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bsolute Dweller RAW novel - Chapter (212)
213화 [Episode 44] 일본 진출 (3)
김다빈은 현재 일본에 직접 파견을 나와 있었다.
텔레파시 능력 덕분에 의사를 전달하는 데 아무런 문제가 없고, 약간이지만 일본어도 할 줄 알기 때문이었다.
‘한국 쪽은 혜린이가 책임지기로 했으니, 걱정할 필요 없고.’
중요한 일은 모두 처리해 둔 상황인 데다 유혜린도 상당히 유능한 편이니, 변수가 생긴다고 해도 알아서 잘 처리할 것이다.
그녀가 일본 진출의 거점으로 삼은 곳은 후쿠오카의 중심에 있는 페이페이돔이라는 야구장이었다.
지금은 주변에 있는 생존자를 모조리 이곳으로 모으고 있는 중이었다.
그때 현황을 파악하던 부하 직원이 다가와 보고했다.
“현재까지 이곳에 모인 분들은 총원 362명입니다.”
“적네요.”
“어쩔 수 없는 일이죠.”
김재현에게 듣기로 현재까지 이곳 후쿠오카에서 시민권을 발급받은 일본인은 약 1,132명.
그중 절반도 안 되는 인원만 이곳을 찾아온 것이다.
“OT는 언제부터죠?”
“17시에 예정되어 있습니다.”
“알겠습니다. 고생하셨어요, 양 부장님.”
“별말씀을.”
김다빈은 야구장에 모여든 사람들을 살펴봤다.
300명이 넘는 인원이 전부 서로 일정한 거리를 두고 경계하고 있었다.
대부분 혼자인 경우가 많았고, 많아 봤자 대여섯 명 정도가 무리를 이루고 있었다.
‘그나마 이 정도 모인 것도 모두 재현님이 직접 나서 준 덕분이겠지. 재현 님은 사람의 마음을 움직이는 신비한 힘을 가지고 계시니까.’
하지만 이곳에 모인 모두가 순수한 믿음만으로 모여든 것은 아닐 것이다.
‘대부분은 염불에는 뜻이 없고, 잿밥에만 관심이 있겠지.’
사람들의 몰골만 봐도 그동안 얼마나 힘겨운 시간을 보낸 것인지 알 수 있었다.
저들에게는 물 한 병, 통조림 하나가 어마어마하게 귀중한 자원이었다.
그런 상황에서 김재현이 직접 구호물자를 전달해 준 것이다.
그러면 무슨 생각을 하게 될까?
아마 여기 모인 대부분이 물 한 병이라도 더 얻을 수 있지 않을까 싶어서 참석한 걸 거다.
쉴 새 없이 주변을 두리번거리는 사람들의 눈이 그 증거였다.
물자가 어디에 있는지 알아내고 싶은 거겠지.
사람들의 눈에 욕심이 그득그득 흘러내리고 있었다.
또한 서로를 경계하면서도 자신에 대한 확신이 내비쳤다.
어쨌든 이곳에 모인 이들은 살아남았다는 것.
다들 한가락 하는 사람들만 모인 것이다.
‘기선 제압을 할 필요가 있겠네.’
시계를 확인해 보니 OT까지는 아직 10분 정도가 남아 있었다.
“스읍, 후우.”
시작과 동시에 모두를 압도하기 위해 사전준비를 했다.
현재 그녀의 레벨은 60.
한계 돌파 전의 최대 레벨에 도달해 있는 것이다.
제주도의 경험치 공장을 돌릴 때, 유혜린과 가신단으로 엮여 있었던 덕에 만렙을 찍을 수 있었다.
그리고 그와는 별개로 자신의 능력인 ‘텔레파시’의 숙련도가 높아지며 독자적인 기능마저 생긴 상태였다.
‘사실은 이것도 재현 님 덕분이지.’
업무적으로 텔레파시를 사용할 때보다 김재현과의 텔레파시 교환에서 영감을 얻은 것이었으니까.
그때였다.
“너 이 자식. 뒤지고 싶냐?”
“죽일 능력은 있고?”
파란색 관람석이 가득 차 있는 그곳에서 약간의 트러블이 발생했다.
“타케오! 그만 둬!”
“말리지 마!”
“갑자기 왜 이러는 건데!”
트러블을 확인한 즉시 행정부 직원들이 그들을 제지하기 위해 움직이려던 순간, 김다빈이 지시했다.
[말리지 마세요. 상황을 좀 지켜봅시다.]김다빈은 트러블이 발생한 곳에 신경을 집중하며 생각했다.
‘마침 잘됐어. 구실이 필요하던 참이었으니까.’
그렇지 않아도 사람들의 시선이 그곳으로 점점 몰리고 있는 중이었다.
이대로 오리엔테이션이 시작되면 은연중에 힘을 드러내는 것 정도가 고작이었다.
다짜고짜 사람들을 압박했다간 반발심만 이끌어 낼 뿐이니까.
‘하지만 힘을 보여 줄 만한 이유가 생긴다면 다르지.’
저들의 사정이 궁금하기도 했고.
화를 내고 있는 것은 두 명이 있는 그룹이었다.
남자 한 명이 화를 내고 있고, 여자 한 명이 그를 말리고 있었다.
그리고 그 화를 받아 내는 쪽은 관람석에 앉아 팔짱을 낀 상태로 그들을 조롱했다.
“니가 뭘 할 수 있는데? 불만이면 여기서 한판 붙을까?”
“이 자식!”
“타케오! 진정해!”
그때 타케오라 불린 남자가 울부짖듯 외쳤다.
“저 자식이 히로시를 죽인 놈이라고, 이 멍청아!”
여자가 멍한 얼굴이 되어 되물었다.
“……뭐?”
“저놈이 히로시를 죽게 만든 놈이라고.”
순간, 여자에게서 어마어마한 기운이 뿜어져 나와 야구장 전체를 휩쓸었다.
한순간에 야구장의 온도가 몇 도 정도 떨어진 것처럼 추워졌다.
여자가 살벌한 눈으로 관람석에 앉아 있는 남자를 노려보며 물었다.
“정말이에요?”
그러자 지금까지는 여유만만한 표정으로 앉아 있던 남자가 몸을 일으키며 말했다.
“정말이라면 어쩔 건데?”
대답과 동시에 남자의 몸에서 압도적인 기운이 뿜어져 나왔다.
여자의 기운이 야구장을 쌀쌀하게 만들었다면, 남자의 기운은 야구장 전체를 후끈 달아오르게 만들고 있었다.
엇비슷해 보이지만, 남자 쪽이 더 강한 기운을 품고 있다는 것은 어렵지 않게 알 수 있었다.
* * *
“재미있게 돌아가네.”
“이거이거. 콩고물이나 주워 먹으러 온 건데 좋은 구경 하게 생겼네.”
그들의 상황을 여유롭게 구경하는 이들도 있었지만, 모두가 그런 것은 아니었다.
“허억, 허억.”
평범한 이들은 그들이 내뿜는 기운이 충돌하는 것만으로도 숨을 쉬는 것마저 어려워졌다.
이시카와 요코도 그런 평범한 이들 중 하나였다.
아무런 능력도 각성하지 못한 평범한 사람이 견디기에는 분위기가 너무나도 무거웠다.
‘수, 숨이……!’
더불어 몸이 부들부들 떨린다.
그럼에도.
‘여, 여기서 벗어나야 해.’
공포에 덜덜 떨리는 몸을 이끌고 그녀는 움직이기 시작했다.
고래싸움에 새우등 터져 나가는 것이 일상인 세계였기에 알아서 목숨을 챙겨야 했기 때문이다.
그런데.
우우웅
따뜻한 빛이 그런 그녀를 감싸 안았다.
그리고 그 순간 지금까지 느껴지던 압박감이 완전히 사라졌다.
너무나도 신기하고, 따스한 빛.
자신의 몸을 감싼 빛을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바라보고 있던 그 순간, 누군가 말을 걸어왔다.
“괜찮으세요?”
연예인 같은 얼굴이었다.
피부는 뽀얗고, 주먹만 한 얼굴에 길쭉길쭉한 팔다리까지.
어렵지 않게 그 사람이 이 힘의 주인이라는 것을 알 수 있었고, 그녀가 한국어로 말하고 있다는 것을 단번에 알 수 있었다.
K-pop이 좋아서 한국어를 공부해서 기본적인 의사소통 정도는 가능한 수준이었기 때문이다.
이시카와 요코는 어눌한 발음으로 감사 인사를 전달했다.
“가, 감사합니다.”
“어? 한국어 할 줄 아시네요?”
“조, 조금.”
“어머, 잘됐다. 그렇지 않아도 한국어가 가능하신 분을 찾고 있었거든요.”
여자가 이시카와 요코를 향해 손을 내밀며 말했다.
“저는 김다정이라고 해요.”
“이, 이시카와 요코입니다.”
“그럼, 저랑 같이 좀 가실까요?”
김다정이라 자신을 소개한 여자는 붙임성 좋게 요코의 손을 잡고는 어디론가 이끌었다.
요코는 자신의 손을 잡아끄는 그녀를 멈춰세우며 물었다.
“잠깐만요. 당신은 여기 직원 아닌가요? 저거, 말려야 하지 않나요?”
자신이 알고 있는 한국어를 활용하여 최대한 말을 전했다.
“위험해요. 이대로 가만히 있으면!”
구호물자를 전해 준 이가 한국인이라는 것은 처음부터 알고 있었다.
거기 들어 있는 것들에 전부 한국어가 쓰여 있었으니까.
안내원들도 한국인이라는 것을 이미 확인했고.
상황을 보아하니 김다정이라는 여자도 관계자인 것 같은데다, 한순간에 압박감을 없애는 것만 봐도 범상치 않은 힘의 소유자임에 분명했다.
세상은 약육강식의 세계로 바뀐지 오래다.
저들의 싸움을 말리기 위해서는 적어도 당신 같은 사람이 나서 줘야 하지 않냐는 말을 하고 싶었지만, 이런 자세한 생각을 표현하기에는 아직 한국어 실력이 부족했다.
그런데.
“걱정하지 마세요.”
너무나도 여유로운 표정이었다.
평소에 K-드라마를 많이 봐서 그런지 그녀의 말투에 깃든 감정도 읽을 수 있었다.
마치 저런 애들 싸움 따위 별것 아니라는 투가 분명했다.
‘도대체 무슨 자신감이지?’
각성자가 얼마나 위험한 존재들인지 모르나?
그때였다.
“죽어!”
살벌한 목소리가 터져나왔다.
분명 아까 대치하고 있던 여자의 목소리임에 분명했다.
고개를 돌려 보니, 악귀처럼 일그러진 표정의 여자가 검을 들고 달려들고 있었다.
그러던 순간.
[그만. 멈추세요.]머릿속으로 낯선 여자의 음성이 들려왔다.
그리고 순간 얼어붙은 자신의 몸을 발견할 수 있었다.
‘이, 이게 무슨……?’
당황스러운 것은 자기 몸이 멈췄다는 것보다도 무서운 기세로 돌진하던 여자가 돌처럼 굳어 있다는 사실이었다.
어마어마하게 흉흉한 기세를 내뿜던 여자는 그대로 멈춘 채로 아무것도 하지 못하고 있었다.
그리고 그것은 반격을 준비하던 남자 쪽도 마찬가지였다.
두 사람은 약속이나 한 듯이 천천히 고개를 돌리고 있었다.
이시카와 요코 또한 그들이 바라보는 곳을 향해 고개를 돌려봤다.
야구장의 중심.
마운드의 위에, 한 여자가 서 있었다.
무뚝뚝한 표정으로 그들을 바라보기만 할 뿐이었는데, 그것만으로도 충분했다.
그녀의 전신에서 뿜어져 나오는 무형의 기운이 야구장 전체를 장악하고 있었으니까.
[더 이상의 행패는 용납하지 않겠습니다.]완벽하게 제압된 것은 트러블을 일으키던 두 사람만이 아니었다.
처음에 화를 내던 남자는 물론이고, 상황을 여유롭게 지켜보고 있던 다른 각성자들까지 사색이 된 얼굴로 마운드 위의 여자를 바라보고 있었다.
마운드 위의 여자는 한쪽을 노려보며 물었다.
[그리고 당신. 이름이 뭐죠?]여자의 표적이 된 남자.
흉흉한 기세로 칼을 들고 달려들 때까지도 시종일관 미소를 유지하던 남자가 공포에 질린 얼굴을 하고 있었다.
[이름이 무엇이냐고 물었습니다.]뒤이어 이어진 말에 사색이 된 남자가 입을 열기 위해 안간힘을 쏟았다.
“ㅌ, 타, 타타, 타카하시 료, 료우.”
그 꼴사나운 모습의 남자와 방금 전까지 여유를 부리며 어마어마한 기운을 뿜어내던 남자가 정말로 동일 인물인지 혼란스러웠다.
간신히 자신의 이름을 뱉은 남자를 향해 마운드 위의 여자가 재차 물었다.
[정말로 당신이 히로시라는 남자를 죽였습니까? 솔직하게 말씀해 주시기 바랍니다.]“아, 아니야. 난…… 내가 죽인 건 괴물이야! 변이체로 변한 놈을 죽였을 뿐이라고!”
잠시 정적이 찾아왔다.
[……자세한 이야기를 들어 보고 싶은데요.]그리고 얼마 뒤 경기장을 압도하던 무형의 힘은 사라졌고, 몸도 자유롭게 움직일 수 있게 되었다.
남자의 항변을 들은 이시카와 요코는 어떻게 된 상황인지 곧바로 이해했다.
‘그렇게 된 거였구나.’
변이체.
한때 인간이었던 괴물들.
오로지 각성자들에게만 벌어지는 일로, 그들이 가지고 있는 초능력이 폭주하게 되면 나타나는 현상이었다.
당장 그로 인해 괴물이 되었던 자신의 친구가 있었다.
‘……다이스케.’
괴물로 변하던 마지막 순간.
거대한 은색 고릴라가 되었던 그가 자신을 지키기 위해 최대한 멀리 도망치던 때의 뒷모습을 아직까지도 잊지 못했다.
만약 괴물이 된 다이스케를 다른 누군가가 죽이는 모습을 보게 됐다면, 자신은 어떤 선택을 했을까?
그 사람을 많이 원망하겠지만, 동시에 어쩔 수 없다고 생각할 것 같았다.
그리고 그것은 칼을 들고 덤벼들던 여자도 마찬가지였던 것 같았다.
경기장이 떠나가라 울고 있는 것을 보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