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bsolute Dweller RAW novel - Chapter (44)
> [Episode 10] 부산역 (4)
“50명이 한 세대에서 같이 자라고? 우리가 무슨 닭인 줄 알아?”
“그게 일단 임시로..”
“임시는 무슨 놈의 임시! 아까 보니까 빈집도 많더만! 다 둘러보고 온 건데 무슨!”
사람들이 단체로 몰려와 김다빈을 곤란하게 만들고 있었다.
그들은 저마다 한 마디씩 불만을 토로했다.
“아니, 적어도 사람들이 다 같이 자게는 만들어줘야 하는 거 아니에요? 애들은 편하게 재워야 할 것 아니야.”
“그러지 말고 빈방 몇 개만 줘요. 들어가서 잠만 잘 테니까”
“죄송합니다. 저희 원칙상”
거기까지 본 나는 곧바로 움직였다.
거실 중앙에서 가부좌를 튼 채 앉아 있는 서예진을 지나, 유혜린이 잠들어 있는 안방의 문고리를 잡았다. 현관문이 아닌 이곳으로 향한 이유는 이번에 레벨업으로 얻은 새로운 스킬을 사용하기 위해서였다.
집구석 절대자의 문 Lv. 1
-집구석 선포가 된 영역 내의 있는 문과 문 사이를 연결할 수 있다.
20레벨이 되면서 새롭게 생겨난 스킬의 기능이었다.
’21층으로’
안방으로 향하는 방문을 열고 들어가자, 유혜린이 잠들어 있는 모습이 아닌 21층의 모습이 드러났다.
“어차피 당신들도 남의 집 마음대로 무단 점거하고 있는 거 아니야! 이런 비상 상황에 서로서로 돕고 살아야지, 당신들이 뭐라도 된 줄 알아? 어?”
이제는 도를 넘어서 고래고래 소리를 지르고 있는 사람도 있었다.
나는 그들을 향해 말했다.
“접니다. 그 남의 집 무단 점거한 사람이”
김다빈에게 단체로 항의중이던 사람들의 시선이 일제히 내게로 집중되었다. 방금 김다빈의 앞에서 목소리를 키우던 사람을 똑바로 쳐다보며 입을 열었다.
“죄송하지만 제가 만든 정책이 불만이시라면, 제 집에서 나가주시겠습니까?”
“뭐요-? 나이도 어린 것이 지금 얻다 대고—!”
긴말 필요 없었다.
‘퇴출, 성윤식’
김다빈을 향해서 위협적으로 목소리를 높이던 남자를 곧바로 퇴출시켰다.
그 순간.
[시민 성윤식이 집구석 선포 영역에서 추방됩니다.]슈슉—
성윤식의 몸이 사라졌다.
집구석 영역 밖으로 추방된 것이다.
추방될 경우 정말 신사적으로 집구석 영역 밖으로 이동시켜 준다.
강제로 빠져나가는 과정에서 다치거나 생명의 위협을 받는 경우는 없었다.
물론 지금 시간에 혼자서 집구석 영역 밖으로 나간 시점에서, 목숨을 보장받기는 어려웠지만 말이다.
‘절대자의 눈’
혹시나 몬스터가 있는 구역으로 내보내진 것은 아닌지 확인해봤다. 다행히 그가 퇴출된 골목에는 어둠과 그 말고는 아무것도 없었다.
그가 어색한 손길로 투명 방벽을 건드려왔다.
[허가 받지 않은 대상이 출입을 시도합니다.]“저, 저기요.”
성윤식의 떨리는 목소리만 골목길을 공허하게 물리고 있었다.
“아, 아무도 없어요? 저기요—!”
그 모습을 확인하며 나는 다른 이들을 향해 물었다.
“또 불만 있으신 분?”
모두가 꿀 먹은 벙어리가 되어 있었다.
어색하게 내려앉은 침묵 속에서 나는 잠시 그들을 한 명 한 명과 눈을 마주친 뒤에 입을 열었다.
“지금 이 시간부로 여러분들이 이용하시는 세대의 전기, 수도, 가스 공급을 중단하겠습니다.”
“네?”
“아니, 그게 무슨?”
“이런 경우가 어디 있어요!”
정확히 불만을 내뱉은 이들을 바라보며 말했다.
“오히려 제가 묻고 싶네요. 지금 이게 도대체 무슨 경우입니까?”
나라고 좋아서 사람들을 한 곳에 몰아넣는 게 아니었다.
“묻고 싶네요. 여러분들이 이곳에 온 이유가 무엇인지.”
“여러분들이 이곳을 찾은 시점이, 저희가 거인을 처리한 직후인 것은 우연인가요?”
157명이라는 대규모 인원.
이들은 다른 생존자들에 비해 마실것과 먹을 것을 넉넉히 가지고 있는 이들이었다. 당연했다 저만한 인원이 모이기 위해서는 필수적인 요소였으니까.
각성자는 없었지만, 물자적으로 부족함을 느끼지 않는 집단이었다는 소리다.
그럼에도 이들이 이곳을 찾은 이유는 뻔했다.
“거인과 같은 괴물도 처치할 정도의 능력이 있는 곳이니 믿을만하다고 판단해서 찾아온 것 아닙니까? 보호받기 위해서요.”
워낙 요란한 이벤트였다.
주변에 있는 사람들이 죄다 이곳으로 몰려오고 있는 것은 거인과의 전투가 일종의 홍보 효과를 내고 있기 때문이었다.
“당장 여러분들과 비슷한 생각으로 찾아오는 사람이 하루에도 수백 명씩 있습니다. 무슨 말인지 아시겠어요?”
이들의 요구를 수용하는 순간 그 즉시 세 가지 문제가 발생할 것이다.
하나, 빠른 속도로 빈방이 소모되고, 결국에는 새로 유입되는 사람들을 받을 수 없게 되거나 그들을 길바닥에 나앉게 만들어야 할 것이다.
둘, 기존에 시민으로 있던 이들이 불만을 느끼게 될 것이다.
마지막으로 셋, 한 번 들어주게 되면 끝도 없이 요구해올 것이라는 점이다.
“이번 기회에 분명히 말씀드리겠습니다.”
힘 있는 자의 폭거.
솔직히 그렇게 바라볼 수도 있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그들의 입장을 이해하려고 노력하고 싶지는 않았다.
내 입장이 훨씬 더 좋은데 내가 왜 그래야 한단 말인가.
“여러분들이 바라는 기본권, 복지 그런 건 여기에 없어요. 세상을 보십시오. 대한민국 정부는 이미 망했고, 저는 정부의 대리자가 아닙니다.”
지금 세상은 그런 낭만적인 것들을 원하기에는 지나치게 잔혹한 곳이었다.
“권리를 누리고 싶다면, 그에 걸 맞는 자격을 먼저 갖추시길 바랍니다.”
솔직히 보기 좋지 않았다.
다른 생존자들은 불편한 환경에서 적응하기 위해 자기들 나름대로 노력하는 중이었다.
3교대로 나누어 잠을 청하며 공용 시설의 공간 활용을 극대화한다든지, 먼저 이곳에 적응한 시민들에게 조언을 구한다든지, 기존에 있던 시민들에게 대가를 지불하고 세를 들어가든지.
정말 다양한 방식으로 적응하고 있었다.
불편함 속에서도 아이들과 약자들을 먼저 배려하고, 함께 헤쳐나가려는 사람들도 많았다.
그런데 이들은 방법을 찾는 대신 무작정 요구하기를 선택한 것이다.
배가 부른 거지.
그런 사람들과 비교가 될 수밖에 없었다.
“당장 배정된 숙소로 돌아가세요. 이 이상 잃고 싶지 않다면”
내 말이 떨어지자 사람들은 고개를 떨구고 우루루 빠져나가기 시작했다.
[시민 김다빈의 신뢰도가 크게 올라갑니다.]그 모습을 보던 김다빈이 한숨을 내쉬며 말했다.
“감사합니다. 재현님. 덕분에 살았어요.”
나는 빙긋이 웃으며 그녀를 향해 소통의 반지를 사용했다.
[감사하긴요. 당연히 제가 해야 할 일인데요.]“어?”
[감사는 오히려 제가 드려야죠.]김다빈이 아리송한 표정으로 고개를 갸웃거렸다.
내가 입을 열지 않고 있는데도 불구하고 계속 내 음성이 들려오고 있으니 당황스럽겠지.
그런 그녀를 향해 계속해서 소통의 반지를 사용했다.
[신기하신가요?]“엇, 네에”
[아마 다빈씨도 비슷한 걸 하실 수 있을 겁니다.]“네? 제가요?”
[텔레파시 아시죠? 말을 전하려는 대상을 생각하면서 속으로 말한다고 생각해보세요.]그 순간.
[이, 이렇게요?]김다빈이 텔레파시를 사용하는 데에 성공했다.
[잘하셨습니다. 정확한 사용 조건이나 제한 등은 직접 사용하시면서 익혀 나가시면 될 겁니다.] [가, 감사합니다!]바로 코앞에 두고 텔레파시만을 사용해서 대화를 하자니 약간 이상한 느낌은 있었다.
그때였다.
“저, 저기..”
뒤를 돌아보자 머리가 벗겨진 아저씨 한 명이 초조한 기색으로 서성이고 있었다.
자세히 보니 아까 우르르 몰려왔던 이들 중 한 명이었다.
“아직 할 말이 더 남았나요?”
내가 강하게 나오자 남자가 더듬거리며 말을 내뱉었다.
“저, 정말 염치없다는 건 알지만, 방금 퇴출당한 친구… 한 번만 용서해주실 수는 없겠습니까?”
조심스러운 태도로 말하는 남자를 똑바로 바라보며 대답했다.
“제가 왜 그래야 하죠?”
“그것이 윤식이가 목소리가 제일 크긴 했지만, 그것이 모두의 의견이었기 때문입니다. 사실상 모두의 책임인데, 윤식이 혼자서 모든 것을 뒤집어쓰는 건 아니라고 봅니다. 불이익을 주신다면 달게 받겠습니다. 그러니 제발 한 번만 자비를…”
확실히 성윤식을 퇴출시킨 것은 과한 처사이긴 했다.
혼자서 쫓겨난다는 것은 지금 시점에서는 사실상 사형 선고와 같았으니까.
‘그렇지 않아도 다시 받아주려고는 했었지.’
[허가 받지 않은 대상이 출입을 시도합니다.]다행히 성윤식도 어디 가지 않은 채로 계속해서 문을 두드리고 있는 상태였다.
눈물 콧물 흘리며 서럽게 울고 있다는 점이 다르긴 했지만,
나는 눈앞의 대머리 남자를 향해 손을 내밀며 말했다.
“제 이름은 김재현이라고 합니다.”
“한경훈이라고합니다.”
한경훈과 가볍게 악수를 나누고 난 뒤 물었다.
“묻겠습니다. 한경훈씨는 그 집단의 대표로 저를 찾아온 것인가요?”
“네?”
“방금 그 의견이 다른 분들도 동의한 내용인지 묻고 있는 겁니다. 성윤식씨를 다시 받아주는 대신에 다 함께 불이익을 감수하겠다는 의견 말입니다.”
“그, 그렇습니다. 다 함께 결정한 일입니다.”
그렇지 않아도 언제쯤 성윤식을 받아줘야 하나 고민하던 중이었다. 본보기를 위해 한 사람의 생명을 거두어 갈 수는 없었으니까.
그런데 저쪽에서 먼저 숙이고 들어와 주니 오히려 고마웠다.
또한, 어느 정도 나쁘게 자리잡힌 이미지도 희석되고 있었다.
‘그래. 이 정도 결속력은 있어야 살아남을 수 있는 거겠지?’
각성자도 없이 대규모 집단을 형성한 사람들이었다.
이 세상에서 살아남아 그만한 집단을 이룬 것부터가 나름대로 능력이 있다는 반증이기도 했다.
분명 쓸만한 구석들이 있을 것이다.
“좋습니다. 성윤식씨에게는 다시 시민권을 드리겠습니다. 그리고 여러분들이 사용하는 공용 시설에 가스를 제외한 전기와 수도를 공급해드리도록 하겠습니다.”
“그게 저, 정말입니까?”
“여러분들의 동료애를 봐서 이번 한 번만 봐 드리는 겁니다.”
“가, 감사합니다! 정말 감사합니다!”
[시민 한경훈의 신뢰도가 크게 올라갑니다.]이 집단에 포함된 아이들을 생각하면 가스도 풀어주고 싶지만, 그래서야 벌이 아니게 된다.
적어도 찬물에 샤워하고 보일러가 들어오지 않는 바닥에서 잠자는 고통은 겪어야 하지 않겠는가.
‘전기장판도 있으니 애들은 알아서 따뜻하게 재우겠지!’
한경훈이 떠나가고 김다빈이 텔레파시로 말을 걸어왔다.
[재현님은 참 마음이 따뜻한 분이신 것 같아요.]그에 나도 소통의 반지를 사용해 화답해 주었다.
[제가요?] [네.]이상하다.
방금 대화에서 내 마음이 따뜻하다고 여겨질 구석은 없는 것 같은데.
[좋게 봐주셔서 감사합니다.]이런 것도 일종의 콩깍지가 아닐까.
따스한 눈빛으로 나를 바라보는 김다빈을 향해 말했다.
“지금 3개 동에 배치된 공용시설 말입니다만, 25개 동에 전부 하나씩 배치할까 생각 중입니다.”
“25개 동 전부요?”
“네.”
그와 동시에 김다빈의 눈가에 다크서클이 한 층 더 진해지는 듯한 착각이 들었다.
“지금 다빈씨 팀원이 몇 명이라고 하셨죠?”
“혜린씨와 형준 아저씨를 포함해서 총 15명입니다.”
“100명까지 늘리셔서 운영하실 수 있으시겠어요? 한 개 동에 4명씩이면 충분히 관리가 될 것 같은데.”
그 말을 듣는 순간 김다빈이 토끼눈을 하며 되물었다.
“배, 백 명이요?”
“네. 모두 일당 10만 원씩 지급해 드리겠습니다.”
그녀는 즐거운 듯 미소를 짓고 있었다.
그것은 자본주의의 미소였다.
“그 정도 규모라면 안정적으로 돌릴 수 있을 것 같네요. 더불어서 제 발언권도 강해질 것 같고요.”
그때였다.
[21층입니다.] [문이 열립니다.]남자 두 명과 여자 한 명이 엘리베이터에서 내려 이곳으로 다가왔다.
그들 중 남자 한 명이 대표로 나와 김다빈에게 말을 걸어왔다.
“안녕하세요.”
“무슨 일로 찾아오셨습니까?”
“혹시 의료팀 같은 거 필요하지 않으십니까?”
“의료팀이요?”
남자는 자부심이 느껴지는 목소리로 자신을 소개했다.
“부산백병원 신장내과 부교수 이성민이라고 합니다.”
사람이 많이 모이기 시작하니 다른 의미의 능력자들도 하나 둘 나타나기 시작했다.
>[Episode 10] 부산역 (4)>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