.
‘결국, 아지트로 돌아가는 게 최선이야.’
그것을 위해서 떠오르는 작전은 하나밖에 없었다.
“마유. 지금부터 잘 들어.”
후지와라가 진지한 얼굴로 말하자 쿠보 마유도 눈물을 닦아 내고 경청했다.
“지금부터 내가 미끼가 될 거야.”
“그게 무슨……!”
“일단 들어.”
거칠게 항변하려는 쿠보 마유의 양쪽 어깨를 단단하게 잡은 후지와라 켄지가 결연한 표정으로 입을 열었다.
“이대로 아지트에 가면 너무 위험해. 저놈이 끝까지 우리를 따라올 테니까. 그러니까 저놈을 따돌리고 와야만 해.”
“하지만―.”
“네가 있으면 방해가 돼. 너를 업고 움직여야만 하니까.”
“…….”
쿠보 마유는 다시 울 것 같은 표정이 되었지만,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했다.
“이해했어요.”
“그래. 마유 넌 여기 결계 안에서 잠시 기다리다가 저 괴물이 안 보이게 됐을 때 전력을 다 해서 아지트로 달려. 할 수 있지?”
“……응.”
후지와라는 피식 웃으며 마유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좋아.”
아직 하고 싶은 말이 더 많았다.
오늘 배운 것들을 까먹지 말라든지, 시간이 지나면 혼자서 식량과 식수를 구하러 가야 한다든지.
하지만 그런 말들을 전하지는 못했다.
그 말을 전하면 마지막이라는 것을 직감한 마유가 어떤 돌발 행동을 할지 모르니까.
“마유는 똑똑한 아이니까, 내가 돌아올 때까지 혼자서도 잘 할 수 있지?”
“응.”
“그래.”
후지와라는 아직도 근처에서 두리번거리고 있는 은빛 고릴라를 힐끗 확인하고는 등에 매고 있던 샷건을 마유에게 건네주었다.
“미안하지만, 이것도 좀 들고 가 주겠어? 아무래도 저놈한테는 소용없을 것 같아서 말이지.”
“……나한테 맡겨 줘.”
작은 체구에 샷건이 무겁긴 하겠지만, 없는 것보다는 백배 나을 것이다.
이 근처에 몬스터가 아예 없는 것도 아니었으니까.
‘웃기는 군, 나도.’
알고 있었다.
자신이 미끼가 되면 높은 확률로 죽게 되리란 것을.
자신이 죽으면 아지트에 펼쳐진 결계 또한 일주일을 버티지 못하겠지.
그때가 되면 마유도 죽을 가능성이 크다.
‘하지만 지금 욕심을 부리다간 둘 다 죽고 말겠지.’
둘 다 사는 게 가장 베스트였지만, 현실적으로 그런 일은 불가능했다.
‘현실적으로라…….’
문득 어젯밤에 들었던 마유의 말이 생각이 났다.
언젠가 자신이 세상의 모든 몬스터를 없애고, 예전의 평화로운 세상으로 만들고 말 거라든가?
그를 위해 식량과 식수를 구하는 법을 배울 필요가 있다며 어필을 했었다.
그에 후지와라는 불가능한 일이라고 말했고, 마유가 대답하길.
‘가능한 일만 꿈꿀 수 있는 건 아니라고 했었지.’
마유의 말은 마음을 뭉클하게 만드는 힘이 있었고, 결국 동행을 결정하게 됐다.
‘그러지 말았어야 했는 데 말이지. 다음에…… 다음에 데리고 나올 걸 그랬어.’
혼자였다면 어떻게든 저 괴물을 따돌리고 아지트로 돌아갈 수도 있지 않았을까.
이제와서 후회해 봐도 늦었다.
후회는 너무 늦었기에 후회라고 부르는 거니까.
‘후회해 봤자 소용도 없고.’
지금은 해야 할 일은, 지금 상황에서 최선의 수를 두는 것이다.
“그럼, 나중에 보자.”
그 말을 마지막으로 후지와라는 결계 밖으로 튀어 나가 아지트 반대 방향을 향해 전속력으로 달리기 시작했다.
-크웍?
당연히 은색 고릴라가 제일 먼저 그의 존재를 알아차렸고, 거친 포효와 함께 그를 추적하기 시작했다.
먼저 달리기 시작했지만, 기본적인 스펙 차이가 워낙 심한 탓에 후지와라는 금방 놈에게 따라잡혔다.
점프하듯 몸을 던지는 것과 동시에.
콰아아앙!
조금 전까지 그가 서 있던 바닥이 폭죽처럼 터져 나갔다.
전속력으로 그 장소를 벗어난 후지와라는 건물 안쪽으로 들어가자마자 몸을 가볍게 회전시켰다.
바닥에 쌓인 먼지를 쓸어 내며 둥근 원이 완성되었고, 뿌옇게 일어난 먼지와 함께 후지와라의 존재가 지워졌다.
-크워어어어어!
후지와라가 은신 결계에 몸을 숨기는 동안 은색 고릴라는 온몸으로 건물 입구를 뚫었다.
건물 입구의 유리와 외벽이 와장창 박살 나는 과정에서.
퍼억!
“크윽!”
돌조각 하나가 후지와라의 머리를 때렸다.
이를 악물고 버틴 덕에 결계는 무사히 유지되었고, 후지와라의 기척을 놓친 은색 고릴라는 건물 안쪽 깊숙이 들어가며 마구잡이로 날뛰었다.
콰직! 콰아앙!
기둥과 바닥이 박살 나며 놈이 내부로 진입하는 것을 확인한 직후.
‘지금!’
후지와라는 품 속에 소중하게 품어 뒀던 수류탄 하나를 놈을 향해 던지며 급하게 건물을 빠져나왔다.
콰아아아앙!
거대한 폭발음과 함께 땅이 진동했다.
결과를 확인할 여유 따위 없었다.
‘이 정도로는 죽지 않을 거다.’
후지와라는 다시 전속력으로 도망치기 시작했다.
콰아아앙!
그의 예상대로 은색 고릴라는 아무런 타격조차 입지 않은 모습이었다.
분명 수류탄에 직격했음에도 놈의 강철 피부에는 자그마한 흠집 하나 없었다.
‘이런 미친!’
그 후로도 근처 지형지물과 은신 결계를 최대한으로 활용하며 놈을 따돌려 보려 했지만, 소용없었다.
기본적인 속도 차이도 있었고, 후지와라가 결계에서 나오는 순간 그 즉시 놈이 눈치를 챘기 때문이다.
심지어 이제는 후지와라가 사라질 때마다 그 근처를 배회하며 떠나지 않고 있었다.
그 짧은 순간에 은신 결계에 대해 약간이나마 파악한 것이다.
‘젠장.’
바로 코앞에서 입을 벌린 채로 코를 킁킁거리는 괴물 고릴라의 모습을 바라보며 후지와라는 이를 악물었다.
‘이판사판이다.’
후지와라는 품에 남은 마지막 하나의 수류탄을 꺼내 안전핀을 뽑았다.
그리고.
“으아아아아!”
코앞에 있는 괴물에게 달려들며 놈의 아가리 속으로 손을 집어 넣었다.
다음 순간.
꾸우우웅!
괴물의 입 안으로 넘어간 수류탄이 폭발하며 충격파가 사방으로 퍼져 나갔다.
주르르륵
그 직후 괴물 고릴라의 입에서 어마어마한 양의 피가 쏟아져 나왔다.
‘됐다!’
치명타가 터진 것이다.
‘살았어!’
생사의 갈림길에서 또 한 번 살아남은 것에 기뻐하기도 잠시.
퍼억!
죽기 직전의 고릴라가 마지막 반격을 가했다.
콰직!
잠시 정신을 잃었다.
후지와라가 정신을 차렸을 때에는 뒤통수의 얼얼한 충격과 움직이지 않는 몸이 느껴질 뿐이었다.
“하아. 하아.”
움직일 수 없었다.
그에 반해 괴물 고릴라는 입가에서 피를 주륵주륵 흘리면서도 한 걸음씩 다가오는 중이었다.
어느새 죽음이 코앞까지 다가왔다.
‘빌어먹을. 저 괴물 자식. 감염자였나.’
괴물 고릴라에게 얻어맞은 부위가 점점 투명해지고 있었다.
이것은 그의 힘이 폭주하고 있다는 뜻이었다.
각성자가 오염된 기운에 감염될 경우의 말로는 뻔했다.
지금까지 몇 번이나 봤으니까.
‘힘의 폭주 직후에 괴물이 되고 말겠지.’
놈의 주먹에 맞으며 오염된 기운에 접촉한 순간, 이미 정해진 운명인 것이다.
‘……마유에게 총 쏘는 법이라도 가르쳐 줄 걸 그랬나.’
이런 상황에서도 마유에 대한 생각이 먼저 드는 것을 보면 그 아이가 자신에게 정말로 각별하긴 했던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피붙이도 아닌데 말이지.’
망해 버린 세상에서 가장 오래 붙어 있었기 때문일까.
둘이 된 후로는 자신이 거의 키우다시피 하기도 했으니, 딸이나 다름없는 존재이기는 했다.
‘내가 죽으면 마유는 혼자가 되겠지.’
혼자가 되고, 많이 울 것이다.
일주일이 흘러 결계가 사라지면 더 위험해지겠지.
그럼, 마유도 죽게 될 것이다.
그 어린 아이가 몬스터에게 잡아먹히게 될 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드는 순간.
‘그럴 순 없어.’
이대로 죽을 순 없었다.
‘마유를 죽게 내버려 둘 수는, 없어!’
괴물 고릴라를 향한 강렬한 살의를 피워냈다.
자신이 어떤 괴물이 될 지는 몰랐지만, 괴물이 되어서라도 놈을 죽이기 위해.
조금이라도 더 마유를 안전하게 만들어 주기 위해.
괴물 고릴라의 주먹이 날아오는 순간.
“!!!”
잠시 몸이 경직되는 것이 느껴졌다.
그 직후.
퍼억!
수류탄을 몸안에 때려 박고도 멀쩡했던 괴물 고릴라 놈의 머리가 시원하게 터져 나갔다.
‘이게…… 무슨?’
혼란스러워하는 그의 눈앞에.
[시민권을 획득하였습니다.]이상한 알림창 하나가 등장했다.
그와 동시에.
‘……폭주하던 힘이 원래대로 돌아왔어?’
은신 결계가 폭주하며 투명화되던 몸이 원래대로 돌아와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