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bsolute Dweller RAW novel - Chapter (226)
227화 [Episode 47] 트로이 목마 (4)
“핵을 깨트려야 한다고?”
[그렇다.]여덟 개의 머리와 꼬리를 가진 은색 뱀.
야마타노 오로치의 모습을 본따 만든 미니어처 같은 생물은 거침없이 자신의 약점을 설명해 주었다.
[내 모든 힘은 그곳에서 피어난다. 내면 깊숙한 곳에 숨겨진 핵이 바로 내 힘의 근원이다. 내 무의식 속, 내 자아와 연결된 핵을 깨뜨린다면 나를 죽일 수 있을 것이다.]그러니까 요약하자면 놈의 약점은 현실 세계가 아닌 정신 세계에 존재한다는 소리였다.
‘릴리트 때와 비슷한 경우인 건가.’
본체라고 할 수 있는 핵이 현실에 없으니, 아무리 공격을 퍼부어도 소용이 없었던 것이다.
하지만.
‘놈의 말이 진짜라는 보장도 없다.’
아쉽게도 놈에게는 독심술이 통하지 않았다.
대신.
‘진실을 말하고 있다는 느낌이기는 한데…….’
어렴풋이 놈이 진실을 말하고 있다는 것 정도는 전해져 왔다.
하나 그것만으로 놈을 믿을 수는 없는 일이다.
미니 오로치가 다급하게 말을 이었다.
[원래는 이 의식이 너를 정신세계로 인도해 줄 예정이었다. 그런데 어째선지 불가능하더군. 하지만 네가 직접 원한다면 가능할 것이다. 시간이 없다. 지금이 아니라면 다시는 기회가 없을 것이다.]단도직입적으로 말했다.
“네 말을 어떻게 믿지? 그리고 어째서 스스로를 죽여 달라는 거지? 나를 함정에 끌어들이기 위한 거짓말로 밖에는 안 보이는데.”
솔직히 말이 안 되잖아.
[……그렇군.]여덟 개의 머리가 침울한 표정으로 가라앉았다.
그러더니 결심했다는 듯 고개를 들었다.
[핵을 깨트린다고 해서 내가 진짜로 죽는 것은 아니다. 원래 있던 곳으로 돌아가게 될 뿐이지.]“그게 무슨 소리지?”
[말 그대로의 의미다. 본래 내가 있어야 할 곳으로 돌아가게 도와달라는 것이다. 게다가 지금의 내 상태는 정상이 아니다. 알 수 없는 이유로 인해 폭주하며 나조차도 내 힘을 감당할 수 없게 된 상태이니까. 말하자면 나는 현재 내 힘에 집어삼켜진 상태라고 할 수 있다. 그래서 네가 이런 부탁을 하게 된 것이다.]듣고 보니 약간 불쌍해 보였다.
‘나도 검은 기운의 주인에게 몸을 빼앗기게 되면 이렇게 돼 버리는 건가?’
어쩌면 내 미래가 될 수도 있었으니까.
“인간을 변이체로 만든 것도 네 의지는 아니라는 거네?”
[아니다. 원래 그 힘은 내 아이들을 강화시키기 위한 힘이지, 미치게 만드는 힘이 아니니까.]어딘가 분해 보이는 표정의 뱀들을 보고 있자니 약간은 혼란스러웠다.
“원래 신격이라는 힘은 그런 식으로 통제할 수 없게 되기도 하는 게 정상인 건가?”
[그건…….]그때였다.
우우웅-
은빛 기운이 눈에 띄게 약해지고 있었다.
그러자 다급히 첨언했다.
[아까도 말했지만, 다시 이런 기회는 없을 거다. 우연에 우연이 겹쳐 생겨난 기회이니까. 어떤 미친 해골이 날뛰어 준 데다가 이해할 수 없는 변화가 일어난 개체들이 있어 이런 일이 가능했던 것이다. 이번 기회를 놓치게 되면 언제 또다시 이런 기회가 올지 모른다. 제발, 나를 막아다오!]“……도와주도록 하지.”
미니 오로치의 여덟 개의 뱀 머리가 동시에 밝은 표정을 지었지만.
[어, 어째서?]이내 당황하고 말았다.
딱 봐도 무언가 자기 마음대로 잘 안 되는 듯 했다.
의외로 나는 그 이유를 쉽게 알 수 있었다.
‘이 힘들이 갑자기 어디서 나타났나 했더니…….’
이제 보니 불사의 망령과의 전투에서 검은 기운에 잡아먹혔던 기운이었다.
흡수된 은빛 기운이 변이체였던 경험이 있는 이들의 머리로 흘러들어 가 고이게 된 것이다.
‘그래서 이 타이밍에 존재감을 드러낸 거였군.’
그렇다면.
‘결국에는 나에게 흡수된 힘이다. 즉.’
내가 다룰 수 있을 것이라는 점.
미니 오로치에게 들은 정보를 참고하여 정신세계로 이어지는 통로를 이미지했다.
그리고.
‘동대문 개방.’
우우웅-
은색 기운들이 내 통제 아래 뭉쳐지며 문을 열었다.
지이잉-
지금까지 소환했던 동대문 중 가장 위태로워 보이는 포털.
미니 오로치가 앞장서며 말했다.
[서둘러야 한다!]나는 그 뒤를 따르며 바깥에 보내 두었던 까미를 소환했다.
-삡!
까미를 어깨에 올린 상태로 동대문 안으로 진입했다.
스르륵-
내가 들어가는 것과 동시에 동대문은 사그라들었다.
동대문을 통해서 들어간 그곳은.
꾸르륵―
물 속이었다.
사방이 어두컴컴하여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 물 속.
[나를 따라와라.]미니 오로치의 안내를 따라 더욱 깊숙한 내면 속으로 진입해 들어갔다.
* * *
“아아아악!”
요코야마 사이토는 절망하고 있었다.
그의 몸이 실시간으로 변이되고 있었기 때문이다.
“어째서!”
시키는 대로 퀘스트를 진행했을 뿐이었다.
시간도 24시간 밖에 없어서 최대한 서둘러서 진행했는데.
꾸르륵-
겨우 한 마리를 잡은 직후에 몸이 변이하기 시작한 것이다.
“사, 살려……!”
그의 힘이 되어 주던 검은 기운은 아무런 조치도 취하지 않고 있었다.
그저 가만히 그의 심장에서 상황을 관망하고 있을 뿐이다.
마치 처음부터 그가 변이되는 것을 원했던 것처럼.
꾸드드득!
결국, 변이체를 그토록 증오하던 요코야마 사이토는 스스로가 변이체가 되고 말았다.
그 직후.
화르르륵-
그의 심장에 있던 검은 기운이 뒤늦게 움직이기 시작했다.
변이체로 변하며 온몸에 가득하게 된 은빛 기운이 급속도로 검은 기운에게 흡수되었다.
그리고.
지이이잉-
문이 열리고.
화르륵!
그 안으로 빨려 들어갔다.
* * *
꽤 오랜 시간을 헤맨 끝에 미니 오로치가 말했던 핵이 있는 장소에 도달할 수 있었다.
[여기다.]그곳에는 집채만 한 바위가 은은한 빛을 뿜어내며 존재감을 과시하고 있었다.
[이걸 부수면 모든 것이 끝난다.]잠시 바위를 바라보던 나는 시선을 돌려 미니 오로치를 향해 물었다.
“방금 물음에 대한 대답을 해 줬으면 하는데.”
[……폭주에 대한 것 말인가?]“그래. 원래 신격은 그런 위험을 안고 있는 것인가?”
[그렇지는 않다.]미니 오로치는 잠시 침묵하다 사실대로 이실직고했다.
[그 또한 나이다. 보시다시피 나는 여덟 개의 다른 의지가 존재한다. 파괴와 살육 또한 또 다른 나의 의지에서 나온 결과물이다.]“…….”
[그러니까 나를 멈춰다오. 이것을 부수면 모든 것이 원래대로 돌아올 것이다.]도쿄에 똬리를 틀고 있는 야마타노 오로치도 사라지고, 일본 전역에 들끓고 있는 변이체들도 인간으로 되돌아갈 것이란 소리였다.
자신의 약점이 있는 곳까지 친히 안내해 준 미니 오로치.
잠시 고민했었다.
놈의 신격을 흡수해도 괜찮을지.
하지만 방금 대화로 인해 망설임은 사라졌다.
[까미야 이리로 와.]핵을 부수는 것에서 끝낼 생각은 없었다.
[삼족오(三足烏)가 힘의 개방을 요청합니다.] [허가하시겠습니까?] [예 / 아니오]‘그래.’
-삐익!
까미가 본신의 모습을 드러내는 것과 함께 사방으로 검은 불꽃이 피어올랐다.
화르륵!
모든 것을 불태우는 검은 불꽃은 순식간에 집채만 한 바위를 집어삼켰다.
검은 불꽃이 닿는 부분을 따라 은색 기운이 폭발하며 저항했지만, 검은 불꽃은 그것의 목덜미를 문 채로 놓아주지 않았다.
그제야 무언가 잘못되어 가고 있다는 것을 눈치챈 미니 오로치가 나를 제지하려 했으나.
화륵!
내 주변에 피어난 검은 불꽃으로 인해 접근조차 할 수 없었다.
[그, 그만! 안 돼!]꿈에도 몰랐을 것이다.
자신이 여기까지 끌고 온 것이 스스로를 파멸시킬 트로이 목마라고는 상상도 못 했겠지.
화르르륵!
녀석의 말은 사실이었다.
힘의 본질인 핵이 검은 불꽃에 집어삼켜질 때마다 미니 오로치의 모습이 급격히 희미해져 가고 있었다.
그 순간.
쏴아아아아―
불타고 있는 바위가 사방으로 은빛 광채를 내뿜었다.
그리고.
부글부글부글-
내 몸을 둘러싸고 있던 물이 순식간에 증발하며 거대한 뱀의 머리가 되었다.
분노한 뱀 머리가 나를 향해 입을 크게 벌렸고, 입 안에서 은빛 기체를 내뿜었다.
쐐애애애액!
그러나 그것은 내 주변을 둘러싸고 있는 검은 불꽃을 뚫지 못하고 주변으로 바스러져 갔다.
그렇게 바위를 절반쯤 불태웠을 때.
[집구석 절대자에게 적대적인 신격이 발견되었습니다.] [격이 낮은 신격을 흡수합니다.]그리고
[새로운 환수가 등록되었습니다.]그와 동시에 희미해져 가던 미니 오로치의 몸이 다시 선명하게 되돌아왔다.
「야마타노 오로치 (Lv. 1)」
이무기.
신격이 완전히 흡수되며 여덟 번째 환수가 된 것이다.
미니 오로치는 릴리트가 처음에 환수가 되었을 때 그러했듯이, 멍한 눈길로 불타고 있는 바위를 바라보고 있었다.
‘인과응보라고 생각해라.’
변이체였던 이들과 야마타노 오로치의 상황은 일견 비슷해 보이는 면이 있었다.
하지만 곰곰이 비교해 보면 전혀 다른 케이스였다.
비유하자면 야마타노 오로치는 음주 운전을 한 놈과 같았다.
음주로 인해 이성적인 판단이 불가능했다고 변명하는 것일 뿐이었다.
하지만 변이체가 된 이들의 경우, 그 음주 운전 차량에 치여 날아가는 과정에서 다른 피해자를 만든 것과 같았다.
자신도 치여서 크게 다친 피해자인데, 그 과정에서 자신의 몸에 부딪히거나 깔려서 죽은 사람이 생겨난 것이다.
그러니 변이체가 된 이들에게는 죄가 없다.
‘끝났다.’
모두에게 만족스러운 결과는 아닐 것이다.
야마타노 오로치가 사라진다고 해서 상처 입은 사람들의 마음이 회복되는 것은 아니었으니까.
상처가 아물기 위해서는 그저 시간이 지나길 기다리는 수밖에 없었다.
‘조금이라도 위안이 될 수 있길.’
야마타노 오로치가 사라지며 변이체에서 인간으로 돌아온 이들이 많아졌으니, 타카하시 료우나 후지타 카야처럼 소중한 사람을 다시 되찾는 경우가 생겨날 것이다.
‘할 일이 많겠군.’
야마타노 오로치를 처치하기 위한 공략조는 짤 필요가 없어졌지만, 대신 일본 전역에 퍼져 있는 생존자들을 구출하러 다녀야 할 것이다.
게다가.
‘내부적으로도 자잘한 문제들이 있고.’
흡혈귀인 상태로 시민권을 얻은 사람, 강원도 지하 벙커에 숨어 있던 정치인들, 그 외 범죄자들과 사람들 사이에 벌어지는 사소한 갈등까지.
시민의 숫자가 끝도 없이 늘어 가면서 골치 아픈 일들이 너무 많아졌다.
게다가 지금 태평양을 가로질러 미국으로 향하고 있는 항공 모함 문제도 있었고.
‘일단은 여기서 나가자.’
그때였다.
‘음?’
갑자기 위화감이 느껴졌다.
나를 둘러싸고 있는 검은 화염의 일부분에서 무언가 이질감이 느껴지고 있었다.
무언가 이상하다는 것을 느낀 직후.
화아아악―!
검은 불꽃에서 튀어나온 끈적끈적한 검은 기운이 나를 덮쳤다.
“!!!”
그리고.
‘……뭐야.’
정신을 차렸을 때에는 한치 앞이 보이지 않는 칠흑같은 어둠 속에 남겨져 있었다.
[까미야?]곧바로 텔레파시부터 사용해 보았다.
다행히 텔레파시를 사용하는 것에는 문제가 없었지만, 까미는 반응해 오지 않았다.
‘그러면.’
급한대로 호신강기를 펼치자.
우우웅
몸 주변에 푸른 빛이 깃들며 주변의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여긴……?”
철근이 더덕더덕 붙어 있는 콘크리트.
엉망진창으로 파손된 도로와 그 위에 방치되어 있는 차량.
부서진 창문과 일부가 무너진 건물.
내가 있는 곳은 빛 한 점 없는 망가진 도시였다.
그때였다.
“만나서 반갑다.”
목소리가 들려왔다.
익숙하면서도 약간은 낯선 목소리.
“나는 김재현이다.”
등 뒤에 나와 똑같은 얼굴을 한 존재가 서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