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bsolute Dweller RAW novel - Chapter (246)
247화 [Episode 53] 겨울 (1)
붉은 매 부족의 부족장.
그는 요즘 들어 신세계를 경험하고 있었다.
“아아! 이것은 라이터라는 물건이다!”
“오오오!”
“이렇게 하면 불을 만들어 낼 수 있지!”
치직―
“오오오오!”
일회용 싸구려 플라스틱 라이터에서 불꽃이 솟아오르자 부족원들이 열화와 같은 성원으로 답해 주었다.
“대단해!”
“진짜 불이야? 앗 뜨거! 진짜, 진짜다!”
특히나 이번에는 남녀노소 가리지 않고 뜨거운 반응을 보여 주고 있었다.
“이제 불을 피운다고 생고생할 필요도 없겠어! 사냥 나가서 너무 편하겠는데?”
“언제든지 사용할 수 있는 불씨라니? 그렇지 않아도 불씨 살려 두는 게 고역이었는데.”
“끌끌. 신기하구먼.”
“그럼, 이제 땔감으로 쓸 나뭇가지도 안 주워 와도 되는 거죠?!”
그들 부족 생활에 있어 불은 생존과 직결되는 문제였고, 그렇기에 모두가 조금씩 불과 관련된 업무에 매여 있었기 때문이다.
손가락 스냅 하나로 불을 만들어 낼 수 있는 이 작은 도구로 인해 그 모든 노동을 대체할 수 있게 된 것이다.
누군가 부족장의 어깨를 다독였다.
“정말 대단한 물건을 찾아 주었어.”
“아버지…….”
자신의 아버지이자 전대 부족장인 ‘붉은 매의 조용한 그림자’였다.
“저번에는 아무런 가치도 없는 걸 돈 주고 샀다기에 속이 답답해졌는데 말이다.”
“……그런 실패가 있기에 이런 값진 발견이 있는 것 아니겠습니까.”
“그래, 그렇지.”
참고로 부족장이 저번에 사 온 물건은 ‘생수’였다.
“그래도 그렇지 이놈아. 어떻게 강물을 돈 주고 살 수가 있어?”
“……물이 아니라 그 투명한 통을 산 겁니다. 그건 잘 쓰고 있지 않습니까? 안에 들어 있던 강물은 덤입니다, 덤.”
전대 부족장이 씨익 웃어 보이며 말했다.
“그래. 그런 탐구심이 네 장점이었지.”
“네. 그래서 신과 대면할 수도 있었지요.”
전대 부족장은 인상을 와락 찌푸리며 대답했다.
“대신 소중한 네 새끼를 잃을 뻔했지. 위험은 언제나 그림자 속에 함께하는 법이다. 열매가 클수록 그림자도 커지는 법이지.”
“……명심하겠습니다, 아버지.”
약 한 달쯤 전, 그는 금기를 어겼었다.
어머니 나무의 근처에 다가가지 말라.
처음부터 금기를 어기려는 의도는 없었다.
그러나 사냥감이 어머니 나무가 있는 방향으로 도망쳤고, 포기하기에는 너무 아까웠을 뿐이다.
거의 반나절을 추적하며 돌팔매질을 했었으니까.
이제 조금만 더 하면 끝이라는 것을 알고 있었고, 자신의 판단으로 금기를 어겼다.
그리고 그 결과.
아들의 심장에 엘프의 화살이 꽂혔다.
그는 아직도 그 순간을 잊지 못했다.
초록으로 빛나는 화살이 아들의 가슴에 박히는 순간을.
‘신의 도움이 아니었다면 아들은 죽었겠지.’
그뿐만이 아니다.
아마도 자신을 포함한 사냥을 나온 남자 전원이 살해당했을 것이다.
신께서는 모두를 구해 주신 것이다.
뿐만 아니라 직접 힘을 행사하시어 죽어 가던 아들을 되살려 주셨다.
기적이 일어난 것이다.
‘그날부터 모든 것이 바뀌었다.’
신이 나타나기 전, 인간은 약했다.
숲에는 인간이 대적할 수 없는 몬스터들로 가득했고, 엘프처럼 인간을 찾아다니며 사냥하는 것들도 존재했다.
특히 어머니 나무가 있는 숲은 그 정도가 더 심했다.
그러나 이젠 아니다.
어머니 나무가 존재하는 숲은 그 어느 숲보다 더 안전했다.
엘프를 포함한 상위 포식자들이 모조리 사라지고 성역이 되었다.
‘신께서 직접 말씀해 주신 대로였지.’
그날, 어머니 나무의 숲에 있던 인간들은 모두 신의 음성을 들었다.
어머니 나무로 모이라고.
부족장은 사람이 그렇게 많이 모여 있는 모습은 난생처음 목격했다.
그리고 그 자리에 있었던 천상계 음식들.
신께서 직접 준비해 주신 것들이었다.
서로를 잘 알지도 못하는 수천 명의 사람들과 몇날 며칠이고 축제를 벌였던 시간은 결코 잊을 수 없을 것이다.
그리고 그 축제를 기점으로 인간은 더이상 나약하지 않았다.
선택받은 자들에게 주어진 천둥 막대기가 있기 때문이다.
이름이 K-2라고 했던가?
부족장이 진지한 표정으로 말했다.
“부족을 이끌고 어머니 나무의 품으로 가고자 합니다.”
전대 부족장. 명목상 부족장의 직책에서는 물러나 있었으나 부족 전체의 명운을 결정하는 데에는 그의 결정이 더욱 중요했다.
그런 그가 잠시 부족의 모습을 훑어봤다.
신의 물건들로 가득해진 부족의 모습.
그리고 아들인 부족장이 등에 매고 있는 천둥 막대기까지.
바로 어제 저것의 위력을 두 눈으로 확인했다.
천둥소리와 함께 오크들을 쓸어버리던 그 모습이 아직도 생생했다.
그가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부족장은 너다. 모두가 네 결정에 따를 것이야.”
“감사합니다, 아버지.”
아버지의 허락이 떨어지자마자 그는 부족을 이끌고 성역으로 향했다.
그렇게 그의 부족 전체가 시민권을 획득하던 그 순간.
파아아앗―
부족원 중 한 명의 몸에서 밝은 빛이 터져 나왔다.
* * *
한 달.
길다면 길고 짧다면 짧은 시간이었다.
가장 큰 변화는 날씨였다.
영하에 가깝게 떨어진 온도가 겨울이 찾아왔음을 실감하게 해 주고 있었다.
‘춥네.’
그 동안 여러 가지로 바빴다.
가장 큰 수확은 세계수의 뿌리가 자라난 차원을 총 2개나 더 공략했다는 것이었다.
아바타가 부지런히 공략을 진행하고 있지만, 처음과 같이 번갯불에 콩 볶아 먹듯 공략이 진행되지는 못했다.
세계수의 뿌리를 타고 다른 차원으로 진입하는 것은 어렵지 않았다.
릴리트의 공간만 활용하면 쉽게 다른 차원의 문을 열 수 있었으니까.
문제는 세계수의 위치를 모른다는 점이었다.
처음과는 달리 바로 근처에서 세계수를 발견할 수는 없었고, 지구만큼이나 넓은 곳을 일일이 뒤져야만 했다.
발견하기만 하면 순식간에 공략해 버리곤 했으나 발견하기까지의 시간이 점점 길어지는 느낌이었다.
‘두 번째 공략 때는 일주일. 세 번째 공략은 보름이 넘게 걸렸지.’
실시간으로 진행되고 있는 네 번째 공략도 벌써 일주일 동안 헤매고 있는 상황이었다.
‘세계수가 수작을 부리고 있나?’
상식적으로 생각해 볼 때 세계수의 뿌리를 타고 이동한다면 바로 근처에서 세계수를 발견해야 정상이었다.
그런데 세계수가 있는 곳에서 점점 멀어지고 있다는 건 저쪽에서 뭔가 대응하고 있다는 뜻이었다.
‘저쪽도 나를 인지하긴 했어.’
타차원의 뿌리를 공략한 직후 세계수와 마주보는 듯한 느낌이 들었던 것은 결코 착각이 아닐 것이다.
그나마 희망적인 것은 세계수의 규모에 비해 대처가 굉장히 미진하다는 점이었다.
최악의 경우 엘프 군단이 지구에 쳐들어온다거나 할 줄 알았는데, 그런 기미는 보이지 않았으니까.
‘정말로 쳐들어온다고 해도 할 수 있는 건 없을 테지만.’
두 번 더 이어진 공략 과정에서 엘프들의 수준이 그리 높지 않다는 것을 확신할 수 있었다.
꼭 아바타가 아니더라도 상대할 방법은 많았다.
‘가신들까지 나설 필요도 없이 아리의 로봇 병단 선에서 정리되지 않을까?’
60레벨이 넘어가는 세계수의 수호자는 조금 버거울 수 있겠지만, 그때는 불사의 망령을 소환하면 그만이었다.
어찌 됐든 아직까지 의미 있는 저항이 없는 것으로 보면 세계수가 나를 공격할 수단이 없다고 봐도 무방할 것이다.
내 입장에서는 잘된 일이었다.
‘이대로 가다가는 정말 세계수를 통째로 집어삼킬 수 있을지도.’
그때 봤던 세계수의 힘을 모두 집어삼킬 수만 있다면 태양계 전체에 집구석 선포를 하는 것도 가능할 것이다.
‘조금 아쉬운 거는 크리스탈인데…….’
이전에는 너무 바쁘면 채수빈을 신경 쓰지 못하기도 했다.
그러나 지금은 8시간마다 알람을 맞춰 두고 꼬박꼬박 그녀를 찾고 있는 중이다.
‘이제 한 시간 남았네.’
내가 신경을 쓰지 않을 경우 그녀가 만들어 낼 수 있는 크리스탈은 8시간에 하나이다.
반면, 직접 검은 기운을 불어넣어 강화할 경우 한 번에 3개를 생산해 낼 수 있게 된다.
효율이 3배나 되니 신경 쓰지 않을 수 없는 것이다.
‘이제 296개인가.’
이렇게까지 크리스탈 수급에 신경 쓰게 된 이유는 간단했다.
하루에 수천 억씩 찍어 내는 ‘과수원’을 건설하기 위해서 크리스탈 300개가 필요했으니까.
현재 아바타가 공략해 놓은 두 개의 차원에는 ‘안전지대’ 효과가 달려 있는 암석 골렘의 심장을 심어 놓은 상태였다.
임시방편으로 차원 간의 연결을 유지하고 있는 셈이다.
‘돈이 좀 들긴 하지만, 나쁘지 않아.’
안전지대 효과가 있는 암석 골렘의 심장을 만들기 위해서는 최소 수십 번은 강화를 시도해야 한다.
그러나 지금은 강화 비용의 할인과 더불어 강화 확률이 올라간 덕분에 그리 큰 부담은 되지 않았다.
‘하루에 수천 억씩 생산해 주는 데 그걸 포기할 순 없지.’
한 가지 아쉬운 점이 있다면.
‘크리스탈 생산 속도가 조금만 더 빨라지면 좋을 텐데 말이지. 어디서 채수빈이랑 똑같은 능력 가진 사람이 안 나타나려나?’
채수빈에게 쌍둥이가 없다는 사실이 아쉬울 뿐이었다.
그때였다.
[시민으로 받아들일 수 있는 조건을 만족하는 개체가 집구석 근처에 접근하였습니다.] [시민권을 제의하시겠습니까?]확인해 보니 지구 쪽이 아닌 과수원이 있는 차원에 사람들이 찾아온 것이었다.
‘불쌍한 사람들이지.’
다른 차원의 케이스를 보면서 확신할 수 있었다.
세계수는 인간을 굉장히 미워한다.
모든 차원의 엘프들이 인간을 증오하며 유독 인간을 죽이는 데에만 가차 없었다.
‘시민권 제의해.’
그 순간이었다.
‘응?’
절대자의 눈으로 대충 훑어본 그 사람들 중에서 어딘가 익숙해 보이는 얼굴이 있었다.
머리가 산발인 데다 원시 부족의 옷을 입고 있긴 했지만, 내가 아는 누군가와 굉장히 닮은 얼굴을 가진 여자였다.
‘채수빈 씨?’
그 순간.
파아아앗―
그녀의 몸에서 빛이 나더니 익숙한 능력을 각성했다.
『이름 : 푸른 바람의 속삭임 (Lv. 20)
신뢰도 : 37
각성 능력 : 크리스탈 제작
경험치 분배율 : 0% (+200%)
정산금 분배율 : 0% (+200%)
★퀘스트 부여 퇴출』
채수빈과 똑같은 능력이었다.
‘대박.’
곧바로 그녀에게 말을 걸었고, 영입 제안을 했다.
그 나이대 애들이 좋아할만한 초콜릿, 젤리, 햄버거 등을 선물하자 흔쾌히 제안을 받아들였다.
[시민 푸른 바람의 속삭임의 신뢰도가 크게 올라갑니다.] [시민 푸른 바람의 속삭임의 충성도가 크게 올라갑니다.]신뢰도와 충성도가 기하급수적으로 증가한 것은 덤.
계약 조건은 채수빈과 동일했다.
크리스탈 하나당 삼천만 원.
조금 아쉬운 것은 그녀의 능력이 채수빈보다는 조금 떨어진다는 것이었다.
직접 실험해 본 결과, 강화를 사용한다고 해도 한 번에 만들어 낼 수 있는 크리스탈은 2개였으며, 가신이 됐음에도 불구하고 능력을 다시 사용하기 위해서는 하루를 꼬박 기다려야만 했다.
‘하지만 덕분에.’
채수빈이 생산해 내는 3개의 크리스탈까지 합쳐 총 301개가 되었다.
과수원을 하나 더 늘릴 수 있게 됐다는 소리였다.
‘운이 좋군.’
그때.
[허가받지 않은 대상이 출입을 시도합니다.]침입자를 알리는 메시지와 함께.
‘으윽?’
강렬한 충격이 전해져 왔다.
그곳에는 온통 얼어붙은 바닷물과, 세찬 눈보라가 휘날리고 있었다.
그 중심에.
「아이스 드래곤(Lv. 87)」
일전에 한번 한반도를 지나쳐 갔던 괴물이 이곳을 노려보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