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bsolute Dweller RAW novel - Chapter (243)
244화 [Episode 52] 협력 (5)
아바타.
쉽게 말하자면 나의 분신.
나와는 달리, 집구석 선포가 된 영역 밖으로 나갈 수 있었다.
그리고.
‘이런 식의 활용이 가능한 지도 몰랐고.’
심상 세계에서 봤던 미래의 나와 완전히 똑같은 표정을 짓고 있는 아바타를 보며 이질감을 느꼈다.
그럼에도 이전 아바타를 볼 때와는 완전히 다른 느낌이었다.
그때는 내가 조종하는 또 다른 몸을 보는 것 같았다면, 지금은 완전히 다른 타인의 모습을 보고 있는 듯했다.
‘분명히 감각은 전해져 오는 데다, 정신도 이어져 있는 것 같은데 말이지.’
묘한 느낌.
그가 씨익 웃으며 말했다.
“이것도 나쁘지 않네.”
“……무슨 의미지?”
“이런 식의 제한된 자유라도 제법 마음에 든다고.”
아바타를 향해 물었다.
“처음부터 의도된 설계가 아니었나?”
아바타를 활용하자고 제안한 것은 저쪽이었다.
그러니까 저놈은 이런 식으로 아바타를 활용할 수 있다는 것을 진즉에 알고 있었다는 뜻이다.
놈이 비릿하게 웃으며 대답했다.
“그래. 내 비장의 한 수였지.”
“쯧.”
“차라리 네 입장에서는 잘된 것 아닌가? 예상하지 못 했던 변수 하나가 제거된 격이니.”
그렇긴 했다.
이 사실을 끝까지 모르고 있었더라면 정말 결정적인 순간에 뒷통수를 맞게 됐을지도 모르는 일이다.
“세계수만 아니었다면 나도 조커 카드까지 보여 주며 협력하지는 않았을 거다.”
“…….”
직전까지만 해도 헤실헤실 웃고 있던 얼굴은 어디 가고 악귀처럼 일그러진 얼굴이 그 자리에 있었다.
웃는 얼굴에서 화난 얼굴로 변하는 속도가 변검술과도 같았다.
얼굴 근육 전체를 활용하여 세계수를 향한 적의를 표현하던 그는 이내 나와 눈이 마주치고는 부드럽게 웃어 보였다.
그러곤 마치 안심해도 된다는 듯한 표정으로 입을 열었다.
“여하튼, 나는 고맙게 생각해. 네가 아니었다면 나는 고작 뿌리만 집어 먹고 세계수 전체를 먹었다고 착각한 머저리로 남았을 테니까.”
독심술을 사용하지 않더라도 저 말이 진심이라는 것은 너무나도 잘 알았다.
정신이 이어져 있었으니까.
놈을 향해 말했다.
“다시 한번 말하지만, 우리의 목적은 오로지 세계수를 포식하는 것뿐이야. 무의미한 피가 흘러서는 안 돼.”
“너는 귀쟁이 놈들을 몰라. 내가 세계수를 집어삼키는 걸 그놈들이 가만히 지켜봐 줄 것 같나?”
“……저번에도 말했듯이 단 한 방울의 피도 흐르지 않길 바라는 건 아니야. 방해하는 건 죽여. 하지만 불필요한 살생은 하지 말라는 뜻이다.”
놈은 재미있다는 표정으로 나를 바라보더니 한 발자국 가까이 다가왔다.
숨소리마저 들리는 거리에서 놈이 목소리를 낮춰서 말했다.
“이건 전쟁이야. 진심으로 그게 가능할 거라고 생각하는 거야?”
“…….”
“내가 준 능력 안에서 안락하게 살아와서 현실 감각이 없나 본데, 그런 건 불가능하다고.”
광기에 가득 찬 눈동자가 나를 향하고 있었다.
‘보이지 않는 손.’
내 앞에 바짝 다가와 있던 아바타의 몸이 허공으로 치솟았다.
보이지 않는 손이 아바타의 목을 낚아챈 것이다.
더불어 다른 손들이 아바타의 전신을 옥죄었다.
여전히 번들거리는 두 눈동자를 똑바로 마주 보며 말했다.
“최대한 조심하라는 뜻이다. 어차피 칼자루는 내가 쥐고 있다는 걸 명심해. 내 심기를 거스르는 순간 아바타를 소환 해제해 버릴 테니까.”
“커헉-.”
“알아들었으면 고개를 끄덕여.”
놈은 힘겹게 고개를 끄덕였고, 거실 바닥으로 떨어졌다.
잠시 목을 쓰다듬으며 콜록대던 놈이 그대로 주저앉아 나를 올려다보며 말했다.
“이 능력을 사용하던 놈이 정말 성가셨었지. 겨우 투명한 손인 주제에 어마어마하게 활용도가 높다니까? 하지만―.”
놈은 의미심장한 미소를 지으며 말을 이었다.
“그놈도 결국, 내게 잡아먹혔지.”
잠시 정적이 흘렀고, 짧은 침묵 뒤에 놈이 먼저 말을 꺼냈다.
“내가 두렵나?”
“…….”
“그래서 이 좁은 집구석에서 나올 생각을 하지 않는 거겠지? 특히나 내가 소환되어 있을 때는 말이야.”
“…….”
“잠도 예전보다 훨씬 줄어든 것 같고…….”
비웃음이 가득한 얼굴로 나를 올려다본 놈이 이어 말했다.
“그때의 패기는 다 어디로 갔지?”
아무런 대답도 할 수 없었다.
불안한 건 사실이었으니까.
나도 알고 있었다.
어떻게든 주도권을 빼앗기지 않기 위해 발버둥치고 있는 내 모습을.
“걱정할 게 뭐가 있지? 어차피 모든 죄는 네가 아니라 내 손으로 행해지는 것이고, 그 과정에서 세계수의 신력 또한 손에 넣게 될 것이다.”
‘놈이 아바타의 몸을 장악하고 신력을 포식했을 때 그 힘이 나에게로 오는가?’에 대한 실험은 이미 검증을 마친 뒤였다.
아리가 찾아낸 39개의 후보지 중 난이도 D급만을 골라 3군데에 아바타를 보냈다.
결과는 대성공.
아바타가 포식한 신격 또한 나의 힘이 되어 준다.
그러니 세계수 또한 마찬가지였다.
아바타의 몸을 차지한 미래의 내가 세계수를 집어삼키는 만큼 나는 강해지게 될 것이다.
‘그리고 그건 이놈도 알고 있고.’
세계수를 집어삼키면 집어삼킬수록 내 몸을 빼앗는 미래가 멀어지게 된다는 것을 모를 리가 없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적극적으로 도와주겠다는 이유가 뭘까.
“나는 가족들의 복수를, 너는 세계수의 힘을.”
표면적인 이유는 저거였다.
놈의 기억을 엿보며 어느 정도 공감되기도 하고.
실제로 세계수에 대한 분노는 나도 어느 정도 가지게 되었으니까.
가족을 잃은 당사자는 내가 느끼는 감정과는 비교도 안 될 정도로 깊은 분노를 가지고 있겠지.
“설마 그 쓰레기 같은 귀쟁이들을 동정하는 건 아니겠지? 만약 네 가설이 맞다면 귀쟁이들은 수많은 차원에 재앙을 흩뿌리고 다닌 거라고? 지구에서 벌어진 일이 얼마나 많이 반복되어 왔고, 또 앞으로 얼마나 많이 반복이 될까?”
격한 분노의 감정이 어투에서 그대로 전해져 오고 있었다.
“우리가 하는 건 지금 앞으로 생겨날 수많은 희생자의 목숨을 구하는 일이라고?”
아바타의 말에 정면으로 반박할 순 없었다.
그는 세계수의 횡포에 상처 입은 피해자이기도 했으니까.
어떻게 보면 세계수가 자초한 일이기도 했다.
이런 세상을 만들어 낸 것은 세계수 쪽이었으니.
놈을 향해 손을 내밀며 말했다.
“선을 넘지 마. 그 순간 다시는 아바타의 몸을 사용할 수 없게 될 테니까.”
“……그러지.”
한바탕 지지고 볶은 다음에야 건설적인 이야기가 시작됐다.
놈이 물었다.
“그래서, 저번에 말했던 방법이 뭐지? 어떻게 세계수의 본체가 있는 차원으로 넘어갈 계획인데?”
“릴리트의 힘을 활용할 거야.”
릴리트.
세계수의 기생충이자 백룡이 ‘올빼미’라 언급했던 것의 정체였다.
차원의 틈에서 세계수에 달라붙어 생명력을 빨아먹고, 그에 더해 세계수 근처의 영혼을 수집하며 연명하던 세상의 주인.
신격을 흡수한 이후 그녀는 내가 부리는 환수 중 하나가 되었고, 그녀가 만들어 둔 세상은 여전히 존재했다.
‘동대문 개방.’
릴리트의 공간을 개방하자 자그마한 생명체가 기다렸다는 듯이 튀어나왔다.
“우왕! 주인님이다! 반가워여!”
다리에 매미처럼 달라붙은 그녀는 잠시 나와 아바타를 번갈아 보더니 작게 비명을 질렀다.
“꺄아악! 주인님이 두 개가 됐어여!”
내 다리에서 떨어져 열심히 나와 아바타를 번갈아 보던 릴리트는 슬그머니 내게로 다가와서는 숨었다.
“저 주인님은 무서워여…….”
나는 가볍게 그녀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말했다.
“오늘은 너희 집에서 이야기를 했으면 하는데, 괜찮을까?”
“저희 집이여? 우와! 주인님이 와 주시는 건 처음이에여! 그것도 한 번에 둘이나!”
릴리트의 환영을 받으며 그녀가 사는 공간 안으로 들어갔다.
“짜잔! 여기가 제 집이에여!”
그 공간은 이전과는 상당히 많은 부분이 달라져 있었다.
우선, 공간 전체가 크게 쪼그라들었다.
이전에는 끝이 보이지 않는 규모의 숲이 그곳에 있었는데, 이제는 고작해야 작은 마을 하나 규모로 줄어들어 있는 상황이었다.
‘하긴, 그만한 규모를 유지할 에너지가 없을 테니까.’
신격이 빼앗긴 직후에 세상이 무너져 가는 것을 직접 지켜보기도 했고.
“괜찮은 거 맞아?”
아바타의 말을 무시한 채로 내 할 일을 시작했다.
‘절대자의 눈.’
화르륵-
검게 물든 눈이 공간 전체를 들여다봤다.
그 즉시 원하던 것을 찾아낼 수 있었다.
‘다행히 아직 흔적 정도는 남아 있네.’
릴리트의 공간에는 세계수 뿌리와 비슷한 형상을 한 것들을 쉽게 찾아볼 수 있었다.
문제는 그것들이 모조리 죽은 뿌리처럼 보인다는 것이다.
세계수의 숲에서 봤던 것처럼 번쩍번쩍이는 것들과는 달리 검게 죽어 흔적만 남아 있는 상태였다.
그곳을 향해 세계수의 생명력을 퍼부었다.
우우웅!
곧바로 반응이 나타나기 시작했다.
죽은 것처럼 보이는 뿌리들이 생기를 되찾으며 빛을 뿌려 댔고, 그와 함께 다른 차원으로의 연결점이 생겨나는 듯했다.
그곳을 향해.
화르륵!
검은 기운을 밀어 넣었다.
“호오?”
일시적으로 되살아난 뿌리를 타고 파고들어 간 검은 기운이 차원을 넘어갔고.
그 순간.
‘동대문 개방.’
이곳에 들어올 때와 마찬가지로 동대문을 개방했다.
그러자.
지이이잉!
평범한 동대문보다는 많이 불안정해 보이는 균열이 생성되었다.
불안정하게 일렁이는 동대문 너머로는 울창한 숲이 보이고 있었다.
아바타가 물었다.
“저긴 어디지?”
“나도 몰라.”
한 가지 확실한 것은.
“적어도 지구는 아니야.”
다른 차원의 세상이라는 것.
그리고.
“세계수가 있는 어떤 세상이겠지.”
그 말을 들은 아바타의 입꼬리가 양쪽으로 길게 째졌다.
“그거면 충분해.”
아바타는 망설임 없이 동대문 너머로 뛰어들었고, 불안정하게 흔들리던 차원 균열은 얼마 안 가 사라졌다.
‘절대자의 눈.’
그와 동시에 아바타를 지켜보는 절대자의 눈 하나를 소환했다.
“이봐, 듣고 있어?”
[듣고 있다.]내가 텔레파시를 보내자마자 아바타의 얼굴이 약간 일그러졌다.
“아쉽네.”
[무슨 의미지?]아바타가 재미있다는 듯 웃으며 대답했다.
“차원 너머로 가게 되면 너와의 연결이 끊어질 수도 있겠다고 생각했거든. 그래서 조금 아쉽단 말이었다.”
나도 우려하고 있던 가능성 중 하나였다.
[그랬다면 곧바로 소환을 해제했을 거야.]“연결이 끊겼다면 그게 가능할지도 의문이고, 가능하다고 해도 시간이 어떻게 꼬일지도 모르잖아? 소환 해제라는 정보가 여기까지 도달하는 데 얼마나 걸릴지도 모르고.”
하여튼 잔머리는.
세계수를 향한 적의는 진짜였지만, 이런저런 기대가 있었기에 그토록 적극적으로 협력해 왔다는 소리였다.
[네 행동은 실시간으로 감시할 거니까 허튼 생각은 하지 않는 게 좋을 거야. 그렇게 되면 두 번 다시 아바타를 활용하는 일은 없을 테니까.]“사장님. CCTV 실시간으로 보고 있는 거 불법 아닌가요? 노동청에 신고할게요.”
헛소리를 지껄이는 것을 보니, 기분이 상당히 업되어 있는 것 같았다.
“그럼. 대충 여기가 어떤 곳인지 부터 볼까.”
텔레포트를 사용해 하늘 위로 이동하자 주변이 훤히 내려다보였다.
그리고.
“빙고.”
지평선 너머에 산처럼 버티고 서 있는 거대한 나무를 발견할 수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