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bsolute Dweller RAW novel - Chapter (256)
257화 [Episode 56] 데우스 엑스 마키나 (2)
아직은 검은 점에 불과했다.
그러나 그것의 크기가 미세하게 커지고 있는 것이 심상치 않았다.
“아리야.”
[네, 마스터.]“저게 지구까지 닿는 데 얼마나 걸리지?”
[잠시만 기다려 주십시오. 현재 모든 카메라가 지구를 향하고 있어 대상에 대한 데이터가 부족합니다.]아리가 계산을 마치는 데까지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진 않았다.
[관찰 대상 포착 완료.] [데이터 분석 중.]데이터 분석 대상은 실시간으로 관찰하며 쌓이는 정보만이 아니었다.
세계수 억제 작전을 수행 중이던 로봇의 카메라에 잡힌 모습, 우연히 드론이나 관찰 카메라 등에 포착된 모습, 사람들이 검은 점에 대해 언급하던 시기, 방치되었던 천체 관찰 카메라의 데이터 등등.
과거에 우연히 쌓인 데이터들을 분석하여 빠르게 결과를 도출해 낸다.
[분석 완료.]그리고 지금까지 아리가 해당 현상을 보고하지 않았던 이유가 드러났다.
[오류. 오류.] [해당 대상은 약 189C의 속도로 움직이고 있습니다.] [데이터 오류로 판단됩니다.]세계수가 지구를 헤집고 다니고 있는 와중이라 아리가 한창 바쁜 것도 있었지만, 검은 기운의 존재 자체가 불가능하다고 판단한 듯했다.
“189C가 무슨 뜻이지?”
[빛의 속도의 189배라는 뜻입니다.] [관찰 결과 해당 대상은 빛의 속도보다 빠른 속도로 팽창 중에 있습니다. 이것은 불가능한 수치입니다. 데이터에 치명적인 오류가 있는 것으로 보입니다.]빛의 속도를 뛰어넘는 물질은 존재할 수 없다.
[저것이 실존할 가능성보다도 현재까지 관측된 데이터에서 일관적인 오류가 나타났을 가능성이 더욱 큽니다. 해당 현상은 인간종에도 동일하게 나타나고 있는 것으로 보이며, 빛의 왜곡 현상…….]아리도 어쨌든 인공 지능.
상상력이 너무 부족했다.
철저히 데이터에 기반 한 이성적 사고를 기준으로 움직이기 때문인지 이상 현상과 검은 기운에 대한 데이터를 가지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그 둘을 연결 짓지 못하고 있었다.
어찌 됐든 빛의 속도보다 189배나 빠른 물질이 존재할 가능성은 0%니까.
그러니까 내게 보고하지 않은 것이다.
단순한 오류이고, 중요하지 않은 일이니까.
그보다 우선순위가 되는 일이 너무나도 많았으니까.
그에 비해 김다빈은 곧바로 이변을 알아차리고 내게 보고했다.
상상력, 직관력.
완벽해 보이는 인공 지능이라 할지라도 부족한 부분이 있는 모양이다.
“그래서. 만약 저게 진짜라고 가정한다면, 저게 지구까지 도착하는 데 얼마나 걸리지?”
아리가 유능한 점은 묻는 말에는 정확히 답변을 준다는 것이었다.
[현재 3일 6시간 10분 58초 남았습니다.]충격적이었다.
‘저게 지구를 덮치는 건 10년 뒤가 아니었나?’
분명 그렇게 알고 있었다.
뭐가 잘못된 것일까.
문득 2년 전 아이스 드래곤이 했던 말이 떠올랐다.
(네 놈이구나. 멸망을 앞당기고 있는 어리석은 존재가.)
멸망을 앞당긴다는 것.
설마 그게.
‘이런 뜻이었나.’
아이스 드래곤이 등장했던 타이밍을 생각하면 멸망을 앞당기고 있는 행동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어렵지 않게 짐작할 수 있었다.
‘타차원의 세계수를 점령하는 것.’
나는 아이스 드래곤이 말하는 게 세계수가 지구를 침략하는 것을 두고 하는 말인 줄 알았다.
실제로 지금 지구는 세계수에 의해서 멸망을 향해 다가가는 중이었으니까.
그러나.
“세계수가 지구를 박살 내 버리는 데 앞으로 얼마나 남았지?”
[지금과 비슷한 추세로 세계수의 심장이 이곳으로 넘어온다는 가정하에 약 3년 7개월 정도가 걸릴 것으로 예상합니다.]세계수에 의한 멸망은 아직까지 한참이나 남아 있었다.
그에 비해 검은 기운이 지구를 덮치는 데 걸리는 시간은 겨우.
‘사흘 하고도 여섯 시간.’
예정보다 무려 10년이나 빨라진 시간이었다.
이제야 알 수 있었다.
‘분명 멸망을 ‘앞’당긴다고 말했었지.’
그때 아이스 드래곤이 했던 말은 이것을 두고 한 말이었다는 걸.
아리에게 말했다.
“……타이머 설정해. 그리고 계속 관찰하면서 변화가 있으면 나한테 곧장 보고하고. 세계수와 관련한 것들보다도 최우선순위로 설정해.”
[알겠습니다, 마스터.]그리고 김다빈에게 텔레파시를 보냈다.
[지금 당장 긴급회의 소집해 주세요.]* * *
어떻게 해야 할까?
도무지 답이 나오지 않는 상황이었다.
현재는 모든 병력을 타 차원에 있는 세계수 심장을 공략하는 데 투자하고 있었다.
그것 말고는 뾰족한 수가 없었기 때문이다.
레벨 업?
지금으로선 아이스 드래곤의 둥지 공략이 가장 빠른 레벨 업 방법이었다.
세계수가 있는 타 차원의 경우 높아 봤자 80레벨 대 초반 정도였으니까.
87레벨짜리 아이스 드래곤에 비할 바가 아니다.
그러나 공략 횟수가 정해져 있는 인스턴트 던전으로는 한계가 있었다.
‘그래도 간신히 75레벨은 찍었다.’
그동안 타 차원의 수많은 세계수를 공략하면서 얻은 경험치 덕분에 한 번 더 스킬 포인트를 얻는 레벨까지는 도달할 수 있었다.
그러나 이제 한계였다.
‘남은 시간은 이제 겨우 하루.’
정확히는 하루 하고도 5시간 38분 11초.
앞으로 최선을 다해 사냥에 전념한다고 해도 레벨을 올릴 수는 없었다.
영역 자체는 굉장히 넓어졌다.
아프리카 쪽으로는 이집트가 있는 쪽까지, 유럽과 러시아도 영역 안으로 편입되었으며 밑으로는 호주 전체, 그리고 미국의 캘리포니아까지도 포함되었다.
한국을 중심으로 하는 본진만 이 정도였다.
별채까지 합치면 사실상 유럽의 일부 지역과 개박살이 난 아프리카를 제외하면 대부분이 집구석 영역 안으로 들어온 셈이다.
대략 반경 1만km.
조금 아쉬웠다.
‘80레벨만 찍었으면 지구 전체를 둘러싸는 것도 충분히 가능했을 거야.’
하지만 더 이상 레벨을 올릴 방법이 없었다.
당연히 다른 방법을 찾아야만 했다.
세계수의 진짜 심장을 취하는 것?
만약 가능하다면 정말로 검은 기운에 대항할 방법을 찾을 수 있을지도 몰랐다.
적어도 세계수가 자신의 심장을 지키고 있는 방법을 사용하면 지구 하나 정도는 확실하게 지킬 수 있었다.
당장 세계수의 심장만 해도 최소 태양과 맞먹을 만한 크기로 추측되니까.
물론, 그것보다 더욱 더 거대할 수도 있었다.
어쨌든 그 힘만 있어도 지구를 지키는 데에는 문제가 없을 것이다.
하지만.
‘무슨 수로 그 거대한 걸 집어삼켜?’
그 크기를 가늠할 수조차 없을 정도로 거대한 세계수의 심장을 집어삼키고 힘을 흡수한다는 것 자체가 불가능했다.
차라리 다른 차원에 있는 평범한 세계수의 심장을 취하는 게 더 효율적일 지경이니 말 다 했지.
그러니 이 방법도 기각이다.
스킬 포인트?
이미 찍을 수 있는 스킬은 모조리 찍어 뒀다.
아바타가 벌어다 주는 스킬 포인트 덕분에 이제는 스킬 포인트가 남아돌 지경이었으니까.
레벨 업 가능 표시가 떠 있는 스킬은 모조리 다 올린 상태였다.
‘어차피 고작 스킬 레벨이 올라간다고 해서 해결할 수 있는 상황도 아니다.’
보이지 않는 손.
이미 만렙을 찍은 스킬로 영역 전체에서 강력하게 작용하며 몬스터 청소나 세계수를 박살 낼 때 사용하기 좋다.
그러나 이것으로 검은 기운을 막아 내는 것은 두 손으로 하늘을 가리겠다는 것이나 마찬가지.
절대자의 상점.
다방면에서 유용한 스킬이었지만, 이것으로 검은 기운을 막아 낼 순 없었다.
절대자의 창고, 눈, 건강, 집구석 수복, 문 등.
전부 마찬가지였다.
모두가 하나같이 굉장한 스킬들이었지만, 여기서 레벨이 올라간다고 해서 검은 기운을 막아 낼 방법이 생길 것 같지는 않았다.
‘유일하게 가능성이 있는 건 집구석 절대자의 품위 유지 스킬뿐이야.’
내가 가진 스킬 중 지금까지 가장 많은 변수를 창출해 낸 집구석 절대자의 품위 유지 스킬.
가신, 환수, 신기, 강림, 아바타 등.
가장 영향력이 커다란 스킬이었다.
그러나.
【집구석 절대자의 품위 유지 (패시브) Lv. 9】
‘이 스킬은 9레벨이 된 뒤로 레벨 업 버튼이 생긴 적이 없었지.’
무엇이 레벨 업 조건인지조차도 알 수 없었다.
그 밖에도 시간을 돌린다든지 하는 내가 보유한 여러 가지 각성 능력, 창고에 쌓여 있는 강화 핵폭탄, 쇠구슬 메테오, 그리고 다른 신격을 흡수하며 얻은 특수 능력들.
그 어디에도 답이 없었다.
그렇기에 지금 할 수 있는 최선인 세계수 공략이라도 진행하고 있는 것이다.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으로 말이다.
나는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
태양 옆에 자그마하게 존재했던 검은 점은 어느새 손바닥으로 가릴 수 없을 정도로 커져 있었다.
마치 하늘에 검은 구멍이 난 것처럼 보였다.
그때였다.
[3,000,000,000 원이 소모됩니다.] [3,000,000,000 원이 소모됩니다.] [3,000,000,000 원이 소모됩니다.]아바타가 돈을 사용했다는 알림이 연속적으로 울리더니, 이내 세계수의 힘이 흘러들어 왔다.
또 하나의 차원을 공략해 낸 것이다.
나는 공략을 마친 놈의 앞에 동대문을 열어 주었다.
한바탕 전투를 치렀을 텐데도 너무나도 멀쩡한 모습으로 복귀하는 아바타였다.
놈이 아무렇지도 않은 표정으로 물었다.
“뭐야? 왜 불렀어? 다음 차원으로 가야 하는 거 아니야?”
나는 조용히 놈을 향해 물었다.
“처음부터 알고 있었지?”
아바타가 장난스러운 표정을 지으며 대꾸했다.
“뭐가?”
“타 차원에 있는 세계수의 심장을 집어삼키다 보면 검은 기운이 더 빠르게 찾아올 거라는 거.”
놈의 미소가 좀 더 짙어졌다.
“드디어 왔나 보네.”
역시나.
“무슨 속셈이지?”
“속셈?”
아바타는 두 손을 들어 올리며 말을 이었다.
“나는 그저 세계수에 복수가 하고 싶을 뿐이었어. 일이 이렇게 되리라는 것은 어느 정도 짐작했지만. 그래도 이렇게 빠를 줄은 나도 몰랐네.”
“왜 미리 말하지 않았지?”
“으응? 굳이 말할 필요가 있나? 어차피 별 상관없잖아?”
놈이 두 팔을 과장되게 벌리며 말한다.
“네가 할 수 있는 게 뭐가 있는데?”
놈의 말이 맞았다.
미리 알았다고 해서 달라지는 것은 없었을 것이다.
지금까지 나는 최선을 다했고, 쉼 없이 여기까지 달려왔다.
시간을 몇 번이나 되돌리며 최선을 선택하기 위해 노력했으며, 모든 것을 완벽하게 처리하기 위해 발버둥 쳤다.
그 결과가 이것이었다.
‘내가 잘못 선택했던 걸까?’
알 수 없었다.
돌아간다고 해서, 지금 이 미래를 알고 있는 상태에서 과거로 돌아간다고 해도, 이보다 더 나은 결과를 만들어 낼 수 있을지도 장담하기 어려웠다.
그만큼 노력했다.
최선을 다했다.
그렇기에.
“네 기억을 보여 줘.”
나는 도박수를 던졌다.
실실 쪼개던 아바타가 멈칫하더니 다시 짙은 미소를 지었다.
“그래. 내가 저걸 상대로 개고생한 기억을 엿본다면 방법을 찾을 수도 있겠지. 근데, 자신 있어?”
광기 어린 눈빛이 나를 향한다.
욕망으로 번들거리는 두 눈동자.
놈이 말했다.
“괜찮겠어?”
기억을 공유한다는 것.
그것은 결국, 우리의 정신이 연결된다는 소리였다.
놈이 내 정신을 잡아먹고 내 몸을 차지하기 위해서는 반드시 필요한 과정이었다.
그때 내게 자신의 기억을 보여 주었던 것도 이런 이유였다.
실제로 놈의 의도는 어느 정도 먹혀들었다.
내가 놈의 기억을 들여다본 뒤부터 놈의 활동이 훨씬 자유로워졌으니까.
세계수에 대한 미움도 그중 한 가지였다.
그 기억을 본 순간 일부분이나마 나는 놈에게 동화되었던 것이다.
그런데.
‘걸러지지 않은 수백 년의 정보가 머릿속으로 들어온다면…….’
그 당시에 내 정신은 굳게 닫혀 있었다.
오로치와 결판을 내기 위해 정신세계에 들어가며 생겨난 자그마한 틈으로 기억을 주입한 것이다.
때문에 정제되지 않고 선명하지 않은 기억을 보았다.
하지만 이번에는 다르다.
‘검은 기운의 파훼법을 알기 위해서는 온전히 받아들여야만 한다.’
눈앞에 있는 광기 어린 남자가 홀로 수백 년간 맞서 싸운 선명한 기억들.
게다가 이번에는 내가 직접 정신의 빗장을 열어 주는 셈이다.
모든 기억이 여과 없이 들어오게 되겠지.
수십 년의 기억으로 구성된 자아와 최소 수백 년의 기억으로 구성된 자아.
어느 쪽이 잡아먹히게 될지는 너무나도 뻔했다.
하지만.
“길고 짧은 건 대 봐야 아는 거 아니겠어?”
그럼에도 해야 했다.
‘최악의 경우.’
내 자아는 사라지고 놈이 내 몸을 차지하게 될 것이다.
그러나 그렇다고 해도.
‘이곳은 가족들이 살아 있는 세상이다.’
이전처럼 모든 것을 집어삼키고 똑같은 짓을 반복하거나 하진 않을 것이다.
약간 맛이 가긴 했지만, 눈앞에 있는 것도 ‘나’였으니까.
나는 나를 믿는다.
‘최소한 가족들은 지켜 주겠지.’
이전의 세상과 비교하면 넘쳐나는 힘을 얻은 지금, 훨씬 더 나은 결과를 보여 줄지도 모른다.
‘즉, 내가 이기든 지든 이 세상은 지킬 수 있다.’
어차피 이게 아니면 나를 포함하여 모두가 전멸하고 만다.
어떻게 보면 굉장히 보장되는 게 많은 도박이었다.
단지 한 가지 치명적인 리스크는 내 목숨이 판돈으로 걸려 있다는 것뿐.
아바타가 기쁨을 감추지 못한 표정으로 웃었다.
“그럼, 시작할까?”
“그래.”
다 끝났다고 생각하나 본데.
네가 생각하는 것처럼 그리 쉽게 흘러가진 않을 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