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bsolute Dweller RAW novel - Chapter (240)
241화 [Episode 52] 협력 (2)
“알겠어, 금방 갈게.”
마침 하늘을 날고 있던 곳이 본가 근처였다.
전화를 끊고 땅을 내려다봤다.
부산 서구.
하늘에서 내려다 본 남부민동의 풍경은 1년 전과 비교하여 많은 점이 달라져 있었다.
가장 큰 차이점은 역시 세계수의 존재였다.
우리 집에서 뿌리를 내리며 자라났던 세계수는 잠실의 롯데 타워보다도 높게 자라난 상태였다.
두께도 어마어마했기 때문에 하늘에서 내려다보면 부산 어디에 있든 세계수가 보일 정도였다.
세계수의 꼭대기에서 서면 바로 옆의 영도와 남포동, 보수동, 대신동을 포함한 서구와 중구 일대가 훤히 내려다보일 정도로 높았다.
다만, 그 풍경은 이전과는 많이 달랐다.
공동어시장 옆에 자리 잡은 자갈치 시장과 냉동 공장들.
산 중턱까지 따닥따닥 붙어서 지어진 주택들.
대신동의 아파트들과 남포동에 있는 수많은 상가까지.
콘크리트 건물들을 모조리 모습을 감추고, 그 자리에 숲이 만들어졌다.
세계수만큼은 아니지만, 수십 미터 높이로 자라난 나무들이 빽빽하게 자리를 메꾸고, 아스팔트 바닥은 다양한 풀들이 뒤덮었으며, 콘크리트 건물은 이끼나 덩굴로 뒤덮였다.
도무지 1년 만에 일어난 변화라고는 생각할 수 없는 풍경이었다.
‘이것도 세계수의 영향이지.’
정상적인 과정으로 식물들이 이렇게 자라나기 위해서는 최소 수백 년쯤 필요했을 것이다.
세계수가 자라날 때마다 숲의 영역이 늘어났고, 점진적으로 늘어 가던 영역은 이제 부산역까지도 진출해 있었다.
사실상 부산 서구, 영도구, 사하구 일대는 도시가 아닌 울창한 숲이 되어 버린 상태였다.
숲 전체에 은은하게 퍼져 있는 세계수의 생명력이 이런 말도 안 되는 결과물을 만들어 낸 것이다.
‘그러고 보면…….’
세계수의 생명력.
마찬가지로 신력이 깃든 힘이다.
‘언젠가부터 자연스럽게 스며들어 있었지.’
정확한 계기는 할아버지의 신뢰도가 100이 되었을 때부터 세계수의 생명력을 자연스럽게 사용할 수 있게 되었다.
그때 당시에는 신격에 대해 제대로 인지하고 있지도 않았고, 신격을 흡수해 본 적도 없었기 때문에 세계수의 존재를 신경 쓰지 않았었다.
하지만.
‘사실은 조금 달랐지.’
내 기억.
정확히 말하자면 다른 시간대의 기억.
집구석 절대자 능력이 아닌 단순 포식 능력만 있었던 그 시간대의 기억 속에서 세계수는 할아버지의 능력이 아니었다.
미래의 나에게서 주입받은 기억은 흐릿한 기억이 대부분이었지만, 세계수가 어떤 존재였는지 만큼은 생생하게 기억이 났다.
부산 전체를 집어삼키며 인간에게 굉장히 적대적인 감정을 가지고 있었던 신격이었다.
솔직히 그 기억을 물려받은 뒤로 세계수에 대한 감정은 그리 좋지 못했다.
‘세계수는 그 시간대에서 내 가족들을 죽인 존재니까.’
할머니, 할아버지, 엄마, 아빠.
모두 세계수의 영역에서 비참한 죽음을 맞이했고, 그 시체를 그 시간대의 내가 직접 두 눈으로 확인했었다.
그 충격 때문인지 세계수에 대한 기억만큼은 정말이지 저릿저릿할 만큼 생생하게 머릿속에 남아 있었다.
“……쯧.”
그렇기에 우리 가족의 보금자리인 저곳에 커다란 세계수가 떡하니 자리 잡은 꼴이 그리 달갑지만은 않았다.
서면의 아파트로 이사를 오기 전에는 20년 넘게 살았던 집이고, 마을이었다.
그런 곳이 숲으로 변한 모습을 보고 있자니 기분이 복잡했다.
-삡!
태양빛을 받으며 천방지축으로 하늘을 날아다니던 까미가 내 머리 위로 올라탔다.
그러곤 앙증맞은 두 날개를 사용하여 내 머리를 쓰다듬었다.
마치 내 기분을 읽었다는 듯이.
정말 신기하게도 별것 아닌 그 스킨십을 받고 있자니, 기분이 한결 나아졌다.
‘……그러고 보니 미래의 나는 왜 세계수의 힘을 할아버지에게 준 거지?’
따지고 보면 까미도 세계수와 비슷한 입장이라고 할 수 있었다.
이전 시간대에서 나와 대적하다가 잡아먹혔다.
그리고 시스템 안에 완벽하게 편입되어 환수라는 형태로 나타났다.
나에게 잡아 먹혀 환수가 된 릴리트와 완벽히 똑같은 입장이라 할 수 있었다.
이전 인격은 완전히 사라지고, 귀엽고 앙증맞은 외모에 걸맞은 순수한 영혼으로 재탄생한 것이다.
그러나 세계수의 경우 까미와는 달리, 이전 시간대와 동일한 장소에서 자라났다.
‘환수 중에 페어리가 있긴 하다만…….’
페어리의 원형은 쉽게 유추할 수 있었다.
‘당시 엘프들의 족장. 세계수의 수호자였던 놈인 것 같지.’
까미나 릴리트와 마찬가지로 덩치가 작아지고 귀여운 외모로 변하긴 했지만, 특유의 그 까칠한 얼굴이 남아 있어 알아볼 수 있었다.
‘어째서 세계수만 본체가 환수로 편입되지 않은 거지?’
미래의 내가 의도한 것이었을까?
어떤 의도가 숨어 있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은 들었다.
페어리 대신 수호자가 된 할아버지는 막강한 힘을 기반으로 생존했고, 잠에 빠진 할머니를 간호할 수도 있었으니까.
나중에 릴리트가 지배하는 공간으로 가 할머니의 잠을 깨울 수도 있었고.
‘결과적으로 모든 것이 잘 풀리기는 했지.’
하지만 그럼에도 무언가 찜찜했다.
세계수는 유일하게 시스템 안에 완벽하게 편입되지 않은 신격이었으니까.
환수든, 상점 물건에 편입되든, 일정 시간 소환할 수 있는 스킬이 되든.
완벽하게 시스템 안에 종속되어 버린 다른 신격과 달리 일말의 자유가 보장되어 있다는 느낌이 그다지 마음에 들지 않았다.
‘야. 왜 그랬냐? 세계수에 대한 증오는 나보다도 네가 훨씬 심했을 텐데.’
속으로 물어봤지만, 묵묵부답이었다.
‘듣고 있냐?’
야마타노 오로치를 처치한 직후 심상 세계로 끌려갔을 때 이후로 미래의 나는 내게 단 한 번도 접촉해 오지 않았다.
다 듣고 있으면서 모르는 척하는 건지, 아니면 그냥 말할 힘도 없는 것인지는 잘 모르겠다.
대답 없는 상대로 계속 말을 걸 수도 없었기에 할 일을 하기로 했다.
“실피드.”
“응~?”
“세계수 뿌리 부분으로 가자.”
“알겠어~”
살랑거리는 바람을 타고 본가가 존재하는 세계수 뿌리를 향해 날아갔다.
* * *
가족들이 모인 거실.
새하얗다 못해 광채가 나는 백색의 비늘을 가진 백사(白蛇)가 거실을 차지하고 있었다.
대략 50cm의 몸길이만 보면 징그러운 뱀이 따로 없었겠지만, 두께가 웬만한 성인 남자의 팔뚝보다 두꺼웠기에 그 모습이 상당히 귀여웠다.
통통한 뱀이라고 해야 할까?
상당히 굼떠 보였고, 실제로도 제 몸을 잘 가누지도 못하는 상태라 위협을 느낄 수도 없었다.
실제 뱀이라기보다는 움직이는 뱀 인형 같달까.
-삡?
병아리보다 조금 큰 까미가 백사의 앞에 서서 고개를 갸웃거렸다.
-쀼?
그러자 백사가 따라서 고개를 기울였다.
그 모습이 꼭 하나의 인형극을 보는 것만 같아 옅은 웃음이 났다.
“잡아먹는 것 아니니?”
내 눈에는 마냥 귀엽게만 보이는데, 아무래도 작은 새가 뱀 앞에 있는 것처럼 보이니 엄마는 걱정이 되나 보다.
“걱정 마세요.”
만약 정말로 까미를 잡아먹으려 해도 그런 일은 벌어지지 않을 것이다.
그야 저래 보여도 까미의 레벨은 무려 33레벨이었으니까.
힘을 개방하지 않은 상태에서의 레벨이 33이었다.
그리고.
「백룡(Lv. 10)」
이제 갓 태어난 새끼치고는 높은 레벨이었지만, 상대가 되지 않는 수준이었다.
“으으으.”
엄마는 백룡이를 보면서 치를 떨며 말했다.
“어우, 징그러.”
아무래도 백룡이의 생김새 자체가 뱀에 가깝다 보니, 그리 마음에 들지 않는 듯했다.
‘귀엽기만 한 것 같은데.’
한창 찡그린 눈으로 백룡이를 살펴보던 엄마가 말했다.
“……그런데 밥은 어떻게 줘야 하는 거니? 쥐라도 잡아 와야 하나?”
그렇게 치를 떨며 싫어하면서도 걱정이 되긴 하나보다.
“따로 밥을 줄 필요 없을 거예요. 세계수 근처에서 흘러나오는 에너지를 빨아 먹고 사는 것 같으니까.”
세계수의 생명력은 지금도 이 근처에 가득 들어차 있었다.
그중 일부는 실시간으로 백룡이의 몸으로 들어가고 있는 중이었다.
“밥은 알아서 챙길 거예요. 걱정하지 마시고 내버려 두세요.”
“으음. 그럼 이름이라도 지어 줘야겠구나.”
“이름이요?”
“아직 아기인데, 밖에 내보낼 수는 없잖아. 집에서 키우려면 이름을 지어 줘야지.”
엄마는 한참 고민하다가 말했다.
“오빠야. 생각나는 거 있나?”
바톤을 넘겨받은 아빠가 의견을 냈다.
“하얀색이니까 흰둥이?”
“흐음. 그것도 좋지만, 그냥 하얀이가 더 이쁘지 않나?”
그렇게 새끼 백룡의 이름은 하얀이로 정해졌다.
엄마는 조심스레 백룡에게 다가가 무릎을 굽히고는 말해 주었다.
“이제부터 네 이름은 김하얀이다. 알겠제?”
엄마의 네이밍 센스를 듣고 있자니, 예전 어릴 적 키우던 강아지가 떠올랐다.
처음으로 기르게 된 코카 스패니얼의 이름은 ‘김다정’이었다.
성을 붙여서 말한다는 건, 엄마 나름대로 가족으로 받아들이겠다는 표시일 것이다.
-쀼!
그러자 마치 엄마의 말을 알아 듣기라도 한 듯 백룡이 엄마에게 다가오려 했다.
엄마는 잠시 멈칫했지만, 조심스레 손을 내밀어 백룡을 쓰다듬어 주었다.
“그, 그래. 착하지이.”
하얀이는 두 눈을 꼭 감고 엄마의 손길에 몸을 맡겼다.
살짝 웃고 있는 엄마의 표정을 보니 벌써부터 정을 주고 있는 것 같았다.
‘생각보다 금방 떠날 수도 있는데.’
하얀이는 사실 부화를 위해 잠시 맡겨진 것에 불과했다.
‘백룡의 부화를 위해서는 세계수의 힘이 필요한 거겠지.’
그 대가로 위기가 오면 자신을 부르라며 할아버지 손에 문신을 남겨 놓기도 했다.
‘사실상 쓸 일은 없었지만.’
백룡의 레벨은 63.
당시에는 압도적인 무력이었으나 지금에 와서는 사정이 달라졌다.
당장 81레벨인 불사의 망령을 소환할 수도 있었고, 한계 돌파에 성공한 이준혁의 경우 백룡과 레벨이 같았다.
가신들이 받는 여러 가지 버프와 개화와 강화를 통해 강해지는 것을 생각한다면 백룡 정도는 충분히 제압하고도 남을 것이다.
그것도 백룡의 주무대인 바다에서.
“할아버지.”
“으잉?”
“그때 백룡이 줬던 계약. 지금 사용해 주실 수 있겠어요?”
“이거?”
할아버지의 오른 손등에 새겨진 문신을 보며 고개를 끄덕였다.
“네, 그거요. 지금 사용해 주실 수 있겠어요?”
“알긋다.”
예전에 백룡이 찾아와 경고한 적이 있었다.
세계수의 힘을 노리지 말라고.
그리고 할머니의 잠에 대한 정보를 얻을 수 있었고, 그것을 토대로 릴리트의 정신세계에 진입할 수 있었다.
그때 당시만 해도 집구석 선포가 된 영역이 그리 넓지 않았지만, 지금 현재는 일본까지도 넓어진 상태.
원래 백룡이 머무르던 바다는 현재 완벽하게 영역 안에 편입되어 있는 상태였다.
그러나 백룡은 어디로 떠났는지 알 수 없었다.
영역이 폭발적으로 넓어지던 시기에는 이미 남해에서 자취를 감춘 것이다.
‘그때 이후로는 한 번도 찾아오지 않았었지.’
놈도 지금쯤이면 자기 새끼가 태어날 때라는 걸 알고 있지 않을까.
‘그때 분명 나를 향해 초월자니, 세계수의 힘을 노리지 말라고 했었지.’
어딘가 이상한 소리였다.
내 힘의 근본이 포식이라는 것을 알고 있는 게 아니고서야 어떻게 그런 말을 한단 말인가?
신격을 지닌 존재라고 해서 다른 신격의 힘을 흡수하거나 하는 일은 할 수 없었다.
그것은 오로지 나만이 가능한 일이었다.
‘이번에 만나면 알고 있는 정보를 모조리 토해 내줘야겠어.’
얼마 뒤.
[허가받지 않은 대상이 출입을 시도합니다.]입질이 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