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bsolute Dweller RAW novel - Chapter (70)
부산 광안리 해변의 한 펜션.
그곳에는 또 하나의 흡혈귀 집단이 존재했다.
안상혁이 이끄는 흡혈귀 집단과 조금 다른 점은 한 사람의 리더가 집단을 이끌고 있는 게 아니라는 점이었다.
총 다섯 명의 중급 흡혈귀들이 각자의 집단을 통솔하며 의회의 형태를 취하고 있었다.
“이제 이 주변의 인간들은 씨가 말랐어.”
“더 이상 흡혈귀의 숫자를 늘리는 것은 안 돼. 이러다가는 다 같이 굶어죽고 말 거야.”
그들은 현재 정체기에 든 상황이었다.
주변에 있는 생존자 집단은 모조리 제압을 성공한 상태였다.
현재 광안리 곳곳에 있던 이들은 흡혈귀에게 물려 죽거나, 흡혈귀가 되었다.
모여 있던 흡혈귀들 중 유일한 여자인 오여름이 한탄하듯 말했다.
“그러게 이준영씨. 무식하게 숫자만 늘리는 짓 좀 그만두라고 그랬지?”
“뭐야?”
“내 말이 틀렸어? 너네 애들이 최하급 흡혈귀들을 마구잡이로 늘려대니까 일이 이렇게 된 거 아니야? 어?”
이준영은 표정을 일그러뜨리며 오여름을 노려보다가 입을 열었다.
“내 방법은 틀리지 않았다. 우리 중에서도 가장 많은 실적을 올렸고,”
“숫자가 많으니까 그만큼 많이 쳐 먹은 것 뿐 아니야?”
“이 씨발년이?”
오여름이 비꼬듯 말하자 이준영이 금방이라도 달려들 것처럼 이를 갈았다.
“그만”
그때 한쪽에서 턱을 괸 채 가만히 회의를 지켜보던 중년 남자 하나가 끼어들어 두 흡혈귀를 말렸다.
“흠.”
“조심해라. 언젠가 그 잘난 턱을 부셔버릴 테니.”
“뭐래. 혼자서 생각도 못하는 반병신들만 수두룩하게 들고 있는 주제에.”
틱틱대긴 했지만 두 사람의 분위기는 아까처럼 살벌해지지는 않았다.
다른 흡혈귀들은 항상 있어왔던 일이라는 듯 신경도 쓰지 않은 채 회의를 이어나갔다.
“이번 기회에 자리를 좀 옮기는 건 어때요? 여기보다 인간이 더 많은 곳으로.”
“나도 그 생각 했어.”
그러나 오여름과 이준영의 다툼을 중재했던 남자가 조용히 고개를 저으며 대답했다.
“안 돼.”
곧바로 반응이 나타났다.
“왜 안 되는데? 준호야. 자꾸 여기를 고집하는 이유가 뭐야? 예전부터 어째서 여기를 떠나려고 하질 않는 건데? 여기 이러고 있으면 다 같이 사이좋게 굶어 죽는다니깐?”
김준호의 말에 무게감이 있는 것은 그가 안상혁처럼 이 조직을 만들어낸 첫 번째 흡혈귀이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안상혁처럼 군림하기 보다는 수평적인 관계를 원했고, 그 덕에 다른 흡혈귀들은 자유롭게 자신의 의견을 말하는 편이었다.
대답이 없자 쏘아붙이듯이 질문을 했던 남자가 가슴을 퍽퍽 쳐대며 말했다.
“답답해 죽겠네. 아무리 우리를 흡혈귀로 만들어주고, 새 삶을 살 수 있게 도와준 너라지만 이유도 모른 채 여기서 굶어죽을 순 없어. 난 떠나야겠어.”
그때였다.
“그러면 안 되지.”
낯선 목소리가 튀어나왔다.
“누구!”
출가를 선언한 남자가 소리가 난 쪽으로 고개를 돌리며 소리치려던 순간.
푸욱!
“커헉!”
어둠 속에서 튀어나온 낯선 남자가 그의 목덜미를 물었다.
“끄극 끄그극!”
남자는 순식간에 피를 빨려 미라처럼 말라비틀어져갔다.
그의 피를 전부 빨아먹은 흡혈귀가 천천히 남자의 목에서 입을 떼더니 간단한 감상을 말했다.
“흐음. 잘 익었군.”
그때까지 멍하니 그 광경을 지켜보고 있던 중급 흡혈귀들이 발광하기 시작했다.
“이 미친놈이!”
“죽여!”
바로 오른쪽에 앉아 있던 이준영이 낯선 남자를 향해 주먹을 휘둘렀다.
그러나.
푸욱!
이준영이 휘두른 주먹은 허공을 갈랐고, 낯선 남자의 오른손은 이준영의 심장을 관통해 있었다.
그 상태 그대로,
푸욱!
송곳니를 이준영의 목에 박아 넣은 낯선 남자가 앞선 경우와 마찬가지로 피를 빨아대기 시작했다.
품속에서 식칼을 꺼냈던 다른 중급 흡혈귀는 그 광경을 지켜보며 조용히 등을 향해 접근했다.
“어억!”
낯선 남자가 이준영의 피를 빠는 것에 전념하는 틈을 타 놈의 등을 노렸다.
“흐읍!”
푸욱!
식칼이 낯선 남자의 등에 깊숙이 꽂혔다.
“흐흐! 병신이 어딜 기어들어—!”
그러나 그의 말은 끝까지 이어지지 못했다.
푸슉!
식칼을 꽂은 자리에서 피어오른 핏물이 그대로 그의 목울대를 관통했기 때문이다.
“커헉! 끄윽! 꼭!”
꿀렁!
붉은 핏불로 만들어진 촉수는 남자의 피를 게걸스럽게 먹어치웠다.
목이 관통당한 중급 흡혈귀의 몸이 빠르게 말라비틀어져갔다.
동시에.
미처 반항해보지도 못한 이준영은 그대로 말라비틀어진 미라가 되어 생을 마감했다.
“쩝쩝. 음. 뭐 나쁘진 않네.”
달크락!
남자의 등에 박혔던 식칼이 바닥에 떨어지는 소리가 요란하게 울려댔다.
“쥐새끼처럼 도망가면.”
순간 남자의 등에서부터 뻗어 나온 핏줄기가 길게 늘어지더니 발소리를 죽여 가며 도망가던 오여름의 등에 박혔다.
“히이익!”
새된 비명 소리를 들으며 남자의 입고리가 올라갔다.
“살 수 있을 줄 알았나?”
“자, 잘못했어요. 제발 목숨만은… 끄윽..”
그러나 자비는 없었다.
꿀렁!
마찬가지로 오여름은 제대로 된 반항 한 번 못해보고 말라비틀어졌다.
“흐음. 상당히 괜찮은 걸?”
그때까지 모든 상황을 지켜보던 김준호가 멍하니 낯선 남자를 바라보다 입을 열었다.
“오랜만입니다, 영훈님.”
순식간에 그의 동료 넷을 먹어치운 괴물, 정영훈은 활짝 웃으며 대답했다.
“오랜만이네. 한 달만인가?”
“…그 정도 되는 것 같군요.”
“그래. 그 동안 잘 지냈어?”
—
“영훈님이 주신 힘 덕분에 아직까지 어떻게든 살아남는 데에는 성공했습니다.”
“그렇군. 수고했어.”
김준호는 담담하게 물었다.
“이제 제 차례입니까?”
“그렇지.”
“여기에서 꼼짝 말고 있으라고 명하신 것도 이것 때문입니까?”
“맞아.”
김준호는 땅이 꺼져라 한숨을 내쉬며 부탁했다.
“살려주십시오.”
그러자 정영훈은 너털웃음을 터뜨리더니 입을 열었다.
“내가 이러는 이유를 아직도 모르겠어?”
“압니다. 인간을 하나하나 일일이 찾아다니며 피를 빠는 것 보다는 농축되어 있는 중급 흡혈귀의 피가 더 도움이 되시는 거겠지요.”
“호오. 잘 알고 있네?”
정영훈의 몸에서 빠져나온 핏줄기들이 갈래갈래 갈라져 김준호에게 다가왔다.
그 중 한 가닥이 날카로운 바늘이 되어 김준호의 얼굴을 찔러왔다.
상처에서 흘러나온 피 한 방울이 핏줄기를 통해서 정영훈의 몸으로 흡수되어 갔다.
“제법 현명하다만. 그러면 더더욱 잘 알 텐데? 목숨을 구걸해 봤자 살아날 구석은 없다는 걸. 차라리 온힘을 다해 나에게 덤벼보지 그랬어?”
“승산이 없는 싸움은 벌이지 않는 성격이라”
“흐흐. 재밌네.”
김준호가 담담하게 말했다.
“지금 이 조직이는 수많은 하급 흡혈귀들과 최하급 흡혈귀들이 있습니다. 그들도 분명 평범한 인간보다야 영양이 좋을 테지만, 영훈님께서 몸소 사냥하며 다닐 가치는 없겠지요. 영훈님께서 돌아오기 전까지 다시 중급 흡혈귀 세 마리를 생산해 놓겠습니다.”
“이 근방에 인간들은 씨가 말랐다고 들었는데? 어떻게? 여길 떠날 생각인가?”
“하지만 흡혈귀들은 남아 있지요.”
그는 계속해서 설명을 이어나갔다.
“현재 가장 숫자가 많은 아이들은 이준영이 이끌던 애들입니다. 우선은 이준영을 배신자라 칭하여 나머지 애들에게 먹이로 던져줄 생각입니다.”
“…계속해 봐.”
“동료 흡혈귀의 피를 마시고 힘을 얻은 이들은 동족상잔의 효율성을 깨닫게 될 것입니다. 평범한 인간 수십 마리를 잡아먹는 것 보다 같은 하급 흡혈귀를 잡아먹는 게 낫다는 걸 깨닫게 될 테니까요. 내버려두면 자기들끼리 알아서 잡아먹으며 중급 흡혈귀로 성장하게 될 것입니다.”
김준호의 설명을 모두 들은 정영훈은 박장대소를 터뜨렸다.
“푸하하! 이거 물건이네? 그렇게 해서라도 며칠이라도 더 살아 보겠다? 진짜 대단한 새끼였네. 크큭.”
“영훈님께 가치를 증명하면, 다른 장소로 옮겨서 농장주 역할을 계속하게 될 수도 있겠지요.”
“이야. 거기까지 생각하고 있었던 거야?”
“살려만 주신다면, 제가 영훈님의 황금알을 낳는 거위가 되겠습니다.”
“푸하하하하!”
한참을 그렇게 웃던 정영훈은 고개를 45도로 기울이며 김준호에게 충고했다.
“혹시나 해서 하는 말인데, 어떻게든 시간을 벌어서 나와 같은 상급이 되려는 생각이라면 집어 치워.”
“상급 흡혈귀들은 너희처럼 천한 태생으로 시작하는 게 아니야. ‘그분’께 직접 선택받아야만 될 수 있지. 나는 처음부터 상급 흡혈귀였고, 너희는 아무리 발버둥 쳐도 상급 흡혈 귀가 될 순 없어.”
“…가슴에 새기겠습니다.”
정영훈의 몸에서 뻗어 나온 핏줄기가 서서히 그의 몸으로 되돌아갔다.
“크큭.”
한동안 키득대던 정영훈이 넌지시 말했다.
“그럼 기대할게, 농장주”
그것을 마지막으로 그는 다시 어둠 속으로 스며들었다.
그가 떠나가고 한동안 김준호는 움직이지 않았다.
시간이 정지하기라도 한 것처럼 그 자리에 앉아서 가만히 어둠 속을 응시하고 있었을 뿐이다.
드르륵
인내심 좋게 기다리던 김준호는 의자에서 일어나 죽은 동료들의 시신을 훑어봤다.
계속해서 무표정하기만 하던 그의 얼굴이 악귀처럼 일그러졌다.
“…개새끼가.”
그는 분노가 가득한 눈으로 자신이 직접 흡혈귀로 키워냈던 이들의 시신을 수습했다.
뿌득
이를 갈며 속으로 생각했다.
‘궁금하네요. 뒤지기 전에도 그런 표정을 지을 수 있는지’
놈이 자신을 살려준 것은 단순한 변덕에 불과할 것이다.
김준호가 무엇을 어떻게 하던지 자신을 어떻게 하지는 못하리라는 자신감.
‘거슬려’
김준호가 복수를 다짐할 때, 정영훈은 다음 행선지를 정하고 있었다.
“음. 다음에는 어디였더라. 무슨 아파트 단지였던 거 같은데”
소집에 응한 하동건 파티가 집결하기까지 1시간이 채 걸리지 않았다.
강덕수와 김 건의 일탈 덕분에 술병과 쓰레기가 굴러다니는 소굴이 된 2901호에서 흡혈귀들에 대해 간략하게 설명했다.
“…그래서 여러분들을 호출한 겁니다.”
사정을 모두 들은 하동건이 물었다.
“놈들은 여전히 거기 있습니까?”
“네. 아직은 별다른 움직임을 보여주지 않고 있습니다.”
지금도 절대자의 눈을 사용해 놈들을 감시하고 있는 중이었다.
서예진의 생쥐들이 해당 아파트 단지의 하수구를 완전히 장악하고 있는 덕분에 놈들의 움직임을 훤히 꿰뚫어보는 게 가능했다.
“여러분들의 실력이면 무리 없이 정리할 수 있을 겁니다.”
그곳의 최고 실력자인 안상혁이라는 놈도 겨우 38레벨인 중급 흡혈귀였다.
전원이 최소 40레벨 이상인 하동건 파티에 감히 대적할 순 없을 것이다.
솔직히 하동건 파티에게 있어서 이것은 나들이나 다를 바 없는 작전인 셈이었다.
“예진씨의 생쥐가 놈들이 있는 아파트 단지로 여러분을 안내해 줄 겁니다. 생각보다 가까워서 금방 도착할 거예요.”
만약에 변수가 생긴다고 해도, 웬만한 변수는 하동건 파티에게 위협이 되지 못할 것이 분명했다.
“한 가지 걱정되는 것이 있다면, 녀석들이 한 때 사람이었던 존재들이라는 것입니다.”
내 말에 하동건이 담담하게 대답했다.
“하지만 지금은 사람을 잡아먹는 괴물일 뿐이죠.”
“…괜찮으시겠습니까?”
하급 흡혈귀였던 제갈성규와 직접 대치해본 나였기에 더욱 잘 알고 있었다.
‘겉모습은 인간과 다를 바가 없다’
놈들이 인간을 먹잇감으로 보는 악랄한 존재라는 것을 인지하고 있으면서도 가스 폭발이나 독가스로 놈들을 처단할 때 기분이 이상했다.
단지 놈들의 겉모습이 인간을 닮아 있다는 그 사실 하나만으로 말이다.
아마도 하동건 파티도 나와 그리 다르지 않을 것이다.
‘죽이면 죽일수록 익숙해지기는 하지만’
이미 정신적인 충격으로 고생을 하고 있던 이들이라 더욱 걱정이 됐다.
“정말 괜찮으시겠습니까?”
내 걱정을 눈치 챈 듯 하동건이 나를 똑바로 마주보며 진중하게 입을 열었다.
“재현님께서 무엇을 걱정하시는지는 압니다. 하지만 변해버린 이 세상을 살아가기 위해서는 한 번쯤 거쳐 가야 하는 과정이라고 생각합니다.”
“네?”
“앞으로 이런 경우가 얼마나 더 많을지 모릅니다. 인간을 닮은 몬스터가 아니라, 진짜 인간을 죽여야 하는 때가 올 지도 모르죠. 그때가 오면, 저는 망설이지 않을 생각입니다.”
하동건이 옅은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그때를 위한 예행연습이라고 생각하죠. 괜찮습니다. 이번처럼 멘탈이 깨진다면 또 잠시 쉬면됩니다. 이놈들처럼 술독에 빠지는 것도 나쁘지 않은 방법이라 생각합니다.”
확신에 가득 찬 어조로 말했다.
“너무 걱정하지 마십시오. 저도 제 파티원들도 그렇게 나약하지 않습니다. 중간에 마음이 꺾인다 해도, 다시 일어날 겁니다. 오늘처럼.”
나는 피식 웃으며 대답했다.
“제가 괜한 걱정을 했네요.”
하동건의 각오는 확실히 전해졌다.
“이번에도 잘 부탁드리겠습니다.”
에이스 파티의 귀환이었다.