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bsolute Dweller RAW novel - Chapter (65)
“사, 살려주세요..”
푸욱!
눈물 흘리며 애원하는 여자의 부탁에도 아랑곳 않고, 날카로운 송곳니 두 개가 여자의 목덜미를 꿰뚫었다.
“끄윽, 끅”
여자는 저항할 힘이 없어 그저 멍하니 허공만 올려다봤다.
실시간으로 자신의 피가 빨려나가는 것을 느끼며 좌절할 뿐이다.
“추워…”
대량의 피가 빠져나가며 체온이 급격하게 내려가고 있었다.
반대로 생명의 원천인 피를 빨아들이고 있는 흡혈귀의 생명력은 점점 더 강대해지고 있었다.
얼마 지나지 않아 여자의 두 눈에서 생기가 사라졌다.
털썩.
“흐흐….”
하급 흡혈귀 제갈성규는 흡족해하며 입가의 피를 닦았다.
처음으로 대규모 사냥에 성공했기 때문이다.
열 명이 넘는 인원을 한꺼번에 사냥할 정도로 강력해진 자신의 힘에 취해 있기도 했다.
“많이 먹어라.”
제갈성규는 생명을 잃은 인간들에 달라붙어 피를 빨아대는 최하급 흡혈귀들을 보며 뿌듯한 미소를 지었다.
‘여긴 완전 노다지야’
그가 시민권을 발급받고 이 안전 구역 안으로 발을 들이게 된 것은 순전히 우연이었다.
처음에는 투명한 벽이 자신을 가로막더니 갑자기 ‘시민권’이라는 것을 제안했다.
제갈성규는 별 생각 없이 그것을 받아들였고, 영역 안에 진입했을 때에는 놀랄 수밖에 없었다.
‘어딜 가도 인간 천지다’
흡혈귀들의 주식은 인간의 피였다.
그리고 그들은 인간을 많이 잡아먹으면 먹을수록 강해지고, 점차 성장한다.
당연히 인간은 많으면 많을수록 좋았다.
그런데 여기 있는 인간들은 많을 뿐만 아니라 질도 좋았다.
바깥에서 잡아먹는 것들과 비교하면 거의 몇 배의 효율이 나오는 것 같았다.
덕분에 제갈성규는 빠르게 강해질 수 있었다.
‘이제 곧 중급으로 올라갈 수 있다. 그놈처럼’
자신을 쓸모없는 놈 취급하고 버렸던 그놈.
그놈과 대등한 힘을 손에 넣게 되는 것이다.
‘대등한 정도로는 부족하다’
좀 더 많은 인간의 피를 마셔서 그 놈을 뛰어넘어야만 했다.
그리고 자신을 쓸모없는 놈 취급한 대가를 치르게 해 줄 생각이다.
‘피의 복수를..’
그러기 위해서는 자신이 강해지는 것뿐만 아니라 그가 이끌고 있는 집단 자체가 강해질 필요가 있었다.
‘한 놈이 죽었나.’
현재 하급 흡혈귀인 제갈성규의 수준으로 부릴 수 있는 최하급 흡혈귀의 숫자는 다섯.
대규모 사냥 과정에서 한 놈이 죽긴 했지만, 상관없었다.
최하급 흡혈귀 하나 만드는 것쯤이야 어렵지 않았으니까.
‘여기는 널리고 널린 게 인간이다’
자신이 중급에 오를 때쯤이면 부하들도 슬슬 하나씩 하급 흡혈귀로 승급할 것이다.
그놈들이 다시 새끼를 치듯이 최하급 흡혈귀를 생산하면 자신의 군체는 급격한 성장을 이룩하게 된다.
‘그 상태로 이 주변에 있는 인간들을 닥치는 대로 잡아먹은 다음, 놈을 찾아간다’
그때쯤이면 놈을 압도하고도 남을 전력이 되어 있을 것이다.
놈이 있는 곳은 인간 한 마리 찾기가 하늘에 별 따기 수준이었다.
그래서 자신이 쫓겨난 것이고.
하지만 반대로 이곳은 낙원이나 다름없었다.
먹잇감이 넘치는 낙원.
이곳에서 자신과 자신의 군체가 성장하는 동안 놈은 정체되어 있을 게 분명했다.
‘잡아먹어주마.’
자신의 앞길에 펼쳐질 장밋빛 미래를 상상하며 입가에 묻은 피를 혀로 핥았다.
그 순간.
철컥.
“?”
갑자기 문이 열리더니, 그곳에 웬 남자 하나가 서 있었다.
불청객이 찾아온 것이다.
처음에는 크게 신경 쓰지 않았다.
단지 영문도 모른 채 이곳의 문을 연 운 없는 남자가 불쌍할 뿐이다.
‘저런. 제 발로 죽으러 오다니’
제갈성규가 따로 명령을 내릴 필요도 없이, 살아있는 싱싱한 먹잇감에 최하급 흡혈귀들이 곧바로 반응했다.
“끼이에에엑!”
“캬아아!”
최하급 흡혈귀들이 하악질을 해대며 그 남자를 향해 달려들기 직전.
퍼걱!
남아 있던 네 마리의 최하급 흡혈귀들의 머리가 동시에 터져나갔다.
‘어?’
무거운 정적이 사방에 내려앉았다.
정말 아무런 전조도 없이.
전투도 없이.
제갈성규가 이 상황을 이해하는 데에는 약간의 시간이 걸렸다.
머리가 지금의 상황을 이해하는 것을 거부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지금 도대체 무슨 일이 벌어진 거지?’
눈앞에서 벌어진 일련의 사태를 도무지 이해할 수가 없었다.
‘내가 본 게 맞나?’
그러나 두 눈으로 분명하게 목격한 상황.
자신의 부하들이 남자에게 적의를 드러내는 순간, 신의 심판이라도 받듯이 머리가 터져나갔다.
그 적나라한 현실을 인식하게 되자 패닉에 빠질 수밖에 없었다.
공포가 그의 뇌를 뒤덮었다.
‘마, 말도 안 돼!’
한 가지 확실하게 이해한 것은, 지금 눈앞에 있는 존재가 가지고 있는 힘이 자신의 머리로는 이해불가해한 영역에 있다는 점이었다.
부하들에 대한 복수심?
피의 복수?
그딴 건 머릿속에서 사라진지 오래.
압도적인 힘을 가진 존재 앞에 자신의 사사로운 감정 따위는 중요하지 않았다.
남아 있는 것은 그저 살아야 된다는 강렬한 생존 욕구였다.
제갈성규는 무릎을 꿇은 채 간신히 입을 열었다.
온 힘을 다해, 간절한 마음을 담아 입 밖으로 소리를 만들어 내었다.
“사, 살려주세요.”
포식자의 입장일 때는 들려오지 않았던, 약자의 절규가 자신의 입에서 똑같이 흘러나오고 있었다. 살아남기 위한 자그마한 발버둥.
제갈성규는 자신이 할 수 있는 최선의 선택을 하고 있는 중이었다.
“살려주십ᅳ 커헉!”
그때 무언가 자신의 목을 잡아 위로 끌어 올리는 듯한 감각이 느껴졌다. 이내 발이 닿지 않았다.
공중에 뜬 상태로 버둥거려봤지만 소용없었다.
“감히..”
눈앞에 분노한 남자의 얼굴이 보였다.
그것을 보는 순간 직감적으로 알 수 있었다.
이 남자가 자신을 용서하는 기적은 벌어지지 않을 것이라는 걸.
지렁이도 밟으면 꿈틀한다는데, 자신은 그런 저항은 꿈도 꿀 수 없었다. 지렁이가 꿈틀거리는 것도 인간 정도의 체급이 자신을 밟았을 때였다.
코끼리가 자신을 밟고 지나가면 지렁이처럼 작은 존재는 즉사하기 마련이다.
제갈성규는 모든 것을 포기하고 눈을 질끈 감았다.
눈앞의 존재의 선택을 받아들이는 것 외에는 할 수 있는 게 없었으니까.
“크흡?”
그때였다.
갑자기 목에서 느껴지던 압력이 줄어들더니 발이 땅에 닿았다.
힘없이 바닥에 엎어진 제갈성규는 몸을 덜덜 떨며 남자를 올려다보았다.
남자가 말했다.
“지금부터 내가 묻는 말에 최대한 성실하게 대답해라.”
제갈성규는 머리를 조아리며 대답했다.
성실하게 대답하지 않으면 극심한 고통이 부여될 거라는 퀘스트창이 떴지만, 상관하지 않았다. 애초에 눈앞에 있는 남자에게 거역할 생각 따위는 추호도 없었으니까.
“…예.”
바닥에 바짝 엎드려 목숨을 구걸하기 위해 최선을 다 했다.
일말의 가능성이라도 잡기 위해 자신이 아는 모든 것을 그에게 전할 준비가 되어 있었다.
남자가 입을 열었다.
“어떻게 여기에 들어온 거지?”
“그것이….”
하급 흡혈귀, 제갈성규.
놈의 이야기를 모두 들은 나는 머리가 아파오는 것을 느꼈다.
‘인간이 아닌 몬스터도 시민으로 받아들일 수 있을 줄이야’
시스템 메시지는 시민권을 부여할 때, ‘인간’이 아닌 ‘시민으로 받아들일 수 있는 조건을 만족하는 개체’라고 표현했었다.
그 말이 인간이 아닌 몬스터에게도 시민권을 부여할 수 있다는 말일 줄은 몰랐다.
‘그것도 인간을 잡아먹는 몬스터에게 시민권 부여가 가능할 줄이야!’
시민들의 유입은 지금 이 순간에도 계속해서 쏟아지고 있었다.
유입되는 시민들의 수가 얼마 되지 않던 옛날에야 일일이 그들을 살피며 시민 정보를 확인했었지만, 그 숫자가 어마어마하게 많아진 지금은 시민권 획득이 가능한 사람이 접근 하면 곧바로 시민권 획득이 가능하게끔 설정해둔 상태였다.
일종의 자동 시스템화였다.
그게 아니라면 일하고 있는 동안에도, 자고 있는 동안에도 계속해서 유입되는 시민들을 받아들여야 했기 때문이다.
그런데 그것이 이렇게 돌아올 줄이야.
부작용이라고 해 봐야 기껏해야 분란을 만드는 성격 더러운 시민이 들어오거나, 범죄자가 들어오는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차원이 다른 문제가 등장한 것이다.
‘흡혈귀라니’
놈을 향해 물었다.
“물리기 전에는 인간이었다고?”
“예, 그렇습니다. 평범한 인간이었고 안상혁이라는 흡혈귀에게 물리고 난 뒤 최하급 흡혈귀가 되었습니다.”
충격적인 것은 눈앞에 있는 흡혈귀가 한때는 평범한 인간이었다는 점이었다.
‘그래서 시민권 부여가 된 걸지도 모르겠군’
어쨌든 시스템적 허점이 나온 이상 앞으로는 아무나 마구 받아들일 수는 없었다.
적어도 받아들이는 순간 내가 시민 정보창을 보고 흡혈귀인지 아닌지 정도는 확인을 해야만 했다.
뿐만 아니라 지금까지 받아들였던 시민들의 정보창도 다시 확인해야할 판이다.
“최하급 흡혈귀로 지냈던 며칠간은 기억이 희미했었고, 인간을 잡아먹으며 하급 흡혈귀로 성장한 거라고 했지?”
“네, 그렇습니다.”
제갈성규의 말을 빌리자면, 최하급 흡혈귀들은 본능만 남은 짐승과도 같은 존재들이었다.
그나마 명령을 하면 알아들을 지능은 남아 있는 수준.
인간의 자의식이 생겨나는 것은 하급 흡혈귀부터라고 한다.
“당신을 흡혈귀로 만들었다던 안상혁이라는 남자는 당신보다 더 높은 중급 흡혈귀였고.”
“예, 예. 그렇습니다.”
현재 하급 흡혈귀인 제갈성규의 레벨은 28.
그렇다는 것은 중급 흡혈귀의 경우 최소한 이보다는 레벨이 더 높을 것이라는 결론이 나온다.
‘그리고 중급이 있다는 건 상급 흡혈귀도 존재한다는 뜻이겠지!’
놈들의 계급이 정확히 어디까지 존재하는지는 알 수 없으나 일단 상급까지는 존재할 것이다.
레벨도 상당히 높을 것으로 예상됐다.
“그 중급 흡혈귀라는 놈의 거점이 어디라고?”
“대연동에 있는 한 아파트 단지입니다.”
“잘 알겠습니다.”
내가 대화를 끝마치려는 낌새가 보이자 제갈성규는 절박한 목소리로 목숨을 구걸해왔다.
“제, 제가 그 놈이 있는 곳까지 안내해드리겠습니다! 부디 당신의 손으로 이 모든 일의 원흉인 그 놈에게 천벌을 내려주십시오!”
[시민 제갈성규의 충성도가 올라갑니다.]놈의 목적은 뻔히 보였다.
어떻게든 살고 싶어서 안달이 나 있는 모습이었으니까.
게다가 나와 마주하고 난 이후부터 급격하게 올라가는 신뢰도와 충성도 수치가 기분을 역하게 만들고 있었다.
‘사람을 잡아먹는 괴물의 충성이라니’
달갑지 않았다.
필요한 정보라면 충분히 들었다.
“그렇게 복수가 하고 싶다면 직접 하는 게 어때?”
하급 흡혈귀가 된 제갈성규는 한때 사람이었다고 해도 지금은 사람을 잡아먹는 괴물일 뿐이었다.
당연히 받아들일 생각도, 살려줄 생각도 없었다.
‘퀘스트 부여’
《퀘스트 부여》
퀘스트 내용 : 안상혁을 죽이기
제한 시간 : 24시간 00분 00초
보상 : 소량의 경험치.
실패 페널티 : 죽음.
“안내해줄 필요 없다. 네가 직접 가서 놈을 죽여라.”
제한 시간은 24시간.
아직 하급에 불과한 제갈성규가 중급 흡혈귀라는 안상혁을 죽일 수 있을 리가 없었다.
이건 대놓고 가서 죽으라는 소리였다.
그것을 알아들은 제갈성규가 다급하게 말해왔다.
“자, 잠시만요 그럼 제게 인간의 피를 마실 수 있게 해 주십시오. 중급만 된다면 그까짓 놈 하나쯤은-!”
“만약 인간에게 손끝 하나라도 댄다면 그 즉시 머리가 터져나갈 거야.”
제갈성규는 아무런 대답도 하지 못하고 고개를 푹 숙였다.
침울해하는 그를 향해 약간의 희망을 심어주기로 했다. 괜히 자포자기해서 다른 사람들을 공격하면 안 되니까.
‘상점 오픈. M16 구매’
지이잉—
제갈성규는 눈앞에 나타난 소총과 실탄 100발 세트를 보고는 두 눈을 크게 떴다.
“기회를 드리는 겁니다. 당신을 이렇게 만든 놈에게 복수할 기회를”
놈은 소총을 쓰다듬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이거라면… 이거라면 가능합니다! 해보겠습니다!”
“최선을 다해 모든 흡혈귀를 박멸해.”
“감사합니다!”
“다시 한 번 말하지만, 이것으로 흡혈귀가 아닌 사람을 공격할 경우 그 즉시 죽여 버리겠어.”
“며, 명심하겠습니다.”
“지금 당장 출발해.”
“예!”
제갈성규는 빠릿빠릿하게 대답한 다음 건물 밖으로 나갔다.
놈이 떠나고 남은 건물에는 사람들의 시체가 어지럽게 널려 있었다.
원통한 죽음에 두 눈을 부릅뜨고 죽은 이들이 절반이었다.
화르륵
그들의 시체를 태우려던 순간, 잠시 멈췄다.
‘이들에게도 가족들이 있겠지!’
아무리 처참한 모습의 마지막이더라도 가족들의 얼굴은 봐야하지 않을까.
나는 불꽃을 없앰과 동시에 소통의 반지로 서예진을 불렀다.
[서예진씨. 생쥐들로 따라가 줬으면 하는 남자가 한 명 있습니다.]제갈성규의 뒤에 서예진의 생쥐를 붙이는 것에는 세 가지 이유가 있었다.
첫 번째는 흡혈귀 놈들의 정확한 위치를 알아내기 위해,
두 번째는 제갈성규가 들고 있는 소총을 놈들에게 넘기지 않기 위해,
마지막으로 조금이라도 뻘짓을 하려고 할 시 불태워 죽여 버리기 위함이었다.
‘흡혈귀들을 박멸시킬 팀을 짜봐야겠어!’
인간을 주식으로 하는 괴물이 근처에 있다면, 시민들의 안전을 위해서라도 모두 없애버리는 게 맞았다.
[Episode 14] 흡혈귀 (2) >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