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bsolute Dweller RAW novel - Chapter (228)
229화 [Episode 48] 미래 (2)
검은 기운.
놈의 기억을 들여다보면, 처음부터 미래의 내가 검은 기운을 사용했던 것은 아니었다.
에너지의 색깔은 개개인마다 다양했고, 그것에 담겨 있는 성질마다 가지각색으로 피어난다.
하지만 다른 이의 능력을 포식하는 미래의 나는 그 시기마다 색이 변하곤 했다.
처음에는 무채색.
세계수를 잡아먹고 난 뒤에는 강렬한 생명력이 느껴지는 초록색이 가장 강렬했고, 다른 힘을 흡수할 때마다 무지개색으로 찬란하게 빛났다.
그 색이 완벽하게 검게 물든 것은.
‘저것들을 먹어 치우고 나서부터지.’
지구 전역을 덮쳐온 검은 재앙.
전체적으로 검게 물들게 된 것은 그 이후부터였다.
그러니까 쉽게 말해, 지금 주변에 깔린 이 검은 기운들은 미래의 내가 직접 길들인 야생 동물 같은 존재였다.
나는 그 목줄을 건네받은 것뿐이고.
그렇다면.
‘나도 길들이는 과정을 거쳐야겠지.’
미래의 나 덕분에 한 가지 확실하게 깨달은 것이 있었다.
그것은 바로 내 힘의 본질.
‘포식.’
콰직!
내 의지에 반응하던 검은 기운들이 주변에 온통 깔려 있는 어둠을 먹어 치우기 시작했다.
미래의 내가 보여 준 영역 경계면의 그것들처럼 검은 기운을 집어삼키기 시작한 것이다.
‘역시.’
아무리 넘겨받은 목줄이라고 해도 나를 주인으로 인식하는 힘은 존재했다.
지금 나에게 반응해 오고 있는 힘들은 확실히 내 편에 서 준 것이다.
그것들은 고스란히 내 힘이 되어 주고 있었다.
그와 동시에.
우우웅―!
익숙한 형태의 투명 장벽이 내 주변을 둘러쌌다.
각진 형태의 투명 장벽.
규격화되어 있는, 공장에서 찍어 낸 듯한 공간의 형태.
익숙했다.
‘여기는 거실인가.’
왼쪽으로 이어진 것은 주방과 다용도실, 오른쪽으로 넓게 자리 잡은 곳은 안방과 옷 방, 뒤쪽으로 길게 이어진 복도와 두 개의 작은 방, 화장실.
이 형태는 우리 집을 꼭 닮아 있었다.
으적!
영역 바깥쪽으로는 검은 기운들이 파수꾼이 되어 주변을 지켰다.
그리고.
우우웅!
영역 안쪽으로는 가지각색의 기운들이 공존하며 나를 보호하고 있었다.
초록빛이나 보랏빛처럼 신력을 품고 있는 기운들이 돋보였다.
그중에서도 단연 백미는.
파아앗―
안개처럼 피어나는 은색 기운.
‘이거구나.’
50레벨을 찍은 직후에 나를 지켜 주었던 기운들.
그런데 이제 보니 단순히 신력들로만 이루어진 힘은 아니었다.
‘저것들은 뭐지?’
가지각색의 기운들이 빈 공간을 차지하며 영역을 더욱더 견고하게 만들어 주고 있었다.
‘조금 다른데.’
그때였다.
“푸하하하하!”
영역 바깥에 있던 놈이 박장대소했다.
너무나도 과장된 웃음.
마치 한 편의 연극을 보고 있는 것만 같은 기분이었다.
실컷 웃은 뒤, 놈이 말했다.
“네가? 나처럼 될 수 있다고 생각해? 진심으로?”
나는 아무런 대응도 하지 않았다.
놈의 말이 계속해서 이어졌다.
“지금껏 내 능력으로 온실 속 화초로 자란 네가 도대체 뭘 할 수 있는데? 혼자서 할 수 있는 게 있기는 한가? 모든 것들을 남에게 맡기기만 하던 네가?”
비웃음이 담겨 있었지만, 나는 정말이지 아무렇지도 않았다.
오히려 안타까웠다.
‘어쩌다가 이렇게까지 망가진 건지.’
눈앞에 있는 건, 나였다.
적어도 몬스터 아포칼립스가 터지기 직전까지는 나와 다를 것 하나 없는 삶을 살아온 존재였다.
놈의 유전자와 내 유전자는 완벽하게 일치할 것이다.
그런데도.
‘이렇게까지 추한 꼴이 되어 버리다니.’
놈의 기억을 공유하며 어느 정도 놈을 이해할 수는 있었다.
무척이나 힘든 일을 겪었고, 그 과정에서 많은 상처를 받았다.
믿었던 이에게 배신도 당했고, 소중했던 이들을 자신의 손으로 직접 죽이기까지 했으니까.
그 이후 이어졌던 공허한 시간도 그의 정신을 망가트리는 데 큰 영향을 끼쳤을 것이다.
‘내가 겨우 이 정도의 그릇을 가진 사람이었을 줄이야.’
나는 나에게 실망했다.
“너는 혼자서 아무것도 못 해. 이제 와서 힘을 각성한다고 무언가 달라질 거라고 생각해? 아니. 너는 결국 나처럼 모든 것을 잃고 미치게 될 거다.”
그래도 최소한의 바닥은 있구나.
스스로가 미쳤다는 것은 인지하고 있는 모양이다.
“그래서. 네가 내 몸을 차지하면 그걸 막을 자신은 있고?”
“당연하지. 나에게 맡겨라. 나는 이미 멸망을 몸소 겪어 본 사람이다. 너도 나라면 이해할 텐데? 그 편이 훨씬 효율적이라는 거.”
그 말에는 어느 정도 동의한다.
아무래도 경력자와 신입 사이에는 경험이라는 커다란 차이가 존재하니까.
그의 기억을 들여다봤다고 해도 직접 몸으로 경험한 것에 비교할 수 없겠지.
하지만.
“너 나 모르냐?”
“…….”
“너도 나니까 내가 어떤 선택을 할지 감이 오지?”
미쳤다고 몸을 바치겠는가?
세상을 구하기 위해?
엿 먹으라지.
나는 세상 전체보다 당장 내 목숨이 더 소중한 극히 평범한 사람일 뿐이다.
내가 지키려는 것은 세상 같은 거창한 것이 아니었다.
내가 지키고 싶은 것은 내가 속해 있는 작은 세상일 뿐이었다.
내가 있고, 가족이 있고, 친구가 있고, 동료가 있는, 사랑하는 사람들이 살아가는 작은 세상.
“세상의 멸망을 막더라도 내가 막아.”
포기하면 그 결과를 궁금해할 자격까지 없어지는 법이다.
나는 멸망하지 않은 세상의 이후가 궁금했고, 그때까지 살아 있기를 희망한다.
“그리고 니가 한다고 성공하리라는 보장도 없잖아? 또 다 죽이고 너만 혼자 산 다음 과거로 돌아가려는 거 아니야?”
“…….”
어이쿠.
한번 떠본 것뿐이었는데, 정곡을 찔렀나 보다.
‘……미친놈이.’
적어도 저놈의 세상에서는 가족은 포함되어 있지 않았다.
그런데 지금 내가 살고 있는 세상은 가족들이 아직 살아 있었다.
할아버지, 할머니, 엄마, 아빠.
저 놈의 플랜B에는 가족들의 목숨까지 수단으로 전락해 있었던 것이다.
‘아니, 어쩌면 처음부터 그게 목적이었는지도.’
계속해서 시간을 회귀하며 멸망이 찾아오는 13년의 기간을 반복해서 살아가는 게 목적이었을 수도 있겠다 싶었다.
어쨌든 놈은 시간을 거스르는 방법을 알아냈으니까.
‘절대 빼앗겨서는 안 돼.’
내 의지를 전달받은 검은 기운들이 미쳐 날뛰기 시작했다.
휘오오오―
주변에 있는 모든 것들을 집어삼킬 기세로 거칠게 몰아쳤다.
그 효과는 확실했다.
쩌적―
온통 검게만 물들었던 세상에 금이 갔다.
쩌저적―
세상이 부서지고 있었다.
미래의 모습이라며 보여 주던 절망뿐이던 세상이 깨지기 시작했다.
콰과곽!
땅이 금이 가며 갈라지고, 부서진 하늘이 덩어리진 채로 아래로 추락했다.
그때였다.
놈의 입가가 초승달처럼 휘었다.
광기로 번들거리는 두 눈이 나를 똑바로 직시했다.
뚜벅-
놈이 나를 향해 한 발자국 내딛었다.
지금까지 느껴 본 적 없던 압도적인 존재감.
사방에서 거칠게 휘몰아치는 검은 기운을 일체 무시해 버리며 점점 내게 다가왔다.
그러나.
툭.
놈의 발걸음은 투명 장벽 앞에서 멈춰섰다.
투명 장벽이 놈의 진입을 철저하게 막고 있는 탓이다.
놈이 한 손을 들어 올려 투명 장벽 위로 올렸다.
그리고 말했다.
“할 수 있으면 해 봐.”
어딘가 즐거워 보이는 소름 끼치는 미소를 지은 채로.
“어차피 네 선택지는 두 가지뿐이야. 내게 잡아 먹히는 것을 두려워하여 몸을 사리다가 멸망을 맞이하든지, 멸망을 막기 위해 레벨을 올리다 나에게 잡아 먹히든지.”
거미줄처럼 사방으로 퍼져 나가던 실금이.
“건투를 빌지.”
놈의 얼굴까지 뒤덮었다.
그와 동시에.
――――!!
유리가 와장창 깨지는 소리와 함께 세상이 무너져 내렸다.
“…….”
돌아왔다.
정신을 잃은 채로 쓰러진 일본인들의 모습이 보였다.
-삐이이익! 삐이이익!
그리고 평소와 달리 크게 난리를 치는 까미의 모습도.
까미는 내 품에 안긴 채로 작은 몸을 쉴 새 없이 떨었다.
“……괜찮아. 괜찮아.”
내 손길이 닿자 조금씩 떨림이 잦아들었다.
나는 지친 기색으로 주변에 널브러져 있는 일본인들을 훑어봤다.
그들의 머리에는 더 이상 은색 기운의 흔적이 보이지 않았다.
우우웅.
혹시나 모를 이상이 생겼을지도 모르니, 세계수의 생명력을 퍼부어 준 다음 텔레포트를 사용해 병원으로 옮겨 놓았다.
텔레파시로 간단히 상황을 설명해 놓았으니, 의료진들이 알아서 챙겨 줄 것이다.
“후우.”
길게 한숨을 내쉬며 상황을 정리했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놈이 당장 나를 어쩌지 못한다는 사실이었다.
‘레벨을 올리지만 않으면 몸을 빼앗기지는 않을 거다.’
하지만 그럴 수는 없었다.
‘그랬다가는 무기력하게 멸망을 맞이해야 할 테니까.’
그걸 막기 위해서는 적어도 지구 전체를 영역으로 뒤덮을 필요가 있었다.
집구석 영역을 둘러싸고 있는 이 투명 장벽은 처음부터 저 검은 기운을 막기 위해 고안된 벽이었다.
그러니 영역 안으로 편입만 시킨다면 안전을 보장할 수 있었다.
하지만.
‘그것만으로는 부족하다.’
적어도.
‘태양까지는 길을 뚫어야 해.’
어둠에 완벽하게 둘러싸인 세상의 종말은 이미 보고 왔다.
일시적으로 살아남는다고 해도, 오래가지는 못할 것이다.
그러나 과연.
‘레벨을 올린다고 해서 그게 가능하기는 한 걸까?’
대한민국 전체를 뒤덮을 정도로 넓어진 영역이었지만, 태양계를 포용한다는 게 과연 가능한 목표인가.
‘12년.’
굉장히 긴 시간이었다.
지금여기까지 오는 것만 해도 겨우 1년 밖에 걸리지 않았으니까.
‘지구 전체를 뒤덮는 것까지는 어떻게든 가능할 것도 같은데…….’
놈에게 몸을 빼앗기지 않기 위해 충분히 신격을 흡수하는 시간을 감안한다고 해도 12년이라는 시간은 충분히 길었다.
‘하지만 그 이상은…….’
솔직히 무리였다.
사실 지구 전체를 뒤덮는 것만 해도 까마득했다.
‘다른 방법이 필요해.’
인공 태양을 만들든, 정말로 태양까지 영역을 늘리든.
‘그것도 아니라면 그 어둠을 물리치든.’
어떻게든 해야 했다.
살아남기 위해서는.
‘해 보자.’
* * *
아무것도 느껴지지 않는 공간.
남자는 죽어가고 있었다.
변이체가 된 순간부터 남자의 의식은 끝없는 무저갱 속으로 끌려 들어간 상태였다.
아무것도 없는 그곳에서 서서히 자아가 희미해져 가는 것을 느끼며, 죽고 싶어도 죽지 못하는 가장 끔찍한 형벌.
지옥이 있다면 여기가 아닐까.
자신이 무슨 죄를 지었냐며, 분노도 해 보고, 생전의 잘못을 빌어도 봤다.
그러나 말하려 해도 말할 수 없었고, 자신의 목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끝내는 자신이 정말로 존재했던 것인가에 대한 의문을 품어야 했다.
그렇게 생각이 이어지던 것도 어느 샌가 툭툭 끊기기 시작했다.
‘엄마?’
그의 생각은 중간중간 누군가 덜어간 것처럼 텅 비어 있었고, 맥락이 이어지지 않았다.
‘맞다. 운동할 시간인데.’
‘오코노미야키.’
‘배 아파. 아닌가? 등. 머리, 머리. 이빨.’
자아가 분해되고, 가끔 단어 몇 개가 이어지며 문장이 되기도 하고, 그저 단어로 남아 있기도 했다.
그렇게 처절하게 망가져만 가던 그때.
파아아앗―
어둠 속에서 빛이 피어났다.
‘……뭐지?’
자그마한 희망의 빛.
그것은 너무나도 희미하였지만, 칠흑 같은 어둠 속이기 때문인지 더욱 찬란하게 존재감을 내뿜고 있었다.
‘……빛.’
남자가 빛을 인식한 순간.
‘……빛이다!’
그는 본능적으로 그곳을 향해 허우적거리기 시작했다.
‘허억! 허억!’
퇴화된 감각이 조금씩 돌아온다.
손끝의 감각이 돌아온다.
심장이 뛰는 것을 느낀다.
호흡을 느낀다.
파아아앗―!
시야가 개방되었다.
“허억!”
남자는 현실로 돌아온 것이다.
이런 일들이 일본 전역에서 펼쳐지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