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bsolute Dweller RAW novel - Chapter (223)
224화 [Episode 47] 트로이 목마 (1)
‘역시.’
당연하지만, 이번이 첫 정찰은 아니었다.
몇 번의 실험 끝에 놈이 반응하는 범위를 구체적으로 알 수 있었다.
‘반경 20km 정도인가.’
놈이 똬리를 틀고 있는 곳은 신주쿠와 시부야를 포함한 도시의 중심부 지역이었다.
둥글게 똘똘 뭉쳐 있는 몸이 지름 10km의 원 형태였으니, 놈이 몸을 쭉 피게 된다면 수십 킬로미터의 몸체가 될 것이다.
놈의 덩치를 생각하면 반경 20km의 범위는 그리 넓은 것도 아니었다.
‘80대가 넘는 놈들은 전부 이런 건가?’
단지 하늘 위를 지나가는 것만으로 그 주변 일대를 얼려 버렸던 아이스 드래곤의 영역.
그리고 주변 일대에 죽음을 가져오던 불사의 망령의 영역.
모두 자신만의 영향력을 행사하는 일정 범위의 영역을 가지고 있었다.
다만.
‘……너무 좁은 거 아니야?’
개인적인 감상은 놈들이 가지고 있는 힘치고 그 영역의 범위가 너무 좁게 느껴진다는 것이었다.
그렇게 느끼는 게 당연했다.
그야.
‘지금 내 영역은 한반도 절반을 뒤덮고 있는데?’
그것도 모자라서 영역의 끄트머리는 일본까지 걸쳐 있는 상태였다.
지금까지 조우한 80레벨대 괴물 중 가장 강력한 아이스 드래곤조차도 이렇게까지 넓은 영역을 가지고 있지는 않았다.
‘도대체…….’
검은 기운의 주인은 어떤 존재이기에 이토록 광범위한 영역을 가지고 있는 걸까?
게다가 더욱 충격적인 것은.
‘아직 스킬 레벨이 올라갈 여지는 남아 있다.’
앞으로 얼마나 더 넓어질지 알 수 없다는 점이었다.
새삼 내 몸을 노리는 존재가 지니고 있는 힘의 크기를 실감했다.
순간 온몸에 소름이 오소소 돋아났다.
‘그런 놈이 내 몸을 노리고 있다.’
과연, 지구상에 있는 모든 신격을 흡수한다고 해서 놈에게 대항할 수 있기는 할까?
‘물론, 그 전에 모든 신격을 집어삼킬 수 있는지부터 고민해야겠지만…….’
당장 눈앞에 있는 야마타노 오로치 또한 만만한 존재가 아니었다.
치지지직―
은빛 쇠사슬이 김 건의 몸을 파고드려 하고 있었다.
놈의 영역에 진입하게 되면 발생하는 현상이었다.
김 건의 몸을 보호하고 있는 검은 기운이 아니었다면 당장에 변이가 진행되었을 것이다.
‘강화된 상태가 아니라면 접근하는 것도 어렵다.’
게다가.
‘창고 오픈.’
서대문에서 낙하 중이던 강화 쇠 구슬을 소환했다.
쐐애애애액―
무서운 속도로 낙하한 강화 쇠 구슬이 이쪽을 올려다보고 있는 뱀 머리에 직격했다.
그러나.
푸욱!
뱀의 머리가 터져 나간다거나 하는 일은 없었다.
놈은 멀쩡한 모습으로 여전히 이쪽을 바라보고 있었고.
콰아아아앙!
한 박자 늦게 폭발음이 들려왔다.
사냥을 성공했다는 메시지와 함께 경험치와 정산금이 쏟아졌지만, 전부 의미 없었다.
조무래기들만 처치했을 뿐, 야마타노 오로치 본체에는 아무런 타격도 입히지 못했기 때문이다.
폭발의 여파에 의해 놈의 몸에 커다란 구멍이 생겨난 것처럼 보이긴 했지만, 저것은 상처 따위가 아니었다.
그 증거로 겨우 몇 초만에 흩어졌던 몸뚱이가 원상태로 복구되었다.
‘물리적인 공격은 아예 의미가 없다는 건가.’
놈의 몸은 거대한 안개와도 같았다.
그러니 일반적인 물리 공격은 아무런 소용이 없는 것이다.
그때 여덟 개의 머리가 일제히 입을 벌렸다.
그에 맞춰서.
[불사의 망령(Lv. 81)을 소환하시겠습니까?] [예 / 아니오]‘소환해.’
[444,444,444 원이 소모됩니다.]허공에서 초라한 해골이 나타났다.
그와 동시에.
‘가신 소환.’
김 건을 불러왔다.
그가 안전지대로 이동해 오기 직전, 여덟 개의 입에서 일제히 은빛 안개가 뿜어져 나왔다.
아무리 강화 상태의 김 건이라고 해도 저걸 정면으로 맞았으면 위험해졌을 것이다.
하지만.
‘강화.’
애초부터 신격을 다루던 존재.
81레벨에 달하는 불사의 망령은 좀 달랐다.
화르륵!
초라한 해골의 심장에 검은 불꽃이 피어오른다.
그와 동시에.
화아아악―
검은 기운이 폭발적인 기세로 주변으로 퍼져 나간다.
이내 불사의 망령이 만들어 낸 영역과 야마타노 오로치가 쏘아 낸 은빛 기운이 맞부딪혔다.
파지직―!
폭발적인 기세로 퍼부어진 은빛 안개가 검은 기운을 밀어붙였다.
그러나 검은 기운은 반발하는 대신 오히려 은빛 안개를 받아들였다.
그리고.
화르륵!
불태우며 먹어 치운다.
지금까지 다른 신격을 만났을 때도 그러했듯이.
‘…….’
본질적으로 검은 기운은 다른 신격과 달랐다.
‘상대의 기운을 잡아먹는 것은 오로지 검은 기운뿐이다.’
이전에는 그냥 순전히 격이 높은 신격이 격이 낮은 신격을 잡아먹는 것이라고만 생각했었다.
‘내가 틀렸었어.’
아무리 격이 낮다고 해도 저곳은 야마나토 오로치의 나와바리였다.
똥개도 자기집 앞에서는 반은 먹고 들어간다는데, 그것은 신격끼리의 충돌에서도 그대로 적용된다.
집구석 선포가 된 영역 밖에서 검은 기운의 기세는 약화될 수밖에 없었다.
더군다나 남의 영역 안이라면 더욱 약해지는 게 정상이었다.
아무리 불사의 망령이라는 매개체가 있다고 하더라도 한계가 명확했다.
그럼에도 지금 저 모습을 보아라.
전체적으로 본다면 검은 기운이 확연하게 밀리고 있었다.
당장 불사의 망령이 펼쳐 낸 영역의 크기부터 절반 이하로 줄어들어 있었으니까.
그러나 은빛 기운은 밀어내고, 검은 기운은 집어삼킨다.
마치 포식자가 피식자를 잡아먹는 듯한 모습.
기세에서 밀리고 있음에도 검은 기운은 악착같이 은빛 기운을 물어뜯고 있었다.
‘이상하단 말이지.’
분명 꺼림칙해야 정상이었다.
그런데 내 몸을 집어삼키려한다는 사실을 알아차린 지금도 그저 든든하게만 느껴지고 있었다.
‘도무지 저 이빨이 내 목덜미를 물어뜯을 거란 생각이 들지 않아.’
맹수를 애완동물로 기르는 이들이 이러한 심정인 걸까?
이미 검은 기운이 내 몸을 노리는 경험을 했음에도 불구하고 거부감이 심하지 않았다.
‘어쩌면 내 무의식에까지 관여하고 있는지도 모르지.’
경계심을 낮추고 검은 기운에 더욱 익숙해지도록.
그래서 자연스레 내 정신을 집어삼킬 수 있도록.
‘언젠가는 나에게 이빨을 드러낼 거다.’
하지만 그것과는 별개로 지금 검은 기운의 목줄은 내가 쥐고 있는 상태였다.
다른 신격을 흡수하기 위해서는 검은 기운이 반드시 필요하기도 했고.
아이러니하게도 검은 기운에 대항할 힘을 기르기 위해서는 검은 기운을 이용해야만 하는 것이다.
‘그때까지 잘 부탁한다.’
검은 기운을 다루는 불사의 망령이 4분 동안 미친 듯이 날뛰었다.
길게 뽑아낸 검기로 뱀의 머리를 몇 번이나 잘라 내고, 몸체를 베어 냈다.
마지막 1분에는 뼈다귀 전체가 만개하며 본래의 모습을 드러냈다.
몸길이만 수십 미터에 달하는 뼈다귀 용의 모습.
검은 기운을 사방으로 흩뿌리며 야마타노 오로치의 몸속을 헤집어 댔다.
그러나.
‘소용이 없군.’
자잘한 피해를 입힌 것은 분명했다.
여덟 개의 머리가 미쳐 날뛰고 있는 것만 봐도 상당히 거슬리게 한 것은 확실해 보였다.
그러나 그 어떤 것도 치명적이지 않았다.
검은 기운이 담긴 검기도, 불사의 망령이 펼쳐 낸 죽음의 영역도.
그저 조금 성가신 정도인 듯 보였다.
그때였다.
소환 시간이 다 되어 역소환되고 있는 불사의 망령의 앞에 뱀의 머리 하나가 바짝 다가와 있었다.
고층 빌딩과 맞먹을 만큼 커다란 은빛 눈동자가 불사의 망령을 내려다봤다.
절대자의 눈을 통해 본 놈의 눈동자가 나를 정면으로 응시하고 있었다.
치직―
그때 소환 시간이 끝이 났다.
‘……방금 뭐였지?’
마지막 순간에 마주했던 놈의 눈은 무언가를 전하려하고 있는 것만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갑자기 자기 영역에 쳐들어와서 공격해 대는 놈에게 욕 말고 달리 할 말이 있겠느냐마는.
‘그런 느낌은 아니었단 말이지.’
마치 무언가 중요한 말을 전하려는 것만 같은 느낌.
당장 알아보고 싶었지만, 남아 있는 카드가 없었다.
불사의 망령을 다시 소환하기 위해서는 2주의 쿨타임을 기다려야 했고, 아바타의 경우 죽어 있는 상태였다.
제일 처음 도쿄에서 오로치를 발견한 것이 아바타였다.
그때는 아직 놈에 대한 정보가 많이 부족해서 영역에 대해 인지하지 못하고 있는 상태였다.
‘실수였지.’
강화까지 걸려 있는 상태였기에 그렇게 순식간에 일이 벌어지리라곤 생각하지 못했었다.
처음 발견한 직후 아바타는 텔레포트를 사용하여 야마타노 오로치의 몸체 위로 이동했고, 그대로 놈의 몸속에 빠져 버렸었다.
‘덕분에 놈의 몸이 기체와 같은 상태라는 걸 알아내긴 했지만.’
그 정보를 알아낸 대가는 아바타의 목숨이었다.
순식간에 몸속을 파고든 은빛 기운과 전신을 뒤덮고 있던 검은 기운이 반발하더니 반응할 틈도 없이 아바타의 몸이 폭파되어 버렸다.
‘너무 위험해.’
아바타조차도 잠시를 버티지 못했다.
가신들은 더욱 위험할 거란 소리였다.
그나마 가능성이 있는 것은 한계돌파를 한 이준혁과 김다빈 정도인데, 그들도 얼마나 버틸 수 있을지 확실하지 않았다.
‘아바타의 부활을 기다리는 수밖에.’
그때였다.
‘……이건?’
내 영역 안에서, 오로치의 기운이 느껴졌다.
* * *
뚝-
이마에 무언가 떨어진다.
뚜욱-
뜨뜻미지근하고 끈적한 액체.
나카모토 히로시는 생각했다.
‘또다.’
누워 있는 자신의 이마에 규칙적으로 떨어지는 끈적한 액체.
그리고 코를 찌르는 냄새.
이 냄새는―
‘또 그 꿈이다.’
항상 같은 꿈이었다.
눈을 감고 누워 있는 상태로 움직이지 못하는 자신.
이마 위로 떨어지는 끈적한 액체.
코를 찌르는 혈향까지.
그리고.
‘시, 싫어.’
이 뒤에 어떤 내용이 이어지는지는 이미 알고 있었다.
눈이 점점 뜨이고 있는 중이었다.
나카모토 히로시는 필사적으로 눈을 감기 위해 노력했다.
그러나 이 꿈에서 그는 무력했다.
그 어떤 움직임도 허락되지 않았다.
할 수 있는 것은 그저 받아들이는 것뿐.
‘으아아악!’
어두운 천장에 그것들이 있었다.
흉하게 얽히고 설킨 시체들.
남자, 여자, 노인, 아이 할 것 없이 비참하게 뒤엉킨 시체 덩어리.
그것들의 원망섞인 눈동자가 자신을 내려다보고 있었다.
이내 그곳에서, 썩은 핏물이 떨어져 내렸다.
뚝―!
기분 나쁜 감각과 함께 혈향이 더욱 짙어졌다.
천장이 온통 피투성이였다.
투두둑!
피가 비처럼 쏟아져 내린다.
쏴아아아―
방 안이 온통 핏물로 가득 차오른다.
나카모토 히로시의 이마를 두들기던 핏물은 어느새 그의 전신을 두들기고 있었고, 핏물이 콧구멍으로, 입으로, 귓구멍으로 들어가기 시작한다.
어느새 방 안은 핏물로 가득 차 있다.
비명을 지르고 싶지만, 움직일 수 없었다.
소리 없는 비명이 끊임없이 울려 퍼졌고, 완벽히 핏물에 집어삼켜졌을 때.
“허억!”
간신히 악몽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
“허억, 허억.”
식은 땀으로 가득한 침대와 떨리는 자신의 몸.
이불은 축축하게 젖어 있었다.
착각일까?
뚜욱-
“허억!”
머리 위로 핏물이 떨어져 내리는 것만 같았다.
다급하게 고개를 들었다.
방은 어둡지 않았다.
악몽에 시달리면서 잠들 때도 불을 켜고 잠들었으니까.
아무것도 없었다.
그러나 꿈 속에서의 그 장면이 생생하게 떠올랐다.
“우욱.”
다급하게 몸을 일으킨 나카모토 히로시가 향한 곳은 화장실이었다.
화장실 변기를 잡고 구토했다.
“우웨에에엑!”
내용물은 텅 비어 있는 초록색 물.
“하아. 하아.”
토사물이 묻어 있는 입가를 닦아 내곤 세면대 앞에 섰다.
벌겋게 핏발 선 자신의 눈이 보였다.
꿈에서 봤던 원한 가득한 시체들의 눈동자와 겹쳐 보였다.
순간 충동적으로 인벤토리 안에 있던 칼을 뽑아들었다.
타카하시 료우.
그가 들고 있던 칼이었다.
그것을 들어 자신의 목을 향했다.
그때였다.
“이러려고 그 칼을 보관했던 겁니까?”
“재, 재현 님…….”
바로 옆에 김재현이 있었다.
잠시 침묵이 흘렀고, 김재현이 먼저 입을 열었다.
“헤라클레스의 12과업에 대해 들어 본 적 있나요?”
“그…… 무슨 사자와 히드라를 죽였다는 이야기 아닙니까?”
“맞아요. 헤라클레스가 그 과업을 수행하게 된 데에는 자신의 죄를 속죄하기 위함이었죠.”
그의 말을 잠시 곱씹어 보던 나카모토 히로시가 답을 내리고는 물었다.
“제가 죽는 건 속죄가 되지 않는다는 말씀이군요. 살아서 속죄를 해야한다는 말씀이지요?”
“흠. 그런 식으로 받아들일 수도 있겠네요. 하지만 제가 하고 싶은 말은 그게 아닙니다. 저는 그 일화를 처음 접했을 때 헤라클레스에게는 죄가 없다고 생각했어요.”
“……네?”
“헤라클레스가 자신의 가족들을 죽인 것은 결국, 헤라가 그를 미치게 만들었기 때문이었잖아요? 사실상 죄는 질투에 눈이 먼 헤라가 지었는데, 그 죄에 대한 속죄는 헤라클레스가 해야 한다는 게 이해가 가질 않았죠.”
말장난인가 싶었지만, 김재현의 표정은 더 없이 진지해 보였다.
“제가 헤라클레스였다면, 저는 헤라를 죽였을 거예요. 왜냐하면 그 모든 일의 원흉은 그를 미치게 만든 헤라였으니까요.”
“……그렇군요.”
나카모토 히로시는 묘하게 설득되고 있었다.
“그러니까 나카모토씨가 분노해야 될 대상은 나카모토씨 스스로가 아니라 당신을 변이체로 만든 존재라고 생각해요.”
김재현이 손을 뻗으며 말을 이었다.
“그렇게 버려 버릴 목숨이라면 그 목숨, 저에게 맡겨 보시는 게 어떤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