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bsolute Dweller RAW novel - Chapter (255)
256화 [Episode 56] 데우스 엑스 마키나 (1)
그러니까 아바타의 주장에 따르면 지금 100km 상공에 올라왔음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사방에 보이는 풍경이 같다는 소리였다.
빽빽한 숲속에서 은은하게 흘러나오는 초록빛 생명 에너지.
전형적인 세계수의 숲이었다.
아바타가 한 말의 진위 여부를 확인하는 건 어렵지 않았다.
“재현 님. 여기, 이상합니다.”
정찰을 위해 하늘을 향해 비상하고 있던 김 건에게서.
“여기…… 뭔가 이상해요. 끝이 보이질 않습니다.”
바람의 정령을 이용해 전방위적인 정찰을 행하고 있던 정소라에게서.
그리고.
“지형 자체도 굉장히 특이합니다.”
천리안 능력을 사용하고 있던 유한길이 눈을 뜨고는 흙바닥을 가리키며 말했다.
“이거, 세계수의 가지입니다.”
그 말이 무슨 뜻인지 파악하는 것은 어렵지 않았다.
‘……도대체 얼마나 큰 거야?’
이 숲 자체가 세계수의 가지 위에 자라난 형태라는 것.
가지 위에 흙이 쌓이고, 그곳에 나무와 풀들이 자라나 있다는 소리다.
실로 어마어마한 크기였다.
2천여 명에 달하는 가신들이 넓게 퍼져 정찰하고 있는데도 굴곡이 크게 드러나지 않을 정도였으니까.
게다가 더욱 특이한 점은.
‘하늘이 보이지 않는다.’
지상에 있는 가신들은 차치해 두고서라도 김 건을 비롯해 하늘을 비행하고 있는 가신들에게서는 숲의 윤곽이 드러나야 하는 게 정상이었다.
거대한 가지 위에 형성된 숲이라고는 해도 그곳에 자라난 나무의 크기에는 한계가 있을 테니까.
그러나 이 숲은 그 어디에서도 전체적인 모습을 관찰하는 게 불가능했다.
김 건이 밝혀 주는 시야를 관찰하고 있자면, 마치 수풀 속을 끊임없이 헤쳐 나가고 있는 듯한 착각이 들 정도였다.
‘……이런 환경이 위로 100km나 이어진다고? 그게 가능한 구조인가?’
이상한 점은 그뿐만이 아니었다.
“반경 1km 안에는 엘프들이 없습니다. 그런데…….”
“뭐지?”
“……아무래도 엘프뿐만이 아니라 그 어떤 생명체의 흔적도 찾을 수 없었습니다.”
가신들이 정찰하고 있는 넓은 지역에서 단 한 번도 전투가 일어나지 않고 있다는 것.
차원문의 성격을 되짚어 볼 때, 그것은 불가능에 가까운 일이었다.
‘주먹구구식으로 타 차원으로 이동하던 때와는 다르다.’
릴리트의 공간이나 과수원을 통해 랜덤하게 이동하던 때와는 달랐다.
차원 지도를 활용해 열리는 차원문의 경우 세계수의 심장이 존재하는 바로 근처에서 문이 열리곤 했다.
그렇기에 진입한 직후부터 격렬한 전투가 발생하고는 했는데, 지금은 아무런 소식이 없는 것이다.
‘이상해. 심지어 세계수의 심장 근처에 소환된 게 아니더라도 전투가 발생하지 않는다는 건 이해할 수 없어.’
메인 스트림 뿌리와 이어진 차원은 세상 전체가 세계수의 영향력으로 가득 차 있는 곳들뿐이었다.
하늘은 세계수의 가지였고, 산맥은 세계수의 뿌리였다.
당연히 그 모든 곳에 엘프들이 존재했다.
그런데 이곳은.
‘엘프는 물론이고, 다른 동물이나 벌레 한 마리도 찾을 수 없다니.’
새 소리도, 벌레 소리도 전혀 들리지 않는 기괴한 숲.
그럼에도 불구하고 생명력은 넘쳐나는 아이러니한 곳.
‘도대체…….’
아바타에게 신경을 집중시켰다.
천리안을 사용해 숲 전체적인 모습을 관찰해 보기 위해서였다.
그런데 그때.
“재현 님. 보고 계십니까?”
김 건의 목소리였다.
곧바로 김 건에게 붙여 둔 절대자의 눈을 확인해 봤다.
그곳에는.
쏴아아아아―
거대한 폭포가 흘러내리고 있었다.
지구의 나이아가라 폭포도 명함을 내밀지 못할 정도의 규모.
막대한 물의 흐름이 생겨난 곳이라 그런지 근처로 시야가 탁 트여 있는 공간이 만들어져 있었다.
덕분에 전체적인 모습을 확인하는 게 가능했다.
‘허…….’
곳곳에 세계수가 존재했다.
타 차원이었다면 하나하나가 세계수를 자처해도 될 만큼 커다란 나무가 평범한 나무처럼 곳곳에 자라나 있었다.
그냥 숲을 이루는 나무 중 하나처럼 흔하게 자라나 있는 것이다.
또한 김 건이 바라보고 있는 공동 한가운데를 일직선으로 가르는 굵직한 나뭇가지.
당장 눈에 보이는 세계수들은 어린아이처럼 보일 정도로 커다란 나무의 일부분인 것 같았다.
그러나 더욱 충격적인 것은 따로 있었다.
쏴아아아아아―
폭포가 떨어지고 있는 거대한 절벽, 아니 거대한 산맥이라고 불러도 모자랄 만큼 압도적인 크기의 절벽.
그것의 정체가.
‘미치겠군.’
한낱 나무줄기에 불과하다는 사실이었다.
그것을 보는 순간 알 수 있었다.
지금 가신들이 밟고 있는 땅을 받치고 있는 나뭇가지조차도 잔가지에 불과하다는 것을.
‘그렇다는 건…….’
지금까지 가신들이 수집한 모든 정보를 종합해 볼 때.
‘여기가 전부 세계수의 일부분이라는 건가……?’
도무지 얼마나 큰 나무인지 머릿속으로 그려지지도 않을 정도의 규모였다.
그 크기를 가늠해 보는 것만으로도 알 수 없는 공포가 느껴질 지경이었다.
그런데.
[300,000,000 원이 소모됩니다.]이 알림은 아바타가 돈을 사용했다는 뜻이었다.
전투라도 난 것인가 싶어 아바타에게 붙여 둔 절대자의 눈을 확인해 보니 주변에 아무것도 없었다.
엘프들과의 전투는커녕 멀쩡한 숲의 모습이 펼쳐져 있었다.
그저 두 눈을 감고 있는 아바타의 모습만 확인할 수 있을 뿐이었다.
[무슨 일이야?]그러자 그가 대답했다.
“직접 한번 봐.”
그가 한 말의 의미가 궁금했기에 곧바로 감각 동기화를 진행했다.
아바타에게 온 신경을 집중시키자, 그가 보고 있는 풍경을 볼 수 있었다.
‘이건…….’
아무래도 그가 3억을 소모해 강화한 것은 ‘천리안’ 능력인 듯했다.
시전자를 중심으로 광범위하게 퍼져 나가는 천리안의 능력을 일직선상으로 뻗어 나가는 구조로 만들어 관찰 가능한 거리를 획기적으로 늘렸다.
그 상태에서 검은 기운까지 불어넣어 훨씬 먼 거리를 넘볼 수 있게끔 만든 것이다.
그렇게 펼쳐진 공간에는.
꿀렁―
어디선가 본 적 있는 광경이 펼쳐지고 있었다.
기분 나쁠 정도로 끈적거리며 꿀렁이는 검은 기운의 모습.
그리고 그것과 맞부딪히고 있는 세계수의 생명력.
“어디서 많이 본 풍경 같지 않아?”
그의 말대로였다.
[……네 기억에서 봤던 거랑 비슷하네.]미래의 모습.
정확히 말하자면 다른 시간대의 미래.
지금은 아바타의 몸을 차지하고 있는 또 다른 내가 있던 세상에서 보았던 모습이었다.
물론, 완전히 똑같은 풍경은 아니었다.
그곳에서는 검은 기운과 그것을 포식하여 자신의 것으로 만든 또 다른 나의 검은 기운이 서로를 잡아먹고 있는 아귀 지옥이었다.
반면에 이곳은 세계수의 생명력이 단단하게 뭉쳐 방어막을 형성하고, 검은 기운이 그것을 뜯어먹고 있었다.
검은 기운에게 뜯어먹힌 자리는 금세 새롭게 공급된 생명력이 빈자리를 채우며 경계선이 유지되는 중이었다.
‘하.’
그 모습을 보자마자 세계수의 사정을 어느 정도 파악하는 게 가능했다.
간단했다.
실시간으로 빈자리를 채워 나가는 저 생명력이 어디에서 오는 것인지는 알고 있었으니까.
‘타 차원의 행성과 별의 에너지.’
뿌리로 흡수하는 행성의 생명력과 잎으로 받아들이는 별의 에너지.
그것들이 모두 한데 모여서 이곳에서 소비되고 있었던 것이다.
모든 것을 먹어 치우는 저 검은 기운으로부터 자신을 지키기 위해.
결국은 세계수도 생존을 위해 발버둥 치고 있었던 것뿐이었던 것이다.
‘어째서 검은 기운에 앞에서 그렇게 약해졌는지도 이제 이해가 가는군.’
검은 기운이 세계수의 천적이기 때문이었다.
세계수는 타 차원에서 생명력을 수급하고, 그것을 검은 기운에게 바치며 생명을 연장한다.
완벽한 포식자와 피식자의 관계.
당연히 검은 기운의 힘이 세계수에 있어서 치명적으로 작용할 수밖에.
‘……세계수를 두려워했던 게 부끄럽네.’
다차원에 걸쳐 막대한 영향력을 행사하며 범우주적인 규모를 자랑하던 그 모습에 압도되었던 스스로가 한심해질 지경이었다.
사실상 세계수는 검은 기운이 사육하는 가축과 다를 바가 없었으니까.
검은 기운에게 바칠 생명력을 만들어 내기 위해 수많은 차원을 착취하고 있는, 그저 커다랄 뿐인 나무에 불과했던 것이다.
두려워해야 하는 존재는 세계수 따위가 아니었다.
‘도대체 검은 기운의 정체는 뭐지?’
13년.
아니, 이제는 10년 뒤에 지구에 찾아올 저것의 정체가 무엇인지.
과연, 내가 막을 수 있는 존재이기는 한 것인지.
의문이 들었다.
‘그래도.’
한 가지 위안이 되는 일이 있었다.
바로 세계수를 집어삼키게 된다면 적어도 지구 하나 정도는 지킬 만한 수준이 될 것 같다는 점이다.
이곳에 있는 세계수의 심장을 집어삼킨 다음 과수원을 만들기만 해도 막대한 에너지를 습득할 수 있게 될 테니까.
게다가 남은 10년간 세계수가 뻗어 있는 다른 차원을 모조리 흡수한다면 태양계 전체를 지키는 것도 가능할 것 같았다.
그러다 문득 현타가 찾아왔다.
‘……근본적으로 세계수와 다를 게 없잖아.’
조금 다른 것은, 나는 그저 당하고만 있지는 않으리란 점이다.
포식 능력을 적극적으로 활용하여 태양계 전체를 덮쳐오는 검은 기운을 집어삼켜 나가다 보면 언젠가 돌파구를 찾을 수 있지 않을까.
아바타를 향해 말했다.
[돈은 얼마든지 써도 좋으니까 세계수의 심장부터 찾아. 그리고 집어삼켜.]그러자 아바타가 대답했다.
“심장이라면 이미 찾았어.”
살짝 놀랐다.
아무리 아바타라고 하더라도 이렇게 빠르게 심장의 위치를 찾아낼 줄은 몰랐기 때문이다.
나를 두고 이런 말을 하는 것은 조금 웃기지만, 확실히 능력 하나는 괜찮은 놈이었다.
[그래? 그럼 빨리 상황 끝내 버려.]심장을 찾았다면 굳이 시간을 낭비할 필요가 없었다.
그런데.
“미안하지만, 그건 좀 힘들 거 같은데.”
실실 웃는 아바타의 모습에 문득 불안해졌다.
아바타가 무언가 노림수가 있는 것쯤은 이미 예상하고 있었으니까.
그런데 아바타가 두 눈을 뜨고는 양손을 펼치며 말했다.
“이걸 무슨 수로 집어삼키게?”
[……뭐?]순간 저게 무슨 말인지 이해하지 못했다.
너무 비상식적인 일이었으니까.
그러나 이어지는 아바타의 설명에 그가 말하는 바를 이해할 수 있었다.
“내가 여기까지 텔레포트를 수십 번은 사용했어. 100km씩 수십 번은 올라왔다는 거지. 그러고도 도무지 끝이 보이질 않아서 천리안을 강화했지. 방금 내가 보여준 풍경이 얼마나 멀리 있는지 상상이 가? 대략 120만 킬로미터쯤일걸?”
그러니까 아바타가 하고 있는 말은 이런 뜻이었다.
“이런 거대한 놈을 어떻게 집어삼키게?”
여기.
하나의 세상처럼 보이는 이곳.
이 무식하게 커다란 세상 전체가…….
“대충 봐도 태양보다 커다란 심장인데, 무슨 수로 집어삼킬까?”
세계수의 심장이라는 것.
“부분적으로 먹는 거야 가능하겠지만, 이럴 거면 차라리 다른 차원의 심장을 먹는 게 훨씬 효율적일걸?”
아바타의 말을 이해한 나는 말문이 막혔다.
그러나 문제는 그게 아니었다.
[재현 님.]김다빈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그 어느 때보다 다급한 그녀의 감정이 여과 없이 그대로 흘러들어왔다.
그리고.
[지금 당장 하늘을 확인해 주십시오. 황령산 정상 부근입니다.]황령산 꼭대기.
집에서 베란다 창문 너머로 보이는 곳이었다.
고개를 돌리는 것으로 간단히 이상 현상을 목격할 수 있었다.
그 꼭대기 지점.
태양의 옆자리.
하늘이 검게 물들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