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bsolute Dweller RAW novel - Chapter (37)
이준혁은 서면역 근처에서 생존자 집단을 이끌던 각성자 중 한 명이었다.
겨우 물을 만들어내는 능력이었지만, 극한의 상황에서 물을 만들어내는 능력은 생존에 핵심적인 역할을 해 주었다.
덕분에 그가 이끄는 생존자 집단은 다른 집단에 비해 상당히 많은 숫자가 살아남은 상태였다.
그러나 많은 숫자의 생존자는 시간이 지날수록 장점이 아닌 단점이 되어가고 있었다.
사람들의 숫자만큼 빠르게 식량이 소모되고 있었기 때문이다.
자신을 포함해 총 24명.
성인 24명이 먹어대는 식량은 상상 이상으로 많았다.
‘이제 진짜 한계다.’
주변에 있는 몬스터들과 싸우며 치열하게 얻은 식량들도 슬슬 한계를 드러내고 있었다.
‘어디로든 떠나야 해.’
그런 고민을 하던 때였다.
콰르르르릉―
절망의 전주곡이 들리기 시작한 것은 어느 유난히 화창한 오후쯤이었다.
쿠구구구구―
무언가 폭발하는 소리와 함께 땅이 뒤흔들렸다.
그가 있는 곳이 지하였기에 더욱 심하게 체감이 되었다.
‘지진인가?’
그때 위쪽에서 다급하게 내려온 남자 한 명이 그를 향해 소리쳤다.
“준혁아! 당장 위로 올라와 봐야겠어!”
“왜? 무슨 일이야?”
“큰일 났어! 괴물이야, 괴물!”
공포로 짙게 물든 남자의 표정을 본 이준혁이 말했다.
“진정하고, 안내 해. 어디로 가면 돼?”
“따라와.”
그를 따라 계단을 성큼성큼 올라가는 와중에도 땅의 진동은 계속되고 있었다.
‘아니, 오히려 심해지고 있다.’
이준혁이 남자의 안내를 따라 3층까지 올라왔을 때, 건물 사이 틈으로 ‘그것’의 정체가 보이기 시작했다.
“···저게 뭐야?”
거인이 그곳에 있었다.
수십 미터에 달하는 키 때문에 서면 어디에 있든 녀석의 모습이 보일 듯 했다.
그 괴물이 건물들을 부수고 있었다.
“준혁아. 이, 이제 우린 어떡하지?”
이준혁은 멍하니 괴물을 바라보며 대답했다.
“형.”
“으, 응?”
“어쩌긴 뭘 어째요. 저걸 상대로.”
이미 답은 정해져 있었다.
“모두에게 지하에서 꼼짝하지 말고 숨어 있으라고 전해요.”
“뭐? 하, 하지만···!”
“모르겠어요? 우리가 할 수 있는 건 없어요, 형. 그저 저 놈이 여기로 오지 않기를 기도하는 게 우리가 할 수 있는 최선이라고요.”
포식자가 등장하면, 피식자의 선택지는 보통 두 가지로 나뉜다.
도망치던가, 숨어 있던가.
그러나 이준혁 일행의 상황에서는 도망친다는 선택지는 선택할 수 없었다.
“아니면 어디로 가게요? 당장 밖에 고블린이나 오크들이 깔려 있는데, 어디로 도망칠 생각인데요? 놈들이랑 싸우다가 거인의 눈에 들기라도 하면 그대로 다 끝장인데?”
“그, 그건··· 알겠어. 숨어있으라고 전할게. 그런데 너는 뭐 하려고?”
“저는 저 놈이 어디로 가는지 지켜보려고요.”
“그, 그래.”
그렇게 남자를 내려 보낸 뒤 이준혁은 건물 옥상으로 이동했다.
옥상에 도착하자,
“캬아아악!”
고블린 한 마리가 달려들었다.
‘아직 남아 있었나.’
자신을 향해 달려드는 고블린을 향해 가볍게 야구 배트를 휘둘렀다.
콰직!
고블린은 한 방에 즉사했다.
이준혁이 이토록 쉽게 고블린을 사냥하는 것은, 그가 각성자이기 때문이었다.
각성하는 순간 일반인과는 다른 신체 스펙을 가지게 되는데다 몬스터를 사냥하면 할수록 미세하게 강해졌다.
이제는 운동을 열심히 한 사람들보다 뛰어난 신체 능력과, 모든 감각이 극한으로 예민해진 상태였다.
일반인의 스펙을 한참 뛰어넘은 것이다.
‘이제 고블린 가지고는 아무런 느낌도 안 나네.’
일정 수준 이상이 된 이후로 이제는 고블린을 사냥해도 특유의 그 성장하는 느낌을 느낄 수 없었다.
‘적어도 오크 정도는 되어야 한다는 건가.’
이 특유의 성장하는 느낌은 동료들은 전혀 느끼지 못했다.
‘아마도 각성자만 성장할 수 있는 거겠지.’
쿠우우웅―
다행히도 거인은 이쪽 건물에는 전혀 관심을 보이지 않은 채 점점 멀어지고 있었다.
저 멀리 보이는 거인을 바라보며 생각했다.
‘저런 걸 잡을 수만 있다면, 엄청나게 강해질 수 있을 거 같은데.’
알고 있었다.
그게 쓸데없는 망상에 불과하다는 건.
그러나 욕심이 생기는 건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저 괴물을 잡기만 한다면 당장 자신의 신체 스펙이 한 단계 더 진화하리라는 것을 너무나도 잘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때였다.
-크아아아아악!
거인이 고통에 찬 비명을 내질렀다.
‘······음?’
무슨 일인가 하고 자세히 노려보니 누군가 거인을 상대로 싸우고 있는 것처럼 보였다.
‘미친 놈 아니야?’
자신은 상상만으로 끝낸 일을 누군가 실제로 벌일 줄이야.
‘저 놈은 무조건 나와 같은 각성자다.’
아직 자신과 같은 각성자와 마주친 일은 없지만, 확신 할 수 있었다.
그게 아니라면 저렇게 목숨 걸고 위험한 도박을 벌일 리가 없었다.
이준혁의 눈에는 그가 경험치 욕심에 눈이 멀어 무리를 하고 있는 것으로 보였다.
‘자기 주제도 파악하지 못하는 한심한···.’
그런데.
-아아악!
이변이 벌어지고 있었다.
‘어?’
고통스러워하는 거인의 목소리를 보면 그 주제 파악 못하는 한심한 놈이 나름 유효타를 먹이고 있는 듯 보였다.
‘설마? 거인을 잡을 수 있다고?’
그런 기대가 들었던 것도 잠시.
콰아아아앙!
거인의 유독 거대한 발이 메테오가 되어 지상을 내려찍었다.
쿠구구구―!
“크윽!”
순간적으로 흔들리면서 주변 건물들이 속수무책으로 무너지는 광경이 보였다.
그리고 그 진동의 일부가 이준혁이 있는 건물까지 전해져왔다.
순간적으로 균형을 잃고 넘어질 뻔 하였지만, 각성자가 되며 뻥튀기 된 신체능력과 운동신경 덕분에 넘어지지 않을 수 있었다.
‘···죽었겠군.’
거인의 발에 밟혀 죽었을 이름 모를 각성자를 애도하던 그때.
‘음?’
거인이 다시 발광하며 달리기 시작했다.
그런데 아까보다 묘하게 거인의 발걸음이 느렸다. 자세히 보니 한쪽 발을 절뚝거리며 걷고 있었다.
‘뭐야? 아직 살아있다고?’
혼란스러웠다.
지금 저 각성자는 얼마나 대단한 능력을 각성했기에 저 거인과 대등하게 싸울 수 있는 것일까.
‘도대체···.’
얼마나 강력하기에.
자신도 몬스터들이 갑작스럽게 나타난 그 날 이후 끊임없이 사냥하며 성장했다고 생각했는데, 벌써 저런 괴물과 싸울 수 있는 수준의 각성자가 있다니.
‘나도 전투 관련 능력을 얻었더라면 가능했을까?’
아무리 생각해봐도 자신이 저 괴물과 싸우는 이미지가 그려지질 않았다.
그런데 그 이후 더욱 놀라운 장면이 펼쳐졌다.
화르르륵―!
“!!!”
거인의 입에서 거대한 불길이 분수처럼 치솟았다.
그와 함께 이준혁이 있는 곳까지 따스한 바람이 불어 닥쳤다.
이 거리까지 영향력을 미치는 불길이라니.
‘저건 또 무슨 괴물 같은 능력이야?’
저 폭발은 거인의 능력이 아님에 분명했다. 그도 그럴 것이, 자신의 능력이라면 저렇게 타격을 입은 듯한 모습을 보여줄 리가 없었으니까.
그렇다는 것은 거인과 전투를 벌이는 각성자의 능력이라는 건데, 저런 압도적인 스케일이라니.
‘나와는 수준이, 아니 격이 다르다.’
이제는 거인이 아니라, 거인과 싸우고 있는 정체모를 각성자가 더 괴물처럼 보이고 있었다.
비슷한 수준이라야 질투도 나고 경쟁심도 불태울 텐데, 저건 도를 넘었다.
그저 경이로운 모습이었다.
한 가지 놀라운 것은, 거인도 무시무시한 생명력으로 그 대폭발을 견뎌냈다는 것이었다.
그 이후 한참이나 바닥을 향해 주먹질을 하던 거인은 어느 순간.
번쩍!
찬란한 빛의 번쩍임과 함께 상반신이 잘려나갔다.
“!?!?!?!”
그것으로 전투는 끝났고, 갑자기 거인의 몸이 통째로 사라지기 시작했다.
“···미쳤다.”
그 광경을 처음부터 끝까지 지켜본 이준혁은 한 가지 깨달음을 얻을 수 있었다.
‘저 사람이다.’
이 빌어먹을 세계에서 살아남기 위해서는 저 사람에게 붙어야 한다고.
‘지금 당장 찾아가야해.’
결심이 서자마자 이준혁은 곧바로 지하로 내려가서 사람들을 설득했다.
길게 설득할 필요는 없었다.
“준혁이가 가자고 하면 가야지.”
“당연히 없겠지만, 준혁이 말에 반대하는 사람?”
“없지.”
이미 그가 있는 생존자 집단은 그를 중심으로 돌아가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이들은 이준혁 덕분에 생존할 수 있었던 것이라는 사실을 알고 있는데다, 식량을 구하기 위해서는 조만간 떠나야 한다는 것까지 모두가 인지하고 있었다.
무엇보다 이곳에는 이준혁의 말에 적극적으로 찬성하는 이들밖에 남지 않았다.
애초에 이준혁은 자신의 의견에 토를 다는 사람을 데리고 다니지 않았기 때문이다.
냉정하다고도 할 수 있지만, 조금이라도 더 오래 살아남기 위해서는 당연한 선택일 뿐이었다.
“출발하죠.”
의외로 거인이 죽은 아파트단지까지 가는 길은 그리 험난하지 않았다.
거인이 설쳐댄 덕분인지 주변에 몬스터가 코빼기도 보이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게다가 이준혁이 이끄는 생존자 집단은 고블린 사냥은 물론이고, 오크들까지도 사냥해 본 적이 있을 정도로 고급 인력들이었다.
물론 이준혁의 활약 덕분이기는 했지만, 어쨌든 단 한 사람도 예외 없이 일인분을 할 수 있는 사람들이라는 게 중요했다.
이런저런 이유로 그들은 한 시간도 안 되어서 목적지에 도달할 수 있었다.
“오빠, 저기야?”
“그런 거 같아.”
이준혁이 긍정하자 옆에 있던 남자가 아파트를 올려다보며 감상을 내뱉었다.
“준혁이 네 말대로 뭔가 있기는 있나 보네. 아무리 신축이라고 해도 이 난리가 났는데 너무 깨끗해 보이는 걸?”
특이한 점은 그것뿐만이 아니었다.
‘형 말대로다. 주변이 너무 깨끗해.’
그 흔한 사람 시체도, 몬스터 사체도 찾아볼 수 없었다.
핏자국이나 그런 것들도 거의 없는 편.
마치 누군가 청소라도 한 듯한 모양새였다.
그때였다.
“어? 저기 좀 봐 준혁아.”
남자가 가리킨 곳에는 십여 명의 사람들이 걸어오고 있었다.
대부분이 오크의 창과 활로 철저하게 무장을 한 그룹이었다.
어렴풋이 그들의 대화 소리가 들려오고 있었는데 그 내용이 뭔가 이상했다.
“와. 진짜 식겁했네.”
“그러게. 고블린 사냥으로 용돈 좀 벌려다가 뒤질 뻔 했네 진짜로. 갑자기 거인이라니.”
“그 거인은 정체가 뭘까.”
“몰라. 근데 돈 얼마 벌었냐?”
“나? 오늘은 고블린 세 마리 잡았으니까 만 원 정도? 경험치도 쏠쏠하게 먹었고, 가서 컵라면이나 사 먹어야겠다.”
“좋겠네. 나는 두 마리 밖에 못 잡았는데.”
고블린을 잡아서 경험치를 얻는다는 표현까지는 이해할 수 있었다.
이준혁 자신이 느끼는 감각도 딱 저 표현에 알맞았으니까.
‘근데 돈은 무슨 소리야?’
고블린을 세 마리 잡아서 만원을 벌었다니.
그게 도대체 무슨 소리일까.
이해할 수 없었다.
‘아니, 잠깐. 그런데 경험치를 얻는다는 건 저 사람들도 그 감각을 알고 있다는 건데, 그럼 저 사람들이 죄다 각성자라는 소리야?’
이준혁의 그룹에서 저 감각은 오로지 각성자인 그 혼자서만 느끼고 있는 감각이었다.
그런데 저 사람들은 모두가 경험치에 대한 이야기에 공감하고 있는 듯한 눈치였다.
‘게다가 뭐지 이 위화감은?’
저들에게서 단 한 톨의 긴장감도 느껴지지 않고 있었다.
몬스터에 대한 두려움도, 생존에 대한 절박함도 없었다.
그렇기 때문에 저들이 거인을 죽인 그 엄청난 각성자와 어떤 식으로든 연관이 있을 거라는 확신이 들었다.
“준혁아. 왜 그래?”
“현찬이 형.”
“응?”
“저 사람들 따라가자.”
그렇게 그들의 뒤를 따라 아파트 단지에 진입하려던 어느 순간.
“억!”
“뭐야?”
갑자기 투명한 벽이 그들을 가로막았다.
[출입 불가.]그리고.
[시민권을 획득하시겠습니까?] [예 / 아니오]그들의 앞에 묘한 글자가 떠올랐다.
“이건 또 뭐야?”
“준혁아. 이거 어떻게 할까? 보니까 시민권을 받아야 들어갈 수 있는 모양인데?”
이준혁은 난생 처음 보는 허공의 글자를 노려보다가 말했다.
“받죠.”
띠링!
[시민권을 획득하셨습니다.]그것을 받자마자 투명한 벽이 사라지며 아파트 단지 안으로 들어갈 수 있게 되었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서.
《파티 퀘스트》
퀘스트 내용 : 114동 3002호로 찾아오기.
제한 시간 : 1시간 00분 00초
보상 : 소량의 경험치.
실패 페널티 : 없음.
다시 한 번 그 홀로그램 창이 눈앞에 나타났다.
“퀘스트?”
“경험치는 또 뭐야?”
이준혁은 사람들을 향해 말했다.
“부르니까 일단 가 봅시다.”
지금 눈앞에 벌어지는 것들에 대해 크게 고민할 필요가 없었다.
당장 자신도 무(無)에서 물을 만들어내는 초능력을 가지고 있는데, 이런 게임 시스템 같은 능력을 가지고 있는 사람이 있다고 해서 이상할 건 없었으니까.
그렇게 자신의 그룹 23명을 이끌고 퀘스트 지역을 찾아갔을 때였다.
“반갑습니다, 이준혁씨.”
그와 마주하는 순간, 본능적으로 알 수 있었다.
‘이 남자다.’
그 거대한 거인을 무릎 꿇렸던 사람이 바로 눈앞에 있는 남자라는 것을.
자신의 눈앞에 있는 남자의 압도적인 존재감은 그 덩치만 큰 거인보다도 더 거인이라는 말이 잘 어울리는 사람이라는 생각이 들게 만들었다.
“저는 김재현이라고 합니다.”
그의 전신에서 오오라 같은 것이 뿜어져 나오고 있는 듯한 착각이 들었다.
사소한 몸짓과 말투에 깃든 품격이 절로 존경심을 불러일으키고 있었다.
과거 귀족이나 왕족, 황족이라는 계급은 이런 사람을 위해 존재했던 게 아니었을까.
이준혁은 김재현의 손을 마주잡으며 허리를 구십도로 숙였다.
“이준혁이라고 합니다! 잘 부탁드립니다!”
────────────────────────────────────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