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bsolute Dweller RAW novel - Chapter (247)
248화 [Episode 53] 겨울 (2)
얼어붙은 바다.
그 위로 거세게 몰아치는 눈보라.
80레벨이 넘어가는 놈들이 으레 그렇듯이 아이스 드래곤에게서도 신격의 존재를 느낄 수 있었다.
전신에서 흘러나오는 새하얀 한기.
저번에 잠시 스쳐 갈 때도 느꼈던 거지만, 놈은 격이 다르다.
그 증거로.
‘영역 안쪽의 바다가 얼어붙어 있다.’
투명 장벽이 뚫린 것은 아니었다.
쿠우웅!
[허가받지 않은 대상이 출입을 시도합니다.]영역을 지키는 투명 장벽은 여전히 건재했으며, 아이스 드래곤을 제대로 막아 내고 있었다.
투두두두―
아이스 드래곤을 중심으로 몰아치는 얼음 파편들 또한 투명 장벽을 뚫지 못하는 상태였다.
그러나.
쩌저적―
신격이 깃든 한기를 완전히 막아 내지는 못하고 있었다.
아이스 드래곤에게서 흘러나온 한기가 영역 안쪽까지 파고들어 실시간으로 바다가 얼어붙고 있는 중이었다.
‘이런 경우는 처음인데.’
참고로 아이스 드래곤은 아리가 파악한 39개의 신격 중 하나였다.
3개밖에 없는 공략 난이도 A등급의 신격으로, 원래는 중국 광저우시에 자리 잡았다고 알려진 놈이었다.
그런데 이렇게 갑자기 등장한 것이다.
삐이이이― 삐이이이―
[경고. 경고.] [현재 제주도 남서쪽 방향 100km 32N 124E 지점에서 이상 현상 발생. 급격한 온도 변화 감지.]뒤늦게 아리가 위험을 알려 왔다.
“늦었어.”
조금 이상하긴 했다.
총 39개의 후보지 중 공략이 끝난 곳들을 제외한 32개의 후보지는 아리가 실시간으로 감시하는 지역이었다.
아이스 드래곤만 한 덩치가 움직였다면 아리가 모를 수 없는 것이다.
그때 서울 상공을 지나갈 때의 속도를 생각하면 도착하기 몇 시간 전에는 보고가 들어왔어야 했다.
그래서 아리에게 물었다.
“광저우는 변화 없나?”
[현재까지는 아무런 변화 없습니다.]“그래?”
[온도가 급격히 떨어지는 이상 현상이 광저우에서 벌어진 것과 무척 흡사합니다. 혹시 광저우의 신격이 이상 현상을 일으킨 지점에서 나타난 것입니까?]“맞아.”
아무래도 아리가 감시를 소홀히 진행한 것은 아닌 모양이었다.
“위성 사진 좀 띄워 줄래?”
[네.]거실에 걸려 있던 티브이가 켜지고, 실시간 위성 영상이 나타났다.
위에서 바라보니 제주도 옆에 하얀색 점이 생성된 것처럼 보이고 있었다.
광저우에서부터 제주도까지 길게 이어진 선이 아니라 점이 생성되어 있다는 것은 놈이 저곳에 갑자기 나타났다는 뜻이었다.
‘갑자기 나타났단 말이지.’
가능성은 여러 가지 있었다.
순간이동을 했을 수도 있고, 존재감을 숨기고 움직이다가 드러낸 것일 수도 있다.
어느 쪽이든 마찬가지다.
‘실수로 부딪힌 건 아니라는 소리군.’
아무래도 아이스 드래곤은 나에게 용건이 있는 듯했다.
‘동대문 개방.’
영역의 끄트머리.
아이스 드래곤과 정면으로 마주 볼 수 있는 장소에 동대문을 열었다.
지이이잉―
개방된 문 너머로 얼음처럼 차가운 아이스 드래곤의 눈동자가 보였다.
나는 태연하게 그것을 마주하며 말했다.
[처음 뵙겠습니다.]나를 유심히 바라보던 놈의 기세가 일순간 변했다.
『네놈이구나. 멸망을 앞당기고 있는 어리석은 존재가.』
[네?]『죽어라.』
명백한 살의.
나를 죽이겠다는 의지가 담긴 눈빛이 투명 장벽 위를 두드렸다.
쩌적―!
그 순간 투명 장벽이 일그러지듯 부풀어 오르며 금이 생겨났다.
‘뭐?’
그 직후, 아이스 드래곤의 머리가 다가왔고.
콰과과과곽―!
지금까지 모든 것을 완벽하게 막아 냈던 투명 장벽이 박살 났다.
촤좌좌좌좌―
나약한 유리창처럼 박살 난 파편들이 우수수 쏟아져 내리는 광경을 보며 충격받은 나는 일순간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
쩌적―!
아이스 드래곤에서 뿜어져 나온 한기가 동대문을 넘어 내 피부에 얼음꽃을 피우고 나서야.
‘!!!’
쩌정!
뒤늦게 동대문을 닫을 수 있었다.
‘뭐야?’
순간, 너무나도 혼란스러웠다.
투명 장벽이 뚫리다니?
상상해 본 적도 없는 결과였다.
현실감이 없었다.
꿈을 꾸고 있는 것만 같았다.
그러나.
‘미친.’
절대자의 눈으로 보이는 풍경은 방금 마주한 그것들이 모조리 현실이라는 것을 말해 주고 있었다.
쩌저저적―!
거대한 아이스 드래곤의 몸체가 영역 안으로 비집고 들어오는 중이었다.
놈의 뒤쪽으로는 거대한 구멍이 생겨난 투명 장벽이 바람에 나부꼈다.
한 가지 희망적인 것은 놈이 완벽히 내 영역 안으로 들어왔다는 점이었다.
[집구석 절대자에게 적대적인 개체가 발견되었습니다.] [제거합니다.]그러나.
후우우웅!
얼음 파편들이 거세게 몰아치는 힘이 한층 더 강력해졌을 뿐, 놈의 머리가 터지는 일은 벌어지지 않았다.
‘이런 말도 안 되는……!’
놈이 찾아왔을 때, 크게 동요하지 않을 수 있었던 것은 시스템을 믿고 있었기 때문이다.
【집구석 절대자의 보이지 않는 손 Lv. Max】
5레벨을 달성하며 맥스 레벨로 변한 보이지 않는 손.
수틀리면 이 힘을 사용해 놈을 영역 안으로 끌어들일 생각이었다.
영역 안쪽에서 나에게 적대감을 보이는 놈은 시스템이 머리를 날려 버릴 테니까.
그런데.
‘시스템의 힘이 통하질 않다니.’
놈은 내게 명백한 적의를 가지고 있었다.
[집구석 절대자에게 적대적인 개체가 발견되었습니다.] [제거합니다.]그럼에도 멀쩡했다.
벌써 수차례 메시지가 나오고 있었지만.
후우우웅!
그때마다 얼음 폭풍이 조금 거세지는 정도가 전부였다.
‘……잠깐.’
놈을 중심으로 몰아치는 블리자드의 힘이 강력해진다는 것.
그 자체가 놈이 내뿜는 에너지가 한층 강렬해진다는 것을 뜻했다.
실제로 놈은 아까부터 어마어마한 신력을 사방으로 내뿜는 상태였다.
‘힘을 과시하기 위한 게 아니다.’
오히려.
‘필요에의해서 힘을 발산하는 거야.’
요컨대.
[집구석 절대자에게 적대적인 개체가 발견되었습니다.] [제거합니다.]후우우웅!
강력한 시스템의 힘에 저항하기 위해.
‘시스템의 힘은 먹혀들고 있어.’
그 증거로 영역 밖에서보다도 훨씬 강력한 힘을 뿜어내고 있음에도 얼어붙는 바다의 넓이가 1할도 되지 않았다.
‘놈도 상당히 무리하고 있다.’
또한 날지 못하고 있었다.
날개를 접은 채로 얼어붙은 바다 표면을 걸어오고 있다는 사실이 놈이 상당히 무리하고 있다는 증거였다.
‘그렇다면…….’
이건 오히려 기회였다.
‘어째서 나를 죽이려고 하는지는 잘 모르겠다만.’
한 가지만큼은 명확했다.
저놈은 내 적이라는 것.
그리고 대화로 관계를 개선할 여지 따위는 없어 보인다는 것.
‘여기서 끝내자.’
일단 싸우기로 결정되니, 오히려 마음이 편했다.
‘우선.’
본격적으로 싸울 준비를 했다.
구조대를 지원하기 위해 펼쳐 둔 절대자의 눈을 모조리 회수했다.
아이스 드래곤을 비추는 딱 하나만을 제외하고 수백 개의 절대자의 눈이 모조리 사라졌다.
수백 개로 분산되어 있던 신경이 오롯이 한곳으로 향하자 이전에는 보이지 않던 것들이 세세히 드러나 보였다.
아이스 드래곤을 잡아먹을 기세로 몰아치고 있는 검은 기운들과 그에 맞서고 있는 새하얀 한기 폭풍.
두 개의 기운이 매섭게 맞부딪히고 있었다.
‘일단은 가볍게 테스트해 볼까. 소환.’
내가 꺼내 든 카드는 데스나이트.
다만, 그냥 데스나이트가 아니다.
거금을 투자하여 10강으로 만든 데다 결정적으로.
‘파괴 불가 옵션을 부여한 놈이지.’
유일 등급 옵션.
상점에서 구입한 물건에는 모조리 부여가 가능하다.
그 결과, 파괴 불가 옵션이 담긴 데스나이트가 탄생하고만 것이다.
지이잉―
아이스 드래곤 몸체 곳곳에 데스나이트들이 나타나기 시작했다.
총 23기.
모두 파괴 불가 옵션이 부여된 부서지지 않는 데스나이트였다.
‘강화.’
화르륵―
새하얀 아이스 드래곤의 몸체에 23개의 검은 불꽃이 피어났다.
그리고.
콰과과곽!
데스나이트의 검기가 아이스 드래곤을 난도질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보이지 않는 손.’
허공에서 튀어나온 수십 개의 보이지 않는 손이 아이스 드래곤을 압박했다.
거대화된 상태로 아이스 드래곤을 칭칭 휘감은 보이지 않는 손에 검은 기운을 부여하자.
화르르륵!
마치 불타는 검은 뱀 수백 마리가 아이스 드래곤을 휘감고 있는 듯했다.
서걱!
동시에 데스나이트의 검기도 쉬지 않고 놈의 몸에 흠집을 만들어 냈다.
그러나.
화아아아악―!
아이스 드래곤의 몸에서 뿜어져 나온 한기가 주변의 모든 것을 휩쓸자 모든 것이 얼어붙었다.
강화를 받은 데스나이트의 뼈 마디마디가 얼어붙었고, 검은 기운으로 활활 불타오르던 보이지 않는 손마저 한순간에 얼어붙었다.
콰자자작!
놈의 움직임에 따라 얼어붙은 모든 것들이 박살 났다.
다행인 것은 모든 데스나이트들에게는 파괴 불가 옵션이 붙어 있었다.
‘모두 멀쩡해.’
창고로 옮긴 다음 다시 놈의 몸 곳곳에 소환했다.
콰과과과―!
검기가 놈의 몸 이곳저곳을 훑어 댔지만, 크게 데미지는 주지 못하는 듯했다.
‘레벨 차이가 너무 심해.’
아무리 강화를 받았고, 저마다 특별한 스킬이 있는 데다 파괴 불가 옵션까지 있다고 하더라도 데스나이트는 50레벨에 불과했으니까.
‘귀찮게 하는 것 말고는 큰 의미가 없겠네.’
놈은 데스나이트가 날뛰든 말든 아무런 신경도 쓰지 않고 있었다.
실제로 아무런 피해도 없었고.
데스나이트의 검기가 아무리 깊숙하게 파고들어도 몇 초 후면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이 상처가 사라지고 있었으니까.
‘아무리 약해졌다고 해도 격의 차이는 어쩔 수 없나.’
강력한 한 방이 필요할 것 같았다.
‘준비가 끝날 때까지…….’
[불사의 망령(Lv. 81)을 소환하시겠습니까?] [예 / 아니오]‘소환.’
[444,444,444 원이 소모됩니다.]볼품없는 해골 덩어리가 아이스 드래곤의 앞에 나타났다.
아이스 드래곤의 거대한 덩치에 비하면 그의 발톱만도 못한 자그마한 크기.
그러나.
‘강화.’
그 또한 신격을 다루는 존재였다.
화아아악!
모든 것을 집어삼킬 듯한 칠흑의 기운이 드넓게 퍼져 나갔다.
파지직
거칠게 대립하는 두 개의 기운.
파지지직―!
기세만 따져 봤을 때는 아이스 드래곤이 내뿜는 한기 쪽이 훨씬 우세했다.
그러나 불사의 망령의 영역도 결코 만만하지 않았다.
특히나.
‘이곳은 나의 영역이다.’
집구석 선포 스킬이 적용된 내 영역.
사방에 무한하게 펼쳐진 검은 기운은 아이스 드래곤의 기세를 꺾고, 반대로 불사의 망령에게는 힘을 실어 준다.
-끼에에에에엑!
볼품없는 해골이 울부짖었다.
그와 함께 해골이 변화했다.
폭발적인 기세로 부풀어 오르며 모든 뼈마디가 거대화하기 시작했다.
특히나 도드라지게 변하는 척추뼈들이 기다랗게 이어지며 수백 개의 마디로 늘어났다.
길게 이어진 그것은 이내 수십 미터짜리 거대한 용의 형상을 갖추었다.
화르륵!
검은 해골 용이 아이스 드래곤의 앞발을 타고 올라갔다.
콰과과곽!
한기를 꿰뚫으며 얼음으로 이루어진 앞발을 난도질했다.
콰직!
과연 이번에는 아이스 드래곤도 마냥 무시할 수준은 아니었던 모양이다.
놈이 입을 크게 벌리며 브레스를 쏘아 냈다.
콰과과과!
새하얀 빛이 해골 용을 뒤덮기 직전.
‘텔레포트.’
슈슉-
거대한 몸체가 순간이동하여 아이스 드래곤의 머리 위로 이동했다.
‘보이지 않는 손.’
이곳은 집구석 선포가 된 나의 영역.
염력을 비롯한 모든 보조가 집중되자 아이스 드래곤은 속수무책으로 당할 수밖에 없었다.
그렇게 불사의 망령을 소환 가능한 4분이 흐른 직후.
‘이 정도면 충분하겠어.’
예열이 끝났다.
‘쇠구슬 보관.’
7레벨이 된 창고는 이제 300톤의 질량을 감당 가능했다.
쇠구슬의 무게는 자그마치 100톤짜리 무게.
강화를 통해 충격량을 모조리 폭발력으로 바꿔 주는 핵폭탄과 다름없는 쇠구슬이.
‘소환.’
아이스 드래곤의 면상 앞에 소환되었다.
번쩍―
섬광이 터지고-
콰아아아아앙!
거대한 폭발이 모든 것을 집어삼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