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bsolute Dweller RAW novel - Chapter (257)
258화 [Episode 56] 데우스 엑스 마키나 (3)
어둠.
아무것도 보이지도, 느껴지지도 않는 어둠 속에서 길을 잃은 듯한 느낌이 들었다.
그때 희미한 빛이 번쩍이고…….
♪♬~♩♬♬~
부드럽고 감미로운 선율이 내 귀를 간지럽힌다.
따스한 온기가 내 몸을 감싸 안고 있었다.
“으음.”
눈을 반쯤 감은 채로 핸드폰 알람을 꺼 버리곤 그 상태 그대로 선잠에 들었다.
몇 분쯤 흘렀을까.
창문 너머에서부터 침입해 온 아침 햇살 탓에 결국 몸을 일으켜야만 했다.
“하암.”
늘어지게 하품을 한 나는 천장을 바라보며 멍하니 생각에 잠겼다.
‘무슨 꿈을 꾼 것 같은데…….’
도무지 생각이 나질 않았다.
침대 위에서 늦장을 부리던 나는 뒤늦게 방밖에서 흘러들어 오는 냄새의 존재를 알아차렸다.
‘이 냄새는…….’
미역국.
그리고 내가 제일 좋아하는 생선구이였다.
아까모찌라든가?
물고기의 일본식 이름인 것 같은데, 정확한 한국식 이름은 모른다.
할머니, 할아버지, 엄마, 아빠 할 것 없이 저 빨간 고기를 그렇게만 불렀으니까.
그러니까 나도 아까모찌라고 기억할 뿐이다.
홀린 듯이 방문을 열고 나가자 밖에서는 엄마와 아빠가 아일랜드 식탁에 앉아 있었다.
엄마가 방에서 나온 나를 발견하고는 반갑게 맞아 주었다.
“아들! 딱 맞춰서 일어났네. 얼른 와서 밥 먹어.”
“……오늘 무슨 날이야?”
부모님이 말도 없이 집으로 찾아오는 경우가 드물었기에 물어본 것이었다.
그러자 엄마가 식탁 위의 미역국을 가리키며 말했다.
“오늘 너 생일이잖아.”
“아.”
벌써 그렇게 됐었나.
“생일 축하한다, 아들.”
그랬었지.
오늘은 내 생일이었다.
워낙에 바쁘게 지내느라 생일도 깜빡…… 어라?
‘내가 왜 바빴더라?’
백수에게 무슨 바쁜 일이 있었겠는가.
내게 바쁜 일이라고 해 봤자 게임 관련된 약속들뿐이었다.
‘군단장 레이드가 어제였던가?’
모르겠다.
이상하게 어제 일은 잘 기억이 나지 않는다.
분명 평소와 다름없는 하루였을 텐데, 흐릿한 느낌만 남아 있었다.
“아들. 왜 그래. 몸이 안 좋아?”
엄마가 걱정스레 다가와서는 이마에 손을 짚었다.
“괜찮아. 꿈자리가 좀 사나웠던 것…….”
……그게 무슨 꿈이었더라?
아까부터 계속해서 찝찝했다.
‘무언가 중요한 걸 잊고 있는 것만 같은 느낌이 들어.’
잊으면 안 될 것을 잊어버린 것만 같은 느낌이 들었다.
그러나.
“이리 와서 앉아. 맛있는 밥 먹고 나면 기분이 좀 괜찮아질 거야.”
엄마의 손에 이끌려 식탁 앞에 앉자 그런 사소한 걱정은 모두 어디론가 날아가 버렸다.
“아까모찌네.”
“그럼. 우리 아들이 제일 좋아하는 거로 가져왔지.”
식탁에 앉아 있던 아빠가 생선살을 한입 크기로 떼어내 고슬고슬한 밥 위에 올려 주었다.
한 숟가락 떠서 입 안에 넣으니 천국이 따로 없었다.
따듯한 밥과 그 위에 얹어진 부드러운 생선살.
딱 기대하던 대로의 맛이었다.
“맛있네.”
“그렇지? 할머니가 제일 큰 놈으로 챙겨 주셨어.”
자연스레 식탁에 앉아 이런저런 잡담과 함께 밥을 먹었다.
“아참, 아들. 오늘 같이 집에 가지 않을래? 할머니가 많이 보고 싶어 하셔.”
하긴, 본가에 가지 않은지도 꽤 오래되긴 했다.
슬슬 갈 때가 됐지.
“그럴까?”
“정말? 잘 생각했어!”
하루가 빠르게 흘러갔다.
본가에 들려 할아버지와 할머니에게 인사드리고, 함께 저녁 식사를 하며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었다.
오늘 하루는 본가에서 자고, 내일 서면에 있는 집으로 가기로 했다.
오랜만에 가족들을 전부 만나서인지 마음이 따듯해지는 하루였다.
앞으로도 이런 날들이 계속해서 이어졌으면 하는 바람이 가슴 속을 가득 채울 정도로.
‘가끔씩 본가에 오는 것도 나쁘지 않네.’
평소와 같은 나날이 이어졌다.
집에서 게임을 하고, 소설을 읽고, 유튜브와 드라마를 보는.
그런 평범한 나날들 속에서 무언가 소중한 것을 잊어버리고 말았다는 느낌조차 희미해지던 어느 날.
[재현 님.]“……?”
누군가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잘못 들은 건가 싶을 정도로 너무나도 희미한 목소리.
어딘가 그립기까지 한 목소리.
그 목소리를 듣는 순간, 어떤 이름이 생각이 났다.
“…다빈…… 씨?”
난생처음 듣는 이름 같으면서도 어딘가 너무나도 익숙하게 느껴지는 이름이었다.
이상하다고 생각하던 그 순간.
[재현 님!]그 여자의 목소리가 아주 조금 더 크기 들려왔다.
목소리에 담겨 있는 감정이 어찌나 간절한지, 머리가 아닌 심장으로 내 이름을 부르는 것만 같은 목소리.
그런 목소리가.
[재현 님! 정신 좀 차려 보십시오!] [무슨 일이 있었던 겁니까?]하나, 둘.
[아악! 우린 끝장이야! 끝장났다고!] [박새롬! 정신 차려!]늘어가기 시작했다.
[재현 님이 어째서…….]그중에는 남자도.
[오빠! 눈 좀 떠 봐!]여자도 있었다.
그리고 모두가 하나 같이 간절함이 배어 있었다.
[재현 님!] [눈 좀 떠 보라고!]그들의 마음이 내게 닿았을 때.
“허억!”
나는 현실로 돌아올 수 있었다.
“오빠! 흐어어엉.”
제일 먼저 보인 것은 서예진의 얼굴이었다.
그 뒤로 하동건, 문병호, 강덕수, 김가영, 유혜린, 김다빈, 최형준, 김 건, 김다정, 오언주, 이준혁, 김명환…….
서른이 훌쩍 넘어가는 이들이 이곳에 모여 있었다.
가신들 중에서도 가장 강력한 존재감을 가지고 있는 이들.
충성도와 신뢰도 100은 물론이고 1차 한계돌파도 마쳤으며, 가신들 중에서도 내게 특별한 의미가 있을 정도로 친분이 있는 이들이었다.
“여러분이 왜 여기에……?”
타 차원의 세계수 공략에 앞장서고 있어야 할 인재들이었다.
그런 이들이 어째서 우리 집 거실까지 들어와 있단 말인가.
“그야…….”
가신들이 고개를 갸웃거리더니, 뭘 그런 당연한 걸 묻느냐는 듯 대답했다.
“재현 님께서 저희를 부르시지 않았습니까?”
“……네?”
혼란스러웠다.
나는 가신 소환을 한 적이 없었으니까.
그와 함께 순간적으로 불안해졌다.
‘가장 강력한 이들이 빠졌다면 지금쯤 파병을 나간 사람들은……!’
당연히 심각한 피해를 입고 있을 것이다.
80레벨을 찍은 세 사람이 모두 여기 한데 모여 있으니, 전선이 박살나는 것은 예정된 결과였다.
심지어는 나의 보조도 없고, 그들의 복귀를 위해 차원문을 열어 둔 것도 아니었다.
그러나 다행히도.
‘……다들 돌아왔구나!’
타 차원에 있던 가신들 모두가 지구로 돌아와 있었다.
그 사실에 안도의 한숨을 내쉬기도 잠시.
[집구석 절대자에게 적대적인 신격이 발견되었습니다.]어딘가 익숙한 알림과 함께.
쩌정―
‘크아아아아악!’
머릿속에서 찢어지는 비명이 들려왔다.
금세 그 정체를 알아차릴 수 있었다.
‘어째서!?’
천천히 눈을 감자 그의 모습이 눈앞에 나타났다.
“어째서란 말이냐!”
어둠 속에서 튀어나온 검은 쇠사슬이 그의 전신을 휘감고 있었다.
나는 무심한 표정으로 그를 바라보며 설명해 주었다.
그가 패배한 이유에 대해서.
“나는 너랑 달리 혼자가 아니거든.”
알 수 있었다.
한순간이나마 나는 놈에게 먹혔다.
분명 자신 있다고 생각했음에도 불구하고 제대로 된 저항 한 번 하지 못하고 한입에 집어삼켜졌다.
그렇게 놈이 보여 준 평화로운 일상에 나는 넘어가 버렸다.
놈은 내가 가장 저항하지 않을 상황에 대해 너무나도 잘 알고 있었던 것이다.
어찌 보면 당연했다.
이놈 또한 나였을 테니까.
만약 내게 김다빈을 비롯한 모든 가신들이 함께하지 않았다면 그대로 평화로운 일상에 잠식되어 침몰했을 것이다.
내가 당했다는 사실조차 알지 못한 채.
하지만 나는 혼자가 아니었고, 모든 가신이 손을 뻗어 나를 어둠 속에서부터 끌어내 주었다.
“인정할 수 없다! 그건 네 스스로의 힘이 아니야!”
“그래. 이건 내 힘이라고는 할 수 없지.”
놈의 말이 맞았다.
“근데 그래서?”
“……뭐?”
“그래서 네가 뭘 할 수 있는데?”
아까 전에 들었던 말을 그대로 돌려주자 놈의 얼굴이 잔뜩 일그러졌다.
나는 악귀처럼 표정을 일그러뜨린 그의 앞으로 다가가서는 진심 어린 말을 전했다.
“고맙다. 네가 쌓아 놓은 힘은 내가 잘 사용할 테니 걱정하지 말고.”
진심이었다.
만약 또 다른 내가 아니었다면 나 또한 비참한 미래를 겪어야만 했을 테니까.
그가 있었기에 집구석 절대자 능력을 얻을 수 있었고, 그 능력 덕분에 여기까지 올 수 있었던 것이다.
“수고했다. 네 역할은 여기까지인 것 같으니 편히 쉬어라.”
“으아아악―!”
단말마와 같은 비명과 함께.
[적대적인 신격을 흡수합니다.]시스템의 진정한 주인이 될 수 있었다.
【‘집구석 선포’ 스킬이 액티브화됩니다.】
그 직후.
[왜애애애애앵―] [경고, 경고.]아리가 핸드폰과 거실 티브이를 통해 요란하게 사이렌을 울려 댔다.
[검은 기운 빠르게 접근 중.] [60, 59, 58…….]분명 방금 전까지만 하더라도 몇 시간은 더 남아 있었던 예상 도착 시간이 1분으로 줄어들어 버린 것이다.
심지어.
[대상 계속해서 가속 중.] [……3.]그나마 남아 있던 시간도 빠르게 줄어들어 금세 3초가 되었다.
그리고.
[제로.]중간에 2초 1초는 어디다 팔아먹고 곧바로 0초가 되었다.
그 직후.
콰과과과과과과과―!
영역의 끄트머리 쪽에서 어마어마한 충격파가 느껴졌다.
집구석에서 하늘 위로 1만km 정도 되는 지점.
어느새 검은 기운이 그곳에 도착한 것이다.
하늘을 바라보니,
촤아아아아―
검은 기운이 순식간에 하늘 전체를 뒤덮어 가고 있었다.
‘절대자의 눈.’
영역의 경계선 부분을 바라보니, 검은 기운에 의해 실시간으로 잠식되어 가고 있는 내 영역의 모습이 보였다.
나는 곧바로 대응했다.
또 다른 나의 기억.
수백 년, 또는 수천 년간 검은 기운에 맞서 대항하던 때의 기억들.
도박은 성공적이었고, 나는 제정신을 유지한 채로 놈의 기억을 습득하는 데 성공했다.
덕분에 어떻게 해야 검은 기운에 대항할 수 있는지 알고 있었다.
‘먹어라.’
영역을 구성하고 있던 검은 기운이 벌 떼처럼 일어나 우주에서부터 자신을 공격해 오는 검은 기운에 대항하기 시작했다.
콰직!
서로가 서로를 잡아먹는 아귀 지옥.
기억 속에서 봤던 풍경이 그대로 눈앞에 펼쳐졌다.
‘아직은 버틸 만하다.’
현재는 한국의 하늘만 검은 기운에 점령당한 상태였다.
구름처럼 넓게 퍼져 오던 검은 기운 속에서 한 줄기 창이 되어 지구를 찔러 온 형태였기 때문이다.
그러나 지금 영역의 경계선을 따라 하늘을 잠식하는 속도를 보아하니, 금세 지구 전체를 뒤덮어 나갈 게 분명했다.
그렇게 되면 지구는 내 영역을 제외하고는 모든 곳이 검은 기운에 잡아먹혀 반쪽짜리 행성이 되고 말 것이다.
‘그렇게는 안 되지.’
방법은 있었다.
또 다른 나를 완전히 잡아먹으면서 액티브화된 ‘집구석 선포’ 스킬에 그 비밀이 있었다.
50레벨 이후 확장된 영역에는 투명 장벽이 없었다.
갑자기 나타나는 몬스터가 없는 대신 던전의 형태로 그것들을 잠시 가둬 두는 게 한계였으며, 내게 반감을 가진 몬스터들조차도 마음대로 죽이거나 할 수 없는 영역이었다.
그에 비해 대한민국을 둘러싸고 있는 영역은 온전히 내 영향력 아래에 있는 영역.
이곳에서 내게 반감을 가진 이들은 모조리 죽어 나갔으며, 그 어떤 몬스터도 감히 내 영역에 발을 들이지 못했다.
그렇기에 절대 영역이라 불렀다.
‘두 영역은 다르다.’
정확하게는 내 힘의 밀도가 서로 달랐다.
반대로 말하면.
‘밀도를 조절하는 것으로 얼마든지 영역을 압축하거나 확장할 수도 있다는 소리다.’
예를 들면 아시아를 넘어 중동과 유럽 일부까지 확장한 영역을 최대로 압축하여 한국 근처 지역을 절대 영역으로 만드는 것이 가능했다.
그와는 반대로.
‘절대 영역을 포기하면 지구 전체를 둘러싸는 것도 충분히 가능하다.’
내가 마음먹는 것과 동시에.
우우우웅―!
대한민국 전체를 완벽히 보호하고 있던 투명장벽이 무너지며 영역이 빠르게 확장하기 시작했다.
미국에 있는 별채 또한 마찬가지.
중간중간 개설되어 있는 영지의 씨앗이나 전초기지들도 완전히 분해되어 영역의 밑거름이 되어 주었다.
그 결과.
지이잉-
정말 아슬아슬하게 지구 전체를 내 영역 안으로 들여올 수 있었다.
그리고 그것이 완성된 직후.
촤아아아아―
검은 기운이 기다렸다는 듯이 지구 전체를 뒤덮었다.
“재현 님… 이건…….”
“허…….”
옆에 있던 가신들이 허망한 표정으로 하늘을 올려다보며 한마디씩 했다.
너무 놀라 아무런 말도 못하는 이들도 있었고, 공포에 떨며 주저앉은 이들도 있었다.
김다빈이 허탈한 목소리로 말했다.
“결국…… 예지몽이 이루어졌군요.”
검은 하늘이 온 세상을 뒤덮는다던 예지몽.
그것이 현실이 된 것이다.
‘지금 이 상태로도 조금은 버티겠지.’
하지만 그게 한계였다.
지구 전 방위에서 우주에서 온 검은 기운과 시스템에 예속된 검은 기운이 서로를 거칠게 뜯어 먹고 있었다.
지구 전체를 보호하기 위해서 밀도를 낮춘 덕분에 아주 조금씩 밀려나고 있는 상황이었다.
타 차원에 있는 세계수의 심장을 수집하며 버틴다면 잘하면 몇 년 정도는 이 상태를 지속하는 것도 가능할 것이다.
하지만 그 이후에는?
‘결국, 모두 죽게 된다.’
혹시나 싶어 타차원에 있는 과수원들을 모조리 확인해 봤다.
집구석에 해당하는 우리 집만 지키는 건 그리 어렵지 않을 테니까.
그 상태로 모두를 과수원으로 이주시킨다면 괜찮지 않을까 생각했다.
그러나 그런 기대도 무색하게도.
‘모든 차원에서 검은 기운이 희미하게 관찰되고 있다.’
작정하고 찾아보니 모든 곳에서 전조가 보이고 있었다.
‘애초부터 내게 내어 준 곳들은 전부 버리는 카드였다는 말인가.’
절망적인 상황이었다.
하지만 그럼에도, 하늘이 무너짐에도 솟아날 구멍은 있었다.
나는 담담하게 말했다.
“아직 전부 실현된 건 아닙니다.”
“……네?”
“꿈에서는 희미한 빛이 번쩍이며 끝이 났다고 했었죠.”
김다빈의 시선이 나를 향했다.
“지금부터 그 꿈의 마지막 부분을 실현시킬 겁니다.”
딱딱하게 굳은 표정으로 나를 바라보는 사람들.
멍한 표정인 이들도 있었고, 박새롬처럼 주저앉은 채로 울다가 나를 올려다보는 이들도 있었다.
그러나 그들은 하나같이 똑같은 기대를 담고 나를 바라봤다.
지금 이 상황을, 희망의 흔적조차 찾기 힘들 만큼 절망적인 이 상황을 나라면 어떻게 해 주지 않을까 하는 그런 기대.
그리고 나는 기대에 부응해야만 하는 존재였다.
“다녀오겠습니다.”
“재현 님―!”
슈슉―
가볍게 순간이동을 사용하자 순식간에 상공 1만km 부근으로 이동할 수 있었다.
지구의 대기권에서도 아득하게 떨어진 이곳.
정확하게는 모르지만, 이곳은 분명 우주의 영역에 해당하는 곳일 것이다.
‘이걸 직접 보게 되는 날이 올 줄이야.’
우주에서 본 지구는 정말이지 완벽한 예술 작품이었다.
잠시 감상에 빠졌던 나는 등을 돌려 전장을 바라봤다.
두 개의 검은 기운이 서로를 짓씹으며 펼쳐지는 아귀 지옥.
힘의 균형은 미세하게 바깥쪽이 우세했다.
우리 쪽 진영이 조금 밀리는 형국.
‘부족한 부분은 이것들로 채운다.’
그동안 열심히 수집해 온 신격들.
우웅!
진조에게서 얻은 붉은 흡혈귀의 신격.
세계수에게 기생하던 릴리트의 신격.
불사의 군단을 이끌던 망령의 신격.
얼음의 정점이었던 아이스 드래곤.
그밖에 수많은 신격과 현재는 검은 기운을 제외하면 가장 커다란 부분을 차지하던 세계수의 신격까지.
내게서 빠져나온 오색찬란한 빛이 새어 나오던 그때.
‘응?’
나의 내면 가장 깊은 곳에서 그 어떤 신격들보다도 찬란하게 빛나고 있는 한 가지 힘을 느낄 수 있었다.
‘이건…….’
무채색의 빛.
어쩌면 순수한 빛에 가장 가까운 그것은 다른 신격에 비하면 너무나도 초라한 크기였지만, 가장 찬란하게 빛나고 있었다.
그것에 집중하자.
‘아.’
기도하듯 두 손을 모은 사람들의 모습이 보였다.
겁쟁이임에도 불구하고 가족들을 위해서 골프채를 들고 밖으로 나갔던 최형준 아저씨, 친구의 가족을 구하기 위해 단체로 목숨을 바쳐 작전을 수행했던 하동건 파티, 처음부터 전투에 재능을 보였던 이준혁 파티, 울산의 흡혈귀에 대응하여 목숨을 바쳐 임무를 수행해 주었던 김민호 파티를 비롯해 수많은 부산 출신의 가신들.
그 후로도 서울에서, 한국 전역에서, 일본에서, 미국에서, 중국에서…….
많은 활약을 보여 주었던 수천 명의 가신.
그리고 나를 믿고 합류한 수천만 명의 사람까지.
그들의 신뢰와 믿음이 한데 뭉쳐 있었다.
[시민 김태영의 신뢰도가 100에 도달했습니다.] [시민 신지연의 신뢰도가 100에 도달했습니다.] [시민 김하늘의 신뢰도가 100에 도달했습니다.] [시민 이가은의 신뢰도가 100에 도달했습니다.]……
……
그 마음들이 더욱 더 강렬해지는 중이었다.
그 순간.
[조건이 충족되었습니다.]비축되어 있던 스킬 포인트가 제멋대로 소모되더니.
【집구석 절대자의 품위 유지 스킬이 Lv. 10이 되었습니다.】
【집구석 절대자의 품위 유지 스킬이 Lv. Max에 도달하였습니다.】
기적이 일어났다.
번쩍―
[집구석 절대자에게 적대적인 신격이 발견되었습니다.] [적대적인 신격을 흡수합니다.]시스템이, 우주에서부터 쏟아지는 검은 기운을 무서운 기세로 집어삼키기 시작했다.
전체적으로는 검은 늑대의 형상을 취했다.
그러나 한쪽 눈에는 오색찬란한 신격들이, 그리고 다른 한쪽 눈에는 가장 순수한 빛이 자리했다.
오드아이를 가진 늑대가 지구를 휩싸고 있는 검은 기운을 게걸스럽게 먹어 치우기 시작했다.
검은 늑대가 그것을 씹어 삼킬 때마다 그의 덩치는 계속해서 불어났고, 점점 더 많은 기운을 집어삼켰다.
검은 기운에 잡아먹혔던 달과 태양이 차례로 그 모습을 드러내는 데까지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이윽고 그것이 태양계 전체에 영향력을 행사하며 으르렁거리자.
촤아아악―
기세 좋게 쳐들어왔던 검은 기운이 썰물처럼 빠지기 시작했다.
기어코 승리해 버린 것이다.
올 때만큼이나 어마어마한 속도로 도망치는 검은 기운을 바라보며 허탈해진 내가 헛웃음을 내뱉었다.
“허.”
태양조차 집어삼킬 만큼 거대한 검은 늑대가 내 앞으로 와 앙탈을 부려 댔다.
콧등으로 추정되는 부위를 쓰다듬어 주자 기분 좋은 듯 그르렁거리는 소리가 들려왔다.
“수고했어.”
드디어.
모든 것이 끝났다고 생각할 때 쯤.
“아, 맞다.”
아직 한 가지 해결할 일이 남았던 것을 떠올렸다.
바로 얼마 전까지만 해도 불가능하다고 생각했던 것.
검은 늑대의 사이즈라면 충분히 가능할 것이다.
“아직 배 많이 고프지?”
나는 검은 늑대의 앞에 세계수의 거대 심장이 있는 차원의 문을 열어 주었다.
지이이잉―
– 에필로그가 이어집니다 –
[Epilogue]평화로운 오후.
천진난만한 아이들이 아파트 놀이터를 활보하고 있었다.
“여긴 여섯 살만 올 수 있어!”
“와아아아!”
끼리끼리 모인 아이들은 저마다 비슷한 또래들로 모여서 돌아다녔다.
그룹마다 대장 역할을 하는 아이가 이것저것 지시하며 술래잡기나 숨바꼭질을 하며 놀고 있는 것이다.
“야옹이다!”
“안 돼, 가지 마! 가까이 가면 도망친단 말이야!”
“너 때문에 야옹이가 도망쳤잖아!”
아파트 산책로는 서너 살 남짓한 어린아이들부터 대여섯 살까지 다양한 나이대의 아이들로 북새통을 이루고 있었다.
학교를 다니게 된 아이들은 조금 더 점잖게 놀았다.
말하기 좋아하는 여자아이들이 놀이터 옆에 설치된 벤치나 정원 테이블에 모여서는 수다를 떨어 대고 있었다.
“너희 그거 알아? 우리 아파트 꼭대기에 신님이 살고 계신대.”
“뭐어? 정말?”
“진짜라니까!”
한창 수다를 떨던 아이들의 옆으로 교복을 입은 고등학생 몇 명이 지나가자 곧바로 화제가 돌변했다.
“경남공고 오빠들인가 봐!”
“우와. 대박! 우리 아파트에 사나?”
경남공고는 과거 찬란하게 빛나던 명성을 되찾은 상태였다.
김재현이 있는 아파트 단지와 가깝다는 것도 한몫했으나 몬스터를 잡아 돈을 버는 구조 덕분에 교육 체계 자체가 크게 변화한 탓이었다.
이젠 더 이상 아이들은 공부를 강요받지 않았고, 각자 고유 특성이나 각성한 능력에 따라 알맞은 교육을 듣게 되었다.
가장 인기 있는 직군은 아무래도 새롭게 생겨난 ‘헌터’라는 직종이었다.
곳곳에 생겨나는 던전들은 미리미리 토벌하지 않으면 몬스터가 터져 나오는 구조였기 때문이다.
돈을 벌기 위해서도 몬스터 사냥은 중요했지만, 시민들의 안전을 위해서 무엇보다 중요한 것이 바로 던전 공략이었고, 그것을 전문적으로 담당하는 직종이 바로 ‘헌터’였다.
“나도 커서 헌터가 될 거야!”
헌터는 아이들의 선망을 받는 직업이 되었으며, 많은 사람이 헌터 관련 직종에 종사하고 있었다.
능력이 없더라도 운동이나 몬스터 사냥으로 차근차근 레벨을 올리고, 직업을 구하면 헌터 활동을 할 수 있었기에 원하는 이들은 누구나 헌터를 꿈꾸는 게 가능했다.
그때였다.
“어! 산타 아저씨다!”
누군가 외치자 아이들의 시선이 모두 한곳으로 돌아갔다.
가끔 산책로를 걷다가 만나게 되면 아이들에게 선물을 주곤 했기에 아이들 사이에선 산타로 제법 유명한 사람이었다.
그런데.
“처, 처음 뵙겠습니다!”
“영광입니다!”
경남공고 학생들이 그의 앞에서 바짝 굳어 버리는 것을 본 아이들은 깜짝 놀라고 말았다.
“우와. 산타 아저씨 엄청 대단한 사람이었나 봐!”
“당연하지 선물을 막 꺼내시는데!”
“그건 우리 아빠도 가능한데?”
직후 아이들이 그에게 몰려들어 질문 공세를 시작했다.
“아저씨! 아저씨 정체가 뭐예요? 왜 저 형들이 아저씨한테 그러는 거예요?”
“나두 초콜릿……!”
“야! 내가 먼저 왔거든!”
그 과정에서 한 아이가 넘어졌다.
“흐아아앙.”
꽤 심하게 넘어져서 무릎에서는 피가 났다.
원인 제공을 한 아이가 미안해서 어쩔 줄 몰라 하던 그때, 산타 아저씨가 직접 나섰다.
“괜찮니?”
“흐극! 네에-.”
“어디 보자. 아픈 거, 아픈 거 다 날아가라.”
그러자.
“어라?”
울먹거리던 아이가 금세 울음을 멈추었다.
“하나도 안 아파!”
“우와!”
“아저씨 각성자였어요?”
“대박!”
산타 아저씨는 그저 씨익 웃고는 손을 가볍게 퉁겼다.
그러자.
“와아아!”
아이들 손에 저마다 하나씩 맛있는 것들이 나타났다.
초콜릿, 탕후루, 아이스크림.
평소에는 엄마의 강경한 태도 때문에 잘 먹지 못하는 달달한 것들.
그런데 이상하게도 산타 아저씨가 줄 때만큼은 부모님도 무어라 하지 않으셨다.
그래서 아이들이 더 산타 아저씨를 좋아하는 것이었다.
“아저씨 최고!”
그러나 아이들이 그가 있는 곳을 바라봤을 때에는 이미 그는 사라지고 없었다.
“또 사라졌어!”
“역시! 엄청 대단한 각성자인가 봐!”
“숨바꼭질할 사람! 여기여기 붙어라!”
“나!”
“나도!”
아이들은 금세 흩어져 다시 끼리끼리 어울리기 시작했다.
* * *
집으로 텔레포트하여 돌아온 나는 작게 한숨을 내쉬었다.
‘재생력이 10배가 되어서 그런지 애들이 너무 과격해졌단 말이지.’
무릎이 까진 상처 같은 것은 하루도 되지 않아 나아 버리는 탓인지 놀이나 훈련 자체도 예전보다 훨씬 과격해진 느낌이었다.
특히 고등학생에 불과한 예비 헌터들의 전투 훈련을 구경하다 보면 혀를 내두를 지경이었다.
힐 능력을 각성한 이들이나 신뢰도 100을 찍고 사제가 된 이들도 있었기에 훈련 도중 피가 나거나 팔이나 다리가 부러지는 것은 흔히 있을 정도였다.
‘……안전을 위해서는 어쩔 수 없는 일이기는 하지.’
지구 전체를 내 영역 안으로 들여온 대가로 잃은 것이 꽤 많았다.
우선, 대한민국을 넘어서 일본 후쿠오카 지방까지 뻗어 있던 절대 영역 자체가 이 아파트 단지 하나로 줄어들어 버렸다.
당연했다.
처음부터 절대 영역에 있는 힘을 대가로 지구 전체를 영역 아래 둘 수 있었던 것이었으니까.
지구 전체, 광범위한 영역에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게 된 탓인지 예전보다 정신력이 조금 줄어든 느낌이었다.
‘아마도 절대 영역의 크기가 줄어든 게 크기 작용했겠지.’
현재 레벨은 77레벨.
75레벨을 달성한 뒤로는 아이스 드래곤 둥지를 전부 소탕해도 극적인 성장이 불가능했다.
‘지금 레벨 수준에서는 이전처럼 한국을 둘러싸는 크기의 절대 영역과 지구를 절반쯤 포함하는 형태가 이상적이겠지.’
그렇다면 좀 더 영역 전체에 절대적인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었을 것이다.
‘지금처럼 활동 반경 자체가 아파트 단지 내부로 제한되는 일도 없었겠지.’
하지만 그런 형태로 되돌아가는 것은 불가능했다.
‘조금만 틈을 보여도 저놈이 쳐들어올 테니깐 말이지.’
태양 한쪽 귀퉁이에 존재하는 검은 별.
놈은 아직 우리를 포기하지 않았다.
오히려 세계수의 심장을 내가 취해 버린 뒤로 더욱 집요하게 우리를 노려 왔다.
아무튼, 그 때문에 던전 공략 과정이나 던전에서 쏟아져 나온 몬스터로 인해 죽거나 다치는 사람들이 꽤 많아지고 있는 실정이었다.
그렇다고 좌절할 필요는 없었다.
‘이대로 조금씩 나아지면 계속해서 나아가다보면, 언젠가 반드시 그 노력이 빛을 발할 테니까.’
그래.
띠링!
[스킬 레벨이 상승하였습니다.]바로 이렇게.
– 완결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